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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5) (156/249)
  •  156화. 펜타트리움 아카데미(5)

     카트란은 눈앞에서 흉흉한 얼굴로 무기를 겨누고 있는 일곱 남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로 해둬.”

    “닥쳐! 그 자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모욕을 줬는지 알긴 하는 거냐!”

    “확실히 이 녀석의 입이 걸긴 하다만. 이미 의식을 잃었잖아. 이 이상은 정말로 위험해. 너희들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을 거야.”

    ‘기사학부’라고 묶어서 부르긴 하지만, 사실 이들의 학부는 두 개의 학과로 나뉘어 있었다.

     기사학과, 그리고 무예학과.

     기사학과는 말 그대로 차후 기사가 되기 위한 모든 것을 배우는 학과였다. 무예, 승마, 랜스(Lance) 차지, 부대 지휘, 전략 전술 등등.

     반면 무예학과는 학생 본인의 실력을 갈고닦는 데에만 힘쓰는 학과였다. 카트란이 이 학과에 속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두 학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특히 무투대회가 벌어지는 이 시기에는 그로 인한 갈등이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아무래도 무예학과 쪽이 대회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를 차지하곤 하는데, 그것을 이용해 기사학과 학생들을 깔보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었다. 이 상황 또한 그런 경우였고.

    “넌 상관없으니 이 일에서 빠져.”

    “말했잖아. 너희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카트란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 먼저 잘못한 쪽은 뒤쪽에 쓰러진 같은 학과 학생이었다. 그러니 저들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상황이 어디까지 심각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뒤쪽의 학생이 얼마나 심하게 당하느냐는 둘째치고, 분풀이를 마친 눈앞의 일곱 남녀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도.

    “흥분을 좀 가라앉혀.”

    “비키라고 했다. 카트란. 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지만, 실전은 또 달라.”

     근육질 거한의 소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그리베른. 기사학부 1년 차 학생 중에서 카트란만큼이나 유명한 실력자였다.

     검술 실력은 카트란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에겐 선천적인 이능의 힘이 있었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실전에선 굉장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었다.

     무투대회에서 마법, 정령, 이능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상위권에 입상할 실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카트란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거력의 그리베른.’

     그리베른은 굉장히 특이한 이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흔히 ‘포식자’라고 불리우는 이능. 특정한 생물의 심장을 섭취하면, 그 생물의 특성을 몸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물론 흡수할 수 있는 특성의 숫자는 개인의 자질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은 하나의 특성만을 흡수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리베른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특정한 생물’이란, 쉽게 말해 ‘마수(魔獸)’를 뜻했다. 마력에 침식되어 이능을 지니게 된 인간과 같이, 선천적으로 특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 몬스터들.

     그치들의 심장에 새겨진 마력 패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포식자’의 특성을 가진 자들이 보이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리베른이 섭취한 심장은 ‘트윈 헤드 오우거’의 것.

    ‘이 녀석은 왜 그리베른 같은 강자에게 시비를 걸어 가지고.’

     카트란이 뒤쪽을 힐끗 곁눈질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감당할 수도 없는 상대의 신경을 대체 뭣 하러 긁는단 말인가. 아무래도 동년배 다른 소년들에 비해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이니만큼 그 유치한 자존심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일곱은 좀 힘든데.’

     정의감이 넘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냥 못 본 체하고 넘어가면 될 일일 것을, 카트란은 굳이 힘든 길을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쓰러진 학급 동기뿐만 아니라 눈앞의 일곱 남녀마저 염려해서.

    “비키라고! 빌어먹을 무예학과 새끼야!”

     안타깝게도 그리베른은 극도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기절해 있는 무예학과 학생이 어지간히 도발을 건 모양. 설득이 먹힐 상태가 아니었다.

    “안 비키겠다면, 억지로라도 비키게 만들어 주지!”

     결국 그리베른이 무력 행사에 나섰다. 그가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일반인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힘과 속도가 담긴 일격.

     카트란이 곧바로 맞대응했다. 흘려내는 것도 좋겠지만, 여기선 실력을 보임으로써 저들을 조금 위축시킬 필요가 있었다. 정면으로 받아치기로 했다.

    ‘자기암시.’

