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282화
53. 불한당(2)
일주일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의 모델을 모집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지원해 주었는데 그중 아빠처럼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름이 피피래요. 피피 베커.”
“피피?”
마르소가 되물었다.
작은 강아지란 뜻의 흔치 않은 이름이라 의아한 듯하다.
“축구 선수 이름에서 따왔대요.”
피피라는 이름은 프로이센 뮌스터에서 뛰었던 축구 선수 펠릭스의 애칭인데,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할아버지가 붙여주었단다.
“독일인이라면 그럴 만하지.”
독일 사람 중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프랑스 사람들도 좋아하던데. 마르소도 응원하는 팀 있어요?”
“파리 FC.”
물어보긴 했지만 축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올해는 리그1로 올라갈 거야.”
“리그1?”
설명을 들으니 대충 상위 리그와 하위 리그로 나뉘는 모양이다.
“올해는 올라가.”
말하는 태도로 보아 꽤 오랫동안 상위 리그에 올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알아요?”
“올라가니까.”
굳이 강조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기대하는 모양.
마르소가 축구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난 요즘 음악 들어요.”
“음악? 무슨.”
“베를린 필하모닉이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이 좋더라고요. 배도빈의 말러도.”
마르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추천한 적도 있을 만큼 그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을 즐겨 듣는 걸로 알고 있다.
“거긴 직접 가서 들어야 해.”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
“빨리 가. 언제 은퇴할지 모르니.”
“누구 은퇴한대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기사 보니까 작년에 5년 계약했대요.”
마르소가 드물게 고개를 갸웃했다.
“여든 넘은 노인이?”
“건강한가 보죠.”
기사 댓글난에 노인학대 아니냐는 말이 간간이 보이긴 했었다.
마르소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취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뮌스터에 도착했다.
격납고에서 아르센이 미리 준비해 둔 자동차로 옮겨 탔다.
소방서에 이르자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과 활발해 보이는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뮌스터의 소방관 율리안 베커와 그의 아들 피피 베커일 거다.
“저분들이니?”
“네! 안녕하세요!”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안녕하세요.”
부자와 인사를 나누고는 소방서 안의 작은 공간에 자리 잡았다.
율리안 베커는 믿기지 않는지 마르소의 명함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사실 좀 얼떨떨합니다. 아들이 신청한 일이라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 모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아르센이 나서서 상황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아들과 달리 율리안 베커는 미술계에 관심이 없는 눈치였는데 다행히 앙리 마르소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것 같다.
정말 뉴스에 나오던 그 사람이 맞냐고 묻기도 했으니까.
“이렇게 대단한 분들 작품에 모델을 해도 되는지.”
“뮌스터를 지키는 분이시잖아요. 저야말로 부탁드리고 싶어요.”
“할 일을 하는 것뿐인걸요. 하하.”
거듭 설득하자 율리안 베커가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었다.
“맞아. 아빠가 얼마나 멋진데.”
피피 베커도 거든다.
타인을 위한 일이라지만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행위가 무섭지 않을 리 없다.
그런 일을 두고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율리안 베커나.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피피 베커나 참으로 멋진 부자다.
“소방서 앞에 전시될 텐데 그런 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저야 뭐. 다들 신기해하겠는데요? 하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 눈치라 안심했다.
처음에는 반발도 많았다고 들어 걱정했거늘 이제는 완전히 도시의 축제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혹시 피피 나이 때 사진 가지고 계세요?”
“제 사진이요?”
“네.”
율리안 베커가 고개를 기울였다.
* * *
율리안 베커가 10살 무렵 때 찍은 사진을 얻어 파리로 돌아왔다.
소방서 전경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피피 베커에게 되도록 많은 자세를 부탁해 새로 찍기도 했다.
덤으로 뮌스터 소방관들이 어떤 복장을 하고, 무슨 장비를 다루는지에 대한 자료도 얻었다.
작업에 필요한 정보는 모두 갖췄으니 실행만 남았다.
10살의 율리안 베커가 10살의 피피 베커와 함께 있는 장면은 사연을 읽자마자 떠올릴 수 있었다.
첫 의도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흔적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아르센.”
“네.”
“30년 전 뮌스터 소방서 사진 찾아봐.”
아르센이 방을 나섰다.
“무슨 생각이에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묻자 마르소가 테이블 스크린에 소방서 전경 사진을 띄웠다.
반을 나누어 오른쪽은 그대로 두고 왼쪽은 흑백 필터를 씌웠다.
“아.”
어떤 생각인지 알 것 같다.
예상대로 마르소는 흑백 처리된 왼쪽에 율리안 베커의 어릴 적 사진을 덧붙였고, 오른쪽에 아들 피피 베커의 사진을 올려두었다.
“좋네요. 율리안이랑 피피가 물 호스를 같이 잡고 있는 건 어때요?”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야겠지.”
마르소가 사진들을 옮겨 대강 시안을 잡았다.
좋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내 생각으로 시작한 일임에도 마르소는 아주 간단히 주제를 명확히 했다.
