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회
오진우 평론가가 말했다.
“…맞아요. 그다음은 미국이었죠.”
누군가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다름 아닌… 금홍이었다.
“그래요. 기억 나요. 현지에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정말.”
난 제발 그만해 달란 의미로 내 부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홍은 벌써 들뜬 것 같았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지팡이>가 완결이 됐거든요. 게다가 책까지 발간되니… 그땐 뭐, 말도 못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여행 중이라 연락이 안 되니,”
금홍이 내 어깨를 살짝 치며 말했다.
“그 인터뷰 요청들이 번역가인 저한테 쏟아졌거든요. 게다가 전 학생이라 도망도 못 치고요. 그때부터 교수님들이 저를 프로 번역자 취급을 하는 바람에… 제가 얼마나 부담스러웠는데요.”
“음… 역시 그건 미안해.”
나는 몇 번이나 했던 사과를 또 했다.
“평생 미안해 해야한다니까요.”
금홍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무렵.
<지팡이>가 미국에서 책으로 발간된 직후.
하필 나는 미국 여행을 마치고 유럽으로 넘어갔다.
프랑스 리브레클럽의 일정도 있었으니.
그리고… 미국 문화계의 관심은 금홍에게 쏟아졌다.
그 덕에 금홍은 유학생 신분으로 번역계의 ‘슈퍼스타’가 되어 버리고… 설상가상 피터 한마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지팡이> 번역의 큰 줄기는 이금홍 번역가가 잡았다. 나는 그저 서포터니 인터뷰에서 할 말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홍이 말했다.
“그때 피터 한 교수님이 제게 공로를 돌린 건… 귀찮아서인 것 같아요.”
“동의.”
지훈이 말했다.
“당연하지. 나도 동의.”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금홍이 했던 고생을 생각하면… 피터 한은 참으로 교묘하게 그 난리통에서 도망갔지.
“아무튼 <지팡이>의 마지막 회는 대단했죠.”
조인후 감독이 말했다.
“영화계에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사실 <지팡이>는 영상화되기에 좋은 조건들이 많았으니, 완결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었거든요.”
“어, 저희 쪽도요.”
강인춘 PD가 말했다.
“서사가 워낙 기니까, 호흡 조절이 용이한 드라마가 낫겠다 싶었죠.”
“드라마로 가기엔… 분위기가 너무 무겁지 않나요?”
라고 조인후 감독이 은근히 견제를 하자.
“무슨 말씀을요. 하융이 얼마나 유머러스한데. 저는 배우도 내심 정해 놨는데요.”
하고 강인춘 PD가 또 한소리를 했다.
누가 보면 이 두 사람이 <지팡이>를 두고 싸운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예 <지팡이> 영상화 자체를 거부했다.
<지팡이>는 뭐랄까… 언제까지나 ‘소설’로 남겨 두고 싶어서.
조인후 감독이 의미 없는 논쟁은 그만하자는 듯 피식 웃었다.
“아무튼 정말 멋졌어요. 송지훈 평론가님께서 쓴 글이었나요? 작가답게 사는 건 쉽지만 작가답게 죽는 건 어렵다고. 이 세상에 존재했던 수없이 많은 별과 같은 작가 중에서, 하융이야말로 북극성처럼 그 ‘별의 기준’을 만든 작가라고. 작품이 아닌 작가라는 ‘인간’을 그토록 ‘작가의 이데아’에 가깝게 표현한 인물은… 하융 밖에 없을 거라고요.”
아, 기억이 난다.
지훈의 평론.
‘작가의 이데아’에 대해서는 지훈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 녀석은 귀신같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지팡이> 연재 중에는, 지훈은 그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친하다는 걸 문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괜한 구설수는 피하고 보는 게 좋으니까.
하지만 <지팡이>가 완결된 직후.
지훈은 오랫동안 참아 왔던 글을 ‘터트렸다’.
거의 책 한 권에 육박하는 지훈의 평론은, 한 달에 걸쳐 순서대로 발표됐다.
<지팡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 엄청난 평론이었다.
그리고 지훈은… 그 평론으로 그 해에 꽤 저명한 평론상을 수상했다.
지훈이 부끄럽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만 하세요. 그러는 게 좋겠죠, 형?”
“아니. 네 평론 얘기는 계속해도 좋을 것 같은데.”
“아, 진짜!”
지훈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웃음이 쏟아졌다.
식사를 마친 후.
케이크도 한 조각씩 먹었다.
모두들 만족한 파티였다.
우리는 슬슬 흩어져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각자 와인 한 잔씩을 들고, 가끔은 비밀스럽게, 그러나 즐겁게.
나 역시 거실을 누비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강인춘 PD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난 그게 제일 대단한 것 같아.”
“뭐가요?”
“일본에서 <지팡이>가 베스트셀러 먹은 거. 좀 불편한 게 아니었을 텐데. 그 사람들 다 설득한 거잖아.”
“아아. 도마크 출판사가 힘 좀 썼죠. 책 나왔던 초반에는 욕 많이 먹었는데, 결국 버텨 낸 거니까.”
“뭐… 그래서, 올해는 어떨 것 같아?”
그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뭐가요?”
“모른 척하기는.”
노벨문학상 얘기하는구나.
“저야 모르죠, 뭐.”
“양반처럼 구네. 욕심 안 나? 나 같으면 벌써 눈이 뒤집어졌다, 야.”
글쎄, 욕심이라.
나도 사람이니….
“나죠. 사람인 이상, 나긴 나는데….”
“나는데?”
“여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뭔데?”
“그게….”
