소설리스트

207화. 그 뒤, 3년 동안(1) (206/249)
  •  207화. 그 뒤, 3년 동안(1)

     대협곡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로엘은 우선 개인 공방을 찾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분.”

    “…….”

    “…….”

     그가 눈앞에 선 두 사내에게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야, 그 두 사람은 로엘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은 이들이었으니까.

     얼굴에 가득한 주근깨. 갓 청년의 대열에 들어선 젊은 얼굴. 칙칙한 검은색 계열의 로브. 음울한 분위기.

     전(前) 프레퍼 최고 간부 중 하나이자 게르반의 진전을 이은 천재 흑마법사, ‘제파스’.

     조금 지저분하게 정리된 갈색 머리칼과 턱수염. 살짝 주름진 얼굴. 마찬가지로 검은색 계열의 로브. 냉막한 분위기.

     전 프레퍼 최고 간부 중 하나이자 골렘의 현자인 ‘에반’.

     원래 역사에선 프레퍼의 쌍두마차로 악명을 떨쳤던 두 사람이었다. 현 역사에는 체내에 나노머신이 주입되어 로엘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너무 그렇게 기분 나쁜 얼굴을 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얼굴 볼 일이 많을 텐데.”

    “내 몸속에 주입된 그 빌어먹을 골렘을 꺼내준다고 하면 생각해 보지.”

    “이런. 그냥 찌푸리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로엘의 능글맞은 답변에 제파스가 칫, 하고 혀를 찼다.

    “앞으로 두 분께선 이곳 공방에서 주로 활동하시게 될 겁니다.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제 연구를 보조하는 것과 각자 전문분야를 살려 병력을 생산하는 것.”

    “연구 보조?”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드려야겠군요.”

     로엘은 빙긋, 하고 웃었다.

    “제가 이참에 비행형 언데드를 좀 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언데드 생성 마법만으론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골렘 제작 기술을 조금 접목시켜볼까 합니다.”

    “우리에게 거부권이 없다는 건 일단 제쳐 두고, 그게 가능은 한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일단 도전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손해가 막심할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견본을 보여드리는 쪽이 이야기가 빠르겠죠.”

     우우웅!

     로엘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으로부터 본 와이번 하나가 튀어나왔다. 일순 제파스의 눈이 번뜩였다.

    “제가 좀 여러모로 바쁜지라 늘 공방에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서 해 주셔야 할 일이 꽤 많을 겁니다.”

    “…….”

    “우선 이 표본을 가지고 가서 한 번 해체해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편이 연구의 기틀을 빠르게 잡을 수 있겠지요. 물론 제작 설계도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항상 시간이 모자란 로엘인지라 그동안 자기 개발에 많은 시간을 쏟지는 못했다. 앞으로는 이 두 사람을 활용해 모자란 시간을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으리라.

    “필요한 것은 모두 지원해 드리죠. 재료, 금전, 연구자료, 보조 인력에 고대의 아티펙트까지. 제대로 성과만 내주시면 대우도 섭섭지 않게 해 드릴 테니 의욕을 좀 내주셨으면 합니다.”

     로엘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각자 병력을 생산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다만, ‘양보단 질’을 기본적인 컨셉으로 잡아주세요.”

    “양보단 질?”

    “우선 제파스 씨는 저와 같이 고위 언데드만으로 한계 용량을 꽉 채우셔야 합니다. 물론 제가 다루는 언데드와 같은 종류의 것들로.”

    “!”

     제파스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는 아직도 ‘그날’에 로엘이 선보였던 압도적인 화력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 굉장한 언데드들을, 자신도 만들어 부릴 수 있게 된다는 말인가?

    “물론 제파스 씨가 생성한 언데드들은 모두 제 아공간에 보관될 겁니다. 그편이 여러모로 편의성이 높고, 저도 안심할 수 있거든요.”

     제파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그리고 에반 씨는 각 군사요충지에 보급할 공성 골렘을 제작해 주셔야겠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생겨날 손해는 걱정하지 마시고, 최고의 성능을 지닌 대형 골렘의 제작에 힘써 주세요.”

