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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11화 (11/258)

11화

“그래. 좋아.”

“받아들이는 거냐?”

“나쁠 것 없지. 서로에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다. 두 명의 플레이어를 썰어버린 우성을 아군으로 둘 수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성은 정상인들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사람 둘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걸 보면 이미 현실에서도 살인을 해 본 싸이코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위험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아군이 되면 든든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속내를 우성이라고 해서 모를 건 아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몇 마디 말만 가지고 아군을 얻었다고 생각할 만큼 우성은 어리석고 순진하지 않았다. 지금 맞잡은 이 손은 언제 풀어질지 모를 만큼 느슨했다. 언제 누가 상대의 등에 칼을 꽂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 것이다.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것도 웃기긴 하군.’

하지만 만약 먼저 배신을 하게 된다면, 그건 혜미가 아닌 자신이 될 것이다. 우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혜미는 아직까지 누군가의 등에 칼을 찔러 넣을 만큼 모진 마음을 먹지 못했다.

‘여차하면…….’

다수의 플레이어를 만났을 때, 시간벌이 용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을 터. 싸움을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하나가 아닌 둘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슬슬 어두워지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점점 황금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슬슬 해가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 움직이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해?”

조심스러운 혜미와는 달리, 우성은 반대로 생각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너처럼 생각하겠지.”

“뭐?”

“오히려 밤이 움직이기엔 낫지.”

**

조금씩이지만 경사가 있는 것이 아무래도 죽어가는 자들의 숲은 언덕이나 산 속에 자리고 있는 듯했다. 아름다운 노을의 황금빛이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들어오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아름다움이 두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잠시, 해가 더 기울었는지 어느새 숲은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졌다. 보통 산 속에서 이 정도까지 어두워지면 그 자리에서 하루 머무는 게 보통이었다.

“대체 어딜 가는 거야?”

“따라오기나 해.”

조금씩 숨이 가빠지는 혜미를 배려하지 않고 우성은 그저 걸었다. 두 사람은 몸을 최대한 숙인 채 소리를 내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과 같이 혜미 역시 날이 저물고 있는 만큼 다시 해가 뜰 때까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팀을 이룬 우성은 오히려 밤인 만큼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며 지친 혜미의 몸을 이끌었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해가 완전히 저문 게 아니라 가까운 거리까지는 시야가 보였다. 하지만 좀 더 숲 안쪽은 어둑어둑한 느낌에 뭔가가 튀어나올 듯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그 때, 앞장 서 걸어가던 우성이 뒤따라오던 혜미를 멈춰 세웠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수풀 한쪽을 검으로 뒤적거렸다.

다른 곳과는 달리, 무언가에 푹 눌린 듯 부자연스러운 수풀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우성은 걷는 내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때, 우성의 눈에 수풀 옆쪽으로 다리 하나가 들어왔다. 얇고 가느다란 고운 다리. 우성은 검으로 우거진 풀을 베어내며 그곳으로 향했다. 혜미 역시 우성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갔다.

“아!”

우성을 따라간 혜미가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다.

그곳에는 한 여성 플레이어가 옷이 다 벗겨진 채 쓰러져 있었다. 아름답게 솟아오른 봉긋한 가슴에는 검에 꿰뚫린 듯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아래쪽 다리는 M자 모양으로 벌어져 있어 부끄러운 음부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죽어서 포인트를 빼앗기기 전, 남성 플레이어에게 강간을 당한 흔적이었다. 만약 이 게임이 일반적인 보통 게임이라면 성적 행위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설정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포칼립스는 일반적인 게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어, 어떤 개새끼가…….”

“한 명이 아니야.”

우성은 몸을 숙여 죽어 쓰러져 있는 여성 플레이어를 살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를 관찰하면서도 우성은 거침이 없었다.

“왜, 왜왜?”

“잘 봐.”

우성은 여성 플레이어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끔찍한 광경에 슬쩍 보는데서 그쳤던 혜미는 그때서야 음부 사이로 흐르는 새하얀 정액을 볼 수 있었다. 같은 여성 플레이어인 혜미로서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입이랑 몸.”

“응?”

“보x에 한 번, 입에 한 번, 가슴에 한 번. 변태새끼들, 여기저기 골고루도 싸질러 놨군.”

그러고 보니 여성 플레이어의 입에서 역시 음부에서 흐르는 정액과 같은 하얀 이물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슴 부위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번 흘겨보고 지나쳤더라면 발견할 수 없는 결과였다.

“둘 중 하나지. 플레이어가 둘 이상이던가, 정력왕쯤 되는 존경스러운 놈이던가.”

