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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21화 (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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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20)

다시 사는 천재 작가 20

한국대 인문대학 지하 대강당.

2021학년 1학기 ‘문학창작 특강’이 열리는 곳.

200석이 넘는 자리엔 이미 학생이 가득 찼고 몇몇 학생들은 계단에 앉아 무릎에 노트를 펼쳤다.

국문과 학생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타 과 학생들까지 모두 모인 듯했다.

그들의 관심은 단 하나였다.

조인창 교수의 후임으로 강단에 서게 된 신인 작가.

이른 바 ‘문단의 슈퍼 루키’ 이상이었다.

하지만 슈퍼 루키 정도론 한국대 ‘문학창작 특강’을 맡을 자격으론 부족했다..

작품, 경력, 나이, 학벌, 때로는 성별까지도.

이 콧대 높은 학생들을 만족시켜야 할 요건은 빡빡했다.

더구나 전설적인 조인창 교수의 후임이라면 더더욱.

“너 이 수업 안 듣겠다며. 왜 들어왔어?”

이장훈이 옆자리의 김미소에게 물었다.

김미소는 한국대 국문과 박사 대학원생이자, 이번에 L일보에서 등단한 신인작가였다.

“조인창 교수님께서 안 계셔서 안 들으려고 했는데, 이상이란 사람 좀 특이하잖아. 그래서 구경 왔지.”

“어디 한 번 잘 하나 감시하려는 게 아니라?”

이장훈이 짓궂게 물었다.

신인 작가가 ‘문학창작 특강’을 맡아야 한다면, 사실 이상보다는 김미소 쪽이 훨씬 가능성이 컸다.

특히 학벌과 연줄 면에서.

그런데 인수대학교 학생인 이상이 수업을 맡다니.

김미소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다.

김미소가 이장훈의 등짝을 퍽 쳤다.

“아! 왜 때려!”

“이상한 대결구도 만들지 마.”

“이씨...난 아까워서 그렇지. 이왕 조 교수님 물러나신 거면 네가 그 자리 이으면 얼마나 좋아.”

“야. 우리 학교 쪽 내정자는 따로 있었어. 박 교수님 쪽 찬수 선배. 나는 택도 없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글쎄... 대체 어쩌다가 이상 작가가 이 강의를 맡게 됐을까?”

이장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잔뜩 벼르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하이에나 굴에 들어오시게 된 것 같은데?”

“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 작가의 글. 대단하긴 하지. 하지만 그 글만으로 이 강단에 선다고?’

내색은 안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을 느끼는 김미소였다.

그러나 학벌이나 학연이 더 낫다는 데서 오는 얄팍한 감정은 아니었다.

‘역시, 이상처럼 스타일리시한 글을 써야 주목을 받는 구나. 역시 내 글은 너무 낡은 거야...’

그것은 결국 김미소 자신의 문학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고민이 많을 만도 했다.

그녀는 등단 후 아직 단 한 번의 청탁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인문대 지하를 향해 달려갔다.

어제 한국대에 전화를 해서 대강당 위치를 확인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첫 날부터 지각할 뻔했다.

긴장은?

전혀 안 된다.

이 수업은 말 그대로 ‘특강’.

특강의 본질은 강사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는 거다.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고.

“이상 선생님!”

복도에서 날 기다리던 차한승 조교가 날 아는 체를 했다.

“빨리 오세요. 학생들은 다 와 있어요.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으니, 놀라진 마시고요.”

차 조교는 능숙하게 강당 뒤편으로 날 안내했다.

강단 천막 뒤에서 물로 목을 축이는 동안 차 조교가 마이크를 잡고 시간을 끌어주었다.

“아-아-. 지금부터 한국대학교 2021년도 1학기 문학창작 특강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학기부터 강사님이 바뀐 건 잘 알고 계시겠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환호도 야유도.

하지만 강단을 꿰뚫어보는 학생들의 시선만큼은 강렬하다.

“그럼 이번 학기 특강을 맡으신 이상 선생님을 모셔보겠습니다. 박수 주세요.”

짝짝...

힘 빠지는 박수 소리.

어디 한 번 떠들어봐라, 라는 듯.

그래, 한 번 떠들어주마.

