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08화 (263/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308화

55. 화룡점정(13)

뮌스터시 시장의 축사에 이어 예술감독 레온 쾨니히가 마이크 앞에 섰다.

회수로는 4회, 기간으로는 40년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기획한 그를 시민과 방문객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도 여러분과 만날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앙케 씨도 계시고 피터 씨도 와 주셨군요. 저보다도 이 행사에 오래 참가하신 유일한 분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아인슈타인 씨, 인사하시죠.”1)

레온 쾨니히가 작은 돌멩이를 들어 보이자 행사장에 모인 이들이 작게 웃었다.

“……?”

그러나 독일식 농담에 익숙하지 않은 고훈은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지, 저들이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레온 쾨니히가 연설을 이어나갔다.

“40년 전, 제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와 주진 않았습니다.”

레온 쾨니히가 개막식에 참여한 작가와 시민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멋진 분들이 와 주신 만큼 올해도 참 멋진 작품이 태어났습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현대 미술과 대중 사이를 좁히고자 시작된 일이었다.

레온 쾨니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참여 작가들을 눈에 담았다.

“모두 여러분 덕이죠.”

레온 쾨니히는 마지막으로 앙리 마르소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푸근하게 미소 지었다.

“개성 있는 작품을 사랑하는 이곳 뮌스터라면 그 어떤 아이가 태어나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면서 뮌스터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이번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주제였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받으며 구성원들이 사회를 잘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받는 뮌스터.

그것이 레온 쾨니히의 바람이었다.

“그럼 마음껏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레온 쾨니히가 마이크에서 한 발 떨어져 고개를 숙였다.

개막식에 참석한 이들이 박수로 화답했고 사회자는 참여 작가를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작품 변치 않는 가치를 출품해 주신 앙리 마르소, 고훈 작가를 모시겠습니다.”

한 사람씩 축사를 전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던 차 앙리 마르소, 고훈 차례가 돌아왔다.

진행자가 두 작가를 소개하자 인터뷰 시작할 무렵부터 의아해하던 기자들이 나섰다.

“저. 두 분이 너무 떨어져 앉아계신 것 같은데.”

“나란히 앉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14명의 작가가 일렬로 앉아 있는데, 고훈이 오른쪽 끝 앙리는 왼쪽 끝에 앉아 있어 한 장면에 담기 어려웠다.

평소 가운데 앉길 좋아하던 앙리 마르소가 굳이 왼쪽 끝에 앉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기쁜 날에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의아했다.

“두 분 실례가 안 된다면 자리를 옮겨 주시겠습니까?”

“네.”

“그대로 하지.”

사회자가 나섰지만 앙리 마르소는 자리를 옮기길 거부했다.

덕분에 흔쾌히 대답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던 고훈이 민망해지고 말았다.

‘굳이 왜 티를 내?’

소년 또한 감정이 상하여 앉았던 의자에 다시 자리 잡았다.

“하하. 그럼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어색한 분위기를 끊어내고자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기자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프랑스 미술계의 영웅과 행복을 전도하는 소년 화가를 취재하고자 아침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자가 가장 앞에 앉은 사람을 지목했다.

“디 벨트에서 나온 발라프입니다. 앙리 마르소 씨께 여쭙겠습니다. 첫 공동 작업은 어떠셨나요?”

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의 기자가 물었다.

공동 작업은커녕 친밀하게 지내는 예술가조차 없던 앙리 마르소의 최근 행보는 미술계에 크나큰 관심사였다.

고훈과 함께 화가 공동체 쇼콜라티에를 설립하고, 작품마저 함께하니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알아서 뭐 하게.”

앙리 마르소가 평소처럼 냉랭히 답했다.

기자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자 사회자가 다급히 나서 상황을 무마했다.

“아하하. 고훈 작가께선 어떠셨나요? 역시나 공동 작업은 처음이신 듯한데.”

고훈이 마이크를 들었다.

“즐거웠어요.”

정상적인 대답에 사회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하신 분이 완벽을 추구하거든요. 이렇게 하기로 했으면서 돌아서면 마음이 바뀌어 있고, 또 거기 맞춰주면 다음 날 다른 시안을 가져와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었으면 혼자 하면 됐을 텐데 제게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고훈이 싱긋 웃으며 답변을 마치자 개막식장이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고수열은 그저 허허 하고 웃었고 방태호는 얼굴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막식이 시작될 때부터 불안하더니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어…… 사이가 정말 좋으신가 봅니다. 하하하. 다음.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사회자가 서둘러 다음 질문자를 찾았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서 손을 들었다.

