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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홈리스(Homeless)(3) (34/249)

  •  34화. 홈리스(Homeless)(3)



     레인과 로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방으로 들어섰다. 과연 고급 여관의 별채라고 할까. 원래 살던 집이 형편없다 여겨질 만큼 좋은 방이었다.


     두 소년은 각각 다른 침대에 마주 걸터앉았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로엘이 물었다.


    “본 그대로다. 레이나 하슨의 재능을 높이 사서 제자로 들였어.”


    “그러니까 그걸 묻는 거야. 대체 그녀에게서 뭘 봤기에? 웬만해선 사람들과 얽히는 것도 꺼려 하잖아, 너.”


     레인은 전생의 삶이 삶인 만큼 주위에 사람을 두는 것을 조금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이를 대할 때에도 일말의 경계심을 놓지 않는 성격이었다.


     타인에게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도 상당 부분 여기서 기인했다.


     성격 자체가 모나기도 했지만, 그보단 저도 모르게 타인과 자신의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라고 할까.


     유일한 예외라면 로엘이었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만큼 그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유대를 나눈 시간이 그 누구보다도 긴 인물이었다.


     어쨌든 그런 그가 스스로 자신의 주위에 타인을 두려 한 것은 로엘로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여러모로 신선했다.


    “아까 말했잖아. 잠재성을 높게 샀다고. 솔직히 말해서 한 시대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재능이야. 아무래도 이쪽 세계는 무공의 체계가 다르다 보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는 이가 없는 모양이지만.”


     레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표정과 달리 그 내용은 가볍지 않았지만.


    “오오.”


    “제대로 개화시키기만 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이 세계에서 말하는 ‘검성’,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을 거다.”


     검호가 검사로서의 한계를 넘어선 자들을 일컫는다면, 검성은 한계를 초월해 초인의 반열에 들어선 이들을 일컫는다. 아직 레인조차 이르지 못한 경지였다.


    “그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다니 놀라운데. 대체 무슨 재능이기에?”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려운 재능이지. 굳이 표현하자면, 본질을 파악하는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간혹 중원 무림사에 등장하는 특이한 천재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검술인 삼재(三才)검법만으로 천하를 논할 만큼 뛰어난 고수가 되는 이.


     혹은 전 중원을 떠돌며 몸에 익힌 실전검술로 그 누구보다 강한 무력을 갖춰 남들 위에 군림하는 이.


     레이나 하슨이 가진 재능은 이들이 가진 재능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최적의 효율을 찾아내는 재능.


     같은 동작으로, 같은 방식으로 검을 휘둘러도 그들이 휘두른 검에는 특별함이 있다. 간단한 동작 하나하나를 행하더라도 거기에 담긴 비의를 감각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적당한 계기만 갖춰지게 되면 그 누구보다도 무섭게 성장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수수하지만, 실제론 그 무엇보다 무서운 재능이었다.


     레인이 설명을 마치자, 로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야기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겠지. 그런 종류의 재능이 꽃피우면 어떤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느끼기 힘드니까. 겉보기엔 꽤나 수수해 보이지. 그래서 더 무섭고.”


    “겪어봤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어. 그 인간 상대할 때는 정말 위험했어. 매번 상대해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더라고.”


    “결국 상대는 어떻게 됐는데?”


    “…….”


     레인은 아무 말 없이 목을 손으로 슥 긋는 시늉을 했다. 로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재능은 대체 어떻게 한눈에 알아보는 거야?”


    “수없이 경험했으니까. 그 인간이 좀 많이 끈질겼거든.”


     레인은 큭큭 하고 웃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소년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레인은 레인대로, 로엘은 로엘대로 각자 생각에 잠겨 침묵의 시간이 지나가길 몇 분여.


     다시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운을 뗀 것은 로엘이었다.


    “갈 생각이지? 하슨 백작가.”


    “어. 마침 집도 폭발해버린 참이고. 귀족 자제를 제자로 들이려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니까.”


    “아-아. 그럼 나 혼자 집도 절도 없이 떠돌게 되는 건가?”


