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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호위 의뢰(2) (20/249)
  •  20화. 호위 의뢰(2)

     레인과 로엘은 13살의 소년. 겉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아이였다. 심지어 딱 봐도 평민.

     당연하게도, 레인의 발언은 어린 소년의 치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말씀하신 대로, 그런 제도가 존재하긴 합니다. 다만 그 경우엔 이곳 지부의 지부장, 혹은 부지부장님이 입회한 자리에서 실력을 입증해야만 합니다. 더불어 요금도 지불하셔야 하지요.”

    “요금은 얼마인가요?”

    “금화 2닢입니다.”

     용병 등급은 A등급에서 F등급까지로 나뉜다. 물론 A등급에 가까울수록 높은 등급이다. 규격 외 등급으로 S등급도 있지만, 일단은 그렇다.

     용병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천한 농민에서부터 지체 높은 귀족까지.

     그리고 그중엔 아주 간혹 방랑 기사나 검가(劍家) 출신 수행자와 같은 실력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형평성을 위해서는 당연히 처음 용병 등록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F등급의 용병패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 옳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의 문제였다. 탄탄히 쌓아올린 입지를 통해 용병 본인의, 그리고 길드의 신용을 보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니까.

     하지만 무예를 수련한 이들은 쓸데없이 자존심이 높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자들은 F등급에서부터 차근차근 등급을 상승시켜나가는 과정 그 자체에 거부감을 품고 불평을 제기하는 일이 많았다.

     실력자들이 자존심의 문제로 용병계에 발을 들이길 저어한다? 길드의 입장에선 손해도 그런 손해가 없다.

     그러니 그들을 배려한 제도가 마련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입회자 앞에서의 실력검증.

     인정만 받는다면 단숨에 상위 등급의 용병패를 발급받는 것이 가능하다. 인정받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금화 2닢이라는 큰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에 장난삼아 검증을 받으려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정말로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은 한 F부터 착실하게 등급을 높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참고로 검증을 통해 단숨에 상위의 용병패를 지급받는 경우, 한동안 임시 딱지가 따라붙는다.

     이 제도로는 실력 검증은 가능해도 신용 검증은 불가능하다. 해서 의뢰주에게 이들의 신용을 완벽히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임시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검증을 받지.”

     레인은 곧바로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 금화 4닢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 주저함이라고는 일말도 없는 행동에 주위 용병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

     금화를 집어 든 여직원 또한 난처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간혹 제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금화를 투자해 검증을 받으려 드는 이들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레인과 로엘이 딱 그 짝으로 보였다.

     여직원은 결국 금화를 받아들고 접수에 착수했다. 두 소년에게 애석한 감정이 든다곤 해도 공은 공, 사는 사였다.

     그렇게, 레인과 로엘의 검증 신청이 접수되었다.

     * * *

     용병 길드 뒤편의 연무장. 그 구석에 커다란 석조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검증 신청자가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야 하는 무대.

     그곳에 레인과 로엘, 그리고 헤이슨 자작령 용병길드 부지부장인 카인트넬이 들어섰다. 접수원과 사무원으로 보이는 장년의 남성이 뒤를 따랐다.

    “너희가 이번 검증 신청자들이냐?”

    “······.”

    “예.”

     레인은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표정으로, 로엘은 빙긋 웃는 얼굴로 카인트넬의 질문에 답했다.

     카인트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느 쪽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였다.

     카인트넬은 검에 오라를 실어 그것을 표출시킬 수 있는 실력자, 검수(劍手)였다.

     스킨헤드에 짧은 수염. 구릿빛 피부에 수많은 흉터들. 거기다 안대가 씌워진 왼쪽 눈. 심지어 등 뒤에 매인 거대한 참마검(斬馬劍)까지.

     높은 무명(武名)에 무시무시한 외견. 그와 마주한 이들 대다수는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소년에게선 긴장감이 조금도 엿보이질 않았다. 밤색 머리칼 소년은 하품을 내뱉었고, 금발 소년은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봤다.

    ‘겁이 없는 건지, 배짱이 있는 건지.’

     카인트넬은 매섭게 눈을 부라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뭐, 좋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나와서 실력을 내보이면 된다.”

     카인트넬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런 어린애 장난질에 어울려줘야 한다니,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도 일은 일. 금화 4닢을 지불한 이들이다. 적어도 제대로 검증을 해 줬다는 인상은 남겨줘야 했다.

