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57화
16. 금도끼 은도끼(1)
학교에 가는 날이다.
일률적인 그림 교육은 지양하지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림은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다양한 사람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시대가 향유하는 상식과 공감대를 이해해야 하고.
학교 생활과 학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금 답답해도 초등학교까지는 다니자꾸나. 이후에는 네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할아버지가 차에 올라타며 말씀하셨다.
“살고 싶은 곳이요?”
“그래. 파리든 암스테르담이든.”
저번에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그림은 어디서도 그릴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지역은 중요하지 않다.
“그림 공부는 미술관 구경하는 걸로 충분해요.”
인터넷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딱히 어디에서 사는 게 중요하진 않다.
또 아무리 좋은 스승을 사사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지식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예술 작품을 깊이 느끼고.
작가가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를 생각하며 직접 따라 해 봐야 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구도는 어떻게 잡고 색과 형태는 어떻게 비틀었는지, 붓은 어떻게 썼는지와 같은 기법은 그에 뒤따라오는 문제다.
“그래도.”
“그리고 혹시 누구한테 배우더라도 할아버지랑 미래 이모보다 나은 사람이 있겠어요?”
할아버지가 눈썹을 좁히고 고민하시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금방 인정하시는 모습이 재밌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많은 작품을 접하진 못했더라도.
이 시대의 미술가 중 나는 할아버지와 장미래만 한 인물을 본 적 없다.
‘……앙리 마르소도 있지.’
그 인간은 좀 이상하니 예외로 두는 게 좋겠다.
할아버지가 차를 몰고 나섰다.
“학교에선 뭐 배워요?”
“많이 배우지. 국어도 배우고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음악이랑 미술도 하고.”
영어는 따로 배울 필요가 있나 싶지만 사회와 과학은 중요하다.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보면 과학 지식이 풍부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을 작품 활동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 내적으로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 물감에 따른 활용법 심지어 전자 기기 설치물을 만드시는 경우도 있었다.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비틀어 이질감을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상식이 없는 나는 작품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먹으면 안 되는 거라든지.’
그 외에도 무지 때문에 스스로 몸을 망치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과학은 중요한 학문이다.
사회라는 과목 또한 분명 이 시대와 원활히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 21세기에 대해 모른다.
국어도 마찬가지.
문학과 음악은 미술과 떼어놓을 수 없다.
문학은 그림이 전할 수 없는 관념을 명문화하여 상상의 기반이 된다.
나 또한 발자크, 플로베르 등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혔다.
『마담 보바리』처럼 <감자 먹는 사람들>과 같은 작품을 그리는 데 크게 영향을 준 작품도 있었으니까.
음악은 또한 어떠한가.
여유가 없어 즐겨 듣진 못했지만 나는 아직도 로트렉이 데려가 준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공연을 잊지 못한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베를리오즈는 얼마나 가슴 벅찬 경험이었던가.
음악은 문학과 회화가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
가히 영혼의 목소리라 할 만하다.
21세기 한국에서는 어떤 문학과 음악을 가르칠지.
퍽 설렌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야를 가리던 높은 건물들이 차츰 줄어들었다.
대신 높고 긴 벽이 끝없이 이어졌다.
왕궁이라도 되는 건가.
차가 빠르게 달리는 탓에 제대로 볼 순 없지만, 수백 미터 이상 이어진 벽마다 범상치 않은 조각이 새겨져 있다.
‘대체 뭐 하는 데지?’
의아히 주변을 살피니 할아버지가 차츰 속력을 낮췄다.
벽 너머로 호화로운 궁전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베르사유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다 왔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여기가 학교예요?”
“크지? 훈이 아빠랑 엄마도 다닌 곳이야.”
“큰 게 문제가 아닌데.”
정문에 들어서도 자동차로 한참을 들어가야 마침내 건물 앞에 이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분수를 끼고 돌아 차를 세웠다.