가족과의 유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연속성.
뮌스터 고유의 분위기.
모두가 이웃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사랑과 배려를 나타내려는 내 의도가 적절히 녹아 있다.
<그림자> 때부터 느꼈지만 <앙리 마르소 002>라든지 마르소의 이러한 구성력에는 매번 감탄한다.
부러운 재능이다.
“…….”
그러나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
이것을 조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도 큰 문제다.
마르소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개벽이 있으니 표현 자체야 어렵지 않겠지만 소방서 앞에 큰 구조물을 둘 순 없다.
비상시 소방차와 구급차가 쉽게 다녀야 하니 길을 막을 만큼 크게 만들어선 안 된다.
“아.”
* * *
앙리 마르소는 고민을 거듭했다.
개벽으로 소방서 건물 앞을 막자니 통행에 차질이 생길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소방서 건물 반쪽을 30년 전 모습으로 칠하고 싶었지만, 당국이 허가할 리 없었다.
한 번 벽에 가로막히자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애꿎은 테이블만 계속 두드리던 차 고훈이 무엇인가를 떠올린 듯 감탄했다.
앙리가 시선을 옮기자 고훈이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비다 라바니, 아들리, 올리비에 등 놀이터 아이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고자 사 두었던 석고 모형을 가지고 돌아왔다.
앙리는 큰 원뿔과 작은 원뿔을 앞뒤로 둔 고훈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원근법.”
“네. 애들 시점에서는 실물 크기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어른들도 아이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고.”
“…….”
앙리가 고훈의 아이디어를 곱씹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본다면 과거 소방서의 모습을 실제 소방서 건물보다 작게 만들어도 되었다.
거리를 충분히 벌려 아주 작게 만들 수도 있었다.
비록 장소와 시야는 한정될 테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작품에 깊이를 줄 방안이었다.
<손님>과 <가면>, <총탄>에 이어 이번에도 고훈은 시점과 발상을 전환했다.
‘매번 이런 식이야.’
앙리 마르소는 매번 재기발랄한 생각으로 자신을 놀라게 하는 고훈을 바라보았다.
고훈의 첫 작품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의 형태를 빌려 감정을 칠해놓은 그림이었다.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애절함에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서리 밀밭>이 그러했고 <여름 너울>이 그러했다.
그것으로 충분함에도 고훈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붓 터치와 색감만으로도 율동감과 서술성을 갖추고 감정을 융화시키던 아이가.
<손님>, <가면>, <총탄> 그리고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에 이르기까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매번 달리했다.
부러운 재능이었다.
“왜요?”
“…….”
“뭐 묻었어요?”
이미 오래 전 앙리 마르소는 고훈을 향한 열등감을 인정했다.
소년의 그림에 이끌리는 자신조차 사랑하기로 했다.
저열한 감정을 느낀 본인을 용서하지 못했던 나르시시스트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마음을 비집고 튀어 오르던 열등감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괜찮네.”
* * *
‘아, 미치겠네.’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한국 공동 전시관 면접장에 도착한 백설기가 건물 입구 앞에서 갈팡질팡했다.
‘어떡하지?’
고수열, 장미래가 개관한 것이나 다름없는 프랑스‧한국 공동 전시관에 합류하게 되면 최규서와 척지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한국대 재학시절부터 줄곧 최규서를 지켜봐 온 백설기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높아 보이지만, 최규서는 장미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만 내버려 두지 않겠지.’
백설기가 땅을 찼다.
가까운 후배이자 비서로 일해 온 본인이 장미래에게 가버리면, 그러지 않아도 피해의식을 가진 최규서가 어찌 나올지 몰랐다.
‘그냥 돌아갈까.’
백설기가 방향을 틀었다.
일이 잘못되면 국내 활동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몰랐다.
그보단 최규서 밑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건물 주변을 맴돌았다.
‘아니야. 합격한 것도 아니고.’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권위 있는 비엔날레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내후년에 같은 기회가 있을지도 의문인데다 또다시 2년이나 허비할 순 없었다.
‘그래. 솔직히 내가 무슨 잘못이야. 5년 동안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솔직히 너무했잖아.’
전시회를 인질로 온갖 개인적인 일까지 요구했던 최규서에게 감정이 쌓인 지 오래였다.
“하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래. 일단 해봐. 해보고 생각해. 언제까지 쫄아 있을 거야.’
각오를 다진 백설기가 면접자 대기실로 향했다.
최규서의 보복이 두렵고 면접 걱정에 가슴이 터질듯했으나 어떻게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나 아직 안 죽었어.’
마땅한 전시 이력은 없었지만 학부생일 적에는 제법 상도 받고, 주변에서 인정받았었다.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자신도 괜찮은 작가라고 생각하며, 가능성이 있다며 긴장을 풀고자 했다.
백설기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제육덮밥 냄새가 비강을 타고 들어왔다.
‘……이게 무슨 냄새야?’
슬며시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웬 거지꼴을 한 남자가 밥버거를 입에 문 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