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48화 (30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48화

13. 툴루즈 로트렉(3)

진지하게 생각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베트 길베르 본인이 아니라도, 부모가 자기 딸을 마귀처럼 그린 로트렉을 가만 놔둘 리 없다.

당시만 해도 아직 결투 문화가 남아 있어서 수틀리면 권총을 쏘는 사람이 종종 있었으니까.

한참을 웃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끅끅. 이 사람의 모친이 로트렉을 고소하려고 하긴 했지.”

겨우 고소라니.

참으로 지체 높고 품격 있는 교양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봐도 괴롭히는 거잖아요. 고작 고소라니 말이 안 돼요. 거기다 하려고 했다면서요. 결국 안 했단 말씀 아니에요?”

“그렇지. 흐흫흫.”

돈을 주고 합의했나?

부모님께 절연 당했다곤 해도 성 하나를 가지고 있던 로트렉이니 합의금은 두둑이 챙겨 줄 수 있었을 터.

“몇 장 더 있을 테니 마저 보고 생각해 보자꾸나.”

할아버지 말씀도 일리 있지만 암만 생각해도 로트렉 그 친구의 장난기가 발동한 그림 같다.

종종 이렇게 놀곤 했으니.

툴루즈 로트렉 이베트 길베르라고 검색했다. <청중에게 인사하는 이베트 길베르>라는 그림이다.1)

“봐요! 누가 봐도 놀리는 거잖아요!”

“크학학핳학핳!”

로트렉이 이베트 길베르를 좋아했단 말을 믿을 수 없다.

친한 사람들을 이렇게 그린 적이 몇 번 있지만, 내가 알던 화풍도 아니고 굳이 이렇게 그릴 필요가 있나 싶다.

꿈에 나올까 무섭다.

대체 합의금을 얼마나 챙겨줬을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정말 이렇게 생겼어요?”

“아니. 아니얗끅큭.”

할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그치질 못하신다.

다시 <청중에게 인사하는 이베트 길베르>를 살폈다.

당대 인기 있던 가수를 이렇게 그렸다면 이유는 둘뿐이다.

하나는 죽고 싶었거나.

둘은 이 가수의 진정성이 외모에 있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딴 포스터를 걸어두어도 사랑받는 뮤즈라니.

대체 노래를 얼마나 잘했는지 궁금하긴 하다.

“끄윽. 끅.”

할아버지가 숨넘어갈 것 같다.

등을 쓸어내리니 겨우 진정하셨다.

“어우. 오랜만에 웃었구나.”

할아버지가 손수건을 꺼내 눈 주변을 닦았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을 만한 일인가 싶다.

“…….”

조금 재밌긴 하다.

“고소를 취하했다고 했잖으냐?”

“네.”

“로트렉의 포스터로 너무 유명해지니까 어쩔 수 없이 못 했다고 해. 결국 가수 이베트 길베르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됐으니까.”

그런 이유라면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

아무리 뛰어나도 유명해지기 전까진 생계유지가 힘드니, 이베트 길베르로서도 로트렉에게 의지했던 거다.

이를 박박 갈면서 말이다.

“부모도 고소를 취하하고 부탁했다더라. 딸을 조금만 더 예쁘게 그려달라고 말이야.”

“그런데요?”

“거절했대.”

“…….”

권총을 뽑을 만한 일을 인내심을 발휘해서 정중하고 교양 있게 대응했는데, 거기다 대고 거절이라니.

역시 내 친구 로트렉은 이 그림 때문에 요절한 것이다.

“이 이베트 길베르란 사람은 정말 대단한 가수란다. 빈민가 출신이었는데, 자기 경험과 빈민가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했지. 그 시대에 가사도 직접 썼어. 그뿐이냐. 샹송 화법을 정립한 장본인이지.”

빈민가 출신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환경이다.

그런 곳에서 태어난 여성이 가사를 직접 쓰고 노래하여 성공했다니.

거기다 샹송 화법을 정립했다는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일이다.

더더욱 이베트 길베르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

‘그랬어.’

로트렉이 이해된다.

만약 왕립 미술원 출신 화가가 그녀를 그렸다면 아마도 아주 아름답게 그렸을 것이다.

피부는 하얗고 곱게. 허리는 가냘프고 가슴은 풍만하게 말이다.

하지만 로트렉은 그런 관념화된 미의 기준이 아니라 그녀의 진짜 매력을 알아본 것이다.

어쩌면 이베트 길베르도 처음에는 나처럼 오해했다가 나중에는 로트렉의 진심을 알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그는 이런 여성들을 참 많이 그렸어. 조금 전에 봤던 잔 아브릴이란 사람도 기구한 삶을 살았지.”

로트렉은 귀족 사회에서 스스로 벗어나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림을 그렸던 친구다.

할아버지 말씀이 충분히 이해된다.

“부모에게 버려지고 홀로 컸어. 심한 우울증 때문에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춤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았지. 무대에서 춤추는 게 그리 즐거웠대.”

“비극을 춤으로 승화했네요.”

“승화라는 말도 알아?”

고개를 끄덕이니 할아버지가 또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셨다.

“정말 아빠가 너 안 괴롭혔어?”

“네.”

“흠. 그래. 아무튼 이제 들어가자.”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르세 미술관에 입장하면서 생각했다.

당시는 수많은 화가가 기존의 권력화된 화풍에 저항하고 나섰다.

그러나 평단의 냉혹한 시선에 버틸 수 없었다.

평단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으니 수집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사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극소수의 화가만이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나처럼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던 것.

그런 우리에게 당시 여성들은 감정이입의 대상이었다.

억압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던 그녀들과 철저히 배제된 화가들은 특히나 서로 연민하고 보듬어주는 관계였다.

