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사는 천재 작가-67화 (6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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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66)

다시 사는 천재 작가 66

가르강튀아(Gargantua)

15세기 프랑스 작가 프랑스와 라블레의 풍자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그 소설의 주인공이자 거인의 왕인 가르강튀아.

그가 태어나 처음 한 말은,

‘먹겠다’였다.

그는 평생 수없이 많은 음식과 술을 먹어댄다.

거인의 이름에 걸맞게, 블랙홀처럼.

1930년대, 도쿄의 서점.

나는 그곳에서 ‘가르강튀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축제를 여는,

한 마디로 ‘문학적이지 않은’ 이야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문학적’이라는 말이야말로 편견이라고.

오히려 ‘문학’이야말로 뭐든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라고.

이 기억이 불현 듯 든 이유.

나는 지금에서야 내 내면이 ‘가르강튀아’와 닮았음을 깨달았다.

모든 ‘글’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뱉어내는 그 욕구.

1930년대의 내 내면은 황폐 그 자체였다.

삶을 쥐어 짜내어 겨우겨우 글을 쓰던 사막.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거대하고 기름진 입이 내 안에서 벌름거리고 있다.

나는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펜부터 들었다.

그리고 백지에 ‘가르강튀아’라고 적었다.

나 ‘이상’은 끊임없이 글을 먹는 입이다.

나 ‘이상’은 끊임없이 글을 토해내는 입이다.

나 ‘이상’의 안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글들이 뒤얽혀 아우성치고 있다.

나 ‘이상’의 입은 이렇게도 크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시를 써내려갔다.

누구에게 떠밀리는 것처럼 빠르게.

땀이 얼마나 나는지, 가끔은 손이 미끄러졌다.

그럴 때면 티슈를 손에 감고 펜을 잡았다.

그리고 자정이 될 무렵, 마지막 시가 완성됐다.

삼각형의 마지막 꼭짓점.

세 번째 시 <입>

마치 누군가가 쉼 없이 주절대는 듯한 산문 시.

여러 번 반복되어 리듬감을 살리는 ‘먹음’이라는 단어.

시의 도입부는 ‘황폐’의 이미지지만,

마지막에는 ‘풍요’의 이미지로 바뀌는 흐름.

...마음에 든다.

더 지체할 것도 없다.

두 개의 시를 오진우 평론가에게 보내자.

지금, 당장.

노트북을 켜고 메일창을 열었다.

그리고 두 개의 시를 옮겨 적은 후, 이렇게 덧붙였다.

-약속대로 세 개의 시가 모였으니 해석은 평론가님에게 맡기는 바입니다.

자유롭게 비평해주시길.

메일을 보내고 나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어댔다.

목적지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말처럼.

“후우....”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식사를 걸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내 안을 모두 긁어 털어낸 기분이었다.

전력질주.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전생에도 시를 쓸 때면 이렇게 전력질주를 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허무함에 빠졌지.

과연 이번 생에... 내 시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대로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오후,

나는 간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들리는 골목의 카페.

수플레 팬케이크와 커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종이와 펜은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머리를 식힐 때니까.

그때였다.

달각-

테이블에 조각 케이크 하나가 올라왔다.

“오늘은 글을 안 쓰시네요?”

매일 커피를 리필해주던 종업원이었다.

“이상 작가님이시죠? 한국의.”

그가 말을 거니, 저쪽이 소란스러웠다.

카운터 쪽에서 종업원들이 술렁대고 있었다.

“매일 오시는데 글을 쓰시는 것 같아서 아는 체를 못 했거든요. 케이크는 서비스입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서비스.

저들이 날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눈치를 못 챘는데.

나는 엉겁결에 케이크를 받고 꾸벅 인사했다.

“글은 다 쓰신 건가요?”

“네, 덕분에요. 케이크, 잘 먹겠습니다.”

“괜찮으시면 가시기 전에 싸인 한 장 부탁드리겠습니다. 작가님의 책이 비치되어 있거든요.”

“그럼요. 물론이죠.”

그는 친절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더는 내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물러갔다.

나는 그제야 카페 한쪽의 책장을 봤다.

카페 치고 책이 굉장히 많았다.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달콤하게 입 안에서 퍼지는 생크림 케이크.