    “농담은 집어치우고. 너도 조만간 갈 생각이잖아. 그 영감님이 있는 마탑으로.”


    “알고 있었어? 사실 당장 가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 같아서 그 후계자 경쟁이란 게 끝날 때 맞춰 가려고 했었는데, 의도치 않게 일정을 앞당기게 됐네.”


     그 전까진 파르엘에게 마법을 배우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려 했었다.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졌지만.


    “그것까지 고려해서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이려 한 거였나 보네.”


    “확실하게 결정을 내린 건 집이 통째로 날아간 것을 본 후지만.”


    “복수는 맡겨둬라. 확실하게 처리해 줄 테니.”


    “그래.”


     로엘이 스산한 얼굴로 웃었다. 레인이 피식 하고 따라 웃었다.


    “그건 그렇고.”


     로엘이 의미심장한 어조로 운을 뗐다.


     뭔가 책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레인을 바라보는 로엘. 어쩐지 기분이 언짢아진 레인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무언가 불쾌한 화제를 꺼내 들려고 하고 있었다.


    “레이나 하슨을 보면서 뭔가 느끼는 것 없어?”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레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뭘 어쩌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분위기에 그렇게 찬물을 끼얹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그러니까 어쩌라고.”


     로엘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보아하니 그녀도 네게 호감이 없진 않은 듯싶던데.”


    “그래서, 분위기에 떠밀려 고백이라도 했어야 했다?”


    “최소한 분위기를 좀 읽는 시늉이라도 하지 그랬냐. 아니, 그 이전에, 넌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


    “감정이 어쩌고 하기 이전에, 그녀는 오늘 처음 본 생판 남이지. 그녀에게 있어서 나도 마찬가지고.”


    “…….”


     로엘은 묘한 얼굴로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레인의 표정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왜 네 쪽이 더 들뜨고 난리야?”


     레인은 쯧, 하고 혀를 찼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잘 먹고 잘 대접받은 두 소년은 백작가 일행과 함께 다시 산을 올랐다. 참고로 파르엘 도주 사건 탓에 권총의 수리가 불가능해진 로엘은 서포터 역할을 자청했다.


     로엘의 실력을 익히 아는 백작가 일행은 굳이 궂은일을 맡으려 하는 그를 만류했지만, 로엘은 용병이 돈 받고 일 안 하면 뭘 하겠냐는 말로 일축했다.


     사냥은 신속하고 무탈하게 이루어졌다.


     백작가의 기사들과 레인은 목적한 몬스터들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사냥하고 부산물을 습득했다. 그 와중에 레이나가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참고로, 주된 사냥 대상은 미노타우로스였다.


    “유독 꼬리뼈를 채취하는 데 공을 들이시네요?”


    “……가문의 어르신들께서 반드시 양질의 것으로 팍팍 구해오라고 압력을 주셨거든요.”


    “아하.”


     레이나는 괜스레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을 흔들어 부채질했다. 자신이 말해 놓고도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꼬리뼈는 갈아서 물에 타 마시면 정력에 좋기로 유명했다.


     레인은 의뢰를 수행하는 와중에 틈틈이 영약을 찾는 데 힘을 쏟았다. 그동안 모아둔 영약이 집과 함께 전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비밀 지하실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그 안에 보관된 귀중품들, 그리고 로엘의 '기록'들은 멀쩡했다. 처분할 방법이 없으니 당장은 쓸모가 없었지만.


     사냥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기 상황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고 평탄하게 진행되었다.


     위험 요소가 많은 장소인 만큼 갑작스레 상정 외의 사태가 밀어닥칠 여지가 많은 장소가 바로 펠라키 산맥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갔다.


    ‘지난번 사냥에서 확실하게 액땜하긴 했나 보네.’


     로엘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 * *



     또다시 시간은 흘러, 사냥을 끝마친 백작가 일행이 자작령을 떠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정말 저희와 함께 가진 않으실 건가요?”


    “그래.”


