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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50화 (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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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49) - 수정완료

다시 사는 천재 작가 49

“제가 교수님 밑에서 논문을 쓸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내 말에 이현강이 피식 웃는다.

“지도교수라도 바꾸게? 학계에서 그게 쉬울 것 같아?”

지도교수를 바꾸는 건 자살행위다.

불의의 사고로 지도교수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하면, 학생들의 연구 인생도 끝날 정도로.

다른 교수 밑에 가봤자 ‘업어 온 자식’ 취급을 당하니.

그러나 오늘 오희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확신했다.

이현강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싶은 마음?

제 아무리 명분뿐이라 해도, 추호에도 없다.

“제가 알아서 할 일이니 관심 거둬 주십시오. 안 그래도 처리 안 되는 제자들이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이현강이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교수를 바꾸는 게 가당키나 하겠냐는 얼굴.

그러거나 말거나.

인사를 꾸벅 하고 지훈과 발표실을 나왔다.

“형님, 지도교수 바꾸시게요?”

지훈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갑작스런 선언에 지훈도 당황한 모양이다.

“그... 저희 정미현 교수님도 좋으시긴 한데.”

이현강한테 연차로 밀린다.

차마 그 말까진 안 했지만.

“내 논문에 이현강 이름 올라가게 할 마음, 전혀 없어. 그리고 지도교수는...”

당연히 인수대에서 안 찾지.

“야. 김혜경.”

복도를 지나 계단에 도착했을 때였다.

오희라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날 기다린 건가?

벌게진 눈.

찢어버릴 듯한 시선.

어지간히 내 탓을 하고 있었군.

“너,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어? 너 이제 잘 나가잖아.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내 앞길을 막으니 속이 시원해!?”

목소리가 덜덜 떨리더니 기어이 울음을 터뜨린다.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다.

“그게 다예요?”

“아니! 네가 그렇게 잘났어? 그래서 이렇게 사람 무시하면서 남이 두 달 동안 피토하면서 쓴 글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거야? 너 왜 그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오희라가 소리를 꽥 질렀다.

이 편협함과 얄팍함.

남탓하기 좋아하는 피해의식까지.

이게 오희라의 바닥이다.

나는 지훈이에게 물었다.

“지훈아. 너 예비발표 준비하는 데에 얼마나 걸렸어?”

“주제 잡는 것부터 시작하면 세 달이요.”

“오 선배. 예비발표 하는 학생들도 세 달은 준비해요. 그런데 두 달 짜리 논문 가져와서 피토했다고 하면 듣는 사람이 서운하죠.”

“하아... 맞아요.”

지훈이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제가 선배를 괴롭힌다고요?”

기가 차다.

“잘 생각해보세요. 근거 없는 비난, 빈정거림, 인신공격까지. 그거 선배가 저한테 하셨던 거예요.”

더 정확히는 혜경에게.

“저는 그냥 해야 할 말을 안 참은 것뿐이에요. 가세요, 이제. 학교에서건 어디서건, 다시는 보지 맙시다.”

“가죠, 형님.”

“저녁이나 먹자.”

“넵.”

우리는 그렇게 오희라를 두고 계단을 걸어내려왔다.

등 뒤에서 오희라의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가, 오희라의 마지막이었다.

***

그 시각 교학팀 사무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사무실은 고요했다.

금홍은 발표용 마이크를 정리해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을 싸는 대신 컴퓨터를 켰다.

화면에 떠 있는 건 유료 강의 페이지.

‘고급 통번역 강의’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딴 후, 생각이 많아졌다.

1급은 2급 자격증 취득 2년 후에야 응시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실무를 배울 생각이었고.

2년이란 시간이 주어지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리스타... 좋긴 한데, 이게 내 능력의 전부인가?’

금홍은 현실주의자였다.

꿈 좇아 청춘을 낭비하는 일은 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번역에는 욕심이 생겼다.

홈페이지의 영어 번역본 조회수가 오를 때마다, 인정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저 학점을 받기 위해 공부했던 문학문장론.

이렇게도 써먹을 수 있다니.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아침마다 번역 학원을, 밤마다 인강을.