나 역시 그러했고.

툴루즈 로트렉 역시 마찬가지.

내가 죽은 뒤에도 변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걷다가 결국 대중적 인기를 끈 친구에게 경의를 표한다.

의뢰인이 원하는 바대로 그리지 않아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죽은 위대한 렘브란트.

의뢰인 본인조차 모르는 자신을 발견해 줌으로써 큰 인기를 끌었던 친애하는 로트렉.

예술과 생업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화가의 고민을, 지금 내 고민을 로트렉은 100년 전에 이미 명쾌히 풀어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영리하고 재기발랄한 화가란 말인가.

나는 그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이곳에 그 친구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 * *

고수열은 웃음이 부쩍 많아진 손자가 그저 보기 좋았다.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세상이 무너진 듯했거늘 지금은 소리 내어 웃는 일도 잦아졌다.

너무나 큰 충격에 감정이 무뎌진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을 보면 키득키득 웃는 걸 보면 그 또래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석연치 않은 점은 많았다.

너무나 사랑하고 그저 귀여워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고훈은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하는 방식도 그림도.

특히나 빈센트 반 고흐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평생을 연구한 사람도 생각지 못한 것을 툭툭 내뱉었다.

아들 고해성과 다툰 후 손자를 오래 못 봤으나, 며느리 이수진으로부터 소식은 종종 받았다.

이수진은 사진, 동영상, 오늘은 고훈이 무슨 일을 했는지 등 고수열이 궁금할 즈음마다 아들 이야기를 전했다.

단편적인 소식뿐이라 정확히 어떠한지 알 수 없었지만, 또래와 비교해 조금 영특해 보일 뿐.

지금과 같진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 사망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과 <서리 밀밭>을 통해 의문이 짙어졌다.

처음에는 아들 고해성이 손자 교육을 너무 엄하게 했는지 의심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그럼 대체.’

고수열이 턱을 쓸었다.

“할아버지! 이거 드세요! 치즈, 치즈가 어떻게 이렇게 달아요?”

그때 여러 치즈를 두고 퐁듀를 먹던 고훈이 음식을 권했다.

툴루즈 로트렉 그림을 보며 웃고 떠들던 아이가 퐁듀를 먹으니 눈을 크게 뜨고 흥분했다.

그 해맑은 모습과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니 고수열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할아버지도 먹어볼까?”

* * *

다음 날.

피에르 말로가 어떤 액자를 만들어 주었는지 궁금한 탓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밤새워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잠들었다.

“눈이 왜 그래? 잠 설쳤어?”

“네.”

아침으로 나온 빵이 맛있다.

갓 구워낸 모양.

눈꺼풀이 무겁긴 해도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버터 향과 푹신한 식감을 포기할 순 없다.

“흫흐흐. 이 녀석아, 졸면서 그게 들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빵만 먹어도 이렇게 맛있는데 잼을 바르면 얼마나 행복할까.

딸기잼을 바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니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먹고 좀 더 자. 액자는 점심 때 찾으러 가자.”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인제 보니 액자 때문에 못 잤구나.”

“흐.”

아침을 먹으니 졸음이 더욱 몰려든다. 찬물로 세수해서 잠을 몰아냈다.

털모자와 두툼한 외투를 입고 할아버지를 재촉했다.

“성질도 급하지. 간다. 가.”

밖으로 나서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귀마개와 목도리, 털장갑까지 중무장했음에도 쌀쌀하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한국 돌아가면 전시회 할 수 있겠죠?”

“음. 방태호 큐레이터와 이야기해 봐야지. 작품 수가 너무 적지 않은 이상 큰 문제 없을 거다.”

“몇 점이나 있어야 해요?”

“정해진 건 없지만 보통 벽이 네 개 있잖니. 한쪽 면을 비워두거나 작품 사이 간격이 넓으면 안 좋지.”

확실히 작품이 몇 없는 인상을 줄 것 같기도 하다.

“방태호 큐레이터하고 이야기를 나눠야겠지만 적어도 12점 이상은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정도라면 충분하다.

그간 스케치만 해둔 것이 많으니 그리기만 하면 된다.

한국에 가면 공부는 뒤로 미루고 우선 유화에 집중해야 할 듯싶다.

처음 하는 개인전이니 가능한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샤똥에 이르렀다.

다시 찾아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건물이다.

기쁜 마음에 문을 밀고 들어서자 낯익은 사람이 있다.

“어머. 훈아.”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 마르소 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미셸 플라티니다.

“안녕하세요.”

“혼자 왔어? 아, 안녕하세요, 고수열 경.”

“안녕하시오.”

할아버지와도 인사한 미셸 플라티니가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춰주었다.

“액자 사러 왔어?”

“네. 찾으러 왔어요.”

미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말로 선생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렸나 봐. 이번엔 어떤 그림이야?”

“오베르의 밀밭을 그렸어요.”

“오베르 쉬르 우아즈?”

“네.”

“기대되는데? 발표하게 되면 초대해 줄래?”

“그럼요.”

기쁜 마음으로 약속했다.

<손님>을 잘 전시해 준 덕에 큰 돈을 벌기도 했고, 수수료도 떼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혜택만 누린 거다.

초대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플라티니는 왜 왔어요?”

“액자 찾으러 왔어.”

“하하하.”

미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앙리 마르소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에르 말로와 함께 예의 그 방에서 걸어 나왔다.

“오오, 고수열 경. 어린 반 고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피에르 말로가 나와 할아버지를 알아보자, 함께 시선을 옮긴 앙리 마르소가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한다.

* * *

1)<청중에게 인사하는 이베트 길베르>, 툴루즈 로트렉, 판지에 구아슈,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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