“존경은 무슨. 발정난 개새끼들.”

“거 봐. 너도 방금 ‘들’이라고 했지?”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도무지 한 명의 플레이어가 해 놓은 짓이라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으니까.

수긍하는 한편, 혜미는 우성의 관찰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녀는 여성 플레이어의 시체를 보며 잔인하고 구역질 나오는 광경이라며 시선을 회피했다. 반면, 우성은 시선을 회피하기는커녕 시체를 면밀히 살피고 단서를 찾아냈다.

“대단하네, 당신.”

“딱딱하게 당신은. 내 이름은 우성이다. 그리고 이 정도는 야동 조금 봤다는 대한민국 남자면 당연히 알 수 있을 걸?”

부끄러운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내는 우성의 말에 혜미가 화끈거리를 볼을 감쌌다. 당차고 기센 모습과는 상반되는 그녀의 모습에 우성이 피식 웃으며 말없이 몸을 돌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우성 역시 열이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게임인 걸 고려하더라도 이곳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서 기본 플레이어의 능력치는 현실의 힘과 비례하게 반영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당연지사 이런 죽고 죽이는 생존 능력에 있어서는 남성 플레이어가 여성 플레이어보다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 인식으로나 남성의 힘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점을 이용해 여성 플레이어를 겁박하고, 심지어 집단으로 강간까지 일삼는 플레이어들에게 우성은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생전 처음 본 여성 플레이어가 죽건 말건, 우성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일이었다. 괜히 이런 일로 화를 내 이성을 잃는 일 따위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성은 쓸데없는 생각보다는 이 주위에 플레이어가 여럿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저, 저기…….”

그 때, 뒤따라오던 혜미가 조심스레 우성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우성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물었다.

“왜?”

“저거 뭐야?”

덜덜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자, 우성은 그 어느 때보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뭐야?”

혼잣말처럼 혜미와 같은 질문을 던진 우성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이미 어둠이 드리워져 잘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기괴한 방향으로 여러 관절이 꺾여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사람은 아니다. 아니, 플레이어는 아니다. 저런 방향으로 꺾일 만큼 사람의 관절은 유연하지 않고, 저런 상태로 움직일 만큼 사람은 튼튼한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다. 우성은 허리에 대충 걸어두었던 검을 꽉 끌어 쥐었다. 혜미 역시 우성과 마찬가지로 두 자루의 단검을 챙겨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플레이어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우성은 몸을 숙여 바닥에 아무렇게나 박혀 있던 작은 돌멩이 하나를 뽑아 들었다. 야구공처럼 돌멩이를 꽉 움켜쥔 우성은 활처럼 몸을 크게 휘었다.

쐐애애애액-!

빠악-!

있는 힘껏 던진 돌멩이가 날아가 정체불명의 형체를 강타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돌멩이는 정확하게 그것의 머리를 맞출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충격에 한동안 정신을 잃거나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그것은 잠시 주춤했을 뿐, 곧 우성과 혜미가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색으로 꿈틀거릴 뿐이었지만 우성과 혜미는 그것의 시퍼런 안광이 번뜩이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그어어어-.

자박-.

자박 자박-.

하나가 아니었다.

팔다리를 기괴한 방향으로 꺾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괴물. 그것은 뒤쪽으로 같은 형체를 가진 괴물 셋을 함께 끌고 오고 있었다.

“젠장!”

설마하니 아무런 충격도 없을 줄이야. 아니, 그보다는 한 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우성과 혜미는 둘이다. 반면, 저들은 넷이었다. 수적 열세를 확인한 우성은 곧장 몸을 돌렸다.

“뭐 해?”

“으으으…….”

혜미는 다리가, 아니 온 몸이 얼어붙은 듯 위아래의 이를 빠르게 부딪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보통 사람의 반응일지도 모른다. 저 기괴한 몰골을 가진 괴물을 하나도 아니고 넷씩이나 마주했는데, 멀쩡하게 생각하고 사고하는 우성이 대단한 것이다.

이걸 두고 갈 수도 없고. 우성은 갈등했다. 사람에 비해 느리긴 하지만 괴물들이 다가오는 속도는 꼭 느리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빠르게 걷는 정도라고 할까?

이대로 혜미를 챙겨 도망간다고 해도,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않는 이상 따라잡힐 확률도 충분했다.

“시팔, 가지가지 한다.”

우성은 결국 혜미와 괴물들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검을 앞으로 뻗었다. 잠시 후, 어렴풋하게 보이는 게 전부였던 괴물들의 모습이 우성의 눈에 또렷하게 드러났다.

[띠링-! 하프 구울을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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