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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스콜피온(1) (35/249)

  •  35화. 스콜피온(1)



     탕!


     자작령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장소. 인적이 드문 그곳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호오.”


     로카인이 주름진 눈을 깜박이며 감탄했다. 생각보다 높은 위력이었다.


    “굉장하구나.”


    “아뇨. 아직은 결점이 더 크죠.”


     로엘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확실히 위력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굉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구도가 형편없었다. 소음도 쓸데없이 컸고.


    ‘당장 호신용으로 사용할 물건을 만드느라 시간을 그렇게 많이 투자하진 못했으니까.’


     시간, 그리고 금전적인 문제로 현재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일단 무구의 종류가 늘어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로카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터다.


     권총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품속에, 나머지는 부피가 있는 고로 적당한 가방에 넣어서 들고 다니기로 했다.


    “여러모로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덕분에 좋은 물건이 완성됐습니다.”


    “생각보다 즐거웠으니 됐다.”


     로엘의 감사 인사에 로카인이 헛헛, 하고 웃었다.



     * * *



     무구의 개발을 마치고 난 로엘은 할 일이 없어졌다.


     그의 경우엔 레인처럼 영약이 흘리는 미약한 기운을 잡아낼 줄 아는 것도 아니다 보니 영약 채집을 목적으로 산에 오르기도 뭣했다. 그래서 영지를 떠나기 전까지 수련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먼저 이전에 도움을 주었던 소녀, 애나를 찾아갔다.


    “주위에 병을 앓는 자들이 있으면 모아줬으면 하는데. 부탁할 수 있을까?”


    “음? 그건 왜요, 오빠?”


    “그런 게 있어. 하여튼 입소문이라도 좀 퍼뜨려 줬으면 하는데. 무상으로 치료해 준다고.”


    “정말요?”


    “응.”


     모름지기 실전이야말로 가장 좋은 수련 수단이다. 의료 계통 쪽은 더더욱.


     로엘은 그렇게 모인 갖가지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상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어차피 곧 떠날 거, 이젠 이름 좀 알려져도 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워낙 뛰어난 실력이라 금세 입소문을 탔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문명이 중세시대에 불과한 만큼 환자는 넘쳐났다.


     이쪽 세계 의원들의 평균적인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탓에 치료할 수 없는 부상, 질병을 지닌 이들이 많았다. 치료비를 아까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수련을 위한 환자가 부족한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로엘은 원 없이 실전 경험에 매진할 수 있었다.


     내력을 이용한 치료법은 획기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뛰어났다. 이 치료법이 지구에도 전해진다면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 분명할 터였다. 애초에 상궤를 무시하는 수준이니까.


     그 치료법에 로엘의 지식이 더해지자 운용의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아무래도 중원 또한 문명 수준이 낮다 보니 그 시대 의원들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질병이 수두룩했다. 그 대부분을 로엘의 지식이 커버한 것이다.


     이내 로엘은 소년 신의라 불리며 빈민가의 유명인사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성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신의’라니, 굉장히 거창한 호칭이었다. 돈 없고 몸 불편한 빈민들의 입장에서, 무료로 치료를 베푸는 실력 있는 의사가 신의가 아니면 누가 신의겠냐마는.


     애나와 그녀의 모친은 이전에 로엘에게 도움을 받은 이력이 있었다. 그녀들은 일전의 은혜를 보답하겠다며 자진해서 그들의 조수 노릇을 해주었다.


     필요한 도구들을 가져다주고 식사를 준비해주는 등의 보조적인 일만을 해 주었을 뿐이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 * *



     비슷비슷한 일과를 반복하는 나날이 거의 2주 동안 이어졌다. 레인은 영약 채집을, 로엘은 무상 의료봉사를.


     그런 나날을 보내던 와중, 레인이 선언했다.


    “슬슬 미뤄뒀던 일을 해치워야지.”


    “?”


    “스콜피온인가 뭔가, 그거 오늘 없애버리려고.”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 얼마 전에 용병 길드에 의뢰 넣었었지?”


    “어. 결과도 도착했고. 뭐 없애봐야 금방 새로운 놈들이 득세하긴 할 테지만, 그래도 받은 게 있으니 돌려주긴 해야지.”


    “보답이 너무 과한 것 아냐?”


    “받은 건 수십, 수백 배로 되돌려주는 성격인지라.”


