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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159화 (159/227)
  • < 제 54장 - 조우 >

    제 54장 - 조우

    던전의 핵심은 가주였다.

    가주가 죽으면 던전의 영혼 역시 죽었다. 던전의 영혼이 죽은 던전은 던전이 가진 여러 기능을 수행 할 수 없었고, 설사 던전 그 자체가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마력 공급이 끊겨 오래지 않아 말라 죽고 말았다.

    때문에 던전 전투에서는 던전의 심장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가주를 지키는 것 역시 중요했다.

    가주의 방이 보통 던전의 심장 방 부근에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가주는 철저한 방비 속에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가주야말로 던전의 최강 전력일 경우가 많았다. 가장 강력한 무기를 쓰지 못하고 감춰두어야 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체스로 치자면 가주는 킹과 퀸의 결합체라 할 수 있었다. 적진을 종횡무진 할 수 있는 최강의 말이었지만, 동시에 그 말 하나만 죽어도 게임에서 패하게 되는 그런 양날의 칼 같은 존재 말이다.

    왕 또한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왕들이 지배하는 '국가'는 수십 개의 던전들의 집합체인 거대한 던전이라 할 수 있었다.

    왕은 국가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었다. 현대전으로 치자면 전술핵과도 비할 수 있을 터였다.

    때문에 왕들의 움직임은 중요했다. 왕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따라 전선 그 자체가 변모할 수도 있었다.

    색욕의 왕처럼 철저할 정도로 몸을 숨기는 경우도 있었고, 격노의 왕처럼 오히려 활발한 활동으로 적을 견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식탐의 왕은 격노의 왕의 방식보다는 색욕의 왕의 방식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격노의 왕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폭력의 왕이 진군시킨 용 군단의 위세가 그만큼 굉장했기 때문이다.

    질시의 왕과의 국경지대에 배치했던 병력의 절반가량을 남부로 돌린 식탐의 왕은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거대한 괴수들을 앞세운 식탐의 왕의 친정군은 그저 진군하는 것만으로도 뭇 사람들의 공포를 야기했다. 갑자기 근접해온 용 군단에 놀랐던 식탐의 왕의 백성들은 공포 속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자신들의 왕이야말로 최강이라며 입을 모아 식탐의 왕을 칭송했다.

    하지만 정작 친정군을 이끄는 식탐의 왕은 만족하지 못했다.

    용 군단의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용 군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와이번이나 드레이크 같은 비행형 몬스터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수가 수천 마리에 달했지만 그리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단 한 마리로도 전장에 재앙을 연출할 수 있는 드래곤이 자그마치 수십 마리에 달했다. 완전히 자라 힘의 완숙기에 접어든 에이션트 드래곤도 얼추 대여섯 마리는 됨직 했다.

    이 정도면 식탐의 왕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전력이었다. 물론 식탐의 왕에게도 각종 괴수들을 비롯한 수하들이 있었다. 국경에 배치된 용 군단이 두려운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식탐의 왕을 가장 불안케하는 것은, 또한 가장 분노케 하는 것은 폭력의 왕의 소재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용 군단이 진군을 개시한 직후, 폭력의 왕의 드래곤 레어는 문자 그대로 필멸의 땅이 되었다. 식탐의 왕 본인이나 가장 아끼는 최정예 병력을 투입한다면 모를까, 일반적인 정찰 병력 따위는 접근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용 군단을 내보낸 지금 폭력의 왕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여전히 자신의 드래곤 레어에 웅크리고 있는가? 아니면 드래곤들의 전매특허라는 폴리모프 상태로 유희라도 즐기고 있는가.

    왕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왕의 위치를 감추는 것 역시 막강한 전략이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그것도 치명적일 정도로 막대한 적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짜증나는 일이었다.

    식욕도 식탐의 왕의 분노를 달래줄 수 없었다. 산처럼 쌓인 산해진미를 먹어치워도, 아프사라스를 비롯한 뭇 미녀들을 아무리 탐해도 짜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폭력의 왕이 지금 움직인 이유는 무엇인가.

