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229화 (184/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229화

43. 죄와 벌(5)

한편.

<앙리 마르소 002>를 찾은 장미래는 데미안 카터와 관련한 일은 잠시 잊고 웃음을 터뜨렸다.

앙리 마르소의 자화상은 높이가 3.8m나 되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맑게 빛났고 결의에 차 굳게 다문 입은 고집스러운 성격을 있는 그대로 내비쳤다.

“세상에.”

줄을 따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녀는 앙리 마르소의 놀랍도록 정교한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벽을 일반 3D 프린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살아 숨 쉬는 듯한 피붓결과 당장에라도 바람에 휘날릴 것처럼 한 올 한 올 표현된 머리카락을 살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가공한 거야?”

장미래가 고훈에게 물었다.

“네. 지금은 감도가 안 좋아서 한 번 더 손봐야 해요.”

“그렇지?”

“네. 그럴 필요 없는 수준까지 만드는 게 목표래요.”

장미래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움직이는 줄을 따라 걸었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된 3.8m 높이의 사람 얼굴에 다가가자 거부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비대한 자아에 다가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좀 이상하다.”

장미래는 <앙리 마르소 002>의 내부가 어떨지 기대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어색해했다.

“매일 그래요.”

고훈이 호응했다.

“매일?”

“꽤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익숙해질 만한데 매번 이상하거든요.”

“흐.”

“대단한 사람인 것도 알겠고 이상한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꺼리게 돼요.”

“알 것 같아.”

“근데 또 저 인간이 왜 저럴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걸 본인도 잘 아는 모양이에요.”

장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낯설고 꺼려지면서도 저 안에 뭐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

어쩌면 <앙리 마르소 002>는 본인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간 좀 걸리겠는데?”

장미래가 까치발을 들어 앞쪽을 살폈다.

최대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탓에 많은 관람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의도했더라고요. 기왕이면 더 크게 만들면 구경하기 편하지 않냐고 했는데.”

“했는데?”

“자기 속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대요.”

“흐항핰핳. 미쳤나 봐. 진짜. 정말?”

고훈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장미래가 한 번 더 웃었다.

“아, 근데 되게 잘 짰다. 멀리서 보면 되게 잘 보이잖아. 워낙 유명하니까. 근데 안에서 볼 기회는 적고.”

장미래는 앙리 마르소의 표현 방식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자화상은 자아 성찰의 결과물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앙리 마르소 002>는 프랑스 미술계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본인과 개인으로서의 앙리 마르소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아직 내부를 보지 못하여.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은지 알 순 없지만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하는 사람도 드물어.’

장미래는 800여 점에 달하는 자화상을 발표했음에도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앙리 마르소의 자화상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만큼 진지하게 생각했겠지.’

앙리 마르소는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800여 점의 자화상으로 보여주었다.

“대단해요.”

고훈이 입을 열었다.

“어떤 점이?”

“자화상만 다루는데 표현 방식이 매번 달라지는 점이요.”

장미래는 고훈도 자신과 같은 생각임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랑받는 것 같아. 확신이 없는 시대니까 마르소에게 대리만족하는 거 아닐까?”

“확신이 없어요?”

“음. 이야기가 좀 돌 것 같은데.”

“괜찮아요.”

장미래는 어린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고훈이 이전에 <자유론>을 받아들였던 일을 떠올렸다.

고훈이라면 충분히 알아들으리라 생각하며 말을 풀어냈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인 버스 같은 건 생각도 못 했거든. 키오스크도 처음엔 적응 못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못 다루는 사람이 없을 정도고.”

자율운행 서비스가 보편화된 이후 정해진 길을 운행하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은 중앙통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생산업 등 자동화, 무인화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가정 또한 마찬가지.

개량을 거듭한 로봇 청소기는 설정한 시간에 맞춰 바닥을 쓸고 닦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먼지 통을 비우고 걸레를 빠는 데 이르렀다.

그런 과정에서 노동력을 상실한 인간은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졌다.

일해서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없음에 좌절했고 끝내 본인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자동화가 이루어진 쉬민케 물감 공장에서 그와 같은 상황을 접한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번듯한 직장 얻는 게 행복이라고 가르쳤어.”

“네.”

“근데 그렇게 해서 직장 들어가 보니까 아니거든. 상사 비위 맞추고, 매일 야근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내가 뭐하러 그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는 거야. 직장 다니는 이유도 모르겠고. 집안일 안 해도 되니까 시간은 남는데 막상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고훈은 오래전 구필 화랑에 근무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상황과 완전히 같진 않지만 부자들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허영심을 채울 뿐이었던 일상에 염증을 느꼈었다.