나는 강단위로 올라갔다.

대강당엔 엄청난 침묵이 가라앉아 있었다.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저들끼리 무어라 숙덕거리고,

턱을 괸 채 비웃음을 짓고 있는.

듣던 대로 콧대들이 높다.

그들은 내가 너무 젊고,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인사는 생략한다.

“아- 아-.”

마이크 상태 양호.

“모두가 다 아는 말로 이 강의의 문을 열어볼까 합니다.”

강의는 시작되었다.

“현대적이어야 한다. 완벽하게.”

시선이 집중된다.

‘나 그거 알아’

수많은 눈들이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 10대에 쓴 시들로 세계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아르튀르 랭보의 말이죠.”

랭보는 스무 살 무렵에 시 쓰기를 그만뒀다.

하지만 그의 시는 불멸의 것으로 남았다.

천재의 작품이란 그런 법이다.

시간과 성별과 종교를 이긴다.

나의 작품들 역시 그러하듯.

“여러분이 생각하는 현대적인 것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다 다를 겁니다. 누군가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누군가는 현재 우리의 삶을 제대로 적시하는 것이, 누군가는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 현대적이겠지요.”

“....”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을 겁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적어도, 비웃음은 사라졌다.

“고리타분한 것을 던져버리는 것. 동의하십니까?”

“....”

“...네.”

“...동의합니다.”

대답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맞습니다. 옛것은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예술의 영역이 될 수 있지만, 고리타분한 것은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고리타분의 다른 말은 지루함이니까요. 지루한 예술, 자극이 없는 예술은 그 누구도 반기지 않습니다. 옛것이건, 지금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그 안에서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현대적’인 것입니다.”

학생들이 하나둘 씩 펜을 든다.

“다만 학문은 고리타분해도 됩니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토대가 되어주니까요. 그렇기에 학문의 영역 안에서 고리타분함을 이어가는 가치도 분명히 있죠. 하지만 이곳에 모이신 분들은, 적어도 ‘창작’강의를 들으시려는 분들은 문학을 학문보다는 예술로 바라보고 계시겠죠.”

고개들을 끄덕인다.

“그래서 문학을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뒤를 보고, 예술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앞을 봅니다. 학자와 예술가의 차이는 여기에 있겠죠. 적어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렇다면...앞을 보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고리타분한 것을 타파하는 사람이요.”

한 학생이 대답을 한다.

이번 특강의 제대로 된 첫 대답이다.

소중하다.

게다가, 만 점짜리 답이다.

“맞습니다. 제 말들을 조합하면 쉽게 알 수 있죠. 그렇다면 고리타분한 것들엔 무엇이 있을까요?”

웅성웅성...

여러 대답이 터져 나온다.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실 겁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거죠. 그걸 판단하는 것은 예술가의 감각과 재능이고요. 일례로, 저는 이 강의실에 적어도 네 가지의 고리타분한 벽이 존재한다고요. 나이, 출생지, 성별 그리고 학벌.”

학벌.

이 한 마디에 다들 입을 다문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잘 알겠지.

이들은 기껏해야 나와 동갑이거나 한참 어린 학생들이다.

학벌에 갇혀 벌써부터 고리타분한 인간이 되지 말란 말이다.

“만약 이 네 가지 중 하나로라도 절 재단하고 싶은 분들은 이 강의실에서 지금 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어차피 점수를 주는 과목도 아니잖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초장의 기선제압.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이번 학기 특강을 버틸 수 없다.

몇몇 학생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말없이 가방을 싸서 강의실을 나갔다.

저들을 말릴 순 없다.

내 학벌과 태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 그들의 선택이니.

그렇게 나간 학생이 다섯 명.

이정도면 기대 이상의 성과다.

아니, 대성공이지.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나는 ‘현대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창작한다’는 것의 개념의 차이를 1시간가량 설명했다.

답을 확실하게 내릴 수 있는 개념은 아니었다.

다만, 이것은 내 글쓰기의 근본과도 같았으므로, 할 말은 참 많았다.

난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었으니까.

“...때문에 현대적인 눈을 가지는 건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현대적인 것을 창작하는 건 예술가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끝까지 내 수업을 잘 들어주었다.

