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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83화 (83/302)

등선인 줄 알았더니 전생이었다 (83)

공명심.

그런 눈빛을 확인하고 있을 때 에르페유가 말했다.

“무인이라면 강자와 겨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법. 원래 각 센터당 한 명 이상을 추천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어디 다른 곳과 같더냐? 그래서 세 명인 게지.”

“으음…….”

“물론 세 명이라 해도 굳이 그 숫자를 채울 생각은 없다. 예선도 통과 못하면 센터 망신이니까.”

자랑하듯이 늘어놓기 시작하는 그를 보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우승은 쉽지 않겠지요? 물론 우리 센터의 실력이 있으니 예선은 다 통과하겠고, 상위에 이름들을 올리겠지만 말입니다.”

내 물음에 에르페유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지. 강한 놈이 어디 여기만 있을까? 뜬금없이 툭 튀어나오는 그런 인물은 늘 있었지.”

“그럼 거기서 우승하면 센터에도 큰 영광이 되겠군요.”

“뭐, 큰 영광까지야……. 그런 거 없어도 우리 센터의 명성은 공고하다.”

그때 테라가 슬쩍 말했다.

“매번 대회에 출전하고 상위 오걸에 꼭 들어가지만 아직 우승자는 없습니다, 주군.”

내게 있어 그건 아주 좋은 정보였다.

당장이라도 그와 거래를 하고 싶지만 렘을 통해 배운 게 하나 있다.

좋은 거래를 위해서 기다림은 필수라는 것. 특히 상황이 유리하면 더더욱.

“저도 참여할 생각이 있지만 할아버지의 부름에 올라온 거라……. 만나 뵙고 참여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에르페유도 알고 있는 사실.

그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럼 일단 센터 선출전에라도 참여해라. 아무리 너라 해도 규칙은 지켜야지. 괜히 뒷말 나와서 좋을 것도 없다.”

잘됐다.

할아버지가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르는데, 기다리는 시간 동안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센터 선출전에 참여하기로 했다.

* * *

“누구야?”

“로라스 아니야?”

“로라스가 누군데?”

“있잖아. 마스터께서 직접 훈련시킨다는 변방에서 올라온 놈.”

연무장에 가자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어?”

“실버 대회 때문에 올라온 거 아닌가?”

경쟁자로 생각해서인지 들려오는 소리 중 듣기 좋은 건 별로 없다.

하긴 센터에 그리 있었으면서도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으니, 그들 입장에서 난 굴러 온 돌일 뿐일 터.

‘너희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을 것이다.’

수군거리는 애들은 대부분 브론즈 대회에 나갈 젊은 녀석들이었다.

실버컵 이상 대회에 참전하는 사람들 중 몇몇도 떠들긴 하나 대부분 바라만 볼 뿐이다. 아마도 내가 나이로 봤을 때 브론즈에 나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미안한 건 오히려 나지.’

저들 입장에서 세 장의 참가권 중 한 장을 내가 뺏는 거다.

그냥 운이 나빴다고 하기에는 이 센터의 무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단련하는지 안다. 그래서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

‘대신 그만한 가르침은 주도록 하지.’

내 입장에서야 애들 코 묻은 돈을 빼앗아 가는 악덕…… 여하간 누구 한 명은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니, 그 기회만큼 대가를 안겨 주기로 마음먹었다.

“로라스!”

모두가 시기, 질투에 긴장감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다정하게 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나 해 줄 것이지.”

대장 노릇 하기 좋아하는 포플러다.

‘이놈은 볼 때마다 덩치가 커지는구나.’

어렸을 때부터 떡잎이 남다른 놈이긴 했다. 그사이 나도 상당히 컸는데, 녀석의 목에 닿을 뿐이다.

“포플러, 많이 컸구나.”

“흐흐흐흐. 먹고 수련하고, 먹고 수련하고 그러니까 이리되데.”

포플러는 웃음을 흘리며 그리 대답하고는, 내 옆에 있는 테라에게 말했다.

“젠장. 내 경쟁자는 너뿐이라 생각했는데 로라스까지 왔으니 긴장해야겠네.”

“너도 참가하는 거냐?”