    “우선, 너. 덤벼보도록.”

     그가 레인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 * *

     카인트넬은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면에 누운 채로.

    “······.”

     인생 참 뭣 같았다.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에게 이렇게까지 탈탈 털릴 줄이야.

     나름대로 실력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아주 와장창 박살이 났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위쪽에서 누군가가 허리를 굽혀 내려다본 탓이다.

    “······.”

    “이만 일어나지?”

     카인트넬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동안 레인을 빤히 응시했다. 저 나이에 저 실력이라니, 대체 어느 정도의 재능을 타고나면 저게 가능한 것일까.

     이미 자신의 위상은 땅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위풍당당하게 나서놓고 검증 신청자의 옷깃도 못 건드렸다. 그 광경을 부하 직원들이 모두 목격했다.

     그가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은 소년 쪽을 돌아보았다.

    “······.”

     걱정이 밀려들었다. ‘이 녀석도 괴물 같은 실력자면 어쩌지?’ 하는.

     이미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다. 이런 경험을 두 번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여유로워 보인다. 원래라면 어린아이의 객기 정도로 비쳐야 할 모습인데, 조금 전의 경험 때문에 그렇게 여길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젠장.”

     -또 처참하게 깨질까 봐 두려웠다.

     * * *

     로엘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이 자리에서까지 실력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길드의 직원. 이쪽의 실력에 대한 것은 나중에 함구해 줄 것을 요청하면 될 터였다.

     그것을 사전에 레인에게도 전해두었다. 그랬더니 이 사달이 벌어졌다.

     필시 시험관이 이쪽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과하게 손을 쓴 것이겠지.

    ‘애도 아니고.’

     덕분에 연무장이 불편한 공기로 가득 찼다. 시험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화풀이한답시고 황소처럼 덤벼들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쪽은 제대로 된 무술 따위 익힌 적 없는 초심자다. 경신법을 배웠기에 움직임은 조금 빠르지만, 그뿐이다.

     상대는 이전의 어중이떠중이 용병들과는 다르다. 제대로 된 실력자였다. 압도적인 속도를 지녔으니 도망칠 순 있지만, 상대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아니, 잘못 덤벼들었다간 순식간에 제압되어버릴 터다. 동체시력과 반응속도는 저쪽이 이쪽보다 한참 윗줄일 테니까. 경험적인 측면도 부족하고.

    ‘뭐 권총을 사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역시 그건 좀 꺼려졌다. 아직 사격 실력이 미숙한 터라 자칫하면 상대를 죽이게 될지도 몰랐다.

     무리해서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냥 적당히 실력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일단 부딪쳐 보자.’

     다른 부분은 떨어지지만, 압도적인 속도의 우위가 있었다. 조금 주의만 하면 팽팽한 접전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로엘은 한껏 긴장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험관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 * *

     눈앞의 금발 소년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카인트넬은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 소년도 아까 전 소년과 같은 괴물이었다. 밤색 머리칼 소년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준족을 선보였었다.

    ‘역시 동문 출신이었나.’

     악몽이 따로 없었다.

     애초에 함께 찾아온 두 소년이다. 한쪽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반대쪽도 뛰어날 가능성이 높긴 했다.

     같은 스승 아래서 사사한 사형제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었다. 똑같이 특수한 보행기술을 익힌 것을 보니.

     이만한 준족을 선보일 정도라면 분명 무술 실력도 아까의 소년과 비슷한 수준일 터.

    “후우, 됐다.”

     카인트넬은 완전히 의욕을 잃었다. 그는 삽시간에 자신의 배후를 점한 소년을 무시하고 검을 검집에 갈무리해버렸다.

    “?”

     제자리에 멈춰선 로엘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딱히 더 볼 필요도 없겠지. 이 두 소년에겐 B등급 용병패를 지급하도록.”

     그가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두 부하 직원에게 말했다.

    “괜찮을까요? 저 레인이란 소년은 그렇다 치고, 로엘이라는 소년 쪽은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았는데요.”

    “대충 봤으니 알 것 아닌가.”

    “······.”

     부하 직원들이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이견을 내지 않았다.

    “어라.”

     생각지 못했던 전개에 로엘이 볼을 긁적였다.

     * * *

     두 소년은 그 뒤로 간단한 절차를 걸쳐 B등급 용병패를 받아들고 길드 지부를 나섰다.