    ‘그’의 존재를 알아채기 전까진 그저 이능의 힘인 줄로만 알았던, 특수한 힘의 발현. 지난 시간 동안 ‘그’와의 교류를 쌓으면서 몰라보게 발전한 능력이 순식간에 카트란의 전신을 감쌌다.

     정확히는 그 자신의 힘이 아닌 ‘빌려오는’ 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힘은 동년배 최상위 강자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한 것이었다.

     카드드득!

     검과 검이 맞부딪쳐 거북한 쇳소리를 냈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힘겨루기에 돌입한 두 소년. 그리베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뒷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어떻게 정면으로 받아칠 수 있느냐는 것이리라. 그의 힘과 속력은 인간의 그것을 한참 초월한 것이니.

    “나도 가지고 있거든. 이능의 힘.”

     정확히 말해서 이능의 힘과는 조금 달랐지만, 카트란은 그렇게 대답했다.

     몇 차례 더 충돌이 일어났다. 카트란은 제자리에 굳건히 선 채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걷어냈다. 그리베른의 힘을 잘 아는 기사학과 학생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리베른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안 그래도 실력이 높은 녀석인데 이능의 힘까지 지녔을 줄이야.

     이래서야 승산이 없다. 그렇지만 오기 때문에라도 물러나고 싶진 않았다. 아직 쌓인 울분의 절반도 풀지 못했으니.

     그가 주위 동기들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오는 동기들.

     그 기색을 카트란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이쯤에서 그만두면 안 될까. 서로 득될 게 없는 싸움이야.”

    “네가 참견하지 않고 물러나면 해결될 일이기도 하지.”

    “…….”

     대체 무슨 모욕을 들었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카트란이 다시 뒤쪽을 힐끗 곁눈질했다.

     그러던 와중, 그의 귀에 걸린 십자검 형태의 귀걸이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너 뭐 하냐.]

     레인의 목소리였다. 그가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카트란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가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속삭이듯이 대답했다.

    “그게, 조금 곤란한 상황이라서.”

    [딱 보니 굳이 네가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일인 것 같은데.]

    “그건 그렇긴 한데.”

    [오지랖은.]

     레인의 혀 차는 소리에 카트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이었다.

    [하긴, ‘그 힘’은 웬만해선 드러내지 않아야 하니. 네가 자력으로 상황을 타파하긴 조금 힘드려나.]

    “아무래도 본신의 실력만으론 일곱 명은 조금 힘들지.”

    [도와줄까?]

    “그래 주면 고맙고. 그런데 어떻게 도와주려고?”

    [가만히 있어 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귀걸이에선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상황이 갑자기 급변하기 시작했다.

    “허억!”

    “어억!”

     카트란에게 슬금슬금 접근하던 일곱 남녀가 동시에 신음을 터뜨리더니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심하게 놀란 듯 식은땀을 흘리며.

    “누, 누구십니까?”

    “커헉! 허억!”

     급기야 몇 명은 주저앉기까지 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레인이 기파를 내뿜어서 짓누르고 있구나.’

     카트란은 곧장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챘다. 레인이 어딘가에 숨어서 눈앞의 일곱 남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리라.

     실제로 아카데미의 최상위 교사들이 학생들 사이의 분쟁을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제지하곤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쯤 저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교사에게 발각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으리라.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초일류의 영역에조차 이르지 못한 이들이다 보니 피부로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렇게나 흥분해 있던 무리가 금세 꼬리를 말았다.

     이내 레인이 기파를 거둔 것인지 기사학과 학생들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들은 못내 억울한 표정을 하면서도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났다.

    [나머진 네가 알아서 해라.]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카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절한 동급생을 어깨에 들쳐멘 카트란이 방금 전까지 기사학과 학생들이 있었던 장소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부럽다.’

     부러웠다. 레인의 강함이. 이런 분쟁 따윈 사소한 것으로 취급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냉정하게 평가해서, 각성자들 중 가장 애매한 실력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로엘로부터 제공받고 있는 그 굉장한 편의들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다른 각성자들이 각자 목표를 잡고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자신만 무언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로엘은 자신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당장 스스로가 확신이 안 서니.’

     그의 입가에 살짝 쓴웃음이 걸렸다.

     그런데, 그때. 그의 내면으로부터 걸걸한 목소리, 아니, 하나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클클. 이 미련하기 짝이 없는 놈. 정작 그 자신의 가능성을 저 스스로만 제대로 못 보고 있군.]