분수대 가운데에 날개를 펼친 천사가 위엄을 뽐내고 있다.
예사 솜씨가 아니다.
“훈아, 들어가자.”
분수대 조각상을 관찰하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재촉했다.
“학교가 왜 이래요?”
“부모라면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 법이야.”
그 마음은 이해하나 과하지 않나 싶다.
건물 바닥이 전부 대리석이다.
정문과 곧장 이어진 계단으로 올라서려 할 때, 한 노인이 몇몇 사람과 함께 내려왔다.
“해송 선생!”
“하하핫. 잘 지내셨는가.”
할아버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언제쯤 오는지 말을 해주셔야지.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잖습니까.”
“이렇게 부산스럽게 나올까 봐 그랬지.”
할아버지가 노인과 함께한 사람들과 눈인사를 주고받곤 날 소개했다.
“우리 손자. 훈아, 인사드려야지. 교장 선생님이셔.”
“안녕하세요. 고훈입니다.”
“알지. 너무나 잘 알지. 잘 왔다. 올라가서 이야기합시다.”
교장이 나와 할아버지를 교장실로 안내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고가의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책이 많이 놓여 있어 교장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전학 절차는 다 처리되었고. 훈이 담임을 정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미술 교사가 좋겠지요?”
“허허.”
할아버지가 난감한 듯 웃었다.
“이 녀석이 누가 그림 가르치려는 걸 안 좋아해서. 특기생 말고 정규 과정만 맡기고 싶네만.”
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훈이 가르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겠습니다. 핳핳하!”
그림 그리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다.
바다 밑에 사는 정신 나간 노란 스펀지를 그리는 사람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굳이 어느 한 사람에게 배워서 한계를 긋고 싶지 않다.
“참. 물어볼 게 있는데. 가정학습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예. 30일까지 가능하고 훈이가 만약 해외 미술제에 가게 되면 추가로 받을 수 있지요.”
“그게 얼마나 되겠나?”
“최대 60일입니다. 법정수업일수가 1년에 170일이니까, 기타 결석을 56일로 잡고 114일 출석해야 하는데, 거기서 60일을 차감할 수 있죠.”1)
“흠. 그럼 54일은 출석해야 유급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
“그렇게 되지요.”
졸업하려면 정해진 날 이상 학교에 나와야 하는 모양이다.
그런 기준이 없으면 학교를 나가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을 테니 규정으로 정해 놓은 듯한데.
1년에 54일만 나가도 되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학교에 다니면 그림 그릴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방학도 있다고 하니까.
나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니 교장이 느긋하게 차를 들었다.
“그럼 출석은 내일부터 하고. 오늘은 한번 둘러보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니.”
* * *
학교를 구경하고 나서 곧장 배움 미술관으로 향했다.
김지우와 한 인터뷰 약속 때문인데, 이후에는 방송국에서도 온다고 해서 오늘은 참 바쁘다.
“한국 초등학교?”
학교에 다녀왔다고 하니 김지우가 크게 놀랐다.
“왜요?”
“부자들만 가는 곳이니까. 1년 학비만 1억이 넘어.”
미쳤다.
미친 게 분명하다.
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어찌 1년 학비로 1억 원을 요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에게 당장 다른 곳에 가자고 말씀드려야겠다.
“하긴. 특기생들은 학비 혜택을 받으니까 넌 좀 나을 수도 있겠다.”
좀 나을 수도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가 중요하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대박 사건!”
“대박?”
“응. 휘트니 미술관의 에릭 다우어 관장이 널 이번 비엔날레에 꼭 초대하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어.”
“휘트니 미술관이 어딘데요?”
“미국 뉴욕.”
“트윗은 뭐예요?”
“어…… SNS야.”
“SNS는 뭐예요?”
“같이 보는 일기장이라고 하면 되나?”
“일기장을 같이 본다고요?”
“잠깐! 질문은 내가 할 거야!”