무리한 스케줄인 건 맞았다.

<거울, 인간> 번역이 난해해 며칠 밤을 새기도 했고.

금홍은 선택에 기로에 서 있었다.

번역에 더 파고드느냐, 현실과 타협하느냐.

그리고 달력에 적어 놓은 ‘대학원 면접 D-day’

‘... 붙는다고 해도... 버텨낼 수 있을까?’

금홍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민해 봤자 소용없어. 집중하자.’

금홍은 강의에 접속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영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내외인>의 초고를 반 정도 썼다.

남자1과 남자2가 한 인간이나 다를 바 없다는 암시가 서서히 나온다.

미묘하고 세밀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장면과 장면과의 이음새.

그것이 이 소설의 승패를 좌우한다.

행동, 말, 표정까지.

철저히 계산된 구성 아래에서 두 남자는 점점 생명력을 얻고 있다.

마침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신라문학의 이준환 편집위원이었다.

그는 신라문학의 플랫폼 ‘신-문학’이 다음 달 초엔 완성이 된다고 했다.

-급할 건 없습니다만, 가능하시면 다음 달 안에 원고를 올려주실 수 있나 해서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픈일에 올릴 수 있도록 해보죠.”

-정말입니까?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겠군요. 이상 작가!

신-문학의 ‘오픈발’을 받고 싶은 건 나 역시다.

<내외인>에 대한 내 애정은 컸다.

첫 장편소설이어서 그런지,

쓰기까지의 근심이 깊어서 그런지,

나의 뱃속까지 꺼내 보여서 그런지.

뭐랄까. ‘자식’ 같달까.

그래서 나는 이례적인 행동을 하나 했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많은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지만...

내 선택은 당연히 Y일보 서인희 기자였다.

문제는 내가 정말이지 바쁘다는 거다.

따로 시간을 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하는 수 없이 학교로 정소를 잡았다.

삼십 분 정도는 교학팀을 비울 수 있으니.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내가 예약한 공간은 학관의 4인용 단체실.

학생들이 밥을 먹거나 조모임을 하는 공간.

이곳에 들어온 서인희 기자는 난감한 얼굴이다.

“...죄송합니다. 기자님.”

“아, 아니에요. 작가님. 하하... 인기 좋으시네요.”

이곳이 통유리로 되어 있다는 건 생각 못 했다.

우리 주위를 학생들이 가득 둘러싸고 있었다.

서인희 기자가 사진을 찍으니, 웬걸.

학생들도 내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된 거 후딱 하고 끝내야겠네요, 기자님.”

“그러게요. 사람 더 몰리기 전에 얼른 여쭤볼게요.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서인희 기자가 녹음기를 켠다.

밖에서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인터뷰한다, 인터뷰’ 이런 식으로 떠드는 소리도.

“잘 지내고 있죠. 언제나. 생활이야 비슷해요.”

“에세이를 내신 후 쉬고 계신 건가요?”

“음... 아뇨. 소설을 쓰고 있어요.”

“어머! 빅뉴스네요. 얼른 여쭤보고 싶지만 일단 준비한 질문부터 드릴게요. 일본에서 <다시 사는 일>이 3쇄에 들어갔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생각보다 판매가 빨라서, 저도 놀라고 있어요. 에세이의 경우는 홈페이지에도 올라가 있는데 말이에요.”

“듣기론 에세이도 에세이지만, <거울, 인간>의 인기가 대단하다던데요?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이슈를 적절히 건드리면서도 미학적으로 표현해냈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평가는 평가일 뿐이니까요. 그런 건 비평가의 영역이죠. 독자분들께서 좋아해주시는 선에서, 저의 소임을 다했다고 봅니다.”

“작가로서의 소임인가요?”

“예술가의 소임이죠. 새로운 감각을 주는 것. 그게 즐거움이건 충격이건.”

“여전히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것 같아요.어떻게 하면 그렇게,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멋지게? 살 수 있을까요? 예술가가 되어야 하나요?”

“자기 확신이죠. 그리고 겁 내지 않는 거. 이 두 가지면 돼요.”

