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파리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장 스테판과 파리 19지구로 향했다.
도착지는 19지구의 지역 문화센터.
장 스테판은 내 모든 일정의 통역을 맡았다.
그의 상관 에바 편집위원의 배려였다.
문화센터는 19지구에서도 외곽에 있었다.
장 스테판이 운전하는 차 안.
창밖의 풍경은 점점 황량해져 갔다.
‘파리’ 같지 않은 곳이었다.
낭만적인 분위기와 고풍스러운 건물도 전혀 없었다.
무미건조한 시멘트 건물 사이로, 아랍인들과 흑인들이 보였다.
“색다른 분위기의 동네네요.”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니까요. 파리 중심에 사는 토박이들은 절대 안 오는 곳이죠. 위험하니까요.”
파리 토박이에게도 위험하다라.
그럼 동양인에겐 ‘위협적인’ 곳이겠군.
차는 문화센터 앞에 도착했다.
아스팔트 공사가 한창이라, 독한 타르 냄새가 풍겨 왔다.
파리와 아스팔트라니.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문화센터 관장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장 스테판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를 리브레 클럽 행사장으로 안내했다.
장 스테판은 행사장 유리문 앞에서 말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리브레 클럽은 전부 영상 녹화를 할 거예요. 시민들한테도 동의를 받았고요.”
“자료로 쓰이는 건가요?”
“아뇨. 윗선 보고용이죠. 리브레는 그런 면에서 빡빡하거든요. 그럼… 준비 되셨어요?”
그는 내심 걱정되는 듯했다.
하긴, 작년에 바로 여기서 이탈리아 작가가 멱살을 잡고 싸웠다 했으니.
“그럼요. 들어가시죠.”
나는 유리문을 열었다.
방안엔 정적이 흘렀다.
열 쌍의 눈이 나를 보았다.
일곱 명의 아랍계 이민자들, 세 명의 학생들.
하나같이 생기라곤 찾을 수 없는 세상 따분한 얼굴들.
장 스테판은 프랑스어로 그들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간단한 내 소개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고정해 영상 녹화를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상입니다.”
장 스테판은 내 옆에 앉아서 바로 통역을 해 주었다.
“Bonjour. (안녕하세요.)”
성의없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그들 앞에는 프랑스판 <내외인>이 한 권씩 있었다.
클럽에 참여한 회원에게 무료로 주는 책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책 같은 것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 상태로 내가 <내외인>에 대해 말하는 거?
아무 의미가 없지.
“제가 어느 나라 작가인지, 이름은 무엇이고 무슨 글을 써 왔는지… 여러분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죠?”
“….”
“하지만 제겐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 이유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여쭤볼까 해요.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이유를.”
사람들이 저마다 시선을 교환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겠지.
작가가 자신들을 궁금해한다는 것이.
먼저, 그나마 편한 쪽부터 시작.
“학생들이 말해 보겠어요?”
“아, 음… 저희 셋은 친군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학교에서 봉사 활동 점수를 준다고 했어요.”
“좋네요. 봉사 활동 점수. 그 옆에 남자분은요?”
허름한 옷을 입은, 고단한 표정의 아랍계 남자.
그는 머뭇거렸다.
“괜찮아요. 편하게 말해 보세요.”
“저는… 죄송한 말이지만, 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음… 이민자들은 이런 지역 문화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취업에 좀 유리하거든요. 그래서 신청한 겁니다.”
“가산점을 주는 건가요?”
그 옆의 아랍계 여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산점제가 있을 만큼 좋은 회사들은 아니라서요. 그냥 고용주들이 ‘이 사람은 프랑스에 적응할 마음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장 스테판은 내 눈치를 보며 통역을 했다.
내가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은 상황이다.
“취업 시장에서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네요. 이 학생들은 학점을 위해서고요. 좋네요, 저마다의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내 말에 그들은 조금 당황했다.
이 ‘황당한 동양인 작가’는 뭐야? 하는 얼굴들.
