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호위 의뢰(3) (21/249)
  •  21화. 호위 의뢰(3)

    “이번에 파르엘 씨가 길드에 고용 신청을 한 용병입니다. 로엘이라 합니다.”

    “레인이다.”

     레인의 간결하기 짝이 없는 자기소개에 로엘의 표정에 금이 갔다.

    ‘도움이 안 되는군.’

     로엘이 레인을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 모습이 꼭 ‘의뢰자에게 다짜고짜 반말하는 용병이 세상에 어디 있냐.’ 고 따져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뜻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

     레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엘만 속이 터졌다.

    ‘하여간.’

     레인 본인의 성격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생의 기억 탓이었다. 최근 전생의 기억과의 동조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자신도, 레인도.

     기억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행동 패턴, 성격마저 전생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게 문제가 되었다. 로엘은 딱히 전생에도 모난 성격이 아니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레인은 아니었다.

     그나마 테미스 같은 노인에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고압적이었다. 친절하게 굴질 못했다.

    “용병? 분명 신청 해두기는 했다만······.”

     의뢰주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B급 용병에게 의뢰를 했는데 13살짜리 소년 2명이 나타나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외견은 이래도 확실한 B급 용병입니다.”

     로엘은 말과 함께 용병패를 꺼내 내밀었다. 의뢰주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그것을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 아, 나이는 내가 더 많은 것 같은데 편하게 말해도 되겠지? 일단 의뢰주기도 하고.”

    “괜찮습니다.”

     의외로 용병패를 확인한 것 정도로 바로 의심을 거뒀다는 게 신기했다. 임시 딱지까지 붙어 있는 만큼 간단히 신용하긴 힘들 텐데.

    “식사하는 데 방해가 됐나요?”

    “아니, 그다지. 거의 다 먹어가던 참이고.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그럼 바로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그래. 일단 길드로부터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뭔지는 전해 들었지?”

    “예.”

    “상의해야 할 것은 산을 오를 날짜, 그리고 준비해야 할 물건쯤이려나?”

    “그 부분에 대해 드릴 말씀드릴 게 있는데······.”

    “?”

    “현재 저희가 가진 것만으로도 준비물은 충분해서, 굳이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 바로 산에 오르시지 않겠습니까?”

     현재 레인과 로엘에게 필요한 것은 신용을 증명해 줄 경력, 그리고 인지도였다.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빠르게 쌓으면 쌓을수록 좋았다. 의뢰주만 괜찮다고 한다면 빠르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평소처럼 하면 될 테지.’

     레인, 로엘의 경우엔 산으로 진입할 때 따로 여러 준비물을 챙길 이유가 없었다.

     다른 헌터 집단은 몬스터들을 유인하거나 쫒아낼 용도로, 그리고 그 이외에도 여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수많은 준비물들을 구비하곤 한다.

     그러나 애초에 기감으로 쓸데없는 전투는 최소화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적을 빠르게 해치우는, 전략 아닌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 레인과 로엘에게는 별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

     파르엘은 정리되지 않은 머리칼에 반쯤 가려진 눈으로 로엘을 빤히 응시했다.

    ‘······의심하고 있는 건가?’

     너무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로엘이 살짝 당황했다.

     냉정하게 말해, 이쪽은 단 한 번도 의뢰를 성사시켜 본 적이 없는 ‘임시’ B등급 용병이다.

     신용도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이들이 고용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짜고짜 의뢰 수행을 재촉하다니. 경계를 사기에 딱 좋았다.

    ‘너무 성급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좋아. 빠르게 의뢰를 수행해 주겠다는데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지. 이쪽도 바라는 바야.”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어라.’

     의심한 게 아니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면 이쪽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어찌 됐든 다행이었다. 첫 의뢰를 날려 먹진 않게 되었으니.

     로엘은 내심 한숨을 불어냈다.

    “일단 나도 준비는 해야 하니, 점심 즈음에 다시 여기로 와주겠어? 그때 출발하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대금에 관한 것은 추후에 결정하도록 하죠. 저희도 처음으로 수행하는 의뢰다 보니 어느 정도의 값을 제시하는 게 적절한지 판단하기가 어렵군요.”

     의뢰에 관한 내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의뢰주는 나중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두 소년 또한 여관을 나섰다.

