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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39화 (39/258)

39화

우웅, 우우우웅-.

떨림이 심해진다. 장갑에서 검으로 형태를 바꿀 때보다 훨씬 더 심한 울림이었다.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성을 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이거 왜 이래?”

손이 아플 정도로 울리는 아포피스를 꽉 움켜쥐며 우성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검을 놓쳤다간 큰일 날 것 같은 기분. 우성은 손에서 피가 터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검을 놓지 않았다.

-애송이군.

우우웅-.

귓가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에 우성이 눈을 크게 뜨고 아포피스를 바라봤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님에도 알 수 있었다. 중저음에 나지막한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신의 손에 들린 검 ‘아포피스’의 것임을.

-쯧. 왜 하필 이런 놈이… 그래도 강단은 좀 있군. 능력은 형편없지만. 어디보자 PP는… 호오?

자신을 이리저리 살피며 평가를 내리는 모습이 검 주제에 꽤 건방졌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후부터 점차 울림이 잦아들고 있었다.

“너… 뭐야?”

손아귀가 터져 나가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훨씬 울림이 덜했다. 잦아든 울림에 여유가 생긴 우성은 생전 처음 검에게 말을 거는 미친 짓을 시도했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검이 계약을 시도하려 하자 자아를 꺼내들었다. 굉장히 건방진 검이었다. 검 주제에 주인을 평가하질 않나, 주인의 손을 찢질 않나. 역시 생긴 대로 마검은 마검이었다.

우성이 말을 걸었음에도 아포피스는 대답 대신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정신력은 쓸 만하다는 등, 마력은 왜 이리 형편없냐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대강 우성을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아포피스의 말을 듣고 있던 우성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과정은 계약 과정의 일환. 즉, 아포피스에게서 주인임을 인정받는 시간인 것이다.

-마력은 형편없지만… 정신력이나 PP는 꽤 쓸 만하군.

우우웅-.

잠시 검이 크게 한 번 울린다 싶더니.

-합격이다.

[띠링-! 반(半) 마검 아포피스의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유니크(Unique) 직업 ‘아포피스의 대리자’로 전직하였습니다.]

[모든 스텟 포인트가 2포인트 상승합니다.]

[아포피스의 의지에 따라 마력 능력치가 추가로 3포인트만큼 상승합니다. 그 대가로 체력 능력치 2포인트를 잃습니다.]

[‘패시브 - 마검술‘을 습득하였습니다.]

[‘고유 능력 - 대리인‘을 습득하였습니다.]

[‘직업 특성 - 절대적인’을 습득하였습니다.]

[추가 능력은 추후 마검의 단계에 따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아포피스는 든든한 아군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적입니다. 마검에게 자아를 빼앗길 경우, 1라이프를 소모해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연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에 우성의 표정이 절로 흐뭇해졌다. 볼 일이 끝났는지 아포피스는 다시 처음과 같이 잠들었다. 귓가를 울리던 목소리가 사라지자, 우성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포피스를 바라봤다.

그저 좋은 검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아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혹시 모든 마검이 다 이럴까도 싶었지만 그건 지금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다.

모든 스텟 포인트의 상승은 기대하지 않은 보상이었다. 기본적으로 스킬이 추가로 생성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엑티브 스킬 종류는 생겨나지 않았다. 하긴, 지나치게 현실도가 높은 아포칼립스에서 검사가 엑티브 스킬을 사용한다니 그것도 이상하긴 했다.

마검의 단계에 따라서 추가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쉽기도 하면서 기대도 되었다. 이게 얻을 수 있는 전부가 아니니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 좋았지만 역시나 마지막이 걸렸다. 오더가 왜 아포피스를 주는 데 주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아를 빼앗긴다. 여기까지만 해도 심각한 단점이었는데, 라이프를 소모해야지만 자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건 단순한 이지(理智)의 상실이 아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미 벌려 놓은 일이었다. 우성은 자신의 정신력과 플레이어 특성 <불굴의 의지>를 믿었다. 마검에게 자아를 빼앗기는 일 따위, 절대로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스킬 확인.”

