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74화 (74/237)

74화. 19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마치고 한국으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악보를 보았다. 25번이 아닌 18번이었다.

악보는 그나마 지금 연주하는 곡으로 되어 있었다.

‘하아...’

연주는 시작됐다. 연주를 중도에 멈출까, 생각도 해봤지만.

씨익.

한 인물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혼자 웃고 있는 남자.

칼 하인츠 케멀링.

‘설마......?!’

퍼뜩 스치고 지나간 생각.

‘이건 계획된 것’... 왜?!

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면, 멈출 수가 없잖아.’

아닐 수도 있지만, 순전히 자신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괜한 오기가 생겼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곡에 집중했다.

시선은 오로지 악보에 향했다.

‘예전을 떠올리자. 많이 쳐보고 연습했던 곡이다.’

곧 차례가 돌아온다. 눈을 감았다.

[도련님, 모차르트 18번이 어떤 곡인지 아세요?]

[아주 잘 알죠. 시각장애인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 파라디스 여제를 위해 작곡된 곡이잖아요.]

[잘 아시네요. 확실하게 알려진 건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곡은 거짓을 얘기하지 않아요.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세요. 이 곡에서 느껴지는 마음을...]

지휘봉이 한 번 더 허공을 그을 때.

딴!

멈췄던 손가락이 본능적으로 눌러졌다. 시선은 악보에 가 있지 않았다. 오로지 몇 번이고 듣고 연습했던 당시의 기억에 의존했다.

“마, 말도 안... 헙!”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 지나갔지만, 머릿속에서 지웠다.

오로지 곡에 집중했다.

‘어디선가 나를 보며 응원하고 있겠지.’

윤희가 떠올랐다. 여섯 살이나 많지만, 늘 동생처럼 여겨지는 여자.

그녀의 마음은 여리고 나약하다.

하지만 사랑이란 마음은 어느 여인보다 강렬하다. 그녀를 떠올리자, 굳었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조심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끌고 걸었다.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러다 그녀의 장난스러운 손짓. 그러다 앞으로 뛰어간다.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게.

그녀를 따라 뛰었다. 행복이란 이름이 누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순간이 행복인지 모르겠다.

오른손은 그녀의 마음을 표현을 하였고, 왼손은 오른손을 보조하며 따라갔다.

길고 긴 시간.

모두가 숨을 참은 채, 지켜보는 때.

휴우...

모든 곡이 끝났다.

와아아아아.

피날레를 선사하며 사람들의 마음 울렸다.

한강은 들려오는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에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음이 살짝 이탈했어. 너무 감정이 앞서 나갔어.’

아주 미세하지만, 음이 이탈했음을 떠올리자 씁쓸한 마음이 입가에 머물렀다.

완벽하게 연주하여 한 방 먹이고 싶었는데, 너무 마음이 앞서나갔다.

“아름답고 명쾌한 연주였어요. 고작 열아홉 살이 담기에 믿을 수 없는 높은 실력과 해석에 찬사를 보내요.”

심사위원단에 있는 르 수아가 한강의 곡에 찬사를 보냈다.

바로 앞전에 연주했던 센 웬유에게 주었었던 ‘발전해야 할 점이 많다’는 말과 상반된 평을 전하였다.

모든 평이 끝난 시점.

이제 수상만을 남겨 놓았다.

1위부터 12위까지 가려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심사위원단들의 점수가 위로 올라왔다.

[10점]

와!

르 수아를 시작으로 올라간 점수에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에 가까운 감탄이 터졌다.

[9점]

[9점]

연달아 터지는 고득점에 장내는 침묵을 지켜, 상황을 조용히 지켜봤다.

[1점]

“......?!”

마지막 점수를 기다던 순간, 또 다른 경악이 장내를 뒤덮였다.

“......맞았군. 모든 개수작질의 법인이.”

한강은 올려진 점수에 입꼬리를 쓱 말아 올렸다.

