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2화 (2/227)
  • < 제 1장 #2 >

    이제는 제법 얼굴이 익숙한 엘리고스의 뒤로 무척이나 노출도 높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나긋나긋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길고 붉은 머리칼이 마치 실크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보랏빛 드레스로 우윳빛 피부를 감싼 그녀는 어깨와 목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이 풍만한 가슴을 거의 반 이상 드러내고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 아래로 늘어진 드레스자락 역시 옆으로 길게 찢어져 허벅지를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위대한 마몬의 후예를 뵙습니다. 던전 상인 시트리입니다.”

    우아하게 허리를 숙이는 시트리를 따라, 정확히는 그녀의 가슴골을 따라 고개를 앞으로 내밀 뻔 한 용호는 가까스로 정자세를 유지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트리. 마몬가의 가주 자리를 맡게 된 천용호입니다.”

    뭐라고 대답을 하기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하대를 할 수도 없었던 터라 용호는 일단 스스로 생각했을 때 무난하다고 생각되는 인사말을 입에 담았다. ‘인간’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낼 게 분명한 이름을 밝혀도 될지 순간 망설임이 들었지만 갈등의 시간은 짧았다.

    애당초 ‘인간’이라 안 된다면 카타리나나 엘리고스가 용호 자신을 찾아왔을 리도 없었다.

    용호의 무난한 응대에 카타리나는 다시 안도의 한숨을 토했고, 엘리고스는 쓸데없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었다. 시트리는 잠시 용호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야 마몬가에 다시 행운이 깃들려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어찌보면 전대 가주를 모욕하는 발언일수도 있었지만 엘리고스는 그저 즐거워할 따름이었다. 카타리나 역시 엘리고스처럼 대놓고 웃지 않을 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전대 가주에 대한 감정이 안 좋나?’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감정이긴 했다. 전대 가주의 자결 덕분에 던전과 함께 죽을 위기에 처한 엘리고스와 카타리나가 아니던가.

    “그럼 바로 의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천용호 님, 이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시죠.”

    시트리가 가슴골 사이에 묻어두었던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거의 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초록빛 보석이 달린 금목걸이였다.

    의식의 내용은 커녕 시트리가 온다는 사실 자체도 방금 들어 겨우 안 용호였다. 당연히 저 목걸이가 무엇인지, 이제부터 시트리가 무얼 하려는 것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이미 시트리의 가슴골 덕분에 정신이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용호가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시트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이내 조금은 꾸민 듯한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어머, 설마 의식에 대해 모르시나요?”

    용호는 남중, 남고를 나와 공대에 들어간 대한건아였다. 반라의 미녀가 눈웃음을 치며 묻는 와중에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하기에는 아직 미녀, 아니 여자에 대한 내성이 너무도 부족했다.

    용호가 어색한 얼굴로 모른다는 사실을 어필하자 엘리고스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카타리나를 노려보았다. 이제까지 설명 안하고 뭐했냐는 눈빛이었다.

    다시 허당모드로 전환한 카타리나는 무어라 항변하려 했지만 결국 입술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외인인 시트리 앞에서 더 이상 추태를 부려봐야 망신만 커질 뿐이었다.

    용호에게 바짝 다가선 시트리가 설명했다.

    “지금부터 치를 의식은 허례허식은 쫙 뺀, 그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절차만을 담은 의식이랍니다. 이 목걸이를 목에 거시고 저와 여기에 있는 두 가신이 일정한 마법 의식을 수행하면 천용호 님께서는 마왕으로 각성하실 거예요.”

    ‘각성’이란 표현에 용호는 새삼 마른 침을 삼켰다. 시트리는 그 작은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고혹적인 목소리를 이어 나갔다.

    “던전의 주인. 가주는 마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마족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랍니다. 특히나 천용호 님께서는 저 위대한 마왕 마몬의 피를 이으셨죠. 분명 강력한 힘을 손에 넣으실 거예요. 이 목걸이는 각성을 도울 뿐만 아니라, 어떤 힘을 각성하셨는지를 알려준답니다.”

    시트리의 말이 끝났을 때는 이미 목걸이가 용호의 목에 걸려 있었다. 엘리고스가 빠르게 말했다.