    대체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식탐의 왕은 격노 속에서 새로운 식욕을 느꼈다.

    남부. 손만 뻗으면 언제든 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그 땅.

    식탐의 왕은 스스로를 억눌렀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가졌다.

    폭력의 왕의 위협이 존재하는 지금, 식탐의 왕 자신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은 참고 기다려야 할 때였다.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폭력의 왕.’

    식탐의 왕은 이를 갈았다. 언제고 놈의 심장을 물어뜯을 그 날을 기약하며 남부를 노려보았다.

    &

    격노의 왕은 남부를 보았다. 하지만 식탐의 왕과는 다소 방향이 달랐다. 그녀가 바라본 것은 서남쪽- 폭력의 왕의 땅이었다.

    “아저씨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하얀 옷을 입은 격노의 왕은 검푸른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았다. 경매장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폭력의 왕에게서 온 사절이나 서신 같은 것은 없었다. 격노의 왕도 식탐의 왕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왕의 속셈을 조금도 알 수 없었다.

    경매장에서 돌아온 이후 내내 야크샤 신장의 갑주 차림을 고수한 키르티무카는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긴장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혹시 폭력의 왕의 용 군단이 우릴 기습 공격하지는 않을까요?”

    팔부중 가운데서 전투를 담당하는 야크샤들과 아수라들 대부분이 북부와 동부 국경에 배치된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남부에 위치한 용 군단이 밀고 올라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격노의 왕과 팔부중에게는 가장 끔찍한 가정이었다.

    격노의 왕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히려 식탐의 왕이 폭주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거야.”

    단순한 어린애 투정 같은 것이 아니었다. 격노의 왕은 자신의 식견을 믿었다. 폭력의 왕은 여전히 그녀 자신의 동맹이었다.

    격노의 왕의 단호한 태도에 키르티무카는 입을 다물었다. 격노의 왕의 고집을 알아서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격노의 왕을 믿었기 때문이다.

    키르티무카는 화제를 돌렸다.

    “북부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걱정입니다.”

    격노의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부의 전황은 여전히 오만의 왕이 우세했다.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식탐의 왕이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터였다.

    북부의 싸움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어느 쪽이 이기든 연이어 더 큰 전쟁이 터질 것이 분명했다.

    북부는 지금 커다란 시한폭탄인 셈이었다.

    격노의 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키르티무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급히 좋은 말로 격노의 왕을 달랬다.

    “각지에 정찰 나간 가릉빈가들이 좋은 소식들을 가져올 겁니다.”

    “그럼 좋겠지만.”

    완전히 병 주고 약주고 식의 말이었지만 격노의 왕은 개의치 않았다. 남부를 조금 더 쳐다보다가 습관처럼 슥슥 손을 놀렸다. 키르티무카가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 아까부터 뭘 그렇게 그리고 계신지요?”

    “응?”

    키르티무카는 눈짓으로 격노의 왕의 손을 가리켰고, 격노의 왕은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손에는 연필이, 허벅지 위에는 종이판이 올라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슥슥 손을 놀렸는데 이제 보니 제법 그럴싸한 초상화 한 폭이 그려져 있었다.

    격노의 왕은 당황했다.

    “어어, 어어어?”

    팔부중 중에서도 예술 전반에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간다르바였다. 간다르바의 수장답게 격노의 왕의 그림 솜씨는 무척이나 뛰어났다. 대충 슥슥 그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사진같은 정밀함이 담겨 있었다.

    어느새 격노의 왕의 곁에 다가선 키르티무카가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잘생겼군요. 남자 얼굴 맞죠?”

    “어, 응. 뭐…….”

    격노의 왕은 어색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 어색함에 키르티무카는 눈을 가늘게 떴고, 이내 격노의 왕의 시선이 갈 곳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

    키르티무카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경악을 토했다.

    “헉! 설마 경매장의 그 남자입니까? 그럼 이건 상상화?! 오, 맙소사… 이 정도로 깊이 빠지셨을 줄이야. 눈 하나만 보고 얼굴을 상상하신 겁니까? 그 정도로 깊이 빠지셨어요?”