진심으로 ‘꼴’ 받았다.

곧 순위가 매겨지고.

1위, 러시아 세르게이 브리닌이 올랐다.

2위, 센 웬유.

웅성웅성.

센 웬유가 2등에 오르자, 장내에 어수선하게 변했다.

3위, 한리버.

“......”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한강이 1위가 아닌 3위로 올랐다.

너무도 어이없는 현 상황을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후우...

무대 위에 있는 유한강은 복잡한 시선으로 심사위원단 중 한 사람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찌리릿.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 순간, 한강의 머리로 힘줄이 뚝 끊겼다.

“저 사회자님, 마이크를 빌려도 될까요?”

2천의 방청객이 내려보는 시선을 흠뻑 받으며 사회자에게 걸어가, 마이크를 요구했다.

“그건 왜?!”

사회자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부탁합니다.”

어느 때보다 차갑고 시린 시선.

무언가 일이 터졌음을 인지한 사회자는 주문한 마이크를 건넸다.

“친애하는 폐하, 그리고 심사위원님들과 저를 응원하기 위한 모든 분들께 슬픈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한강은 수많은 시선 중에 한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칼 하인츠 케멀링의 심사위원님의 점수에 따라 전 3위 수상을 포기하겠습니다. 또한, 이 명망 높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심심한 유감을 표합니다.”

왓!

경악을 넘어 충격이 뮤직 샤펠 성 안에 감돌았다.

어떤 누구도 이번 사태에 먼저 나서서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심사위원석에 자리한 사람들은 한강을 보다 한 인물에게 차가운 시선을 꽂았고.

한강은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무시한 채, 무대에서 퇴장했다.

“인터뷰는 받지 않겠습니다. 머리를 식히고 싶군요.”

인터뷰를 위해 몰려온 기자들을 제치고 밖으로 나갔다.

“한강아...”

“......”

기자들을 피해 빙 돌아 밖으로 나오자, 앞에 윤희를 더불어 응원 온 가족들이 앞에 대기해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오셨구나. 다른 분들도...’

“정말 죄송해요. 타국까지 날아와 응원을 오셨는데, 못난 꼴을 보이게 돼서.”

한강은 허리를 90도까지 꺾어 바닥 깊숙이 고개를 내렸다.

“우발적인 마음도 있었지만, 이런 상은 타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리 목적이 일반 음악가와 다른 부분에 있다 쳐도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심사위원과 함께 자리한 벨기에 고위층에 항의를 하고 싶었다. 아주 현실적인 항의를.

그것이 삐뚤어진 선택일지라도, 마음에 품고 있던 뜻을 전하고 싶었다.

“수고했어.”

윤희가 다가와 품속에 안겼다. 주변에 자리한 가족들은 아무 말 없이 둘을 바라봤다.

“더는 이 더러운 곳에 있기 찝찝허네. 가자고.”

한열은 막 나온 건물을 심술궂게 노려봤다.

더는 이런 곳에 머물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쉬이이이이이.

다음 날, 모두는 벨기에에서 벗어나 한국 땅을 밟았다.

“으아, 바로 이 맛이라고, 크으.”

전날 찝찝함을 잊고 저녁 시간, 그간 그리웠던 된장찌개가 상 위에 올라왔다.

지나가는 투로 이야기했던 걸 윤희는 잊지 않고 찌개를 뚝딱 만들어 대접했다.

“맛있게 먹어.”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수많은 예술로 얻는 감동도 맛있는 음식보단 못하리라 여기며 코를 가져가 된장 냄새를 즐겼다.

“요리도 할 줄 알았어?”

“레시피 대로 하니까 쉽던데.”

“완전 감동이야. 맛있게 먹을게.”

“처음 한 것 치고 괜찮지?”

된장찌개가 그리 어려운 요리도 아니고.

한강은 입가에 행복함을 가득 품고 숟가락을 떠 입안에 넣었다.

“......”