눈 깜짝할 새에 두 시간이 지났다.

“그럼 오늘 특강은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다음 주에 뵙죠.”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짝짝짝짝!!!

박수와 함께 감사 인사들이 들려왔다.

처음 시작할 때 들었던 맥없는 박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강단에서 내려왔다.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은 든든하게 먹어야겠다.

“저기, 안녕하세요. 이상 선생님.”

한 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내 질문에 처음으로 대답을 해줬던 여학생이다.

“안녕하세요, 학생. 수업 잘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약간의 긴장이 서린 미소를 지었다.

“김미소입니다. 올해 L일보에서 소설로 등단했어요.”

엇, 동료였구나.

“반갑습니다. 이상입니다. 동료를 만난 건 처음이네요.”

“수업 감명 깊게 들었어요. 문학 공부를 많이 하셨나 봐요.”

했지.

나도 하고, 김혜경도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이상 작가님. 학생으로서 아니, 같은 작가로서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현대적이지 못한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는... 그러니까 낡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는 도태되는 걸까요?”

말에 뼈가 담긴 질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공격적이기도 한 물음.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담긴 절실함 때문에, 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상 작가님. 이쪽에서 싸인 좀 해주시겠어요?”

그때 하필 차 조교가 내게 말을 걸었다.

특강 강의료와 관련된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얼른 싸인을 하고 돌아왔을 때,

김미소 작가는 이미 가고 없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SNS들을 살펴봤다.

학생들의 손가락이 얼마나 빠른지,

오늘 나의 강의 내용 일부가 벌써 올라와 있었다.

-현대적이란 건 뭘까. 나는 과연 현대적인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이상 작가님의 명강의.

-이상 작가님의 말씀 : 현대적인 작품은 스스로 현대적임을 드러내면 이미 낡은 것이 된다. 작품은 작품의 뒤에서 풍겨오는 아우라로 말해야 한다.

-이상 선생님은 진짜 천재 같다. 특강 두 시간이 그냥 지나갔다. 국문과 아니더라도 한국대 학생이라면 특강은 꼭 들어라.

리트윗과 ‘좋아요’가 수백 개.

놀랍게도 일본어로 된 글도 있었다.

수업 내에 일본인 유학생도 있던 모양이다.

-이상 작가, 호기심 때문에 한국인 친구와 특강을 들었는데 깜짝 놀랐어. 쿨한 것이 히루키와 닮은 데가 있단 말야.

무라카미 히루키는 김혜경도 좋아하는 일본의 작가다.

혜경의 기억을 통해 본 그의 작품은...뛰어나다.

하지만 그를 닮았다는 말보단 ‘쿨’하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멋지지 않은가.

‘쿨’한 작가라니.

이렇게 특강을 성공적으로 끝냈음에도 마음이 못내 불편했다.

김미소 작가 때문이었다.

김미소.

솔직히 말하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L신문사부터 그리 주류는 아니었고.

등단 지면도 약하고 초반에 눈길을 못 잡은 신인.

...즉, 잊히기 딱 좋은 신인.

나는 김미소 작가의 등단작을 검색해봤다.

L신문사를 통해 무료로 볼 수 있었다.

...!

놀라운 작품이었다.

그녀가 쓰는 소설은 이른 바 ‘노동문학’.

노동자들의 실태와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문학이었다.

노동문학은 7,80년대 한국 문학의 큰 줄기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비주류 중의 비주류.

마치 뼈대 있는 집안의 가난한 자손이랄까.

자리를 잡고싶은 신인작가로선 고민이 많을 수밖에.

내 소설이 새로운 형식과 인식적 충격을 추구한다면,

그녀의 소설은 세상의 실태를 전달하며 충격을 준다.

즉, 나의 문학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간다.

제목은 <이 씨의 오늘>

공장노동자의 노동환경의 아픈 곳을 찌르고, 그 피해자들의 괴로움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내용이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아픈 소설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올바른 사회란 무엇인가,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런 명확한 주제의식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2021년의 또 다른 문학 루키가 여기에 숨어 있었다니.

나는 핸드폰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민 끝에 차 조교에게 톡을 보냈다.

-차 조교님. 혹시 특강 수강생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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