    “얻으신 힘에 어울리는 칭호가 보석에 나타난답니다. 마력의 마왕이라든지, 마력의 마왕이라든지, 마력의 마왕이라든지 말입니다.”

    엘리고스가 어떤 칭호를 간절히 바라는지는 명확했다. 용호는 다소 긴장된 눈으로 목걸이 끝의 보석을 바라보았다.

    “그럼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죠.”

    단상은커녕 그냥 평평한 바닥 위에 올라가 있는 옥좌였기에 시트리는 부드럽게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용호와의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자연스럽게 용호의 좌우에 섰다.

    용호를 마주하고 선 시트리가 눈을 감으며 무어라 작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내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역시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였고, 용호는 마몬가의 던전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진심어린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변화의 공포였다.

    지금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사실이 불러오는 원초적인 공포.

    피가 끓어올랐다. 세 사람의 목소리가 고조될수록 마치 템포를 맞추는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생각을 잇기 힘들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열락 속에서 의식이 멀어져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용호는 숨을 토했다. 열기가 일시에 방출되었고, 용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호흡을 하는 자신을 느꼈다. 눈동자의 빛이 변했다. 초록빛 에메랄드 빛을 띠기 시작한 그것에 빛의 문자가 떠올랐다.

    각성에 의해 손에 넣은 힘.

    지금의 용호를 상징하는 문구.

    <진화의 마왕>.

    “하아… 하…….”

    거친 숨을 토하며 용호는 고개를 들었다. 진정한 가주의 자리에 올랐기에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의 감정이 대략적으로나마 느껴졌다.

    엘리고스는 열광하고 있었다. 거의 전율이라 해도 좋았다. 그가 원하던 ‘마력의 마왕’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그러했다.

    카타리나는 엘리고스에 비해 훨씬 더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을 품었다. 그것은 안도와 전율이었다.

    안도는 쉬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갈 곳을 손에 넣었다는 마음에서 우러난 안도. 하지만 전율은 무엇인가. 카타리나는 지금 왜 전율하고 있는가.

    용호의 녹색 눈동자에 시트리가 들어왔다. 용호는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에 떠오른 이채까지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진화의 마왕.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왕으로 각성함에 따라 그 편린을 드러낸 힘이 하나 더 있었다.

    <7대 죄악 - 탐욕>.

    엘리고스와 카타리나가 전율한 진짜 이유. 오랜 세월동안 발현되지 않았던 마왕 마몬의 힘.

    용호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스스로 각성한 힘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하지만 막 스스로를 들여다보려던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

    용호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마왕으로 각성해 가주가 된 순간 연결된 ‘던전의 영혼’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었다.

    손을 크게 벌리자 용호의 눈앞에 커다란 빛의 창이 형성되었다. 마치 컴퓨터 스크린 같은 창 안에는 던전의 조감도가 펼쳐져 있었다.

    7대 죄악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한 마왕 마몬은 분명 위대한 존재였다. 때문에 아무리 몰락했다고 하나 마몬 가의 던전은 참으로 드넓었다.

    ‘쓸데없어.’

    던전 부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쓸 수 없는 공간이었다. 천장이 내려앉거나 벽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부서지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나마 남은 부지들도 정상이 아니었다. 거의 4/5에 해당하는 영역이 ‘비활성화’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마력을 공급하지 못해 아무 것도 없는 무의 방.

    용호가 처음 본 텅텅 빈 돌방과도 달랐다. 그나마 텅 빈 돌방은 비록 그 등급이 최하라고는 하나 ‘활성화’된 공간이었다. ‘비활성화’ 된 공간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마몬 가의 던전 부지를 100개의 칸이라 친다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해야 여덟 칸 남짓. 그나마도 거의 대부분이 있으나 마나한 텅 빈 돌방이었다.

    용호는 사기당한 기분을 억누르며 그나마 쓸 수 있는 공간들을 확대해 보았다. 본래 시스템이 이러한 것인지, 아니면 용호에게 맞추어진 것인지 마치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과 같았다.

    일자로 쭉 이어진 여덟 개의 타일. 왼쪽 끝에서 두 번째에 있는 것이 지금 용호 자신이 있는 방이었고, 오른쪽 끝이 던전의 입구였다.

