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툭-.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우성이 입을 떡 벌렸다. 그 아끼던 담배를 떨어뜨렸음에도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담배를 꺼내 입에 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보다 우성은 눈앞에 나타난 하나의 문구를 보며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뭐야?”
‘담배’라는 아이템 이름과 그에 대한 설명, 그리고 아이템의 등급까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게임에서나 볼 법한 상태 메시지였다.
우성은 혹시라도 어디 게임에 비친 화면을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직원실 어디에도 컴퓨터는 물론이고 게임을 할 수 있는 장비는 없었다. 애초 직원들 쉬는 꼴을 못 보는 성재가 게임기를 가져다 놓았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게임에 담배가 등장할 일도, 게임 화면에 비친 아이템창이 우성의 시야를 따라갈 이유도 없었다. 혹시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우성이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담배라는 아이템에 대한 상태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구가 흐려지며, 이내 메시지가 사라진 것이다. 헛것을 본 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선명했고,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성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였지?”
쾅쾅-!
“야, 우성아! 그만 쉬고 일해라! 이 자식이, 느긋하게 쉬라고 했더니 담배 하나를 십 분씩 피고 있어!”
“네, 네! 금방 나갈게요!”
반사적으로 대답한 우성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바라봤다. 고작 한 모금밖에 피우지 못한 담배. 이제야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담배 갑을 만지작거리며 우성이 밖으로 나갔다.
“이따 다시 한 개비 하지 뭐.”
&
우성은 눈앞에 나타났던 아이템 메시지가 이상하리만치 신경 쓰였다. 잠시 뭐에 홀렸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뭘 어떻게 잘못 봐야 게임 아이템 메시지가 보인단 말인가.
간혹 게임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들이 게임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기사를 보곤 했다. 하지만 우성은 자신이 게임 중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창 게임을 많이 하던 학창 시절에만도 하루 두 시간이면 많이 했던 정도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어땠는가? 게임이라고는 찰나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아니, 바쁜 정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괴로웠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그렇다. 그런 우성에게 게임을 떠올릴 여유 따위가 어디에 있겠는가.
“……병인가?”
퇴근 준비를 하던 우성이 눈을 비볐다. 자꾸만 게임 상태 메시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후딱 끝내고 잠시 들렀다 가야겠다.”
넥타이를 푸는 것을 시작으로 우성이 옷을 갈아입었다. 밤 12시 정각. 평소라면 1시쯤 되어야 퇴근하겠지만, 오늘은 교대 직원이 일찍 온 덕분에 퇴근이 빨라졌다. 우성은 손님들이 먹다 남긴 과일들 몇 개를 가지런히 담아 바구니에 챙겼다. 과일이 담긴 바구니와 옷을 챙겨 온 가방을 멘 우성을 보며 성재가 인사했다.
“퇴근하냐?”
“네, 형.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인마. 위에 사람에게는 수고하라는 말 쓰는 거 아니야. 들어가 보고, 자 이거.”
흰 봉투를 바구니 속으로 넣으며 손을 휘휘 젓는 성재를 보며 우성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형?”
“많이 안 넣었어. 거절하지 마라, 사정 다 안다.”
바구니 속에 손을 넣은 우성이 봉투를 손에 쥐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손에 잡히는 봉투가 꽤 도톰했다. 어림잡아도 수십 장. 만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사이에 오가기에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우성이 몸을 돌렸다. 클럽을 빠져나온 우성은 곧장 인근에서 택시를 잡았다.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몸도 너무 지쳤고, 한 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우성이 탄 택시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 병원에서 멈췄다. 서울병원. 한국에서 제일 크고, 제일 비싼 병원이었다. 서둘러 택시비를 지불한 우성은 바쁜 걸음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익숙한 걸음으로 발걸음을 향한 우성은 병원의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누구시죠?”
“이우성. 서현이 보호자 됩니다.”
간단한 통과 절차를 거친 우성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중환자실로 들어섰다. 병상에 누워 약을 투여 받으며 삶을 연명하고 있는 환자들. 중환자실에 들어선 우성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장면이었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그들 사이에서 우성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서현아…….”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우성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중환자실의 여느 사람들과 같이 약물을 투여 받으며 깊은 잠에 빠져있는 어린 여자아이. 서현은 바로 우성의 딸이었다.