김지우가 양팔을 펼쳤다.
“무슨 말인지 알아야 대답을 하죠.”
“그것도 그러네. 아무튼, 휘트니 비엔날레라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제라고 생각하면 돼. 베네치아랑 상파울루 비엔날레랑 같이 3대 미술제라고 하고 최근에는 휘트니가 대세 느낌이고.”
대단한 곳에서 관심을 보였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요?”
“문제는 이제 곧 시작한다는 거야. 어떻게든 널 초대하고 싶었나 봐.”
“연락받은 거 없어요.”
“그래? 단순히 마케팅성 발언은 아닌 것 같았는데.”
김지우가 입술을 씰룩이며 고민했다.
“만약에 말이야. 휘트니 미술관에서 정식으로 요청하면 어떻게 할 거야? 학교 다니잖아.”
그러지 않아도 오전에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알아보셨다.
한국 초등학교 교장도 큰 행사가 있으면 출석을 인정받고 참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린다.
“비엔날레면 성적도 나누죠?”
마음을 담은 작품에 성적을 매기는 게 석연치 않다.
누구는 상을 받고, 누구는 상을 받지 못하게 될 텐데 수상 여부로 작가와 그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길 바라지 않는다.
“아니. 휘트니 비엔날레는 상 없어. 물론 열심히 하라고 주는 상이 있긴 한데, 막 급을 나누는 개념은 아니야.”
미술 활동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보조금이라도 주는 듯하다.
“애초에 유명 작가 위주로 돌아가는 기성 미술계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되었거든. 그래서 엄청 다양한 작품이 출품되고, 사람들도 많이 찾아.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이지.”
“앙데팡당전처럼요?”
“응.”
내 그림이 전시되었던 앙데팡당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휘트니 비엔날레는 당시 프랑스 왕립 미술원의 폭정에 맞서 뜻 있는 작가들이 힘을 모아서 연 앙데팡당전과 유사하다.
그런 행사라면 꼭 참가하고 싶다.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고 하니 견문을 넓히기에도 좋을 테고.
“그런데 곧 시작한다면 늦은 거 아니에요?”
“그거 말인데. 사실 그렇게 엄격한 행사가 아니라서 휘트니 미술관이랑 너만 마음먹으면 지금이라도 참가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아.”
“왜? 무슨 방법 있어?”
“그게 아니라 전시할 게 없어요. 지금 다 걸어버려서.”
김지우가 입을 크게 벌렸다.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니 고맙다.
“그런데 갑자기 왜요?”
“응?”
“미술관 관장이 절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저는 어떻게 알았대요?”
“아, 얼마 전에 캐롤라인 스트릭이란 분이 널 소개했거든.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분이라 미국에선 널 쇼콜라티즘 창시자라고 하더라.”
“쇼콜라티즘?”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Chocolat랑 ism의 합성어.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 달콤하고 행복해지는 그림을 그린다고 붙였대. 귀엽지.”
캐롤라인 스트릭이란 사람이 내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부끄러운 이름을 붙일 순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어떻게 쓸까? 초코주의? 까까주의? 까까주의 어때? 까까파 창시자가 되는 거야.”
끔찍하다.
“다른 말이 좋겠어요.”
김지우가 웃어넘겼다.
“흐흫. 장난이야. 그래도 다나카 히로부미가 비꼰 말을 멋지게 받아친 거니까 난 좋아 보이는데?”
“전 아직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어요.”
“그딴 인간은 신경 안 써도 돼.”
김지우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이 쇼콜라티즘이란 표현도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마. 왜. 인상주의라는 말도 원래는 모네를 조롱했던 말에서 시작되었잖아. 나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닐걸?”
* * *
1)실제로는 2020년 기준으로 법정수업일수 190일, 학교장 허가 교외체험학습일은 20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COVID-19로 인해 171일, 40일로 적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작중 배경이 현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세계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