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부 21화
-르네상스-
5. 세상을 비추다(5)
교묘한 계책에 넘어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으나 소고기 불고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턱을 움직임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육즙이 간장과 다진 마늘, 양파를 섞어 만든 양념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으음.”
야들야들한 고기 사이사이에 아삭함이 살아 있는 양파가 손을 드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풍미는 또 어떠한가.
양념이 잘 밴 소고기에 채수가 스며들어 그 향이 코를 평온케 하고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요리다.
“맛있어?”
“맛있어요.”
밥과 함께 먹으면 어떨까.
“합.”
갓 지은 흰쌀밥을 크게 한술 뜨고 그 위에 불고기를 얹으니 맛이 또 다르다.
국물이 밥알 하나 하나에 스며들어 양념 맛이 더욱 깊어진다.
슬슬 묵직해진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열무김치는 백미.
정밀한 그림에 색이 수려하게 덧입혀진 것 같다.
프라이팬에 펼쳐진 완벽한 풍경화.
그래.
이 불고기와 쌀밥, 열무김치는 페데르 모크 몬스테드의 풍경화다.
“그런데 뭐 하고 있었어? 좀 피곤해 보이는데.”
“아이들 데리고 그림 그렸거든요. 날도 덥고 신경 쓸 일도 많더라고요. 합.”
“애들 체력이 워낙 좋아야지.”
할아버지 말씀에 백번 공감한다.
한 번은 앙리가 강아지를 데려온 적 있는데, 아이들과 놀던 강아지들이 먼저 지쳐 쓰러진 적 있었다.
아이들이 놀자고 부추기는데도 누운 채 숨만 헐떡대는 강아지들을 보며 고맙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재밌겠다. 나도 할래.”
“쉬러 온 거 아니었어요?”
“몸보다는 정신적인 힐링이 필요해.”
장미래가 힘없이 목을 쭉 내밀었다.
서쪽에는 앙리 마르소, 동쪽에는 장미래란 말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화가고.
인간으로서도 당당하고 합리적이며 밝은 성격으로 두루 존경받는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따로 무슨 일이 있는 게야?”
할아버지가 걱정스레 물으셨다.
장미래가 숨을 길게 내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 달 전인가 진주 박물관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이 있었어요. 조현병이 있다던데, 자세한 상황은 저도 잘 모르고 몇몇 작품을 훼손했대요.”
할아버지도 나도 접하지 못한 소식이라 깜짝 놀랐다.
괴한이 전시 작품을 훼손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중에 논개 영정이 있었어요. 윤여홍 화백께서 그리신 거요.”1)
“알지. 아깝구만…….”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한탄하셨다.
“그래서 진주시가 문체부에 영정 제작을 의뢰했는데 그게 저한테 오더라고요.”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다.
“영정이 뭐예요?”
“제사 지낼 때 위패 쓰잖니. 그 위패 대신 사람을 그린 족자를 영정이라고 해.”
“그걸 나라에서 만들어요?”
“대상이 위인이다 보니 제사 지내는 곳이 많거든. 여기저기서 다른 영정을 쓰니 표준영정을 만들어 기준을 세운 거지.”
위인들의 얼굴이 제각각이니 통일시킨다는 말이다.
“그럼 논개라는 사람도 위인이겠네요?”
“암. 위인이지.”
임진왜란 당시에 적장을 끌어안고 자결한 사람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위인의 영정을 의뢰받다니.
정부가 장미래를 대한민국 최고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나로서는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다른 여러 일로 정신없는 와중에 선뜻 나서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복원할 순 없어요?”
그 범죄자가 영정을 어떻게 다뤘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하면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복원가들의 실력은 죽은 작품마저 살려내니 말이다.
“그래. 얼마나 훼손되었길래.”2)
“절반이 탔더라고요.”
장미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순 훼손도 말이 안 되는데 아예 태워버렸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제정신이 아닌 놈이다.
“윤여홍 화백 뒤에 그리려니 부담도 되고.”
그런 이유라면 나라도 망설여질 거다.