“고훈 작가께 여쭙니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와 카셀 도큐멘타에 이어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두 분이 함께하셨는데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자의 질문에 고훈이 잠시 고민했다.

앙리 마르소와 다투긴 했어도 그와 함께하면서 자극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협업 과정이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도리어 같은 눈높이로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어 즐거웠다.

“네. 배울 점도 많고 편하기도 해요. 앙리가 없었으면 변치 않는 가치는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한층 누그러진 대답이었다.

안심한 사회자가 다음 질문을 받았다.

“조금 전 고훈 작가가 변치 않는 가치를 작가님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작가님께서는 어떠셨습니까?”

두 천재의 협업 과정이 궁금했던 기자가 첫 번재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고훈과의 작업 과정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앙리 마르소는 눈살을 찌푸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저 사람은 별로였나 보네요.”

감정이 상한 고훈이 투덜댔다.

“뭐가 어째?”

앙리 마르소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에요?”

“왜 네 멋대로 헛소리야?”

“그럼 그렇게 대답하지 그랬어요.”

“뭐?”

“그림도 다 가지고 싶다, 작품도 자기 맘대로 하고 싶다. 인터뷰도 혼자 하면 잘하실 것 같은데 왜 안 하냐고요.”

고훈이 쏘아붙였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앉고, 함께 만든 첫 작품의 인터뷰조차 성실히 임하지 않은데다 화해하자고 내민 손마저 뿌리치니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일까지 더하여 참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논리정연하게 잘만 뭐라고 하면서 작품 발표는 왜 이 모양이에요?”

“대답할 가치가 없으니까! 작품 이야기도 아니고 쓸데없는 걸 왜 물어?”

“궁금할 수도 있죠! 안 그래요?”

고훈이 묻자 질문한 기자가 당황했다.

“봐요! 놀랐잖아요! 이럴 거면 분위기 망치지 말고 가버려요!”

“뭐라고?”

“왜요? LA에서는 싸우자마자 혼자 비행기 타고 잘만 가더만!”

“네가 사람 열받게 했잖아!”

“어쨌는데!”

“그림 안 판다며! 달라는 것도 아니고 팔라는데 무슨 고집이야?”

“돈이면 다예요? 아, 다른 사람하고 같이 있는 거 싫다고 카페 전세 내는 사람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옛날이야기 꺼내서 말 돌리지 마. 네가 나한테 그림만 팔았으면 아무 문제 없었어!”

“당신한테 팔고 싶지 않다니까? 그냥 같이 작업하고 얘기하면 되잖아! 내가 뭐 무작정 주기 싫댔어요? 137년 줬잖아!”

“그것도 몇 달 전 일이야!”

“난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뭐라고?”

“당신은 나한테 그림 한 점 준 적 있어?”

고훈이 소리쳤다.

<손님>을 비롯하여 몇 번 선물했던 본인과 달리 앙리 마르소는 단 한 점도 주지 않음을 지적했다.

“줬잖아!”

“뭐!”

“마르소의 보석! 앙리 마르소 002!”

고훈이 눈을 깜빡였다.

앙리 마르소의 나르시시즘을 잔뜩 머금은 조각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

자신이 선물한 작품을 잊었다고 생각한 앙리 마르소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아니. 깜빡했. 아니.”

“이 빌어먹을 자식이! 내 조각상 어쨌어!”

“조각상 말고 그림 이야기였어요! 아무튼!”

고훈이 필사적으로 말을 돌렸다.

“거래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고! 왜 멋대로 생각해요? 전화는 왜 안 받고 여기 와서 이러는데!”

“말 돌리지 마. 내 조각상 어쨌어!”

고훈이 지하 전시실에 잠들어 있는 <마르소의 보석>을 떠올렸다.

“먼지 안 묻게 잘 보관하고 있어요.”

“어떻게.”

“네?”

“어떻게!”

“……옷 입혀서.”

“그 빌어먹을 비옷은 아니겠지?”

앙리 마르소가 스펀지빵 우비를 떠올리며 묻자 고훈의 눈동자가 심히 떨렸다.

