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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66화 (6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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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 (65)

    다시 사는 천재 작가 65

    나흘 후.

    일본대 안 별벅스.

    외국에서 시간 죽이기엔 프렌차이즈가 제격이지.

    강연까지는 앞으로 두 시간.

    책상 위엔 어젯밤 완성한 시가 있다.

    지금도 내내 바라보고 있는 나의 두 번째 시.

    제목, <무한 설계도>

    그 시는 이렇게 시작했다.

    -001001 010101000110 110010100(···)

    0과 1가 정신없이 늘어놓은 배열.

    간간히 벌려놓은 빈 공간.

    전체적으로 보면 마치 숫자의 빌딩처럼 서 있는 모양새.

    이 시는 숫자이자 언어이며, 그림이다.

    시를 쓰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시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하지만 역시 물러서지 않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듯,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작가의 역할이다.

    이제 삼각형의 두 꼭짓점이 완성됐다.

    나머지 하나.

    오른쪽 아래 꼭짓점이 남았다.

    왼편 아래 꼭짓점이 세계의 이미지라면,

    오른편 아래 꼭짓점은 내 내면의 이미지.

    내면.

    나는 그 앞에서 또 한참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나’의 마음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가.

    알 듯하면서도, 확실한 이미지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삼각형을 가만히 노려보던 참이었다.

    우웅-우웅-

    전화가 걸려왔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이름이 떠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바로 전화를 받았다.

    “히루키 작가님!”

    -이상 작가님. 격조했습니다. 일본에 오셨다는 걸 듣긴 했습니다만, 이제 연락을 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집필 중이라 들었는데요, 완성을 하셨습니까?”

    -뭐, 대강은요. 최종 퇴고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부지런하시네요. 또 소설집을 내시다니.”

    -이상 작가님만 할까요. 아, 미쯔하루 편집장님께 듣기론 일본대에서 강연을 하신다면서요?

    “아, 예. 갑자기 그렇게 됐습니다.”

    -언제 하시나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세 시 반.

    “한 시간 반 남았군요.”

    -네? 오늘이었습니까? 하마터면 늦을 뻔했군요.

    늦을 뻔했다?

    혹시 강연에 오려고 하나?

    -일본대에서 강연을 하신다기에, 꼭 해드릴 말씀이 있었거든요.

    “꼭 해야 할 말이라면...?”

    -음... 아실까 모르겠지만, 일본대의 분위기는 뭐랄까요. 보수적이라고 해야 하나...

    일본 자체가 그리 진보적인 나라는 아닌데.

    그 안에서도 보수적인 편이라.

    ‘외국인’인 내겐 그리 유리한 분위기는 아니려나.

    -아, 물론 이상 작가님을 좋아하긴 할 겁니다. 전통적인 인문대 학풍이 강해서 작가들을 존중하거든요. 다만 좀 난해한 질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궁금하군요. 난해한 질문이라. 예컨대 어떤 겁니까?”

    돌아오는 히루키의 대답은 기가 막힌 것이었다.

    -제가 작년에 강연을 했을 땐, ‘히루키 작가는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자꾸 드러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죠.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여러모로 욕보셨군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내보이는 건 작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걸 딴지 걸 줄이야.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아무튼 유사시를 대비하여, 당황하지 말란 뜻으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물론 별다른 일이 없을 확률이 더 크긴 합니다만.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 같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시간이 되는대로 한 번 뵙지요.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통화를 끝냈다.

    그런 질문을 하는 학풍이라...

    오늘의 강연 주제는 ‘장편소설을 쓰는 법’과 <내외인>의 사례였다.

    하지만 히루키의 전화를 받고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

    일본대 인문대 특강 전용 대강당.

    강연 시작 10분 전.

    학생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강의실.

    일본은 역시 일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중엔 <다시 사는 일>이나 <내외인>을 들고 온 학생들도 있었다.

    “작가님, 준비가 다 되셨으면 강단에 오르셔도 됩니다.”

    강단 아래에서 상황을 살피던 내게 조교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올라가죠.”

    뚜벅뚜벅...

    이 큰 강당에 내 구둣발 소리만 울려댔다.

    “안녕하십니까, 일본대 학생 여러분. 저는 한국의 작가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귀가 쫑긋하는 게 느껴진다.

    아마 내 일본어 때문이겠지.

    짝짝짝짝짝...

    얌전한 박수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적막.

    “제가 이렇게 일본어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저는 여러분께 어디까지나 외국 작가입니다. 그렇죠?”

    학생들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방학 기간에 외국 작가의 강연을 보러 오신 분들이라면... 적어도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나아가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일 겁니다.”

    조금 더 큰 끄덕임.

    필기를 하려는 듯한 자세.

    나는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모든 문학은 사실 한 가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것이 일본의 것이건, 한국의 것이건, 서양의 것이건, 그 어느 나라의 것이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시선.

    슬슬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좋다.

    “그건 바로 ‘가면을 벗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술에서 추구하는 ‘새로움’이란 결국 이 ‘가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거거든요. 갑자기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해가 가십니까?”

    “가면....”

    학생들이 중얼거렸다.