     레인은 레이나의 가정교사가 되든 백작가의 가신이 되든 일단 백작가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이나 일행에게 이미 전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장 그들과 함께 자작령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백작가 일행은 외유가 목적인 만큼 관광차 여러 영지와 도시를 경유해서 백작가로 향할 예정이었다. 관광에 관심이 없는 레인은 그냥 알아서 백작령으로 찾아가기로 했고.


    “함께 가시면 좋을 텐데요.”


    “몇 가지 준비해둬야 할 것들이 있어서.”


     백작가에도 영약이 자생하는 산맥이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농업 중심 영지인 만큼 영지 대부분이 평야 지대일 테니까. 미리 여유분을 비축해둬야 했다.


    “그래도…….”


     레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레이나의 말을 잘랐다.


    “내가 네 연인이냐. 그만 좀 붙들고 일단 가라 좀.”


    “여, 연인? 저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


     레이나가 달아오른 얼굴로 횡설수설했다. 레인은 이를 외면했다.


    ‘힘들겠군.’


    ‘힘들겠어.’


     기사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럼, 대충 두 달 뒤 즈음에 다시 뵙겠군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크레일이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레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가에서 다시 뵙게 되면 그땐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나 또한 정신을 수습하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작가 일행이 영지를 떠났다.


    “왜 곧바로 따라나서지 않은 거야?”


     멀어져가는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로엘이 물었다.


    “아까 한 말 그대로야. 준비할 게 이것저것 있어.”


    “준비할 것?”


    “실험대, 아니 제자를 들였으니 일단 영약을 충분히 모아둬야지. 가르칠 검술도 좀 손보고. 그 이외에도 이것저것.”


    “……방금 실험대라 하지 않았어?”


    “일단 가장 급한 것은 역시 영약이지.”


    “무시하냐.”


    “쯧, 집이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레인은 그답지 않게 기운 빠진 한숨을 내뱉었다.


     참고로 같은 시각, 자작령에서 도망쳐 나온 파르엘은 크게 재채기를 내뱉고 있었다.



     * * *



     바로 다음 날부터 레인은 산맥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몬스터들과의 교전은 최소화했다. 어차피 이번에 받은 의뢰 대금이면 백작령에 갈 때까지 쓸 돈으로는 충분했다.


     피치 못 할 경우에만 전투를 치렀다. 그리곤 쓰러뜨린 몬스터의 부산물은 챙기지도 않고 자리를 벗어나 다음 포인트로 향했다.


     아깝긴 하지만 들고 다녀야 할 짐이 많아지면 영약 채취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양의 영약을 확보하려는 레인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선 충분한 영약을 확보하기 전까지 가르침을 늦추고 싶었다. 그렇지만 원래 가르침은 때가 중요한 법.


     레인이 보기에 레이나는 지금 당장이 수련 적정 시기였다. 시간을 더 늦추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런 나날의 와중.


    “······?”


     시간을 내서 로엘을 찾아온 로카인이 반파된 두 소년의 집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인, 로엘을 찾아낸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미안한 얼굴로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소년은 노발대발했다.


     로카인이 쓴웃음과 함께 배상해 주겠다고 했으나, 레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가는 파르엘 본인에게서 받아내겠다며.


     사실 배상을 받는다 해도 성에 차지도 않았다. 로카인은 영약의 가치를 모르니까.


     반면 로엘은 이것저것 뜯어냈다. 마침 부탁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차였다. 이때다 싶어 달려들었다.


     로엘은 레인이 영약 채취에 시간을 쏟는 동안 로카인의 도움을 받아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여관 내에서 병기 제작에 몰입했다. 파르엘 도주 사건을 들먹이며 로카인에게서 여러모로 지원을 받아냈다.


     로카인에겐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는 로엘이 제작하고 있는 병기가 마법학보다 공학과 물리학에 기반을 둔 것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병기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을 대체 어디서 얻었 건지. 그에 대한 궁금증이 한층 더 높아졌다. 로엘은 비밀이라며 알려주는 것을 거부했지만.


     얼마 뒤, 로엘은 풍부한 지원을 바탕으로 권총의 수리는 물론 신무기의 개발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저격용 소총, 그리고 연사용 소총이 로엘의 무구 리스트에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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