시를 쓰느라 다 갉아낸 내 속을 기분 좋게 채우는 느낌.

일본에서의 일정은 이제 이틀이 남았다.

남은 건 도마크 출판사의 결정뿐이다.

우웅- 우웅-

마침 미쯔하루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바로 받았다.

“미쯔하루 편집장님.”

-작가님, 결정됐습니다. 방금 회의가 끝났습니다.

그는 살짝 들떠 있었다.

휴대폰 너머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아직 회의실인가?

-<내외인>으로 결정됐습니다. 바로 도마크 쪽으로 오시죠. 이젠 계약서를 쓰셔야겠습니다.

“앗, 그렇습니까?”

나는 얼른 짐을 챙겼다.

그때, 미쯔하루 편집장이 덧붙였다.

-한 가지 작은 조건이 있긴 합니다만.

***

나는 바로 도마크 출판사로 갔다.

제1 응접실.

미쯔하루 편집장과 나는 지금껏 나눈 것 중에 가장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편집장님. 설득을 해주셨군요.”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 제안이 무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반대하는 인사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해외 출판사에 소개하는 책들이 좀 많은 게 아니니, 전체적인 회의 자체가 늦어져서 확답을 이제야 드리는 것뿐입니다. 말씀을 드리니 저도 속이 시원하군요.”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두 개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나는 한국어 계약서를 사진 찍어 지훈에게 보냈다.

대기를 하고 있던 지훈이 바로 톡을 확인했다.

“제 매니저가 계약서를 볼 동안 좀 기다려주시지요.”

“그럼요. 아 그동안 아까 말씀드렸던 ‘조건’ 이야기를 하면 되겠군요.”

“단편 하나를 써 달라, 이거지요?”

“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도마크에서는 올해 도마크에서 좋은 성과를 내신 작가님들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소설집을 낼 예정입니다. 그 중에 이상 작가님을 모시게 되었고요. 외국 작가 중에서는, 유일하십니다.”

그는 작품집을 낼 10명의 작가 이름을 죽 말해줬다.

그 중엔 히루키도 있었다.

“뭐,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내게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다만 좀 씁쓸하긴 했다.

여러 작가들과 한 권의 책을 묶는 것.

한국에서도 해본 적 없는 프로젝트였다.

이런 건 한국 작가들과도 함께 해보고 싶은데...

“아, 그리고 이거, 선물입니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품에서 기다란 상자를 하나 꺼냈다.

검은 상자와, 케이스에 박힌 눈 덮인 상 정상의 문양.

“이건...”

“몽블랑 만년필입니다. 제1 응접실에 오시는 작가분들께 특별히 드리는 선물이지요.”

“매번 이런 걸 주시면 도마크가 남아나질 않겠는데요?”

그는 농담 말라는 식으로 웃었다.

이 만년필을 받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도마크가 나를 최고의 고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앞으로의 책 계약도 꼭 저희와 해주십사-하는 마음으로 담은 선물이랄까요. 하하하!”

그는 노골적으로, 그러나 밉지 않게 속내를 드러냈다.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오늘은 선물을 많이 받는 날인가 봅니다. 아까 카페에선 케이크를 받았는데요.”

“아, 작가님께서 묵으시는 이 동네 자체가 출판사 밀집 지역이니까요. 분위기 상 이 동네 사람들은 작가들을 많이 알아봅니다. 작가님도 아주 인기가 좋죠.”

어쩐지.

카페들이 하나같이 책 읽기 좋게 생겼더라.

이윽고 지훈의 답장이 돌아왔다.

지훈은 확인해야 할 사항을 몇 군데 짚어줬다.

미쯔하루 편집장은 그 사항들에 대해 성실히 답했다.

결과적으로, 계약서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럼 이제 싸인을... 만년필엔 이미 잉크가 채워져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만년필엔 푸른 잉크가 가득했다.

여러 군데에 싸인을 하고, 각자 계약서를 나눠가졌다.

“번역은 언제쯤 다 될까요?”

“안 그래도 연락을 해 보니 초고는 다 뽑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주 동안 퇴고를 거친 후, 바로 프랑스 출판사 ‘리브레’로 보내겠습니다. 까다로운 곳인 만큼, 권위 있는 출판사입니다.”