    “사, 상상화 아니거든? 진짜로 봤거든?”

    격노의 왕이 허둥거리며 대꾸했다. 어쩐지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키르티무카가 다시 물었다.

    “가면 벗은 맨 얼굴을 말씀이십니까?”

    “잠깐뿐이지만.”

    격노의 왕은 평정을 되찾았다. 손부채질로 얼굴의 열을 식히며 말했다.

    “아무튼 미친 소리 좀 그만해. 그냥 심심풀이니까.”

    하지만 키르티무카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어느새 집어든 초상화를 가만히 살피더니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별 경매에 참가했다는 건 제법 세력이 있다는 것이겠죠. 아니면 적어도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다른 왕의 휘하만 아니면 좋을 텐데…… 어쩌면 주인님께 큰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그럴까?”

    혹하기라도 했는지 격노의 왕이 귀를 살짝 움찔거렸다. 그 모습에 키르티무카는 다시 웃었다. 잘생긴 데바나 간다르바들을 연병장 가득 줄 세워놔도 별반 반응이 없던 자신의 주인이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게 될 줄이야.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활짝 열어놓은 커다란 창문 너머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반투명한 흰 천들이 사정없이 휘날렸고, 키르티무카는 잠깐이지만 눈을 꽉 감아야 했다.

    하지만 격노의 왕은 달랐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또 다른 벗을 반겼다.

    “가르디문디!”

    창문을 통해 나타난 것은 붉은 비늘 갑옷을 입은 가루라- 가르디문디였다. 붉은 깃털과 날개, 새와 같은 발을 가진 그녀는 가릉빈가들과는 별개로 세상 곳곳을 누비며 격노의 왕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했다.

    허물없이 자신을 반기는 격노의 왕에게 손을 작게 흔들며 반가움을 표한 가르디문디는 창틀에서 펄쩍 뛰어내린 뒤 격노의 왕에게 다가섰다.

    키르티무카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무례하구나! 주인님을 알현할 때는 정문을 통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겠느냐!”

    야크샤답게 무시무시한 호통이었다. 하지만 가르디문디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키르티무카의 노여움을 귓등으로 흘렸다. 당연히 키르티무카는 더욱 씩씩거렸고, 격노의 왕은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얼른 두 팔을 벌렸다.

    가르디문디는 그런 격노의 왕에게 예를 표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을 깜박였다. 아직 예를 다 표하지 않았음에도 자리에서 다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이 년이!”

    “어라? 그건 마몬 가의 가주 아냐?”

    키르티무카의 욕지거리와 가르디문디의 목소리가 섞였다. 재빠르게 키르티무카의 손에 들려 있던 초상화를 뺏어 든 가르디문디는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콩깍지 낀 여자가 그린 것처럼 꽤나 미화된 것 같지만… 마몬 가의 현 가주가 맞는 것 같은데? 이건 어디서 구했어요?”

    마지막 물음은 격노의 왕을 향한 것이었다.

    “마몬 가의 가주?”

    “좀 더 자세히 말해 봐라. 이 남자를 아느냐?”

    이번엔 격노의 왕과 키르티무카의 목소리가 섞였다. 가르디문디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다마다. 이번에 정찰하고 온 대상인걸.”

    격노의 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키르티무카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마몬 가라면 두 사람 모두 아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가르디문디는 두 사람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몇 번 꿈틀거린 뒤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천용호. 현 마몬 가의 가주. 망해가던 마몬 가를 일으켜 세우는데 만족하지 않고 아예 남부 공백지를 일통해버린 화끈한 남자입니다.”

    &

    [우왕. 크. 굿!]

    [무기의 양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이 정도면 스컬 부대는 물론이고 블랙 오크 전대까지도 몽땅 마법 무구로 무장시킬 수 있겠는걸요?]

    무기고 장악을 마친 루시아가 활기차게 말했다.

    무기고 내부는 단순 그 자체였다. 천장이 높은 커다란 방 안에 수납장이 가득했고, 다시 그 수납장 안에 각종 무기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대형 마트에라도 들어온 기분이었다.