    “그뿐인가? 그 외에는…….”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로엘은 고개를 저었다.

     제작할 골렘의 개체 수는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할 예정이었다. 재화가 넘쳐나는 만큼 골렘 제작 자체엔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그 골렘을 직접 조종할 인력이 부족하니까.

     프레퍼의 수장을 없애고 획득한 ‘마옥’을 이용하면 부족한 인력을 상당수 보충할 수 있긴 하다.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인력의 양성에만 마옥을 활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축적된, 그리고 앞으로 추가로 축적될 사념의 양이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어찌 됐든 한계가 존재할 터. 그것은 갖가지 특수병과를 고루 양성하는 데에 쓰여야 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이게 다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

     흔히 말하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와 같은 발언이 아니었다. 다분히 마족의 대륙 침공을 암시하고 있는 발언이었다.

     물론 제파스와 에반은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얼마 전까지 프레퍼의 최상위 간부였으니까.

     어차피 마족의 군세를 막아내지 못하면 다 죽는다.

     어차피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는 거, 이왕이면 의욕을 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너희에게도 좋지 않겠느냐. 로엘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가지만 묻지.”

     중년 사내, 에반이 물었다.

    “지금은 쓸모가 있으니 우리를 살려두고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그러니까 마족의 대륙 침공까지 물리치고 난 후엔, 우리를 어떻게 할 작정이지?”

    “글쎄요?”

     로엘은 의뭉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서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질 못했네요. 이렇게까지 고생해가며 전력을 모으고 있는데도 승산을 마냥 높게 잡긴 힘든 전쟁이다 보니.”

     에반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대답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에반의 기분을 달래듯, 로엘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아마, 그 시점의 제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

     한마디로, 살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는 의미였다.

     * * *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로엘은 아이렌 왕국에서 한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아이렌 왕국은 북쪽으로는 제국과 인접해 있고, 서남쪽으로는 야만 민족의 영토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였다.

     왕국의 유력 군벌 귀족인 바르센 후작과의 교섭을 마친 로엘은, 화려하고 웅장한 후작 저택을 뒤로하며 중얼거렸다.

    “더럽게 힘드네.”

     정말이지 뼈 빠지게 고생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거 갑자기 막 억울한 느낌이 드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만을 내뱉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인과 르우벤, 그리고 카트란은 아카데미에서 동년배들과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거늘. 왜 자신만 이렇게 고생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 셋은 지난 축제 때 벌어진 시가전으로 인해 아주 대스타가 다 된 듯했다. 현재 아카데미의 최고 인기인들로 등극했다던가.

     특히 레인. 이 녀석은 대밀림에 다녀오더니 수인족 대족장의 손녀(로난)를 포함한 젊은 전사들을 대거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놈 주위는 아주 꽃밭이었다. 연인인 레이나부터 셀린, 일리나, 루미아, 리나, 로난, 거기에 열렬한 추종자인 젊은 수인 전사들까지.

     물론 그놈이 무슨 난봉꾼도 아니고 레이나 이외의 여인들과 사제지간 이상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긴 하지만, 괜히 질투심이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레인 녀석이 그렇게 꽃밭에서 노닐고 있는데, 대체 이쪽은 지금 뭘 하고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연인인 플로라와도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니!

     물론 정말로 레인을 포함한 세 각성자가 로엘의 분노를 살 정도로 놀고먹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잔뜩 스트레스가 쌓인 로엘의 불합리한 분노에 불과했다. 로엘 본인은 그것을 인정할 마음이 절대 없었지만.

    “이번 학기만 끝나 봐라. 그 녀석들, 이젠 졸업이라 거리낄 것도 없으니 아주 제대로 뺑뺑이를 돌려주마.”

     로엘은 끝내 비틀린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할 계획마저 세우고 말았다.

     제국의 어둠을 주관하는 냉정하고 잔혹한 지배자의 모습이라기엔 여러모로 괴리감이 느껴지는, 어찌 보면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는 태도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24시간 내내 가면을 쓰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그렇고.”

     로엘이 후작 저택을 돌아보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이곳에서 얻은 소득이 굉장히 크군.”