병명은 알 수조차 없다. 도대체 무슨 병인지, 어떤 이유로 딸아이가 쓰러지고 쇄약해진 건지 그 잘나가는 의사라는 사람들도 알아내지 못했다. 학회에 보고되지 않은 병이라나?
의사도 이런 병은 처음이라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다. 어린 나이에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는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서현이의 몸은 급속도로 쇄약해지고 있었고, 임시 처방인 약물을 투여하며 조금씩 생명을 연장하는 게 전부라고 한다. 한 마디로 불치병이란다.
고칠 수 없단다. 의사라는 새끼가 한다는 말이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니었어? 의사는 지켜보자고 했다. 약을 맞으며 시간이 지나 병명이 알려지면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좋아졌다.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던 병들도 이제는 불치병이 아니게 된 병들도 꽤 있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약을 투여 받고 운이 좋으면 병이 호전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곳은 손 안에 황금이 있더래도 불안한 곳이었다. 그래도 다른 길이 없다. 서현이를 죽일 수는 없다. 살려야 한다.
약을 달라고 했다. 의사의 표정이 이상하다. 약이 꽤 비싸단다. 달에 오백을 달라고 한다.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죽지 않게만 하는데 드는 돈이다. 당장에라도 의사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게 의사라는 새끼가 할 말이냐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다. 한 달에 오백. 썩은 동아줄의 가격이었다.
우성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서현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아이의 손이 한 손에 꼭 들어왔다.
&
“아빠!”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서현을 보며 나는 웃었다. 그러다 돌연 웃음을 잃었다. 혹여나 저러다 넘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조심해!”
난 서둘러 달려가 서현이를 받아 안았다. 어린 몸이 가슴에 폭 안겼다.
고작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이 귀여운 아이가 내 딸이라는 사실이 기쁘고, 하늘에게 감사한다.
서현이를 꼭 끌어안던 난 이내 서현이를 안아 올렸다.
“서현아, 우리 놀러 갈까?”
“놀러? 어디로?”
“어디든! 서현이가 원하는 곳이라면.”
다 해주고 싶다.
세상에 널린 맛있고 기름진 음식들과 아름다운 볼거리들.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주고 싶다.
이제 내겐 그것밖엔 없다.
“그럼… 놀이공원 가자!”
“놀이공원? 아직 서현이 키가 작아서 탈 수 있는 게 많이 없을 텐데.”
“괜찮아. 나,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어. 다른 친구들도 가족들이랑 놀이공원에 자주 간다는걸.”
생각해보니 아직 서현이랑 놀이공원을 가본 적이 없다. 놀이공원이 꼭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어야 가는 장소는 아닌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다 해주고 싶었는데, 남들 다 가는 놀이공원 한 번 제대로 데려간 적이 없었다.
“응, 가자. 가서 우리 재밌게 놀자.”
“와, 신난다! 아빠 최고!”
“정말? 아빠가 최고야?”
“응! 세상에서 제일 멋져!”
쪽-.
&
“아…빠…….”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에 우성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너무나도 행복한 상념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에 사로잡혀 지금의 서현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괴로워도.
그래도 다행이다. 약을 투여 받은 덕분에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하니까. 이렇게 서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빠 여기 있어.”
“언제… 왔어?”
“방금. 퇴근하고 서현이 얼굴 보러 왔지.”
“오랜만에 아빠 얼굴 보니까… 좋아. 자주 와.”
생각해보니 이렇게 서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병원비를 버느라 워낙 빠듯하게 살다보니 이 잠깐의 시간을 내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창 부모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한 아이에게 짧은 시간조차 내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롭기만 했다. 서현이의 가는 목소리에 우성은 지킬 수 없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앞으로는 자주 올게.”
“약속?”
“약속.”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에 손가락을 걸며 우성이 손을 흔들었다. 우성의 약속에 기분이 좋은 듯 환하게 웃던 서현은 이내 새근새근 잠들었다.
“꼭… 낫게 해 줄게.”
그 때, 익숙한 소리가 우성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띠링-.
[퀘스트 도착!]
이름 : 소원을 이루어주는 게임
난이도 : SSS
* 자세한 설명은 가이드 ‘오더’에게서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온라인’ 하시겠습니까?
또 다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게임속 상태 메시지 창에 우성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무슨…….”
풀썩-.
말을 이어가던 우성의 몸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