그때 혀끝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각이 신경을 긁었다. 분명 된장인데, 된장 맛이 맞는데 계속 느껴지는 이 비릿한 맛과 향은...

‘콩나물이구나...’

“어때? 어때?”

아무래도 맛을 보지 않은 모양이다.

저 해맑은 얼굴에 찬물을 끼얹기 미안하다.

“겁나 맛있져.”

한강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입안에 망할 콩나물을 한 움큼 욱여넣으며, 증거인멸을 하였다.

나름 행복한 저녁 시간이었다.

***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에 깊은 유감을 보낸다.]

[세계 3대 콩쿠르로 알려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편파 판정이 나왔다. 1위 러시아 세르게이 브리닌의 전 스승으로 알려진 칼 하인츠 케멀링 심사위원은 2위로 올라선 중국 센 웬유의 스승으로 밝혀졌다.]

[그가 던진 점수 ‘1점’은 두 제자를 1위와 2위에 올리기 위한 점수로 알려졌다. 또한, 모든 대회가 끝나고 뒤따른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다. 한리버 유한강이 연주한 협주곡 모차르트 18번은 주최 측 실수로 잘못 전해진 ‘연습하지 않은 곡’으로 전해졌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퀸 엘리자베스 3위에 오른 유한강은 “3위 수상을 포기하겠습니다.” 한마디와 함께 벨기에를 떠났다.]

한규섭: 나 여기에 있었는데, 정말 어이없었음. 1점은 전설일 거임.

김규리: 정말인가요? 저도 여기 준비 중인데.....

박성태: 진짜 더럽다. 이래서 고인 물은 싹 처리해야 함.

서기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왜 스승 X끼가 심사위원으로 있는 건데? 제자 놈들 1위 2위 해서 좋것네.

이석필: 겁나 웃긴 건 센 웬유 그 중국 꼬마 평가가 부족한 게 많고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함. 그런데 2위 함.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사에 네티즌들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미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연주가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미로슬라브 꿀띠쉐프: 당신이 그곳에 나가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돼 응원을 못 갔지만... 영상으로나마 보게 돼 기쁩니다. 당신의 연주는 최고였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의 1위는 당신입니다.

수많은 추천으로 가장 위에 올라온 댓글은 모두의 입장을 반영하였다.

미로슬라브 꿀띠쉐프는 한강을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회사로 복귀하자 직원들이 너도나도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 말을 건넸다.

“이게 다 뭔가요?”

한편 한강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퀸 엘리자베스 우승을 축하합니다. 육성그룹 회장 이건호]

[최고의 음악이었어요. 육성 미술 전시관 대표 홍라헤]

[더움 커뮤니케이션 대표 고호경]

[아마존 회장 제프 베조스]

[애플 회장 스티브 잡스]

......

무수한 화환과 선물들이 복도부터 시작해 사무실 안까지 쫙 깔려 있었다.

“보시는 대로 축하 화환과 선물입니다. 모두들 대표님이 이번 콩쿠르 1위라 여기고 있습니다.”

‘안 받으면 안 되겠지’ 생각하며 감사함을 담아 꽃다발을 받았다.

“고마워요. 챙겨주셔서.”

불쾌함만이 남았던 콩쿠르는 말끔히 잊혀졌다.

직원들이 준비한 이벤트와 축하를 받으며 오늘을 기억하기로 하였다.

***

2003년 6월 둘째 주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월례조회시간을 가졌다.

회의장에는 한리버 임원과 간부진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인터넷 사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책 대여점과 서점 시장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현 시장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까 합니다.”

콩쿠르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사업에 집중을 하였다.

“저는 한리버의 다음 사업으로 웹소설과 웹툰으로 정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맡겨 신사업으로 인터넷 소설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도서대여점이 죽고 서점이 위축되는 지금.

한강은 새로운 무기를 들려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새로운 사업부를 신설하고 작가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시장은 빠르게 읽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기는 지금이 적기.

한강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바탕으로 시장을 먹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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