    “나도 따라갈까?”


    “굳이? 나 혼자로도 충분할 텐데.”


     원래 이 일은 레인 혼자서 해치우기로 되어 있었다. 일전에 용병들이 침입해 왔을 때만 해도 로엘은 전투 능력이 없다시피 했었으니까.


    “새로 제작한 무구의 성능도 확인할 겸.”


    “그러던지.”


     스콜피온의 아지트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알아내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숨겨진 거대 조직도 아니고 그저 변방의 소규모 폭력배 조직에 불과하니까.


     두 소년의 경우엔 발품을 팔기도 귀찮아서 간단한 방법을 썼다. 용병 길드를 통해 정보를 얻어낸 것이다. 돈이 좀 들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전에.”


     레인은 먼저 여관을 나서 은신술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주변 경관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 * *



     자작령 빈민가를 주름잡고 있는 조직, 스콜피온의 말단 조직원 러츠. 그는 심심찮게 소년들의 숙소 근처를 배회하곤 했다.


    “후우.”


     러츠는 얼마 전, 두 소년의 집에서 용병들이 도둑질하도록 유도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용병 셋의 장엄한 예술 정신을 목격했다.


     러츠는 그때 확신했다. 소년들에게 무력적인 측면이 뛰어난 뒷배경이 있다고. 그래서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한동안 집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분명 그 녀석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을 터다. 우선 그놈의 얼굴부터 확인하자.’


     그러나 조력자는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꼬마 녀석이 몬스터 사체를 팔면서 만지는 돈이 꽤 많다. 어떻게 손을 좀 써서 그걸 뜯어낼 수 있다면 이 지겨운 말단 조직원 생활을 그만둘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계속해서 감시해 보았지만 역시 소득은 없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한 조력자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니.’


     그러던 와중, 소년들의 집이 폭발사고로 반파되어 버렸다.


     이것저것 구상하던 러츠는 한순간 허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어떻게 틈을 봐서 한 몫 챙기려 했건만, 그게 아예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두 소년은 폭발사고 이후로 몬스터 사체를 거래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종의 이유로 배후로부터 버림받은 모양이었다.


     러츠는 생각했다. 상대가 이쪽의 움직임을 알고 판을 엎어버린 것이라고.


    ‘분명 조직과 엮여 귀찮은 상황에 직면하느니 그냥 활동 장소를 옮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러츠는 혹시나 하는 미련이 남아 지금까지 두 소년이 집을 잃고 머무는 숙소 근처를 배회하는 중이었다.


     러츠가 별 소득도 없는 감시에 시간을 쏟고 있던 때였다.


     피슉.


     갑자기 미세한 파육음이 들려왔다. 러츠가 의아해하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피피피핏.


     연속적으로 조용한 파육음이 울림과 동시에 러츠의 몸이 굳었다. 고개를 돌리려던 자세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되었다.


     경악한 러츠는 그 자세 그대로 눈동자를 굴렸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동자에 족히 10여 개에 달하는 대침이 비쳐 보였다. 그 모두가 자신의 몸통에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시야가 미치지 않는 부분까지 합하면 최소 배는 되는 숫자가 박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런 게 자신에게 수없이 박혀 들 때까지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니. 심지어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니. 등줄기에 쫘악 하고 소름이 돋았다.


     그때, 러츠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뒤쪽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은 할 수 있게 해줘야지.”


     분명 목소리는 뒤쪽에서 들려오는데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진 않았다. 러츠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뒷목에 박혀 있던 대침 하나가 소리도 없이 뽑혀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말을 할 수 있게 된 러츠는 공포로 점칠 된 얼굴로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질문은 내가 해.”


     러츠의 뒤를 잡은 레인이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싸늘한 어조에 더욱 겁을 집어먹은 러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첫 번째 질문, 스콜피온의 아지트는?”


    “저, 저기.”


     푹.


     대답을 주저하는 러츠의 옆구리에 대침이 깊숙하게 박혀 들어갔다.


    “끕!”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레인의 손에 입이 막히고 말았다. 러츠는 격통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통에 겨운 신음을 토해냈다.


     자신의 몸에 수없이 박힌 다른 대침들이 전혀 고통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거짓말인 것처럼, 방금 옆구리에 박힌 대침은 말로 다 못 할 정도의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생살이 꿰뚫리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러츠의 이성이 그의 머리와 작별을 고했다.