     * * *

     그 시각, 자작성 서측 외곽 골목 지대에서 모종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타깃은 지금 뭘 하고 있지?”

     검은색 일색인 특징이라곤 전혀 없는 복장. 거기에 검은 복면을 둘러 눈만을 드러낸 사내가 같은 차림을 한 인물에게 물었다.

    “방금 막 용병으로 추정되는 소년 둘을 고용했습니다. 펠라키 산맥에 진입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위로 겨우 소년 둘? 제정신인 건가?”

    “의뢰자에게 받은 정보에 따르면,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샌님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거기다 타깃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은 화염 계통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마법은 펠라키 산맥에선 도저히 써먹을 만한 게 아닐 텐데.”

     사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마법적 재능은 상당한 듯하지만, 바깥세상 경험은 이번이 처음인 애송이입니다. 펠라키 산맥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자신에 차서 움직였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우리가 손을 쓰기도 전에 알아서 객사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현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복면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지시를 내렸다.

    “일단 타깃이 첫 산행을 마무리할 때까진 그대로 둬라. 그리고 제대로 복귀하는지 살펴라. 알아서 객사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예.”

    “마법사가 펠라키 산맥을 오르려고 한다면 이유야 뻔하지. 마법 실험 관련 재료를 확보하려는 것일 터. 어차피 무사히 귀환한다 해도 단번에 원하는 재료 모두를 구하진 못할 테니 또 산을 오를 것이다.”

    “그렇습니다.”

    “만약 무사히 귀환한다면, 그때는 타깃을 직접 처리하기 위해 움직인다. 습격은 타깃이 다시 산을 오르는 때에. 결행 장소로는 펠라키 산맥만 한 곳이 없겠지.”

     펠라키 산맥 내부는 화염 계통 마법을 대체로 사용할 수 없는 곳이다. 반면 은신술의 효용은 굉장히 높은 곳이기도 하다. 타깃의 장점은 봉인, 이쪽의 장점은 극대화되는 장소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복면인이 자리를 벗어났다.

    “너희는 그 녀석이 고용했다는 두 소년 용병에 대한 정보를 모아와라. 혹시라도 경계해야 할 인물인지 알아둬야겠지.”

    “겨우 소년 두 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움직여라.”

    “예!”

     연이어 지시를 내리는 복면인. 남아있던 또 다른 복면인 두 사람이 대답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일단, 이번 목표 자체는 처리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겠군. 문제는 이번 일이 마탑의 정보망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는 건데, 그것 때문에 결행 장소를 이곳으로 잡은 거니까. 괜찮겠지.”

     마지막으로 남은 복면인이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헛헛.”

     근처의 담장 위쪽.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파문이 일어났다. 대기가 사람의 형상을 띈 채 일렁거렸다.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목소리.

    “재미있는 광경이로군. 암살자라.”

     목소리는 나이 든 노인의 그것이었다.

     이내 일렁임은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정적만이 휘돌았다.

     * * *

     파르엘이 레인과 로엘을 고용한 것은 별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저 공고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충족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굳이 발품을 팔아 다른 용병을 모집하자니 귀찮기도 했다.

     사실 사냥은 자신 혼자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고용한 두 소년은 혹시 있을지 모를 위급상황에 마법을 쓸 시간을 벌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사는 전위를 앞세우고 뒤에서 지원하는 구도로 활동하는 것이 좋다’고 몇 번이고 주지시킨 마탑의 꼬장꼬장한 노인네. 그만 아니었다면 두 소년마저 고용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즉, 파르엘은 레인과 로엘을 그냥 구색을 갖추기 위해 고용했을 뿐, 그 둘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의 재능은 항상 칭송돼 오던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 중 그의 자질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온갖 천재들이 모인 마탑에서조차 그 재능을 인정받았을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웬만한 몬스터 따위엔 겁먹을 이유가 없는 그였다. 애초에 이번 사냥은 일종의 유희. 가출한 김에 겸사겸사 필요한 마법 실험 재료를 모을 겸 계획한 것에 불과했다.

