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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레이어-10화 (10/258)

10화

75포인트.

배치고사에서는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의 절반을 빼앗는다고 했으니, 검을 든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가 150포인트였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혜정의 숨통을 끊은 쪽은 이쪽이었던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한 명이 당하자 활을 든 플레이어는 황급히 다시금 등에 맨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우성이 달려들고 있던 직후였다.

끼리릭-.

시위가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활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피하기만 한다면 장전에 시간이 걸리는 플레이어는 검을 든 우성을 상대로 무척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피잉-.

플레이어는 팽팽하게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화살은 무서운 속도로 우성을 향해 날아갔다. 보고 피한다면 절대 피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퍼억-.

화살이 박힌 곳은 우성이 아닌, 그의 뒤쪽에 있는 나무였다. 화살을 피해낸 우성은 플레이어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씩 웃었다.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안도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이제 내 차례네.”

**

[띠링-! 5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총 225포인트. 기존에 가지고 있던 포인트의 두 배를 넘긴 상태였다. 두 명의 플레이어를 죽이고 얻은 대가였다.

가슴 한쪽이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쓰라리기도 했다. 정당방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사람을 죽인 것이다. 검을 휘두르고, 사람의 살과 뼈를 베는 느낌이 아직까지 손바닥 위에 남아 있었다.

“……좆같네, 진짜.”

후회는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다. 우성의 눈앞에는 두 구의 시체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머리가 꿰뚫려 눈을 시뻘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와, 손목이 잘리고 심장이 꿰뚫린 플레이어. 둘 모두 우성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다.

살인. 오래 전부터 어느 누구처럼 뉴스에서 살인범들을 보며 손가락질 해온 그로서는 이 감각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싫었다. 또한, 이 감각에 앞으로 익숙해 져야 한다는 것 역시 썩 내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생각보다 첫 살인에 대한 우성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기분 나쁘다’, ‘손에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정도로 끝이 날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부정하던 비도덕적인 일을 행할 때, 특히 살인과 같은 일을 처음 겪었을 때 그 충격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우성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살인을 결심하는데 걸린 시간이나 충격에서 헤어 나오는 시간이 무척 짧았다. 아무래도 23포인트에 해당하는 높은 정신력 수치 때문인 모양이었다.

바스락-.

우성은 뒤쪽에서 들리는 풀잎 소리에 다시금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 어떻게 됐어?”

나뭇가지들을 좌우로 걷어내며 혜미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움츠러든 그녀의 모습은 처음의 당찬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성은 검을 잠시 아래로 내리며 대답 대신 고갯짓으로 쓰러져 있는 두 명의 플레이어를 가리켰다. 목이 반쯤 베이고, 손목이 잘려나가고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두 사체를 보며 혜미가 질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한심하긴.”

몇 번 혀를 차며 우성이 갈등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혜미를 죽이고, 포인트를 빼앗아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그녀를 놓아줘야 할까? 우성의 머릿속에서 실리와 도덕의 저울질이 시작되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도덕과 양심이 우선이었는데, 첫 살인을 저지른 직후 벌써부터 그 결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우성의 갈등은 그의 눈동자에 그대로 비춰졌다. 내려갔던 검이 서서히 올라가고, 순박한 편이었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작은 변화 하나하나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혜미 역시 우성이 변했다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너, 너 혼자 둘을 다 죽인 거야?”

“보시는 것처럼.”

“대단하다. 나라면 한 명도 상대하기 버거울 텐데…….”

말을 꺼내 놓고 혜미는 아차 싶었다. 스스로가 다른 둘보다 약하다는 뜻은 너라면 충분히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우성은 마음만 먹으면 그녀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방금 전, 플레이어 둘을 죽이면서 깨달았다. 자신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조금 달랐다.

A클레스 플레이어. 처음 오더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저 높은 등급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등급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클레스가 높다는 것은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더 강하고, 게임에 적응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뜻이었다.

그 때, 우성은 퍼뜩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을 물었다.

“네 클레스는 뭐지?”

“나, 나?”

혜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B클레스… 라던데.”

“B클레스?”

확실히 A클레스인 우성보다 한 단계 낮았다. 하지만 클레스가 D까지 구분되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낮다고 볼 수만도 없었다.

“스텟은? 근력, 민첩, 체력, 상세히 말해 봐.”