“이 자식이!”

* * *

[“내가 준 거 다 내놔”]

11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개막식에서 프랑스 예술가 앙리 마르소와 한국 예술가 고훈이 친분을 과시했다.

최근 다툼이 있었던 두 사람은 말씨름 끝에 서로에게 선물한 작품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미술 애호가들은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었다고 반응했다.

행사에 참석한 세계 최대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경매사 로랑 고베르는 이들이 언급한 작품 가치가 경매장에 나올 경우 최소 2,000만 달러에서 시작될 거라며 “21세기를 뜨겁게 달군 두 천재가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앙리 마르소와 고훈이 공동 작업한 <변치 않는 가치>는 행사 첫날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고훈과 앙리 마르소가 화목한 대화를 나누는 한편.

두 사람의 <변치 않는 가치>는 뮌스터시 시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베커 씨 아니야?”

“응. 같이 있는 애는 아들인 것 같은데. 소방관 하고 싶나?”

“귀엽다.”

방문객들은 어린 율리안 베커와 피피 베커가 소방 호스를 붙잡고 불을 끄는 조형물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전해져 가슴이 뭉클했다.

“크핰학학!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 있지? 이봐, 아서. 이리 좀 와 보라고.”

“뭔데?”

“율리안이잖아.”

“하핫! 어릴 때랑 빼다 박았네.”

“아들하고 같이 있잖아.”

“그 녀석 어렸을 적부터 소방관 될 거라고 노래를 불렀지. 아들 녀석도 그런가 본데?”

율리안과 피피를 아는 사람들은 그 주변을 서성이며 추억을 주고받았다.

“세상에. 소방서가 하나 더 생겼잖아?”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만들었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나 본데.”

“들어가 보자.”

뮌스터시 소방서를 본딴 대형 구조물은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동안 뮌스터시를 지켜온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이 되려는 모습으로 가족 사이의 신뢰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방서 안으로 들어서면 시간 순서에 따라 변모하는 소방서 내부를 확인할 수 있어 소방관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소방서는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차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뮌스터 시민들의 단면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변치 않는 가치>는 시민과 현대 미술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고자 시작되었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장식하기에 더없이 훌륭했다.

“맙소사. 믿을 수가 없군. 이걸 정녕 둘이서 만들었다고?”

“개벽으로 가상현실에서 그린 걸 그대로 출력했다더군.”

전문가들도 고훈과 앙리가 만든 소방서 내부를 들여다보며 연신 감탄했다.

그 모습을 언짢게 보던 일본의 미술평론가 곤도 마스다가 자국 내 권위자로 인정받는 다나카 히로부미에게 물었다.

“정말 유치하지 않습니까?”

심오한 철학을 담아낸 추상적 작품만을 높이 평가하는 다나카 히로부미의 눈에 <변치 않는 가치>가 제대로 된 작품으로 보일 리 없다고 판단했다.

“…….”

다나카 히로부미는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변치 않는 가치>를 둘러보았다.

“와. 여기 좀 봐. 여보, 이거 기억나?”

“옛날 소방서네?”

“여기 소방서 아닌데?”

“리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랬어.”

“어렸을 땐 여기서 소방교육 받고 했는데 말이지. 리자는 소방교육 받았어?”

“응.”

딸과 함께 추억을 회상하는 부부.

“형, 여기 계셔.”

“지금 우리 나이보다 어리셨네.”

“그러게. 사진으로만 봐서 몰랐는데 몸이 엄청 좋으셨네.”

흑백으로 처리된 젊은 소방관 앞에서 묵념하는 형제.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소방관이었지?”

“껄껄. 그래. 그래.”

“그럼 여기에도 있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니.”

“아버지, 여기.”

“우와! 이게 할아버지야?”

할아버지가 현역일 적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손자와 자신의 옛 모습을 보며 감상에 젖은 노인.

다나카 히로부미는 어쩌면 이 공간이야말로 현대 미술과 대중을 잇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찾은 그 어떤 미술관과 갤러리도 이러진 못했다.

비전문가인 관객이 작품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선생님?”

“……아닐세. 가세.”

앙리 마르소와 고훈을 비판하고자 뮌스터를 찾았거늘.

다나카 히로부미는 혼란스러웠다.

* * *

1)ein stein(독: a stone)

Einstein(독: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같은 발음을 활용한 언어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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