내가 뭔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형, 형! 이리 와 봐요!”
지훈이 냅다 날 잡고 끌어당겼다.
금홍과 또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다가, 나보고 누가 맞는지 들어 달라나.
아무튼 난 그렇게 무력하게 지훈에게 끌려갔다.
점점 멀어져 가는 강인춘 PD가 피식 웃더니, 입 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난 너라고 생각해.’
* * *
10월 8일. 오후 8시.
나는 커튼을 치고 집 안에 있었다.
알기론… 오늘이 노벨상 시상식이라지.
괜히 방송을 보고 있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창밖에는 이미 기자들이 장사진이라… 외출은 꿈에도 못 꾸는 상황이다.
휴대폰도 꺼 버린 지 오래였다.
상을 받건 안 받건 당분간은 켜지 않을 예정이다.
그렇게 보조등만 켜 놓고 책을 보던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금홍이 상기된 얼굴로 서재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옆에 앉더니 날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내가 묻자, 금홍이 내 손을 가만히 잡았다.
“…축하해.”
아, 그렇구나.
받았구나, 결국.
“고마워. 덕분이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금홍은 축하의 의미로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 줬다.
“한국 최초에다가, 최연소라고 하네?”
금홍이 즐겁지 않냐는 듯 물었다.
즐겁다기보단….
“신기하네. 진짜 받을 줄은 몰랐는데.”
“인터뷰는? 잡아 놓으라고 할까? 공중파 정도는….”
“음… 아니. 서 기자님만 불러 줘.”
서 기자라 하면 서인희 기자를 뜻했다.
지금은 신문사 문화부 과장이 된 서 기자.
“알았어요. 시상식이 12월 10일인데. 갈 거야?”
“시상식이면… 스웨덴에서?”
“그렇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귀찮아, 번잡하고. 그리고 나 이제 공항 가는 거 싫더라.”
“그럼 시상식은 거절하는 걸로.”
금홍은 나를 안아 주며,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말해 줬다.
따뜻하다.
이 모든 온기와 말들이.
내가 상을 받아 좋은 게 있다면… 내 주위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다는 데에 있겠지.
아, 물론 적지 않은 상금도 말이다.
금홍이 나가고, 나는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요 속에서 한참을 책을 보다가, 문득 창밖이 신경 쓰였다.
커튼을 살짝 걷어 밖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들이 인산인해로 몰려들어 있었다.
저 멀리서 올라오는 경찰차가 보이는 걸 보니, 금홍이 벌써 신고를 한 모양이다.
이 조용한 동네를 언제까지 번잡하게 둘 순 없으니까.
내가 이래서 이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대단히 넓거나 번듯해서가 아니라… 방음이 잘 된다.
나란 존재가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낄 정도로.
“….”
나는 문득, 몇 년 전 다녀왔던 세계여행을 생각했다.
그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단 한 번도 남에게 설명해 본 적 없던 그 날의 일 말이다.
거기가 어디였더라.
동유럽의 작은 마을이었나.
서아시아의 초원이었나.
어쩌면 남미의 시골이었을지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닐수록,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점점 외진 곳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은 꾀죄죄한 몰골로.
그즈음,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팡이>를 통해 나를 모두 보여 준 게 아닐까.
내가 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지팡이>를 넘어선 글을 쓸 수 있긴 할까.
우울함인지 낭패감인지 모를 고민들.
그런 고민들이 나를 잠식해 가던 나날들.
아마도 그즈음이… 환생을 하고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점점 게을러져 가던 내가 새벽같이 잠이 깼으니.
마치, 누군가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지나칠 정도로 맑은 정신으로.
아무 생각 없이 숙소를 나섰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숙소 밖을 하염없이 걸었다.
돌아오는 길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낯설고 또 낯선 곳을 향해서.
그리고 더는 걸을 수 없을 때.
나는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눈앞에 드러난 건.
눈물이 날 정도로 드넓은 수수밭과 이제 막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지평선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해가 완전히 뜨는 걸 바라보았다.
오래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마치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내 마음과 욕망에 온전히 집중을 하며.
세상이 황금빛 햇빛을 받아 반짝일 무렵.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미련없이 뒤를 돌아 다시 숙소를 향했다.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 나를 휘어 감았다.
이 세상의 탄생을 본 것만 같은 그 순간에… 뭔가를, 온 힘을 다해 써 버리고 싶은 그 충동.
조금만 늑장을 피웠다간 중요한 것이 내 곁을 영원히 떠나 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런 감정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쉬고 있던 집필을 다시 시작했다.
그 수수밭에서 날 일으키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대체 무엇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의심도 고민도 없이 작가로서 살겠다고 다시금 마음먹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수수밭 위로 떠오른 태양에 눈을 찌푸리고, 몸을 휘청이게 하는 청량한 바람을 맞았을 때.
그러니까….
내 생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가슴에서 퍼지던 어떤… 안달 나는 느낌 같은 것.
그러니 이건 별수 없는 선택이다.
이 기쁘고 영광스러운 날에…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나는 홀린 듯 책상 앞에 앉았다.
손가락에 한 번 힘을 줬다가 빼고, 목도 양어깨 쪽으로 당겨 근육을 풀어 주었다.
세상은 내 노벨문학상을 가지고 한동안 바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게는 이제 과거의 이야기다.
<지팡이> 역시 지나간 역사이고.
내가 다시 태어나서 전생의 삶에 매몰되지 않은 것처럼, 나는 앞으로 이어질 내 삶을 다시 써 나가야 한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흰 바탕에 커서가 깜빡인다.
이 백지가,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나는 그렇게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