[패시브 - 마검술 : E. rank]

* 수비를 도외시한 공격적인 검술. 일반 검술보다 훨씬 위력적이지만 그 대신 검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마검의 등급에 따라 위력이 배가된다.

+ 마검 사용 시 근력 1포인트 상승+ 마검 사용 시 민첩 1포인트 상승+ 마검 사용 시 절단력(공격력) 20% 상승

[고유 능력 - 대리인 : E. rank]

* 반(半) 마검 아포피스의 자아와 힘을 끌어내 몸을 내어준다. 아포피스는 태양신 라와 대적했던 악마로서, 무한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 스킬 랭크가 올라갈수록 아포피스의 힘을 더욱 많이 끌어낼 수 있으며, 정신력 스텟과 랭크의 등급에 따라 자아가 아닌 힘만을 끌어낼 수도 있다.

+ 스킬 사용 시, 마검에게 자아를 먹힐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 스킬 사용 시, 500포인트를 필요로 합니다.

[직업 특성 - 절대적인 : E. rank]

* 마(魔)계열의 생명체에게 추가적으로 15%의 피해를, 선(善)계열의 생명체에게 추가적으로 10%의 피해를 입힙니다. 중립(中立)계열의 생명체에게는 5%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 이 특성은 경험치 포인트(Level point)로 올릴 수 없습니다. 마검이 성장했을 때 스킬 레벨이 함께 상승합니다.

추가적으로 생긴 스킬은 단 3개뿐이었지만 어느 하나 무시할 게 없었다. 역시나 마검답게 방어보다는 공격적인 면이 강한 스킬들이었는데, 한 가지 걸리는 스킬은 바로 ‘대리인’이라는 스킬이었다.

유일한 엑티브 스킬. 마검의, 그리고 아포피스의 대리인이라는 직업의 고유 능력이었지만 썩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불안한데 자아를 빼앗길 확률을 늘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기대했던 것 이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하도 아니었다. 딱 기대했던 것 정도의 성과는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추후 마검이 진화하면 때마다 다른 게임의 2차 전직처럼 추가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오히려 기대 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심 만족한 표정을 짓던 우성은 다시금 표정을 굳히며 아포피스를 바라봤다.

직업을 얻었기 때문일까? 새삼스럽게 아포피스의 검붉은 색에 붉은색이 도드라져 보였다.

“앞으로 잘 좀 부탁한다.”

**

한 시간 쯤 지난 뒤, 볼일이 끝났는지 안현수가 우성의 방으로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막 직업 계승이 끝났다고 했는데, 몇 분 걸리지 않았던 우성과는 달리 그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불과 한 시간만의 만남이었지만 안현수의 눈은 이전보다 한층 깊어져 있었다. 아니, 깊어졌다기보다는 조금 더 힘이 있어 보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검은색이었던 그의 눈동자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단순한 착각만은 아니었다.

반대로 안현수는 우성을 보며 눈이 더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원래 검은 눈동자였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자,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고 하는 게 아무래도 마검과의 계약, 그리고 아포피스의 대리자로의 전직의 영향인 듯했다.

우성과 안현수는 서로 전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어차피 함께 활동하다 보면 차차 알게 될 일이었고, 나중에 깜짝 놀래켜 줘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우성은 중요한 정보를 타인에게 발설하는 게 마음에 걸린 것이지만 말이다.

슬슬 해가 지고 저녁이 될 때쯤, 약속한 대로 혜미와 혜정이 돌아왔다. 그녀들은 따로 방을 잡았는데 잠을 자기 전까지는 우선 우성, 안현수와 같은 방으로 들어왔다.

8평짜리 좁은 단칸방에 네 사람이 모이자 혼자 쓰기엔 넉넉했던 방이 비좁게 느껴졌다. 우성은 가장 먼저 혜미와 혜정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마법사로 전직을 마친 혜미와는 달리 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혜미는 마법사로 전직이 끝난 것 같고. 혜정이 넌?”

“저… 여기 마을엔 신전이 없데요. 마신을 모시는 암흑사제로 전직해야 된다는데, 마신전은 도시에 가야 있데요.”

