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170화 (170/204)

170회

“작가가 무슨 연예인입니까?!”

프레스센터를 가르는 고함.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자들마저도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으나, 워낙 사람이 많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없었다.

지훈이 얼른 내게 다가왔다.

“형, 상대할 것 없어요. 일단 가시죠.”

지훈의 말이 맞았다.

심지어 다른 기자들조차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니.

아마 저 말을 한 작자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꽉 막힌 생각을 갖고 있겠지.

그리고 그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는, 한계와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못난 질투심이 있을 테고.

참, 뻔하다.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낄 정도로.

하지만 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발끈했거나 변명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갑자기, <지팡이>의 하융이 떠올라서 그랬다.

하융은 기행과 작품으로 문단의 스타가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괴짜 루키’ 정도일까.

20세기 초반 작가라면… 아마 저것과 똑같은 말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네가 작가냐, 딴따라냐.’

와 같은.

그래서 나는 말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하융을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작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작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가장 작가답다고 생각합니다만.”

“….”

“또한, 제가 연예인 같아 보이는 건, 방금 발언하신 기자님의 공로 역시 크지 않겠습니까.”

가십을 찾아다니면서, 튀어나온 돌은 보기 싫어하는 모순이라니.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기자들은 이 ‘이벤트’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타이핑을 했다.

누군지도 모를 기자의 질문은 참 무례했지만, 아주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기자에게 기삿거리를 던져 줬으니.

또, 나 역시 하융의 마음을 좀 더 알 것 같고.

* * *

기자회견 이후, 나는 집필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일정은 딱 일주일.

오가는 시간을 제하면 사박 오일 정도였다.

뭐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집필에 집중할 순 없을 테니까.

최대한 비축분을 많이 쌓아 두고 갈 생각이었다.

오늘도 나는 칠판 앞에 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칠판에는 ‘스승의 죽음’과 ‘기행’ 그리고… ‘스타 되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하융은 폭발적인 속도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스승의 죽음에 대한 회피이자, 넘쳐 나는 분노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

그건 바로 원고지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이 연이은 성공을 거둔다.

본래 하융의 유년과 감각은 남달랐기 때문에, 그의 문학관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조국도 부모도 없는 인간.

하융의 작품 속에서 그런 인간은 수없이 탄생했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인들의 공허한 마음을 사로잡았고, 새로운 미학에 목말랐던 일본인들의 갈증을 채웠다.

하지만 기존 문단은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그를 받아들이려 했다.

불세출의 천재라든가, 조선 문학의 새로운 등불이라든가.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서 그를 칭송했다.

물론 목적이 다분한 칭송이었다.

당시 문단은 두 패로 나뉘어 있었다.

일제에 저항하는 문학을 추구하는 파와.

일제에 협력하여 안전하게 문학을 하는 파.

그 두 패는 서로 하융을 가지려 했다.

문단의 천재 루키라 불리는 하융을 제 패에 넣으면, 그들 패거리의 힘도 강해질 테니.

하지만 하융은 두 패를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그저 자신만의 문학을 계속했다.

그 어떤 출판사도 그의 글을 실어 주지 않으려 해도, 괜찮았다.

책이란 돈만 있으면 찍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융은 일종의 ‘독립 출판’을 했고, 세상에 나온 하융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밖에서 보면 마치, 하융이 조선 문단의 시스템을 바꾸려는 것 같았다.

정작 하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지만.

문단의 원로들은 하융이 두려웠다.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

그것은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하융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다.

아니, 사실 그 어떤 의도도 없었다는 게 더 맞겠다.

하융이 관심 있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의 작품 세계였다.

마치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글을 쏟아부어도 채울 수 없는 공허.

그것이 하융이 글을 쓰는 동력이었다.

문단은 하융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융의 작품이 연극이 되자, 그들은 하융이 연극판 딴따라들과 어울린다 욕했다.

하융의 작품을 여성들이 좋아하자, 그들은 하융이 못 배운 부녀자들이나 좋아하는 글을 쓴다고 욕했다.

하융의 작품이 일본에서도 인정을 받자, 그들은 하융을 매국노라고 욕했다.

하융은 점점 고립된 섬이 되었다.

혼자 높게 우뚝 솟은 섬.

하융은 놀고 싶을 때마다 기생과 배우들과 어울렸다.

조선 문단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젊은 작가.

그런 작가가 천한 기생과 배우와 어울린다는 것.

그것은 하융의 ‘기인’ 이미지를 더 고착화했다.

하융은 매일 아침 눈을 떠 글을 썼다.

낮에는 글에 취했고.

밤에는 술에 취했다.

그런 시절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남몰래 점점 커지는 공허를 끌어안고.

글은 술술 나왔다.

특히 하융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그것의 정체가 ‘두려움’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이야기는 순항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지팡이>를 쓰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지훈이 들어왔다.

“형. 금홍 샘 왔는데요?”

“아, 벌써?”

“벌써는요. 제시간에 왔는데요.”

나는 시계를 봤다.

시간은 여섯 시 십 분.

금홍이 오기로 약속한 시간은 여섯 시.

집중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은 이만할까 해서 원고 파일을 저장했다.

작업실 밖으로 나가니 금홍이 와 있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거실 상에 저녁을 부려 놓는 중이었다.

“왔어요?”

“아, 집필 끝나셨어요?”

금홍이 환하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웃음이 절로 난다.

“뭘 또 그렇게 사 왔어요.”

“마침 저녁 시간이라. 제가 먹고 싶어서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금홍이 고른 음식은, 죄다 지훈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오늘은 ‘팀 이상’ 회의가 있는 날은 아니다.

다만, 곧 있을 미국행의 계획을 세우는 날이다.