다시 태어나면 더더욱 좋고.

“저도 잊지 말아야겠어요. 자기 확신. 겁 안 내기.”

몇 가지 질문과 답이 오갔다.

인터뷰가 막바지로 달려갈 무렵, 그녀가 물었다.

“아까 쓰고 계신다는 소설,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이번에 준비하는 소설은... 장편이에요.”

“장편이요? 이상 작가님의 첫 장편이네요. 기대돼요. 어떤 내용인지 살짝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 남자의 이야기이도 하면서, 두 남자의 이야기기도 하죠.”

“감이 잘 안 잡히는데요. 조금만 더요.”

“읽어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하하....”

“한 가지만, 한 가지만 더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 작가님의 신작을 기다리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서인희 기자는 보란 듯 주위를 가리켰다.

어째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모여 있는 것 같다.

“음... 장면과 장면의 연결에 유의해서 봐 주세요. 우리의 삶은 인과잖아요. 원인과 결과. 그것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을지라도. 그 미묘한 연결성을 언어화하는 데에 주력했어요.”

“벌써부터 멋진 작품일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책은 여전히 내실 생각 없으신가요?”

“있습니다.”

“와! 의외인데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전 청탁을 거절한 거지, 출판을 거절한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에세이도 좀처럼 소식이 없어서요.”

“그건 소설 다음이에요. 한국의 첫 책은 꼭 소설로 내고 싶었거든요.”

서인희 기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의 팬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그럼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 할까요?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아. 중요한 말을 빼먹을 뻔했네요.”

“네? 어떤 건가요?”

“제 장편 소설은 두 군데서 판매가 될 거예요. 한 곳은 제 홈페이지, 한 곳은 신라문학의 신-문학.”

“...신...문학? 그게 뭔가요?”

“신라문학이 만든, 등단 작가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분명 그곳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장담해요.”

이 말을 하려고 인터뷰를 잡았던 거다.

내 소설의 홍보이자 신-문학의 홍보.

신라문학에게도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게 짧은 인터뷰가 끝난 후.

서인희 기자는 악수를 하고 단체실을 떠났다.

“나중엔 팬분들이 좀 적은 곳에서 봬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삼십 분이 지났다.

어서 가야겠다.

단체실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미적미적 길을 비켜주었다.

서인희 기자 말처럼 팬까진 아니고, 구경꾼들 같았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그들을 스쳐가려 하는데,

“자, 작가님!”

누가 내 앞에 뭔가를 들이밀었다.

뭐지? 싶어서 내려다봤다.

세상에.

일본판 <다시 사는 일>이다.

그 책을 내민 왜소한 남학생은 살짝 떨며 말했다.

“...싸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아, 예. 그럼요.”

나는 그 학생에게서 펜을 받았다.

오오오! 하고 주위 학생들이 더 몰려든다.

미치겠네, 이거.

책 첫 내지에 싸인을 하며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제 이름을 말하고, 자신도 문창과라고 했다.

“아. 후배셨구나. 그런데 이 책은 어디서 났어요?”

“그게, 일본에 있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그야말로 엄청나게 고마운 일이었다.

그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이 책 이상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되시길. 이상.

“일본어 읽을 줄 알아요?”

“아뇨.”

그럼 진짜 ‘소장’을 위해서 이걸 산 거야?

“...같은 학교에 있으니까... 언젠가 싸인을 받을 것 같은데, 한국판은 없으니 급하게 샀어요...”

그는 민망한 듯 웃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책’을 원하는 팬들이 이런 수고를 할 줄이야.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고 말했다.

“고마워요. 이번에는 꼭 한국어판으로 낼게요. 소설책.”

그날 저녁, SNS에는 그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책의 내 싸인과 메시지를 찍은 사진.

그리고 그 사진에 딸린 글은 나를 조금 난감하게 했다.

-갓이상ㅠㅠ 실물영접. 국제우편비 낼 가치가 있었다. 기다리자 한국팬들. 이상 작가님 곧 소설책 내실 거다.

...‘곧’이라곤 안 했는데.

책 발매, 생각보다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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