    용호와 마찬가지로 마몬 가의 후예인 카이완은 가슴을 활짝 폈다. 약간의 우쭐함과 대량의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여덟 손의 바루나가 만든 것들이 저장되어 있는 장소니까. 대단한 게 당연하지.”

    순간 카이완의 무기고를 떠올린 용호는 키득 웃었다.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떠서 무기고 안의 마력을 살펴보았다.

    현란함 그 자체였다. 무기고를 가득 채운 병장기들 가운데 마법이 걸리지 않은 물건이 정말로 하나도 없었다.

    일행 가운데 가장 마법에 해박한 티그리우스가 가까이 있던 칼 하나를 집어들었다. 칼집에서 살짝 뽑아 칼날을 살핀 뒤 말했다.

    “대부분 날카로움 강화나 재질 강화 등의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장비들로 전원이 무장을 한다면… 스컬 부대의 전투력이 실로 무시무시해질 것 같군요.”

    동기화만으로도 이미 일반적인 스켈레톤 부대를 초월한 스컬 부대였다. 전원이 마법 무기로까지 무장을 한다면 일당백의 군대가 될 터였다.

    “스컬스컬.”

    껄껄 웃은 스컬은 손을 들어 무기고 안쪽을 가리켰다. 척 보기에도 양산형이 아닌 특별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였다.

    ‘갑옷. 갑옷이 필요해.’

    사실 현재 마몬 가 예속 사역마들의 구성은 꽤나 비대칭적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근접전에 능한 ‘전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온라인 게임으로 치자면 파티에 마법사나 궁수 같은 원거리 딜러도 거의 없고, 거기에 힐러까지 없는 막장 조합이었다.

    물론 용호 자신이나 카이완의 경우엔 녹염이나 사복검으로 원거리의 적을 공격할 수 있긴 했다. 한 명뿐이긴 했지만 마법사인 티그리우스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부족했다. 예속 사역마들과 함께 싸우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파티 구성을 위해 원거리 딜러와 마법사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예속 사역마를 급조할 수는 없지.’

    때문에 용호는 갑옷을 원했다. 당장 새로운 인원 보충을 할 수 없으니 기존의 병력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용호가 보았을 때 용호 자신과 예속 사역마들의 공격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방어력이 약했다. 빈약한 수준이라고 해도 좋았다. 일선에서 활용할 힐러도 없는 판국이니 방어력의 보강이 더욱 간절했다.

    “용의 레오타드?”

    용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팔 다리 없이 몸만 있는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붉은 가죽 갑옷이었다.

    사실 말이 갑옷이지 거의 타이즈라 해도 좋을 정도로 얇았다. 팔 다리 부분도 없는 일체형인 터라 수영복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마몬의 무기고에 있는 갑옷이었다. 느껴지는 마력도 심상치 않았다.

    용호 곁에 선 카이완은 마네킹 목 부분에 붙어 있는 명패를 한 번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 가죽으로 만든 거네. 여성용이긴 하지만. 나나 카타리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움직임에 방해도 안 될 것 같고. 우리 용호는 이걸 누구한테 주려나?”

    은근한 목소리에 카타리나도 귀를 쫑긋 세웠다. 용호는 씩 웃으며 답했다.

    “저쪽에 한 벌 더 있네. 둘 다 입으면 되겠다.”

    노린 건 이게 아니라는 듯 카이완이 눈살을 찌푸렸고, 카타리나는 꼬리를 살랑이며 좋아했다.

    엘리고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 가주 님께 어울리는 물건을 찾았습니다.”

    용호는 물론이고 무기고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엘리고스에게 향했다. 엘리고스는 무척이나 흡족한 얼굴로 자신 앞에 놓인 갑옷을 가리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탄성을 토했다. 마치 달빛을 녹인 것 같은 은은한 빛이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메탈릭 드래곤 아머.

    드래곤들 가운데서도 희귀한 실버 드래곤의 비늘과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었다.

    < 제 54장 - 조우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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