위인과 관련한 일이라 잘해도 본전이고 못 하면 윤여홍 화백과 비교당할 테니까.
머리가 복잡할 만하다.
“이런저런 말도 많아서 난감하더라고요.”
“그래. 고민이 되겠어.”
할아버지는 관련 이야기를 아시나 보다.
“무슨 일 있었어요?”
“표준영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김은호라는 사람이 그린 영정을 모시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부일협력자였어.”3)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싸운 위인을 일제강점기 친일파 화가가 그렸다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다.
“또 기생이었는지 여부로도 논쟁이 치열하더라고요. 의뢰받은 건 어떻게 알았는지 양쪽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찾아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출장 간다고 하고 잠깐 도망쳐 왔죠.”
이제야 장미래가 갑자기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다.
논개가 기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기생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난감했던 것.
학교와 작업실로 찾아올 정도라고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쯧쯧. 어디 가나 극성스러운 사람은 있으니. 그래. 알아는 봤고?”
“그럼요. 논개가 제일 처음 언급된 게 어우야담이란 책인데 거기서는 기생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야사를 모아둔 거라 신빙성이 높진 않아요.”
“음.”
“그다음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서 나오는데 전주의 의로운 기생이라고 적혀 있어요. 논개라는 이름도 어쩌면 후대에 지어진 이름이고 당시에는 의기 주씨라고만 불렸다는 주장도 있고요.”
의기가 뭐냐고 물으니 의로운 기생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논개 제사를 지내는 곳에 의기사란 이름이 붙은 것 같다.
“흐음. 그럼 문제가 없는 게 아니냐?”
“1987년에 해주 최씨 가문에서 의일휴당실기란 책을 냈거든요. 거기에 충의공 최경회의 부인이 왜장을 유인해서 함께 죽었다는 묘사가 있어요. 기생이라는 말은 없고요.”
장미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해주 최씨 가문은 최경회의 부인이 기생인 척하고 접근해 왜장을 죽였고, 그 사람이 주논개였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사실 태어난 연도도 확실하지 않거든요. 1571년에 태어났는지, 1574년에 태어났는지. 그래서 사망 당시에 19살이라는 말도 있고 23살이었단 말도 있어요.”
이런 그림을 그릴 때는 고증에 철저해야 하는데, 한쪽 주장만 공부한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모은 듯하다.
역시 장미래다.
다만 무엇 하나 확실한 정보가 없어서 어떻게 표현하든 다른 한쪽에게 질타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고민이리라.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렵다.
애초에 의뢰를 받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화가이자 한국 예술인 조합장 등 여러 입장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구나. 안 하던 고민도 하고.”
“네?”
“미래 네가 누가 뭐라고 한다고 신경이나 썼니. 껄껄.”
“선생님.”
장미래가 앓는 소리를 냈다.
“조합장이니 학장이니 맡은 일이 많아져도 달라지는 건 없단다. 폐 끼친다 생각지 말고 어떻게 그릴지만 고민하려무나.”
할아버지 말씀대로 본인의 선택이 조합이나 학교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너만큼 그리는 사람 없다. 그건 내가 보장하니 하던 대로 해도 돼.”
“…….”
“괜찮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던 장미래가 허리를 쭉 폈다.
“그렇죠?”
“암. 그렇고말고.”
씩 웃는 걸 보니 할아버지의 믿음에 힘이 난 모양.
“그럼요.”
고개를 돌리길래 맞장구쳤다.
그전 표준영정이 어떤지 몰라도 장미래라면 아주 멋진 영정을 그려내리라 믿는다.
* * *
“비다.”
히나 라바니가 집을 나서려던 아들을 불러세웠다.
“오늘도 그림 그리러 가니?”
“네. 걱정 마세요. 쇼콜라티에 직원분들도 계셔서 별일 없을 거예요. 다 친한 사람들이고.”
비다 라바니가 웃으며 말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만 해도 속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다시 기운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그림이 그렇게 좋아?”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비다 라바니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좋아요.”
“그림 그리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아?”
“오늘 좀 이상한데. 왜 그러세요.”
“대답해 봐.”
