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92화 (192/204)
  • 192회

    “하융은… 죽을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로서도 처음이었다.

    <지팡이>라는 긴 대장정의 마지막을, 내 입으로 내뱉는 것은….

    조인후 감독은 긴장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것 같기도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군요.”

    “아쉬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역시 하융의 마지막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해피 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에서 결정 나곤 하니까.

    내 삶을 담은 인물이 하융이라면… 나는 하융의 죽음까지도 책임지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인후 감독의 얼굴이 침통해졌다.

    하융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하게.

    그는 대뜸 술을 한잔 들이켰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그게… <지팡이> 때문은 아닙니다.”

    …?

    그럼 대체 왜?

    조인후 감독은 뭔가 울컥한 듯했다.

    나는 그가 마음을 추스르길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그는 술을 또 한잔 털어 마셨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옛날 생각이요?”

    “네. 하융이 죽을 거라는 걸 작가님께 확인받으니… 아버님 생각이 났어요.”

    조인창 교수?

    나는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듯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리고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께서는 작가님을 만나기 몇 달 전에, 이미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덤덤하게 가족을 불러 말씀하셨어요.”

    “….”

    “나는 곧 죽을 거라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며, 남은 생에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고.”

    …조인창 교수였다면 그랬겠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위독한 상태였다.

    언제나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한 번도 두 발로 걷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런 아버님 앞에 작가님이 나타나신 건… 아버님 입장에서도 행운이셨을 겁니다.”

    그는 또 연거푸 한 잔을 들이켰다.

    “문학 학자로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열정을 태울 작가를 만나셨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참으로 오랜만에 활기를 띠셨고, 저희의 기대보다도 훨씬 더… 정말 훨씬 더 오래 사셨어요. 저희 가족이 작가님께 항상 감사하는 점이죠.”

    “….”

    “…사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죽음을 예견된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하는 생각이요. 물론 아버님께 내색하진 않았지만.”

    조인후 감독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작가님을 만난 아버님을 보니 그 생각도 바뀌었어요. 죽음이 예견되어 있더라도… 아니,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기에 아버님은 학자로서 마지막 힘을 쏟을 수 있는 거구나. 죽음이,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죽음이 삶의 동력이 된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삶을 후회 없이 충실히 살아온 사람만이,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남은 삶을 자신의 뜻대로 채울 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 항상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단 말입니다.”

    조인후 감독은 조금 취한 것 같았다.

    아니, 의도적으로 취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맨 정신에는 하기 힘든 이야기였을지도.

    나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취하셨습니다.”

    “압니다.”

    그는 일부러 그랬다는 듯 씩 웃었다.

    평소와 같지 않은 장난기 어린 얼굴.

    나는 그가 더 취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벌써요?”

    “부인분께서 들어오시기라도 하면 절 미워하실 테니까요. 그 전에 도망을 가야죠.”

    “작가님, 참 약았군요.”

    “네. 하지만 어쩔 수 없답니다.”

    나는 그를 부축해 주려 했다.

    그러자 그는 만취하진 않았다는 듯 혼자 일어났다.

    조금 비틀거리긴 했으나, 그는 날 대문까지 바래다주었다.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렸군요.”

    바람을 쐐서 그런지, 그는 금세 술이 깬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 보였다.

    비슷한 연배의 강인춘 PD에 비하면, 이건 술주정 축에도 못 들었다.

    조인후 감독은 고용인을 불러 운전을 부탁했다.

    “대리기사를 부르면 되는데요.”

    “제 집에 오신 손님을 그렇게는 못 보내죠.”

    …술취한 사람을 이기려는 건 미련한 짓이겠지.

    나는 얌전히 그가 시키는 대로, 차 키를 고용인에게 넘겼다.

    그렇게 남이 모는 내 차를 타고 가는 길.

    생각지도 못한 호사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조인창 교수 생각이 나서 마음이 조금 숙연해졌다.

    죽음을 예견한 삶이라….

    나는 그런 삶을 덤덤하게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융은?

    하융은 과연 자기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소설을 하나의 인생으로 본다면… <지팡이>의 3부는 죽음을 알고 가는 여정이다.

    마치… 조인창 교수의 마지막 몇 개월처럼.

    그리고 조인후 감독은 말했지.

    조인창 교수가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날 만나고 마지막 힘을 쏟을 수 있었다고.

    그럼 이런 건 어떨까.

    3부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하융은 죽었다’라고.

    그리고 그다음 문장부터, 하융의 마지막 몇 개월에 대해 풀어 내자.

    그것이 <지팡이> 3부의 구조가 된다.

    물론 독자들은 놀라겠지.

    2부에서 모든 것을 이뤘던 하융이 죽는다고?

    그리고 안타까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3부를 볼 것이다.

    하융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긴장되기도 하겠지.

    자칫 2부까지 오면서 루즈해질 수 있는 독자들을,

    다시 한번 휘어잡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거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구조적인 아이디어다.

    중요한 건… 하융이 ‘어떤’ 마지막 시간을 보내느냐는 거다.

    그 시간이 내 의도대로 빛날 수 있다면, 하융의 죽음에 대한 독자들의 충격은… 서서히 그의 삶에 대한 감동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시금 다짐했다.

    어떻게든 3부를 잘 마무리해 보자고.

    그리고 당장 집필에 들어가 버리자고.

    * * *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지훈은 거실에 있었다.

    녀석도 갓 들어왔는지 아직 정장 차림이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지,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왜 정장을 입었지?

    하고, 빤히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맞다. 송지훈 오늘 첫 강의였지?

    “강의 잘했어?”