     검증으로 받아낼 수 있는 최상위 등급의 용병패였다. 이 이상은 의뢰를 수행해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등급을 올려야 했다.

     길드를 나서기 전에 신상정보를 숨겨 달라 요청해뒀다. 특정한 의뢰만 받는다는 홍보 글을 길드 게시판에 붙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길드 지부를 흘겨본 레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호들갑은.”

     두 소년은 검증이 끝난 뒤 잔뜩 환대받고 관심받았다.

     부지부장은 언제 언짢은 표정을 지었냐는 듯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접수원은 신상정보를 기록하고 용병패를 발급하는 동안 누구의 제자냐, 어느 무가(武家) 출신이냐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들을 퍼부어댔다.

     너무 노골적인 태도 변화라서 불편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뭐, 괜찮지 않아?”

     반면, 로엘은 그리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길드의 중요 인물에게 관심을 받는 건 좋은 일이었다.

    ‘의뢰주들에게 그 기색을 흘릴 테니.’

     그것은 이제 막 용병계에 발을 들인 탓에 인지도가 부족한 자신들에게 상당한 메리트가 된다. 로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이야기는 이쯤하고, 오늘은 용병으로써의 첫발을 내디딘 특별한 날인데, 자축해야 하지 않겠어?”

    “······?”

    “치킨?”

    “좋지.”

     두 소년은 의기투합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때? 오늘 즈음에 영약을 하나 더 먹는 게.”

    “조금 이르지 않을까? 이전에 먹은 것도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데.”

    “지금의 네가 내 도움을 받는다면 영약 하나쯤 더 섭취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

    “네 견해가 그렇다면야.”

     로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다 문득, 그가 레인에게 질문을 건넸다.

    “지난번에 소환한 정령은 어때?”

    “여전해. 아무런 반응도 없어. 이것저것 던져주면 잘 받아먹기는 한다만.”

    “먹는다고?”

    “어. 식재료는 물론이고, 몬스터의 사체까지 먹어 치우더라고. 그걸 먹는다고 표현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하여튼 그림자 위에 적당한 걸 던져놓으면 빨려들듯 사라지거든.”

     식사를 하는 정령이라니.

     그야말로 정체불명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존재였다.

    “그나저나, 슬슬 정리해야겠지?”

    “정리한다고? 뭘?”

    “그 스콜피온인가 뭔가 하는 놈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두 소년이 우선순위로 둔 것은 조직 스콜피온의 정리.

     이전에 신세를 지기도 했으니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조만간 치워버려야 했다.

    “첫 의뢰는 언제쯤 들어오려나.”

    “글쎄.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아무래도 우린 인지도가 없으니까.”

     입소문이 퍼지고 안정적으로 의뢰가 들어오게 될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게 로엘의 생각이었다.

     두 소년은 그 뒤로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대로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

     한 사내가 용병 길드 내 게시판에 붙은 홍보글을 유심히 살폈다.

     두 소년은 용병 등록을 마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첫 의뢰자를 수행하게 되었다.

     * * *

     전날과 같은 이른 아침 시간. 레인과 로엘은 다시 용병 길드를 찾았다. 의뢰 등록을 해 둔 이상 하루에 한 번씩은 확인을 해야 했다.

     길드의 접수처에 다다라 의뢰인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의외의 답변이 되돌아왔다.

    ‘벌써 의뢰가 들어왔다고?’

     로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하루만에 의뢰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접수원에게 의뢰주의 위치를 물었다. 의뢰주는 자작성 서측의 한 여관에 묵고 있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두 소년은 접수원에게 전해 들은 여관의 내부에 들어섰다.

     여러 식탁이 늘어서 있고, 손님들이 드문드문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1층을 식당으로 사용하는 여관인 듯싶었다.

     곧바로 카운터로 향해 의뢰자의 이름을 대고 현재 여관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종업원이 한쪽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에는 소년과 청년의 경계 즈음의 나이로 보이는 한 사내가 있었다. 부스스한 안색으로 수프를 떠먹고 있었다.

    “······.?”

     이쪽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쳐오는 의뢰주.

     의뢰주와의 첫 대면. 좋은 인상을 줄 필요성이 있었다. 로엘이 입가에 영업용 미소를 걸었다.

     두 소년은 곧바로 의뢰자의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누구지?”

    “파르엘 씨 맞으시죠?”

    “······그런데?”

    “이번에 파르엘 씨가 길드에 고용 신청을 한 용병입니다. 로엘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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