일정을 잘 맞추면, 여행을 할 시간이 날지도 모르니.

그럼 일단은, 식사부터.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많이 드세요.”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 스케줄 조정에 관한 것이었다.

금홍은 수많은 과제를 미리 제출해야 했고, 지훈도 청탁 원고를 빠르게 해치우는 중이었다.

나도 집필에 박차를 가하는 걸 보면… 피차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다들 고생이 많네요. 미안하게.”

내가 말하자 금홍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미국 안 가봐서 벌써부터 설레요. 샘 덕에 좋은 경험 하네요.”

“저도요, 형.”

“그런데 지훈 샘은 가서 뭐 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금홍의 질문엔 악의가 없었다.

그냥 미국에서의 지훈의 역할이 궁금했던 거겠지.

하지만 지훈의 입장에선… 좀 곤란했을지도.

“…저 할 일 엄청 많거든요.”

“아, 작업할 때 같이 계시는 거구나.”

“그것도 있고, 숙소 문제도 있고, 아무튼 할 거 굉장히 많아요. 또 알아요? 거기서 새로운 계약이 있을지? 그리고 또 유사시엔 제가 움직여야죠.”

누가 뭐라고 했냐.

지훈은 횡설수설하며 주절거렸다.

정작 금홍은 별 대수롭지 않게 듣는 것 같았지만.

“혜경 샘, 사박 오일이면… 편집 회의는 며칠에 걸쳐서 해요?”

“정해진 건 이틀 정도예요. 하루는 같이 영상을 보고, 하루는 의견 나누고. 하지만 만약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사박 오일 꼬박 일할지도 모르죠.”

“헐. 빡세네요, 형.”

“빨리 끝나길 바라야지, 뭐.”

“그래도….”

금홍이 말했다.

“저희끼리 좋은 곳에서 저녁 식사 한 끼 할 시간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만히 웃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녀의 말속의 ‘저희’란, 우리 셋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둘을 말하는 걸까.

어느 편이건 나쁘지 않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후자 쪽을 추진해 봐야겠다.

“아무튼 바쁜 일정이 될 게 분명해요.”

난 그들에게 말했다.

“실수하지 말고 잘하고 오자고요. 지훈이 너도 너무 놀 생각만 하지 말고.”

“…놀다뇨. 저 바쁘다니까요.”

그러기엔 벌써부터 얼굴에 흥분이 가득한데?

그렇게 가벼운 일정 회의 겸 식사가 끝난 후.

지훈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뒷정리를 하겠다고 나섰다.

자길 두고 갈까 봐 불안하긴 한지, 요즘 지훈은 퍽 말을 잘 듣는다.

“그럼 난 커피라도 사 올게. 금홍 샘도 같이 갈래요?”

내가 이렇게 쿵, 하고 던지면.

“소화도 시킬 겸, 그러죠.”

금홍이 짝, 하고 받는다.

물론 이럴 때마다 지훈에게 괜한 죄책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는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주위에 기자가 없는 걸 확인한 후, 자연스레 손도 잡고 걸었다.

애들도 아니고, 이 정도야.

카페는 별로 멀지 않아서, 좀 천천히 걸었다.

밤바람이 시원하고 좋았다.

“혜경 샘, 그런데….”

“네?”

“음… 엊그제 기자회견 하신 거 기사 봤거든요.”

“아, 그랬어요?”

“네.”

금홍은 좀 주저주저했다.

왜 이러지? 뭐 할 말 있나?

싶어서 멀뚱히 바라보는데….

“기분, 괜찮으세요?”

“무슨 기분이요?”

“기자 한 분이 되게 무례한 질문을 했잖아요.”

아하.

난 이제야 금홍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저보고 작가가 연예인이냐고 했던 거요?”

“네. 음… 저라면 마음에 담아 둘 것 같아서요.”

하긴, 사람이라면 그렇겠지.

나도 기분이 좋았다면 거짓말이고.

다만 나는….

“저도 그런 말들 때문에 기자회견 같은 거 싫어하긴 해요. 그런데 그런 말들이… 마음에 남아 본 적은 없던 것 같아요.”

“…그럴 수가 있어요?”

금홍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듯 말했다.

그녀는 감성이 섬세한 편이라, 아마 상처도 잘 받을 것이다.

이런 내가 신기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쌓인 감정이 있으면… 저는 결국 다 글로 나오더라고요. 엊그제 들었던 그 말은, 결국 하융의 삶으로 어떻게든 표현될 거고요.”

한 마디로, 해소할 구멍이 있단 뜻이었다.

“그런 자극은… 그래요, 좀 짜증 나긴 하지만 제 글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해요. 겉으로 보기엔 저급한 불만이어도 그 안의 심리를 파헤쳐 보면… 생각보다 그럴듯한 이유가 나오거든요. 저는 그런 게 바로 인간의 진짜 심리라고 생각해요.”

그제야 금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란… 힘들어 보여도 좋은 직업 같아요.”

“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아, 물론 이미 다시 태어났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연예인이다 뭐다 욕하지만, 정작 저는 다른 직업은 상상해 본 적 없어요.”

금홍이 배시시 웃었다.

“그런 뚝심이라고 해야 하나, 좋은 것 같아요. 닮고 싶어요.”

“금홍 샘도 뚝심 있어요. 저랑 차이가 있다면, 주위에서 시비 거는 사람이 없다 뿐이지.”

금홍이 그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웃곤 한다.

난 각 잡고 그녀를 웃겨 보려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그녀의 웃음 코드가 특이한 걸지도?

뭐, 아무튼 웃으니 보기 좋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금홍의 손을 힘을 줘서 잡았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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