    오른쪽 끝 첫 번째 칸에 침투한 적은 단 한 개체였다.

    “크림슨 오우거!”

    용호 뿐만 아니라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에게도 빛의 창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엘리고스의 좌절감 어린 외침에 용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내 던전의 영혼이 새로운 정보들을 전달해주었다.

    [현재 화면에서 왼쪽 끝에 위치한 방에는 ‘던전의 심장’이 존재합니다. 던전의 심장이 파괴당할 경우 던전은 그 생명을 잃습니다.]

    애당초 무생물일 던전이 죽는다는 게 말이 되냐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가 용호를 찾아온 이유부터가 가주가 없으면 ‘던전이 죽는다’는 이유였으니 말이다.

    크림슨 오우거는 첫 번째 칸을 지나 두 번째 칸에 도달했다. 정말 침공할 목적인지 아니면 그저 길을 잘못 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놔두면 오래지 않아 이 방에까지 당도할 게 분명했다. 마몬가의 초라한 던전은 외길구성이었다.

    “거, 걱정하지 마십시오. 던전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엘리고스가 급히 외쳤다. 과연 그의 말마따나 빛의 창에 나타난 던전 요약도에는 각 칸에 설치된 함정들이 표시 되었다.

    [추락 함정 - 깊게 판 구멍 위에 거적을 덮어 적을 속이는 가장 기본적이며 고전적인 함정.]

    [화살 함정 - 불시에 수십 발의 화살을 발사해 적을 사살하는 함정.]

    [화염 함정 -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낸 불꽃으로 적을 멸살하는 함정.]

    오른쪽 두 번째 칸부터 차례대로 각 칸에 설치된 함정들이었다.

    과연. 과연 이 정도는 되어야 마왕의 던전이지!

    하지만 용호의 감탄은 5초를 넘기지 못했다.

    크림슨 오우거는 추락 함정에 빠졌다. 하지만 함정은 크림슨 오우거의 허리 높이 밖에 오지 않았고, 크림스 오운거는 잠시 몸부림치다가 함정을 빠져나갔다.

    “하, 함정을 파다가 노동력이 부족해서…….”

    엘리고스의 변명을 흘려들으며 세 번째 칸을 보았다. 설명과 달리 화살은 단 한 발도 발사되지 않았다.

    “화살 재고가 없어서…….”

    이번에는 카타리나의 변명이었다.

    용호는 인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크림슨 오우거나 네 번째 칸을 아무런 문제없이 지나치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한숨을 내뱉었다.

    “함정 발동시킬 마력이…….”

    크림슨 오우거가 다섯 번째 칸에 도달했다. 용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 대신 마지막 기대를 담아 카타리나를, 가주의 호위 기사를 바라보았다.

    “카타리나, 너 저거 이길 수 있냐?”

    여태까지 하대하는 것이 살짝 어색했는데, 정식으로 가주 자리에 올라서 그런지 이제는 하대가 자연스러웠다.

    카타리나는 순간 겁먹은 얼굴로 빛의 창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이, 이 한 몸 바쳐……!”

    텄다. 얼굴이 울상이었다.

    크림슨 오우거가 다섯 번째 칸을 지나 여섯 번째 칸에 진입하려 했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용호는 천연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시트리 대신 빛의 창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던전의 영혼에게 들은 정보들을 순간적으로 종합해보았고, 한 가지 방안을 구상했다.

    던전의 영혼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요구하였다.

    [칸을 하나 활성화 시키는 데는 10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던전의 심장에서 입구까지의 길은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용호는 빠르게 손을 놀렸다. 마왕으로 각성함에 따라 손에 넣은 마력이 새로운 빛의 창에 표시되었다. 고작해야 100. 하지만 잔고가 10밖에 안 되는 현 던전에 비하면 열 배나 많은 마력이었다.

    이제와서 여섯 번째 칸에 새로운 함정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함정을 설치하는 데 필요한 마력은 둘째 치고 함정을 설치할 사역마도, 시간도 없었다.

    마몬가의 던전의 장점은 무엇인가.