리브레LIVRE

짧은 불어 실력으로 미루어보아, ‘책’이라는 뜻이었다.

직관적인 이름이 그 출판사의 전통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 그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한 건의 소개 계약과 두 개의 시 집필.

그리고 단편 소설 계약.

두 번째 일본행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

서울.

오진우 평론가의 자취방.

지잉- 지잉- 지잉-

잉크젯 복합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진우 평론가는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상의 시가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이상은 시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자유롭게 비평해 달라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단 한 마디의 방어도 없이.

그렇게 뽑혀 나온 두 장의 시.

오진우 평론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시라기보다는....”

기호로 만든 그림이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이미지였다.

먼저 <무한 설계도>

-001001011∎00101010100 10001 00100001101...

0과 1로 가득 찬 시였다.

가끔 정체 모를 기호들이 섞여 들어가 있었고,

어떤 부분은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줄은 모두 말줄임표(···)

‘뭘 설계했다는 거지? 일단은... 0과 1이라. 디지털 언어에 기반한 건가?’

오진우 평론가는 <무한 설계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나. 이건 마치...’

그의 머릿속에 한 이미지가 스쳐 갔다.

‘거대한 스마트폰 화면 같군.’

오진우 평론가는 다음 시를 봤다.

<입>

“흠...”

읽고 있긴 하지만, 의미를 모를 말들이었다.

-나는 누구냐 나는 너를 먹으러 왔으나 나를 두려워함은 먹는 너의 먹음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나의 먹음은...

이렇게 이어지는 시는 A4용지의 끝까지 닿아 있었다.

‘먹는다는 행위에 중심을 둔 건 확실하다. ‘나’라는 존재와 ‘너’라는 존재가 있고. 그런데 그게 ‘먹는다’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아리송했다.

오진우 평론가는 다소 오만한 사람이었다.

시만이 모든 문학의 정수고,

가장 최상위 수준의 언어 예술이라 여기는.

시를 해석해내는 일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어렵네.”

이번만큼은 쉽지 않다.

그는 <은은>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등단도 안 한 작가가 이런 전위적 형식을 구현하다니.

그것을 발견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무한 설계도>와 <입>은 차원이 달랐다.

<은은>은 적어도 ‘연애시’라는 틀 안에서 전위적 요소를 가미했다.

그에 비해 이 두 개의 시는...

‘‘제대로’ 쓴 거구나. <은은>은 장난이었어.’

오진우 평론가의 몸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는 시.

그러나 느낄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를.

‘정신 차리자.’

그는 양 손으로 자신의 뺨을 쳤다.

그리고 예전에 뽑아뒀던 <은은>을 가져왔다.

그리고 세 장의 종이를 나란히 늘어놓았다.

세 개의 시.

이상은 이 세 개의 시로 비평을 해달라고 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하나의 시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보자.’

그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세 개의 시를 한꺼번에 내려다보았다.

평범한 연애시 속 비대칭성.

숫자라는 기호의 연쇄.

‘먹음’의 변주.

‘이 안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거지?’

오진우 평론가는 기어이 손톱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뭔가에 강하게 집중할 때의 그의 습관이었다.

여유롭게 미소를 띠던 이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한 그 얼굴.

이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역시 계속 시를 쓸 것 같았다.

‘쉬운 것부터 생각하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입>의 ‘가르강튀아’.’

가르강튀아 자체는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문제는 가르강튀아로 ‘무엇을’ 표현하려는 거냐- 하는 문제.

‘두 번째는... 디지털의 기호. 무한하게 확장되어가는 이미지 그 자체.’

그렇다면 마지막 하나.

‘<은은>이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오진우 평론가는 <은은>의 종이를 들어 올렸다.

“흐음...”

‘아무리 봐도 연결점은...’

그는 무심코 책상에 종이를 내려놨다.

정확히는 나머지 두 종이의 위편에.

그리고 그 순간,

“어?”

그의 머릿속에 뭔가가 들어와 박혔다.

“설마...”

그는 세 개의 종이 사이를 조금씩 벌렸다.

위에 <은은>이, 아래에 <무한 설계도>와 <입>이 오도록.

오진우 평론가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삼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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