    녀석이 고개를 들고 날 빤히 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날 보여 줬다.

    “뭔데 그래?”

    휴대폰 화면에 있는 것은… 특강의 학생 평가.

    ― 강의 재밌었어요.

    ― 선배들한테는 엄청 유하신 강사님이라고 들어서 지루할까 봐 걱정했는데, 진짜 카리스마 넘치시고 재밌었어요!

    ― 와, 진짜 에너지 넘치는 강의. 숨 쉴 틈 없이 몰아쳤어요. 다음에도 또 해주세요. 강추.

    ―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나중엔 제가 다 힘이 빠지던데요… 강약조절좀….

    ― 열정적인 강의 좋았습니다.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카리스마?

    …에너지?

    …열정?

    이게 정말 송지훈은 수사하는 단어들이라고?

    진짜 피터 한의 ‘카리스마론’이 먹힌 건가?

    나는 지훈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강의, 성공적이었나 봐?”

    “와, 진짜… 처음에는 진짜 떨렸거든요?”

    난 피식 비웃었다.

    “내가 준 우황청심환도 안 먹는다더니.”

    “우황청심환이요? 저 그거 학교 도착하기도 전에 먹었어요.”

    그래.

    내가 그럴 줄 알고 준 거다.

    “그래, 강의 내용은 어떤 거였는데?”

    “원래 거창하게 준비했어요. 현대의 문학에 대해서. 형의 성공 사례에 대해서도… 그런데, 단상 앞에 올라가니까 머릿속이 진짜 새하얘지는 거 있죠.”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엄청 당황한 상태로 애들 얼굴을 봤죠. 아직 애티도 못 벗은 학부생 얼굴을 보는데… 왠지 제 옛날 생각이 나는 거예요.”

    “옛날 생각?”

    “네. 형 등단하기 전이요. 저 맨날 빌빌거리면서 선배들 눈치나 보고 자괴감에 힘들었을 때요. 재능도 없는 것 같고… 무기력하고….”

    “흠….”

    “그래서, 준비했던 거 다 버리고 애들한테 얘기해 줬어요.”

    지훈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 문학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호오.

    그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가.

    보통 ‘문학을 한다’하고 하면 재능이나 천재성을 떠올리니까.

    오히려 지훈처럼 ‘노력형 문학가’의 이야기야말로… 평범한 작가 지망생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가 어떻게 용기를 얻었는지, 죽도록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어떻게 포기하지 않았는지… 그런 얘기만 실컷 했어요. 결국 성실함이 중요하다는 뻔한 얘기였지만요.”

    “애들이 좋아했겠네. 가능성을 보여 줬으니.”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 끝나도 박수도 받고, 어떤 학생들은 따로 질문도 했어요. 저랑 비슷한 고민을 했던 애들이 많더라고요. 자기가 문학을 계속해도 좋은 것인지, 평론가의 삶은 어떤지….”

    “훌륭하네. 강의 주제도 감각적으로 잘 찾았고. 넌 교수 체질인가 봐.”

    “….”

    “진로 고민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네.”

    넌 좋은 교수가 될 거다, 송지훈.

    “형.”

    “….”

    “앞으로 절 카리스마 송이라고 부르십시오.”

    “징그럽다, 인마.”

    나는 휴대폰을 줘 버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기 전에 흘긋 녀석을 봤는데, 아직도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히죽대고 있었다.

    그렇게나 준비를 많이 하더니, 저렇게 훌륭한 결과를 냈다.

    ‘카리스마’가 먹혔다는 건 좀 충격적이지만.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이 일을 바로 카톡으로 금홍에게 일러바쳤다.

    ― ㅋㅋㅋㅋㅋ카리스마 송이요?

    ― 네. 웃기죠?

    ― 세상에… 지훈 샘과 카리스마라니.

    ― 피터 한 교수님께도 전해 주세요. 카리스마론이 먹힌 것 같다고.

    ― ㅋㅋㅋㅋ‘카리스마 송’ 얘기하면 되게 싫어하실 것 같은데요.

    ― 그러니까 얘기하라는 거죠.

    이렇게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나는 금홍에게 슬쩍 이렇게 말했다.

    ― 쉴 만큼 쉬었으니 3부에 들어가려고요.

    ― 오, 드디어 시작인가요?

    ― 네. 구조도 좀 바뀔 거예요. 시간을 역순으로 가 보는 거죠.

    금홍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시간을 역순으로 간다고 했으니,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아마도 질문을 고르는 거겠지.

    금홍이 궁금해 한다면 전개를 말해 줄 수도 있었다.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도 그게 좋을 테고.

    하지만 금홍은 이렇게 말했다.

    ― 기대하고 있을게요, 독자로서.

    나는 그 답을 보고 씩 웃었다.

    금홍이 궁금증을 참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팀 이상’의 회의는 내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단순히 평론가와 번역가를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첫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기도 하니까.

    금홍은 ‘첫 독자’의 감상을 위해… 궁금증을 참은 거다.

    ― 그럼 기대해 주세요.

    나는 그렇게 답장을 했다.

    그리고 칠판 앞으로 가서 섰다.

    남아 있는 3분의 1의 공간.

    나는 보드마카 뚜껑을 열고, 보드 맨 위에 이렇게 적었다.

    ‘죽음’.

    참, 씁쓸한 단어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숙명이기도 하지.

    저녁 아홉 시.

    글을 쓰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워드 프로그램을 열고, 새 창을 띄웠다.

    ‘3부’라는 글자를 쓰자 왠지 소름이 돋았다.

    …<지팡이>의 여정에 끝이 보이는구나.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첫 문장을 적었다.

    ― 하융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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