    쓸데없을 정도로 넓은 부지. 안에 아무 것도 없어 비활성화 된 공간들.

    용호는 현재 자신이 있는 방 바로 아래 칸, 비활성화 된 공간에 손가락을 올렸다. 마력을 소모해 방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손가락을 쭉 이동시켜 입구 바로 옆의 방까지, 총 일곱 개의 방을 활성화 시켰다.

    마력 70이 순식간에 소진되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숨 쉴 새도 없이 손을 놀린 용호는 크림슨 오우거와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방인 여섯 번째 칸을 비활성화 시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옥좌 정면에 있던 문이 사라졌다. 여섯 번째 칸이 비활성화 되었기 때문이다.

    눈동자를 빛의 창 쪽으로 굴렸다. 갑자기 사라진 문 때문에 당황하는 크림슨 오우거의 모습이 보였다.

    ‘제발, 제발!’

    크림슨 오우거는 뒤돌아 나간다는 선택지는 택하지 않았다. 대신에 왼쪽 벽에 새로 생긴 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용호가 재차 손가락을 놀렸다. 비활성화 시켰던 여섯 번째 칸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새로 만들어진 통로들을 잇는 ‘새로운 여섯 번째 칸’을 비활성화 시켰다.

    던전의 심장과 던전의 입구는 반드시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법칙을 이번에도 지켜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

    문이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방에 들어선 오우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자신이 들어오지 않았던 다른 문- 즉 던전의 출입구로 이어지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눈을 크게 떴다. 용호는 숨 쉬는 것도 잊고 크림슨 오우거의 행보를 주시했다.

    “오오! 크림슨 오우거가 도주합니다!”

    도주가 아니라 그냥 나가는 거겠지!

    하지만 용호는 좋아서 펄쩍 뛰는 엘리고스를 비난하지 않았다. 옥좌에 축 늘어져서 거친 숨을 토하기도 바빴다.

    운이 좋았다.

    크림슨 오우거가 던전을 공격할 의사 없이 길을 잘못 든 것이었기에 밖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마몬가의 던전 부지 거의 대부분이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기에 순간적인 활성화, 비활성화를 통한 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섯 번째 칸에도 함정 아닌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이런 방법도 쓰지 못했을 터였다.

    크림슨 오우거가 완전히 던전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던전의 영혼이 밝은 목소리를 토했다.

    [첫 승리]

    [던전에 쳐들어온 적을 격퇴했습니다!]

    [획득 전리품 : - ]

    [획득 마력 : - ]

    당연히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마력만 거의 다 소모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승리했다. 던전의 주인으로서 첫 승리를 쟁취해낸 셈이었다.

    ‘참으로 미묘한 승리다만.’

    이미 옥좌 위에 늘어져 있던 용호는 좀 더 격하게 늘어져 있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 용호의 눈에 비로소 시트리가 들어왔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고혹적인 아름다움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미소를 머금었다.

    시트리가 용호를 보았다. 그녀는 해맑음 대신 고혹함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며 말했다.

    “사랑하는 고객님,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시트리는 대꾸를 기대하지 않았다. 축 늘어진 용호의 한쪽 손을 부드럽게 거머쥔 뒤 그 손등에 입맞춤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돌아섰고, 마치 바람과 같이 마몬가의 던전을 떠났다.

    그리고 불과 몇 초.

    카타리나와 엘리고스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용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카타리나, 던전의 주인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엘리고스, 던전의 주인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허당인 호위기사와 팔불출 집사.

    마실 나온 크림슨 오우거에게도 멸망의 위기를 맞이할 정도로 막장인 던전.

    ‘그냥 가주 때려 치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왕으로 각성한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던전의 주인이었고, 이 던전은 용호 자신의 일부라 할 수 있었다. 결코 쉬이 떨쳐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용호는 허탈하게나마 웃었다. 충성을 맹세하는 두 수하의 뜻을 받아주었다.

    진화의 마왕 천용호.

    7대 죄악 중 탐욕의 힘을 이어받은 자.

    그 위대하면서도 위태로운 행보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제 1장 - 즉위하다 끝, 제 2장 - 마계인력시장으로 이어집니다.

    < 제 1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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