     아이렌 왕국은 로엘이 물밑에서 공작을 펼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국가였다.

     이미 반란이 일어나 왕실이 한 차례 전복되었고, 새롭게 왕위를 차지한 전(前) 공작은 다른 귀족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었다. 그로 인해 온갖 잡음이 넘쳐나고 있는 게 현 아이렌 왕국의 실정.

     로엘은 그 혼란을 틈타 오랜 시간에 걸쳐 공작을 벌였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번에 왕국에 제대로 폭탄을 심어둔 참이었다.

     그로 인한 결과는 머지않은 미래에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때가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로엘은 생각했다.

     * * *

     그로부터 또다시 한 달이 지나.

     레인과 르우벤, 그리고 카트란은 아카데미의 모든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이제 다음 학기 초에 있을 졸업식만 마치면, 아카데미와는 완전히 결별이었다.

     그 사실에 수많은 학생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레인과 관련한 잡음이 많았는데, 우선 그를 추종하는 여학생의 무리가 장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의 졸업과 동시에 리나와 로난이 아카데미를 자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남학생들마저 단체로 절규했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 이야기를 다른 각성자들을 통해 전해 들은 로엘은, ‘재미있었겠네’라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

    “어째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그럴 리가. 난 웃고 있는데? 기분 탓이겠지.”

    “…….”

     분명히 무언가 이쪽에 불만스러운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캐물을 방법이 없다.

     레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가만히 로엘을 응시했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로엘이 손바닥을 짝짝 두드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가 먼저 카트란을 응시하며 말했다.

    “너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다고?”

    “어. ‘그분’의 조언이 좀 있었거든.”

    “그래. 이레닐 카이엔 공주와 함께 움직일 예정이라며?”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카트란이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번에 제국이 사념 마법을 손에 넣으면서, 가장 먼저 그 특혜를 얻은 것은 바로 이레닐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마법의 기초를 익힌 것 말고는 별다른 성취를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요 몇 개월간 사념 마법의 도움을 받아 무려 비행형 몬스터인 그리핀을 다루는 테이머로 거듭났다.

     사실 그것은 바르바젠이 그녀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일환으로 일종의 선물을 준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원하던 대로 어디든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 있도록.

     그런데 대체 그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그녀 쪽으로부터 카트란을 수행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마침 카트란에게 별다른 이동 수단이 없었던 탓에 그것이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잘 해봐라.”

     로엘이 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카트란이 둔하지는 않았다. 그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르우벤, 레인. 너희 둘은 이제 본격적으로 세력을 구축할 토대를 갖춰야지.”

    “어.”

     두 사람 모두 이제는 작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들이 지금부터 행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정식적인 세력의 출범, 그리고 명성의 획득.

     다만,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노선으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두 사람이 구축하려는 세력이 서로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탓이었다.

    “르우벤 넌 대륙 최강의 용병단을 만드는 게 목표였지.”

    “어. 그렇지.”

    “네 경우엔 추가적으로 인재를 모으고 조직을 정비해서 용병단을 출범시키는 게 먼저다. 명성은 그 뒤에, 대륙통합 전쟁에서 활약하면서 얻으면 돼.”

    “그래.”

     르우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이 마주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곤 레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레인 네 경우엔 르우벤과는 완전히 반대 순서로 가야겠지.”

    “나는 명성부터 얻어야 한다는 건가?”

    “그래. ‘검가’는 어떻게 보면 명성이 전부인 집단이니까. 먼저 거대한 명성을 얻어두는 게 좋겠지. 검가의 창설은 대륙통합 전쟁의 중간에 진행하면 될 테고.”

     레인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앞으로 난 정확히 뭘 하면 되지? 그냥 막연하게 명성을 얻어야 한다고만 하니 좀 막막한데.”

    “간단해.”

     로엘이 검지를 세웠다.

    “명성을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에 하나는, 이미 높은 명성을 지닌 인물을 이용하는 것이지.”

     그가 설핏 웃었다. 레인은 그 웃음으로부터 까닭 모를 불길함을 읽어냈다.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너는 지금부터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며 ‘비무행’을 벌이고 다닌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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