     파르엘이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는 상당히 좁았다. 어려서부터 최근까지 줄곧 마탑에서 마법만을 연구해 온 전형적인 골방지기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세상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임시 딱지가 붙은 레인과 로엘을 신용도도 신경 쓰지 않고 고용한 것도, 의뢰 수행을 재촉하는 로엘에게 별 의심을 품지 않은 것도 여기서 기인한 일이었다. 로엘의 생각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그리고 그 경험 부족은, 당장 사냥을 시작한 때에 일행을 곤란에 처하게 만드는 형태로 드러나고 말았다.

     * * *

     파르엘은 레인과 로엘을 따라 산을 오르다 마주치게 된 몬스터, 오크에게 곧바로 마법을 날렸다.

    <화염구(Fire Ball)>.

     불꽃이 응축된 구체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 전방의 오크를 통째로 구워버렸다.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더니, 금세 바닥에 쓰러졌다. 주변에 고기 타는 냄새가 퍼져나갔다.

     레인과 로엘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짓는 가운데, 파르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뭘 이정도로 놀라고 있냐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뒤쪽의 풀숲이 헤쳐지는 소리가 나더니 3마리의 오크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불꽃 장벽(Fire Wall)>.

     불꽃으로 이뤄진 거대한 벽이 생성되어 순식간에 오크들을 감싸고, 불태웠다. 오크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풀썩 하고 쓰러지는 세 개의 숯덩어리. 그것을 파르엘은 훗, 하고 웃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레인과 로엘이 격노했다.

    “무슨 짓이야!”

    “제정신입니까?!”

    “엥?”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두 소년의 반응에 파르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파르엘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사방의 수풀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각종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오크가 열다섯, 거기에 트롤 하나와 자이언트 보어 하나. 근방의 몬스터란 몬스터는 다 모여든 것이다.

    “이런 미친!”

    “빨리 벗어나야 해! 시간을 끌면 연기와 냄새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더 몰려든다!”

    “꾸물거릴 틈 없습니다! 빨리 제 쪽으로!”

    “어, 그, 그래.”

     급변하는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파르엘을 로엘이 한 팔로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웠다.

    “간다!”

     동시에 레인이 한쪽으로 돌진했다. 트롤과 코모도가 위치하지 않은, 오크 다섯 마리가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방향이다. 로엘이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으어어어?!”

     파르엘이 갑작스런 발진에 놀라 얼빠진 소리를 내뱉는 것과 동시에 레인이 전방으로 검을 휘둘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가로막는 적은 빠르게 분쇄해야 했다.

     조그마한 파육음이 연속으로 울리고, 레인이 달려가는 방향에 놓인 세 오크가 우뚝 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대로 도약. 세 오크 중 가운데에 위치한 오크의 머리를 밟고 재도약. 로엘도 똑같은 방법으로 레인을 뒤따랐다.

     레인과 로엘이 자리를 벗어남과 동시에, 다섯 오크 중 한가운데의 오크가 가장 먼저 뒤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양옆의 오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각각 가장자리에 위치한 나머지 두 오크가 당황한 모습으로 괴성을 내지르는 가운데, 레인과 로엘, 그리고 파르엘은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몬스터들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곧바로 또 다른 몬스터와 마주쳤다. 화염 계통 마법의 여파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연기. 그것에 이끌린 몬스터는 차고 넘쳐났다.

    “젠장! 벌써 이만큼이나 몰려든 건가!”

    “대체 몇이나 되는 거야!”

     두 소년은 기감으로 느껴지는 수십 단위의 기척에 비명 같은 외침을 토해냈다.

     * * *

     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움직여 몬스터들의 포위망을 벗어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겨우 주위에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다다른 레인이 발걸음을 멈추고, 로엘이 뒤따라 멈춰 서서 옆구리에 끼워두었던 의뢰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침묵. 두 소년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숨 막히는 상황에 파르엘이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차라리 비난을 퍼붓는다면 그나마 낫겠건만.

     돌아가는 정황을 지켜보며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달은 파르엘이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도저히 먼저 말을 꺼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잠시 후.

    “파르엘 씨. 우선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악감정이 있어서 방금과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결국 로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악감정이라니.”

    “뭔가 우리에게 원한이 있어서 함께 산화하려 한 것 아니고?”

     레인이 옆에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아, 아니야!”

     파르엘이 손사래를 쳤다.

     로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삐딱한 시선으로 파르엘을 바라보고 있는 레인을 어찌어찌 달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