“저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여기에 왔거든요.”
“그 목적이 뭔데요?”
아까의 아랍인 여자가 물었다.
그새 내게 흥미가 생긴 얼굴이었다.
나는 내 책 <내외인>을 들었다.
“책을 읽히는 거예요. 바로 여기서, 지금.”
정적이 감돌았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한 학생이 물었다.
“작가님이 책에 대해서 말해 주는 수업 아니었나요?”
“그런 걸 하기엔 이르죠. 여러분이 책을 읽어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묵묵부답.
단 한 명도 ‘읽어 왔는데요’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지.
뭐, 괜찮다.
지금부터 읽으면 되니까.
“단, 그냥 읽는 건 안 됩니다.”
“그럼요?”
“지금부터 소리를 내서 낭독을 할 거예요. 한 사람이 한 문단씩 맡아서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낭독이요?”
한 학생이 책을 잡으며 물었다.
“네. 학생, 학교에서 시를 낭독한 적 있죠? 그때처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시가 아닌데요… 한 시간 내내 읽기만 해요? 어차피 다 읽지도 못할 텐데.”
“네. 내내 읽기만 할 거예요.”
“그럼 작가님은 뭘 하시게요?”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한 여자가 물었다.
힘든 생활에 치인 듯,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썼죠.”
“어이가 없네요. 이 프로그램으로 돈도 받지 않나요?”
“받았죠. 서울에서 파리로 오는 비행기 삯의 십삼 분의 일정도.”
그녀는 할 말이 없다는 듯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순간 나는 첫 번째 낭독자를 정했다.
“그럼 Madame(마담, 부인)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읽어 주세요.”
“왜 저부터…!”
“어서요. 제1장, 첫 번째 줄. 저는 프랑스어라서 읽을 수 없네요. 부탁드릴게요.”
나는 어서 책을 집으라는 의미로 손짓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책을 들었다.
취업을 생각하면 그녀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외인>을 읽기 시작했다.
“남자1은 오늘 아침, 자살을 결심했다. 그것은 대단히 이성적인 결정이었다. 그의 출생, 현재의 삶의 조건, 다가올 미래. 모든 것을 따져 봐도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계속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비이성적인 결정이었다.”
첫 번째 문단이 끝났다.
나는 여자의 옆에 앉은 학생을 가리켰다.
“그다음 문단 읽어 주시죠.”
“아, 네….”
학생은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마음에 걸린 건 그녀의 여자친구였다. 그와 그녀가 결혼을 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것은 그들이 가난했기 때문이고, 가난을 이겨 낼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였다. 다만 그들은 서로의 불행과 불운을 연민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연민이라도 한 푼의 돈을 받고 팔 수 있었으면 했다.”
두 번째 문단이 끝났다.
사람들이 슬슬 자세를 고쳐 앉고 있었다.
책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미간은 좁혀졌다.
옆자리 학생이 자발적으로 책을 이어 읽었다.
“그들은 커피값이 저렴한 카페에서 만났다. 남자1은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난 말이지. 이 세상 밖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러자 여자친구가 말했다. ‘잘 지냈지?’ 두 사람은 계속 말을 했으나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남자1은 자신이 실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녀와 미래를 함께할 마음이 없었기에, 별로 미안하진 않았다. 다만 그녀의 반응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원망하는 듯한 말을 조금 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게 다였다. 그는 이제 정말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바로 잠들었다. 자살을 실행하는 일 역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
누군가가 낮게 경탄을 했다.
장 스테판이 내게 슬쩍 미소를 지어 보냈다.
내외인은 총 4장으로 되어 있었다.
1장과 3장은 남자1, 2장과 4장은 남자2의 시점이었다.
1장을 다 읽어 갈 무렵이었다.
어느새 한 시간 오 분이 지나 버렸다.
“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벌써요?”