    “예?”

    [이런 곰 같은 놈에게 주 인격이 주어지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갑작스러운 비웃음에 카트란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지만, 그의 내면에선 대답 대신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카트란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인격, 혹은 영혼은 상당한 괴짜였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뚝뚝 끊어지는 일에는 익숙했다.

     * * *

     축제가 끝났다.

     수많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했던 축제가 마무리되고 곧바로 방학이 찾아왔다.

     참고로 카트란은 무투대회 8강전까지 올라갔지만 안타깝게도 떨어지고 말았다. 우승자는 검가 출신 3년 차 학생이 차지했다.

     카트란은 더 이상 3학년이 출전하지 않는 다음 학기의 우승을 노리기로 했다. 그때를 위해 방학이 되자마자 맹훈련에 돌입했다.

     레인은 이번 방학 동안 지난 정비 기간에 그랬던 것처럼 제자들과 전투팀을 가르치고 그 자신의 공부와 수련에 힘쓰기로 했다. 바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업 쪽 일을 일단락지은 로엘이 르우벤과 함께 벨리아 왕국으로 향했다. 인재 영입을 위해서.

    “아주 얼굴이 반쪽이 됐네.”

     벨리아 왕국을 향해 날아가는 도중, 르우벤이 로엘에게 그렇게 말했다.

    “피곤해 죽겠다.”

     로엘이 피로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힘겹게 답했다.

     일행은 총 네 사람이었다. 로엘과 르우벤, 플로라와 밀리아. 카트리나가 따라오고 싶어했지만, 그녀의 능력은 이번 여정에서 별 도움이 되질 않아 제외했다.

     참고로 이동 수단은 이전에 유적에서 습득한 유물을 이용해 다루는 거대한 본 드래곤(Bone Dragon). 그 등 위에 적당한 받침대를 깔고 받침대 주변에 방어막을 둘러 쾌적한 환경을 형성시켰다.

     와이번에 비해 훨씬 높은 고도에서 비행이 가능했기에 더욱 빠른 이동이 가능했다. 수용 가능한 인물도 대폭 늘어났고.

     물론 공간 이동에 비할 바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웬만큼 떨어진 나라를 목적지로 잡더라도 하루 이틀 내로 이동할 수 있었다.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유적에서 전투를 치렀던 본 드래곤만큼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개체는 아니었다.

     유적의 본 드래곤은 어디까지나 유적의 마력에 의해 강화된 개체였다. 유적 바깥으로 끌고 나온 시점에서 본 드래곤의 성능은 반 토막이 났다.

     그렇다고 해도 강대한 전력이긴 했지만.

    “그래서, 이번에 벨리아 왕국에서 끌어들일 인재가 총 두 명이라고?”

    “어. 현자만 두 명이지. 그중 하나는 내가 끌어들일 거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알아서 하라는 거지? ‘기본의 현자’ 쪽은.”

     원래 르우벤은 기본의 현자까지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끌어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이후 대현자로 칭송받게 되는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그러나 로엘이라는 인물이 나타나고 그 생각에 변화가 일었다. 그 자신의 아래로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아군으로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로엘에겐 세력이 있었다. 금력도 무력도 충분히 갖춰진.

     거기다 무려 제국의 황제를 뒷배로 두고 있었다. 상대에게 ‘개인’의 휘하에 드는 게 아닌, ‘제국’의 휘하에 들 것을 권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상대가 대현자라도 충분히 포섭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거기에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이 더해진다면.’

     르우벤이 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기본의 현자가 분노해서 프레퍼와 크게 충돌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 그 원인에 개입할 수만 있다면 일이 한층 더 수월해질지도 몰랐다.

    “기본의 현자 쪽은 그렇다고 치고. 또 다른 현자는 어떻게 끌어들일 생각이야? 곤충과 벌레의 현자라 했던가?”

    “다 방법이 있지.”

     로엘의 물음에 르우벤이 피식 웃었다.

    “이때를 위해서 이걸 챙겨둔 거니까.”

     그가 ‘인벤토리 툴’로부터 어떤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몇 년 전 레인과 로엘이 공략했던 자이언트 플랜츠(Giant Plants)유적의 심층부에 잠들어 있었던 물건.

     즉, 비밀 공동에서 르우벤이 집어 나왔던, 바로 그 아티펙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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