“그래?”

역시 사제라고 해도 보통 사제는 아니었다. 신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마족들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마신을 섬기는 암흑사제야말로 혜정에게 알맞은 직업이었다.

시작의 마을의 규모는 천명도 되지 않는 플레이어를 수용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적었다. 혜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검사나 마법사, 창술사와 같은 일반적인 직업에 대한 전직은 가능하지만 그밖에 신관과 같은 일부 직업은 전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전직도 아무나 가능한 게 아니었다. 스텟 포인트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듯, 일부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전직이 되지 않아 화를 내다가 쫒겨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혜미의 경우에는 높은 마력 능력치로 전직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혜정이 전직은 다음에 도시에 가서 하는 수밖에.”

“죄송해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하는 모습에 우성과 안현수는 손사래를 쳤다. 도시에 도착해 암흑사제로 전직할 수 있다면 그녀 역시 한 사람 몫을 당당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혜미는 마법사로 전직하며 배운 혜택들을 여과 없이 읊었다. 그녀는 우성과는 달리 패시브스킬과 엑티브스킬을 1:1로 가지고 있었는데, 엑티브 스킬은 플레이어의 스텟과 숙련도에 따라 위력과 시전 속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직업의 능력을 공개한 혜미와는 달리 우성과 안현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직업을 비밀로 붙여두었다. 배치고사 특전에서 얻을 수 있었던 직업이라고 하니 혜미 역시 어느 정도 수긍은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조금 퉁명스러운 게 못내 서운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빠. 여기 ‘포탈’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던데.”

“포탈?”

“응. 텔레포트 게이트라고도 하던가… 다른 게임에도 비슷한 게 있다던데?”

“많지 그거. 그게 없는 게임 아마 몇 개 없을걸?”

당연하다는 듯 되물으면서도 안현수는 토끼눈을 떴다. 일반적인 RPG게임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컨텐츠였지만, 이곳 아포칼립스에서도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텔레포트 게이트란 다른 장소로 한 순간이 이동시켜주는 장치를 의미했다. 한국말로는 순간이동이라고도 하는데, 이 장치는 일반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성이 지나치게 높은 아포칼립스에서는 이런 장치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움직이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기에 희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시간은 벌었군.”

“그런데 이용 요금이 좀 비싼 모양이야.”

“요금?”

“응. 잘은 모르겠는데… 금화가 필요한 걸 보면 비싼 거 아닐까? 한 사람 당 5골드, 혹은 300포인트가 필요하다던데.”

“300포인트라…….”

5골드가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금화인 걸 생각하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300포인트를 단순히 이동용으로 날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일행들과는 달리 혜정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고작 50포인트가 전부였다. 우성은 가능하면 포인트가 아닌 금화를 모아 포탈을 이용하고 싶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퀘스트나 몬스터 사냥 등으로 돈을 벌 수 있다던데. 물론 위험하긴 하지만…….”

“이것도 게임이긴 게임이군.”

생각해 보면 하프 구울을 잡고서도 담배와 같은 아이템을 떨어뜨리긴 했다. 정확히는 하프 구울이 입고 있던 옷에서 삐져나온 담배를 안현수가 챙긴 것이지만, 그렇다는 것은 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부산물들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몬스터를 잡는 것으로 포인트를 벌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퀘스트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우성은 A급 퀘스트 죽어가는 자의 숲을 완료하고 1000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퀘스트를 통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우성이 확인한 바였다.

“아, 그리고 꽤 좋은 정보를 얻었어.”

“많이도 알아왔군.”

“직업 얻으려고 마을 한 바퀴를 빙 돌았으니까. 정진혁이라는 놈이 문제지 다른 기존 플레이어들은 꽤 신규 플레이어들에게 호의적이더라고. 궁금한 거 물어보니까 다 알려 주던데?”

혜미의 미모를 보고 호의를 베푼 건지, 아니면 기존 플레이어들이 원래 신규 플레이어들에게 호의적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성이나 일행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뭔데?”

“혹시 ‘더 플레이어’라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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