묘한 기분이었지만 어머니가 답을 재촉하자 한 번 더 고민했다.
“항상 웃을 순 없겠죠. 저번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비다 라바니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마르소 작가님이나 훈이, 블랑쉬, 시현이 보면 저런 생각을 어떻게 하지 싶을 때가 너무 많아요. 사실 엄청 힘들 것 같아요.”
“그럼.”
“그래도 좋으니까.”
비다 라바니가 걱정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힘들면 안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해보려고요. 할 수 있는 데까지라도.”
아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던 히나 바라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울대가 묵직해져 목소리가 잠겼다.
“그래. 다녀오렴.”
“네.”
“저녁은 들어와서 먹고.”
“그럴게요. 다녀오겠습니다.”
히나 라바니는 아들을 배웅한 곳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비록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지만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응원해 주고 싶었다.
적어도 괴팍하고 치졸한 오빠로부터 아들을 방치할 순 없었다.
그동안 힘이 없어서 참아왔지만 더는 내몰릴 곳이 없었다.
히나 라바니는 아들을 구속하는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끊어내리라 다짐했다.
* * *
“다녀왔습니다.”
“왔니.”
귀가한 비다 라바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르소 갤러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검소하던 평소 식단과 너무나 달랐다.
고기를 가득 넣은 캅사였다.4)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럼. 좋은 날이지.”
손을 씻고 좁은 식탁에 앉은 비다 라바니는 설렌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이 오랜만이라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먹자.”
“네.”
기도를 하려던 차에 비다 라바니가 멈칫했다.
어머니가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기도를 외지 않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엄마?”
“왜?”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어머니가 너무나 태연했기에 비다 라바니는 좋은 일이 있었던 탓에 깜빡 잊으셨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뜨겁다.”
접시에 음식을 덜어 먹으려 하니 어머니가 이번에는 음식에 바람을 불어 식혔다.
아무리 뜨거운 음식이라도 불어서는 안 된다고 배운 비다 라바니는 당황스러웠다.
“어서 먹어. 맛있게 잘 됐다.”
“네…….”
비다 라바니가 떨떠름함을 감추고 캅사를 입에 넣었다.
평소보다 고소한 향이 코와 입을 황홀케 했다.
“와. 왜 이렇게 맛있어요?”
“그래?”
“네. 진짜 맛있어요.”
“돼지고기에서 나온 기름이 맛이 좋다고 하더라.”
이슬람교가 금기하는 돼지고기가 들어 있다는 말에 비다 라바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엄마, 오늘 왜 그러세요. 기도도 안 하시고 음식도 불고 게다가 돼지고기까지.”
“알라께선.”
히나가 아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좋은 것을 먹고 올바로 행동하라고 하셨단다.”5)
“…….”
“아주 예전에는 돼지를 키울 수가 없었대. 선대는 사막에서 살아서 식량이 부족했잖니. 다른 가축이랑 다르게 돼지는 사람이 먹는 걸 똑같이 먹어서 금기했대. 물도 많이 들고.”
히나 라바니가 마음을 크게 먹고 돼지고기를 넣은 캅사를 삼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니.”
“엄마…….”
“알라께선 돼지고기 먹는다고. 뜨거운 음식 식혀 먹는다고 뭐라 하실 분이 아니란다.”
히나 라바니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을 해치라고도 하지 않으셨어. 아내와 딸을 죽이는 일이 명예롭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야. 너도 코란을 읽었잖니?”6)
코란에서는 분명 여성과 아이를 보호하라고 말했다.
“대체 그 짓이 어떻게 명예로운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니? 그 잘못된 말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한 번 고민해 봤어?”
“…….”
“믿음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그림을 못 그리게 하고, 음악도 못 듣게 하는 게 정말 신의 뜻일까?”
“엄마…….”
“정말 그렇다면.”
모자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내 각오를 마친 히나 라바니가 입을 열었다.
“엄마부터 내려놓을 거야.”
히나 라바니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무슬림 여자로 태어났단 이유로 그토록 하고 싶던 공부도 못 했다. 외출도 할 수 없었고, 누군가와 말을 섞는 것조차 두려웠다.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향해 걸어보기는커녕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평생을 참고 견디며 삼킨 한이 응어리졌다.