“마지막 기회이니까. 대회가 내년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럼 우승 확률이 높아졌을 거야.”

이 녀석이 무슨 소리 하는가 싶다.

“교관이 나 정도면 우승을 노려 볼 수도 있다고 하셨다. 덕분에 며칠 전에는 에르페유 님에게 직접 지도까지 받았다. 에르페유 님도 크게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입상은 확실하다고 하셨고.”

포플러가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툭 팔을 친다.

“어쩌면 우리끼리 결승에서 만나는 거 아냐?”

순간 의아했다.

에르페유가 포플러에게 입상이 확실하다고 했다고?

물론 포플러는 제법이란 표현이 부족한, 재능 있는 녀석이다. 다른 곳에 곁눈질하지 않고 이대로 정진하면 뛰어난 무인이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내가 아는 실버 스워드 대회의 수준에서 우승은 무린데 말이다.

포플러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3년 후에 실버 스워드 대회를 나가는 거지. 그때는 뭐 예선 통과를 목표로 해야겠지만 말이야.”

대체 지금 무슨 소리냐?

“너라 해도 봐주지는 않을 거야. 정말 최선을 다해야 앙금 따위는 남지 않을 테니.”

자신감 넘치는 포플러. 아무래도 내가 뭔가 모르는 게 있나 보다.

“너 지금 무슨 대회 나가는 거냐?”

그래서 묻는 말에 포플러는 의아해하며 반문한다.

“무슨 대회긴. 브론즈 대회지. 우리가 나갈 게 그것밖에 더 있냐?”

몰랐나 보다. 나는 다른 대회에 나가는 것을.

뭐라 말할지 고민할 때, 옆에 있던 테라가 말했다.

“포플러 형, 주군은 브론즈 대회에 나가는 게 아닙니다.”

“응?”

“실버 대회에 나가기로 하셨습니다.”

순간 포플러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포플러가 물었다.

“실버 대회에 나가려고?”

“내가 브론즈 대회에 나가면 반칙이지.”

실버도 마찬가지겠지만, 브론즈면 정말 끔찍하다. 지금도 살짝 미안함이 있는데 애들 상대로는 정말 못 할 짓인 거다.

포플러는 놀람과 동시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실버? 거기는……. 실버에서 예선 통과하는 것보다 브론즈 우승이 이득이 클 텐데.”

하긴 남들이 들으면 이상한 소리긴 하다.

스무 살에 실버 대회에 나가는 무인은 없다.

실버 대회 최연소 우승자인 아버지도 당시 나이가 스물넷이라 하였다.

“그냥 경험 삼아 나가 보는 거지.”

“그래도…….”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다. 그래서인지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다.

‘이놈도 특훈 시켜야겠네. 실력도 늘리고, 보는 눈도 좀 높이고.’

그렇게 생각할 때 포플러는 조금씩 표정을 풀며 말했다.

“뭐, 잘됐지. 네가 브론즈에 나오면 강력한 라이벌이었을 텐데. 덕분에 내 우승은 확정이네.”

“그건 해 봐야 알겠지요.”

옆에서 테라가 발끈하며 하는 말에 포플러가 말했다.

“네가 확실히 날 제대로 쫓아오기는 하지만 너는 아직 어리지. 다 자라지 않았어. 최소 2년은 더 있어야지.”

“몸으로 싸움하는 건 아니지요.”

테라가 다시 발끈했지만, 사실 포플러의 말이 맞다.

천재와 범재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게, 바로 시간으로서 비교하는 것이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느냐?

특히 저 시기에 1년이란 시간은 어마어마한 차이를 낼 수 있다.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센터의 교관들이 연무장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에르페유의 모습도 보였다.

선출전에 관여하기 위해서다.

“스승님께서는 대회에 참가 안 하시나?”

포플러가 중얼거리듯이 하는 말에 테라가 말했다.

“우승해도 본전인데 굳이 나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골드 스워드면…….”

“권신입니다. 골드 스워드 우승자라 해도 비빌 수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래도 스승님이 싸우시는 거 구경이라도 한 번 해 봤으면 좋겠다.”

“교관 중에서 골드 대회 우승 후보자도 있는데. 그걸로 만족하세요.”

그들의 대화를 듣자니 엉뚱한 생각이 났다.