첫 번째로 낭독을 했던 여자가 놀라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리브레 클럽은 한 시간이잖아요. 게다가 오 분을 넘겼는데요.”
“조금만 더 읽죠. 재밌는데요.”
“맞아요. 오랜만에 책을 읽어서 그런가, 계속 읽고 싶어요.”
“이 남자의 불쌍한 인생, 좀 공감돼요. 나중에 이 남자 잘 되는 거 맞죠?”
사람들이 차례로 말했다.
처음과 비교하면 훨씬 생기가 도는 눈빛이었다.
장 스테판이 내게 슬쩍 말했다.
“작가님. 1장까지는 읽죠. 두 페이지 남았잖아요.”
“좋아요. 그럼 거기까지만 함께 읽어 보죠. 아까, 학생까지 읽었죠? 그 옆의 신사분.”
“네. 이어 읽겠습니다. 남자1은 거리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 염분이 자신의 몸에 스미는 걸 느꼈다. 그 느낌은 가혹하고 싸구려 같은 삶의 조건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과 비슷했다. 점점 뜨거워지는 탕의 개구리처럼. 자신의 삶을 잠식해 가는, 그런 느낌. 남자1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감당할 불행의 총량이 10이고 평균이 5라면 자신은 10을 가진 것이라고.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옆의 남자가 바로 다음 문단을 이어 갔다.
그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책을 읽었다.
“‘젠장. 대체 어떤 놈이 불행을 하나도 안 가져간 거지?’ 거리의 사람들이 놀라 남자1을 바라봤다. 남자1은 ‘제정신’이라는, 자신이 가진 유일하게 제대로 된 삶의 조건마저 잃지 않기 위해 자리에서 도망을 쳤다.”
그들은 흥미진진하게 <내외인>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고단한 삶에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의 세계’.
그들은 그렇게 1장을 완독했다.
* * *
첫 번째 리브레 클럽이 끝났다.
장 스테판은 근처 빵집으로 날 데려갔다.
그는 조금 독특한 음식을 주문했다.
화덕에 구운 듯한 납작한 빵과 올리브 같은 향신료.
“아랍인들이 즐겨 먹는 누룩 없는 빵, 코브즈예요. 나름대로 별미죠. 크로아상은 혼자 드실 수 있지만, 이런 건 모르면 드셔 보기 힘드니까요.”
장 스테판은 이렇게 센스가 좋았다.
밀가루인 빵과 향신료였지만 꽤 맛있었다.
1차 강연이 잘 끝나서 그런가.
아랍인의 빵을 먹는 동양인.
주위 사람들이 흘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장 스테판은 그런 시선이 익숙한 듯했다.
“오늘 클럽 강연,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 <내외인>, 좋은 작품인 건 알았지만 낭독을 하니까 그 아우라가….”
그는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다.
“책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한테 괜히 어려운 강연을 하느니 책 자체를 읽게 하는 게 훨씬 유익할 테니까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음… 일단은 프랑스어가 워낙 아름답잖아요.”
“맞아요. 그거 하나만큼은 프랑스인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해요.”
“그래서 낭독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았죠.”
그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님, 강연 방향은 계속 이렇게 가죠. 홍보 효과도 없지 않을 것 같은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에요.”
“네?”
“방금 1차 강연에서 사람들이 <내외인>을 낭독한 거, 좀 이용하고 싶어서요.”
“이용이라면….”
“아까 문화센터에서 영상을 찍으셨죠?”
“네. 그랬죠. 그런 증빙 자료가 있어야 작가님 강연료도 나오니까요.”
“그거, 올릴 수 있는 모든 곳에 올렸으면 해요. 리브레 SNS는 물론… 가능하다면 홈페이지까지.”
코브즈를 올리브유에 찍고 있던 장 스테판이 멈칫했다.
그리고 홀린 듯 중얼거렸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를 좋아하니까.”
“맞아요. <내외인>을 ‘한국 문학’이 아닌 ‘프랑스어로 된 소설’로 다가가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