“내 아들. 비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막는다면 엄마부터 내려놓을 거야.”
“엄마.”
“가니 그 자식도. 그 누구도 널 헤치게 두진 않을 거야. 누구도 내 아들 못 건드리게 할 거야.”
히나 라바니는 거의 울부짖었다.
단 한 번도 거스르지 못했던 거대한 무엇에게서 아들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비다가 자신처럼 꿈을 포기한 채 비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러니 비다, 신경 쓰지 마.”
비다 라바니가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이 너무나 커서 좁은 목구멍으로는 차마 다 뱉지 못하고 꺽꺽댈 뿐이었다.
모자는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대화는 없었지만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겨우 진정하고.
히나 라바니가 입을 열었다.
“영국 유학. 갈 수 있는 거니?”
“그걸 어떻게…….”
“청소하다 봤어. 갈 수 있니?”
비다 라바니가 망설였다.
고훈과 니콜라스 푸생 교장이 도와준 덕에 여건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결국 엄마와 함께 가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엄마 때문에 망설이는 거면 괜찮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비다, 엄마가 배운 게 없어도 아들이 거짓말하고 있단 건 안단다.”
“…….”
비다 라바니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런 아들을 보던 히나 라바니가 일어서더니 싱크대 아래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왔다.
자물쇠를 풀어 상자를 열자 지폐 뭉치가 들어 있었다.
얼핏 봐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너 배고플 때 밥 한 번 제대로 못 먹이고. 파스텔 사 달라고 했을 때도 모른 척하며 모았어. 10,000유로 정도 될 거야.”
하루 20유로 받는 일용직을 전전했고 허리를 다친 뒤에는 그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어머니가 모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비다 라바니는 어머니가 어떻게 10,000유로나 모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히나 라바니가 상자를 아들에게 밀었다.
“언젠가 네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 생기면 필요할까 봐 모았는데.”
히나 라바니가 침을 삼켰지만 결국 다시 눈물을 보였다.
과자 먹고 싶다고. 사탕 먹고 싶다고 말하던 어린 비다의 얼굴이 어제 같았다.
어느 순간 떼를 쓰지 않게 된 아들과 그런 아들의 상처를 애써 외면했던 지난날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했다.
“과자 못 사 줘서 미안해.”
“아니에요. 제가 애도 아니고.”
“파스텔 못 사줘서 미안해……. 영화관 한 번 못 데려가서 미안해.”
철없을 적 괜히 떼를 써 후회했던 비다 라바니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참다 참다 한 번 말씀드렸을 뿐인데, 새 파스텔이 너무나 갖고 싶었는데, 영화라는 걸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그게 어머니에게는 모두 상처로 남은 것 같았다.
비다 라바니는 엎드려 흐느끼는 엄마를 감쌌다.
지독하게 어두웠던 시절 자신의 유일한 빛이었던 그녀를.
* * *
1)윤여환 화백(1953~)
한국화가, 교수. 호는 석천.
2016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인상 수상, 2020년 홍조근정훈장 수훈.
사실적인 표현이 뛰어나며, 적선법이란 표현 기법을 개발해냈다.
유관순 열사, 주논개 등 국가표준영정 제작에서 독보적으로 활동한 화가로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2)실제로는 의기사에 사본이 있으나, <다시 태어난 반 고흐> 세계관에서는 없다는 설정.
3)김은호(1892~1979)
화가, 친일반민족행위자.
3‧1운동에 참가하여 체포된 이후 일본에서 공부하며 친일 행적을 보이게 된다.
1937년 일제의 전쟁 승리를 기리는 헌금 납부 장면을 감격스럽게 표현한 <금차봉납도> 제작.
1942년 조선 사람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반도총후미술전’ 등에 참석하였으며 미술로 일본에 보국하자고 주장했다.
4)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쌀밥 요리.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등을 쌀과 함께 넣어 짓는다.
5)코란 23장 51절
6)이슬람교는 명예살인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