     잠시 후, 레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스콜피온의 아지트는?”


    “마, 마을 서쪽에 있는 ‘비 오는 날’이란 주점입니다. 그, 그 지하에 스콜피온의 아지트가 있습니다.”


    ‘정보지의 내용과 일치하는군. 돈을 쓴 보람이 있어.’


     레인은 그렇게 자신이 얻어낸 정보를 검증했다.


    “다음으로, 조직 상층부에 오라를 다룰 수 있는 실력자가 있나?”


     레인이 옆구리에 꽂아 넣은 대침을 조금씩 비틀며 물었다. 러츠는 공포와 고통으로 얼룩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끄윽. 저, 정확히는 모르겠······ 습니다.”


    “대충은 알 것 아니야.”


    “끄억, 보, 보스와 그 친위대가 검수(劍手)의 경지에 다다른 실력자라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후, 레인은 러츠의 몸에 꽂힌 대침 중 몇 개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러츠는 격통에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앞으로 다신 조직 생활 따윈 할 수 없을 거다.”


     러츠의 몸에서 대침을 하나하나 뽑아내며 레인이 중얼거렸다.


     주요 근육조직 중 몇 개를 제대로 망가뜨렸다. 최소한의 신체 활동은 할 수 있겠지만 무거운 짐을 드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나약한 육체가 될 터였다.


     상당히 가혹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가 몸담은 조직이 지금껏 해온 패악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레인의 얼굴에는 조금의 유감도 엿보이지 않았다.



     * * *



     레인과 로엘은 용병 길드로부터 수령한 조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곤 혀를 찼다.


     조직은 다양한 종류의 장사에 손을 뻗고 있었다. 도박장, 창관, 고리대금업체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몰래 인신매매까지 벌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몰래’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증거만 없을 뿐이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니까. 관리에게 뇌물을 잔뜩 먹였는지 그것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이들에겐 일말의 자비심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두 소년은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나마 레인은 수없이 겪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로엘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한동안 정보를 정리한 종이 다발을 노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문명의 발달 정도가 떨어지는 세상이다 보니 범죄의 질이 현저히 높았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역시 직접 접하니 기분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범죄를 처벌해야 할 나라의, 영지의 법은 이들에겐 솜방망이나 다름없었다. 법을 집행해야 할 인간이 뇌물을 먹었으니 당연했다.


     스콜피온의 조직원들은 지금까지 절도, 폭력은 물론 강간, 살인까지 멋대로 저질러왔다.


     그러나 그들이 그에 관련한 처벌을 받은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그리 강한 처벌이 아니었고.


     공공연하게 저지르지만 않으면 웬만해선 처벌받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조금만 은폐 공작을 하면 잡히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이 시대의 문명은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치안이 안정된 수도, 혹은 상업 도시라면 모를까. 자작령은 펠라키 산맥으로 인해, 항시 위험을 끼고 살아가야 하는 영지였다.


     외성 성벽을 경계로 한 안쪽은 그래도 치안 유지를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바깥쪽은 그렇지 못했다. 지구에 비하면 무법지대나 다름없었다.


     로엘에게 있어선 상당히 자극적인 경험이었다. 지구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공공연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본 적도 없었고. 새삼 괴리감이 뇌리를 엄습했다.


     레인은 말했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악인의 행보에 일일이 분노하기엔 너무나 많은 악의를 접해왔다.


     자료를 전부 확인한 두 소년은 곧바로 스콜피온의 아지트로 향했다.



     * * *



     두 소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콜피온의 아지트가 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아지트 위쪽에 세워진 위장용 주점에 거침없이 들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종업원으로 보이는 덩치 큰 대머리 사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선 두 소년을 확인하고 눈가를 찡그렸다.


     딱 봐도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애송이들이었다. 손님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꼬맹이에게 술을 팔진 않는다. 나가.”


     레인이 그 종업원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내 말이 안 들리나?”


     종업원이 인상을 한층 더 험악하게 찌푸렸다. 그제서야 레인이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다니. 굉장히 모범적이군 그래. 그런데 그런 놈들이 인신매매, 고리대금업에는 거리낌 없이 손을 대나?”


     비웃음 섞인 목소리에 종업원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상대의 표정 변화를 예의주시하던 레인의 눈매도 마찬가지로 살짝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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