“잠깐만 기다려. 어디 보자…… 근력은 7, 민첩은 10, 체력은 9,…… 마력은 23, 정신력은 16.”

“마력이 23?”

다른 수치는 현저히 앉은데 비해 마력의 수치가 월등하리만치 높았다. 이 마력이라는 스텟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스텟 포인트에 포함되는 만큼 아주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본격적인 게임 시작 후 사용되는 스텟일 터.

B클레스에 비해 그녀가 약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서의 배치고사는 플레이어들끼리의 데스매치였다. 무기를 들고 서로 죽고 죽이는. 그러니 당장 근력과 민첩, 체력과 같은 스텟이 낮은 그녀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이 23이라…….’

우성의 마력 스텟 포인트는 10포인트. 10포인트를 일반 플레이어들의 평균 능력치로 생각했을 때, 딱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모든 스텟이 중간 이상에 해당하는 우성에게는 가장 부족한 스텟 포인트이기도 했다.

혜미는 모든 근력과 민첩, 체력과 같은 일반적인 스텟 포인트가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마력과 정신력 스텟 포인트는 여타 플레이어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이 두 개의 스텟 포인트만으로 B클레스에 배정받을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성에게는 부족한 스텟을 혜미는 넘칠 만큼 가지고 있었다. 마력이라는 스텟이 추후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지만, 이 스텟 포인트만으로 B클레스에 배정받을 수 있을 정도라면 결코 필요 없는 스텟이라고 볼 수 없었다.

길게 고민하던 우성이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결론만 말하지.”

“뭐, 뭔데?”

“박혜미. 넌 이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서 언젠가 죽을 거다.”

“…….”

“다른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남는다면 난 반드시 널 죽일 거다. 5일 후 살아남는 플레이어는 한 명. 그렇지 않으면 결국 모두 함께 죽는 수밖에 없다.”

“알아 나도.”

그녀 역시 우성과 같은 플레이어였다. 이 죽어가는 자들의 숲이 아포칼립스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배치고사 시험 장소이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자신 역시 죽게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살인을 결심하지 못했고, 자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곳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기도 했다.

“악감정은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이 좆같은 룰이 썩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알아. 알지만…….”

“아까부터 누누이 말하지만, 이건 게임이야. 다섯 번이라는 제약은 있지만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이번이 끝이 아니야.”

우성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혜미를 달랬다. 죽일까 말까를 고민하던 우성은 결정했다. 우선은 살려 두기로.

“죽은 동생은 아마 현실로 돌아갔을 거야. 지금쯤 잠에서 깨어나 이곳의 일을 꿈처럼 여기고 있겠지.”

“아!”

“생각났어? 죽었을 때 부여되는 닷새간의 접속 금지 패널티. 배치고사가 5일 동안 진행되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에서겠지.”

죽은 플레이어는 현실로 돌아간다. 잠을 자는 것과 동시에 아포칼립스에 접속되는 것이니, 접속 금지 패널티가 부여되는 동안에는 평소처럼 수면 상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지금쯤 혜정은 현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혜미에게 이 말은 죽은 혜정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처럼 들릴 정도였다. 왼쪽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죽어가던 혜정의 모습이 눈에 선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꿈처럼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화색이 돌아오는 혜미를 보며 우성은 다행이라며 속으로 안도했다. 혜정의 죽음 이후 계속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던 그녀였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우성은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아까보다 훨씬 맑아진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정신을 차린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이 배치고사에서 네가 최대한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 가능만 하다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어. 미안하게도… 마지막에는 널 죽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대신 나도 네가 날 죽인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어. 다만, 그건 이 죽어가는 자들의 숲에 너와 나 단 둘만 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협력하지. 아니, 가능하면 이곳을 나가 아포칼립스에 들어선 후에도 계속 친분을 유지했으면 해. 나에게나 너… 아니, 네 동생을 포함한 너희들에게나 협력하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사실은 썩 나쁘지 않을 것 아니야?”

참으로 복잡한 관계였다.

우성의 말대로라면 결국 혜미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배치고사가 끝나는 5일 뒤, 두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명이 죽어야 한다. 죽는 사람이 우성이 될 수도 있지만, 누가 보나 혜미가 될 확률이 높았다.

언제고 죽여야 할 동료. 그럼에도 추후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등을 맞대야 하는, 그런 관계가 성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성의 머릿속이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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