‘골드 대회라…….’

실버 대회까지가 이 세계의 후기지수들의 역량을 볼 수 있다면 골드부터는 완성되어 가고 있는 무인들의 역량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골드 대회는 나이 제한이 없지?”

묻는 말에 테라가 대답했다.

“네, 주군. 브론즈나 실버는 나이 상한선이 있지만, 골드는 무제한입니다.”

생각할 게 많아졌다.

* * *

브론즈에 나갈 수련생이 결정됐다.

예상대로 포플러와 테라, 그리고 포플러와 또래로 보이는 대부를 쓰는 사람이었다.

실버에 나갈 수련생들이 곧바로 우르르 연무장으로 몰려갔다.

아이언 센터의 수준은 높다.

역대 실버 대회의 우승자를 배출하지는 못했어도, 상위 10위에는 반드시 진출했다.

그 탓인지 수련생이 많아도 선출전에 참가하는 수련생 자체는 많지 않았다.

실버 선출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은.

‘하아! 또 미안해지네.’

솔직히 영지의 드리프나 브렌드보다 못했다. 아니, 번천보다도 못했다.

어쩌면 비교 대상이 잘못됐을지도 모르겠다.

시그탑과 비교하여 한참 떨어질 뿐이지, 드리프나 브렌드도 백전의 용사 아니던가. 번천 역시 이제 다른 두 기사들에 필적하고 있는 실력자.

‘견문이 짧긴 짧구나.’

늘 보는 무인들이 그런 소수의 실력자들이라니.

‘뭐,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약자만 보면 문제가 되지만, 강자만 봐서 문제 될 건 없다.

‘여하간 어찌해 준다.’

그리 고민을 할 때 교관 하나가 날 불렀다.

“다음 로라스, 베젠.”

연무대 중앙에 서니 날렵한 긴 검을 쓰는 적발의 사내가 올라왔다.

“앞으로. 예!”

마주 서고 아이언 센터만의 독특한 무례(武禮)를 올렸다.

방법은 간단하다.

무슨 무기든 손잡이 끝부분으로 가슴을 세 번 두들기면 된다.

베젠이라 불렸던 사내가 말없이 노려보기만 한다. 으레 잘 부탁한다는 둥, 한 수 배우겠다는 둥의 대화가 오갔는데 말이다.

‘뜬금없이 내가 끼어든 게 불만족스러운 게지.’

물론 그 불만의 크기만큼 확실히 교육시켜 줄 생각이다. 그게 같은 센터 소속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배려.

“하앗!”

기합과 함께 찔러 들어오는 기세가 제법 사납다.

슬쩍 검을 마주하며 옆으로 밀어내 보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이 상당하다.

하체의 힘과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유연함이 없다면 이런 저항감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딱 그뿐이다.

퍼억! 퍼억!

검 면으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신체 부위를 치기 시작했다.

“이놈이!”

모욕감을 느꼈을까?

굳게 다문 입술이 열리며 거친 말소리가 튀어나왔다.

모욕감을 느낄수록 배워 가는 게 많을 것이다.

‘단순하게 모욕만 느끼면 무인으로의 재능이 없는 거고.’

그것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무인은 원래 싸우고 깨지면서 실력이 느는 게 정상이다.

‘맞는 것도 수련인 게지.’

가끔은 잘 때리는 방법보다, 잘 맞는 게 더 득이 되기도 한다. 어느 문파는 무공 한 초식 가르치지 않고 일단 무작정 패는 곳도 있을 정도다.

무를 통해 도를 수련하는 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결국 무공의 본질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을 제압하느냐이니까.

그래서 잘 맞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잘 맞게 되면 피할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게 되는 거니까.

내 미안함만큼 난 그것을 상대에게 아낌없이 베풀 생각이다.

똑똑한 놈은 정말 많은 것을 배워 갈 것이고.

‘난 그중에 쓸 만한 놈을 고르면 되는 거고.’

아이언 센터는 기본적인 재능이 있는 이들이 모였으니 여럿 건질 수 있을 터.

내겐 사람이 부족하고, 에렌에서 그걸 보충할 생각이다.

정성을 다해 실컷 구타, 아니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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