    “소설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우리가 매일 보는 가족.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가족이 있죠. 지루한 아버지. 잔소리하는 어머니. 평범한 교육을 받고 자란 얌전한 형제. 하지만 어느 날, 어떤 우연한 계기로 그들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지갑 속에 정체모를 여인의 사진이 나오고, 어머니는 졸혼을 꿈꾸고 있고, 형제는 누군가를 죽일 준비를 합니다. ‘평범함’이라는 가면을 벗기니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이 가족의 새로운 ‘진실’이 보이는 거죠. 그리고 그 진실을 이야기로 푸는 것이, 바로 문학입니다.”

    학생들이 노트에 ‘진실’이란 단어가 적혀간다.

    어떤 학생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한다.

    “문학은 사는 이야기를 쓰는 거지만, 세상을 그대로 베끼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쓰는 거죠. 그리고 그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이 몰랐던 세상의 모습을 알게 함으로써... 세상의 질서는 뒤집어져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죠.”

    학생들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진실은 필연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보고 있던 편안한 가면을 찢어발기고 그 안의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하는 일이거든요. 작가란 그런 불편한 진실들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할 말이 많은 수업이었다.

    나는 현대 소설이 ‘가면을 벗기는 방식’을 보다 자세하게 덧붙였다.

    시간이 갈수록 수업은 열기를 띠었다.

    한국처럼 반응이 크진 않았지만, 다들 열심히 필기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업 시간이 딱 십 분 남았다.

    이쯤에서 질의응답을 받기로 했다.

    조용한 분위기에 비해 꽤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싸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애교스런 질문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해드리겠습니다. 또 다른 분?”

    “<내외인>에서는 어떤 가면을 찾을 수 있나요?”

    “남자1과 남자2가 가진 극명히 다른 삶의 조건들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 가면을 벗겨냅니다. 삶의 조건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가진 허무가... 저는 이 세상의 진실 중 하나라고 본 것입니다.”

    “오...”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들 대부분이 <내외인>을 보고 온 모양이었다.

    그 뒤로 여러 질문을 받았다.

    대부분 우호적이고, 학구열에 불타는 질문들이었다.

    별 탈 없이 수업을 끝내겠단 생각이 들었을 무렵.

    구석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이상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약간은 딱딱한 말투를 쓰는 남학생.

    “한국에서의 활동 역시 인상 깊게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어째서 글을 이렇게 잘 쓰시는 작가가 드라마를 쓰고 영화 시나리오에 참여하는지요.”

    “질문의 요지가 잘 파악되지 않는군요.”

    내가 되묻자 그는 멈칫했다.

    나는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히루키가 우려한 사태가 결국 일어날 거라는 걸.

    “저는 작가님의 팬으로서, 작가님이 한국 문단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대로 적응을 하셨더라면, 그런 ‘외부적 활동’은 안 하셔도 되셨을 텐데요.”

    강당의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내 작가 생활에 대한 훈계 아닌 훈계.

    화가 나기보다는, 흥미로웠다.

    “그 ‘적응’이란 무엇일까요, 학생?”

    “문단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지내며, 순수 문학가로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모나게 굴면서 문단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이겠죠?”

    그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라고 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맞는 말입니다. 인정을 받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죠. 떠구나 예술가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는지, 학생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작가가 인정을 받아야 할 곳은 문단이 아닌 독자입니다. 문단은 작가의 활동 배경에 불과하죠.”

    “....”

    “한국 문단의 사정에 대해서 여기선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작가라면 ‘모나게 구는’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겁니다. 가면을 깨어버리는 일 자체가, 편안한 질서를 해체하는 ‘모난 일’이거든요.”

    “그럼 앞으로도 그런 ‘외부적 활동’을-”

    “‘외부적 활동’이 아닙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저의 활동’이죠. 드라마를 쓰고, 시나리오를 쓰고, 또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글로 구현할 있는 모든 것을 할 생각입니다. 작가로서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모든 일 말입니다. 아마 평생을 다 해도 부족하겠죠. 그 갈증. 그것이야말로 작가로서의 최고의 축복이거든요.”

    그때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귀처럼 뭔가를 먹어대는 내 모습.

    내가 먹고 있는 건 수많은 글이었다.

    마치 블랙홀 같은 입.

    그 안으로 글들이 빨려 들어왔다가,

    또 폭풍처럼 글들을 뱉어냈다.

    강렬하고도 생생한 이미지.

    “...작가님?”

    조교가 살짝 날 불렀다.

    멍하게 있던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많은 학생들이 내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질문을 던진 학생에게 말했다.

    “방금 그 질문,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생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어정쩡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강연이 끝났다.

    이어서 싸인회 아닌 싸인회가 시작됐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내 책을 가져왔다.

    나는 그들의 책에 모두 싸인을 해주고,

    원하는 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강연을 완전히 마쳤다.

    마음이 조급했다.

    뛰어가듯 학교를 나가 택시를 잡았다.

    호텔에 돌아가자마자 시를 쓸 작정이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두 번째 시의 이미지.

    삼각형의 마지막 꼭짓점.

    “가르강튀아...”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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