현대인이 느끼는 마음이 그때 느낀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경쟁에서 박탈된 사람도 문제야. 기술을 개발하고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거든. 유럽은 복지가 잘 마련되어서 굶어 죽을 일은 없지만, 어떻게 먹고 놀기만 하고 살아.”

고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요로운 삶을 바랐다면 이미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과 좋은 집만 갖췄다고 모든 욕구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훈이 그림을 그리고 소통하길 바라는 것처럼.

차시현은 할아버지와 아빠가 화해하길 바랐고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는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회를 원했다.

생리적 욕구를 만족한 인간은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길 바랐다.

생존이 충족되면 사람과 소통하길 바라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따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고훈은 가끔 인터넷을 통해 봤던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는 말이 슬프게 느껴졌다.

생존만으로도 치열하다는 뜻이니까.

“마르소 작품은 거기서 생기는 공허함 같은 걸 채워주는 것 같아. 저 사람도 자기를 저렇게 열심히 돌아보고 있구나. 나는 어떨까 하고.”

직장인이 아닌 나.

일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였다.

개인의 부품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부품이 돼버린 이와 부품조차 될 수 없는 개인 모두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아, 다음에 들어갈 수 있나?”

<앙리 마르소 002>로 대화를 나누던 장미래와 고훈이 마침내 다음 차례를 앞두었다.

앞 사람이 밖으로 나서고 30초 동안 관람할 기회를 얻은 장미래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감탄했다.

“와.”

<앙리 마르소 002>의 내부는 파리 전경을 담고 있었다.

희망에 찬 빛으로 가득한 파리의 아침이었다.

앵테르미탕을 개선하고 개벽을 개발 중인 앙리 마르소가 이룩하고자 하는 파리가 이러할까.

“멋진데?”

장미래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 * *

저녁 7시.

<앙리 마르소 002>를 관람하고 나선 뉴튜버 알렉스 우드가 펄쩍 뛰었다.

“미쳤어. 진짜 이건 미쳤다고 봐 나는. 진짜 4시간 기다렸던 보람이 있었어. 다들 기회가 있으면 꼭 한 번 보세요.”

시청자들이 유럽까지 어떻게 가냐고 불평하자, 알렉스는 <앙리 마르소 002>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안에 뭐가 있었냐고? 파리였어.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건 아니고 에펠탑이나 개선문 같은 랜드마크 정도만 알아볼 수 있게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거야. 해가 막 뜨기 시작한 무렵처럼 보였는데 자기가 만들 파리가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개벽으로 말이야. 풍경화도 그렇게 잘 그릴 줄은 몰랐네. 워낙 자화상만 그렸으니까. 아니지. 넓은 의미로 파리 전경 자체가 자화상이지? 진짜 엄청났어.”

알렉스는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진짜 멋진 게 처음엔 너무 사실적이라 안에 들어가는 게 되게 이상했거든.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와. 딱 이해가 되더라고. 앙리 마르소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구태의연한 시대를 허물고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잖아? 딱 그 말 그대로였어. 소름 돋는 게 뭔 줄 알아?”

└놀리냐?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내부를 볼 수 없었던 시청자들이 원성을 높이자 알렉스가 곧장 이야기를 풀어냈다.

“안쪽에 올라설 수 있는 계단이 있거든? 거기 올라가면 눈동자 위치에 딱 서게 되는데 대박. 눈동자에 내부가 비치는 거야. 파리 상공 위에 내가 떠 있는 느낌으로 보여. 그게 어떤 느낌인지 직접 느껴봐야 해. 정말로.”

채팅창에 데미안 카터에 관한 질문이 올라왔다.

“데미안 카터 작품은 뭐랄까. 쉽지 않더라. 사파이어랑 루비,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으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인데 뭐랄까. 형태가 많이 일그러져 있었어. 스테인드글라스가 성경 이야기를 표현한 경우가 많잖아. 그래서 뭔가 관념적인 걸 바꾸려는 의도는 보이는데 명확히 모르겠더라.”

└누가 이길 것 같음?

└촬영해 주면 안 됨?? 킹작권 때문에 안 되나?

└보석 가짜라고 하던데.

“맞다. 알고 보니 보석은 가짜라고 하더라? 데미안 카터가 직접 세공했대. 누가 이길지는 어…… 솔직히 앙리 마르소. 기다려서 봐야 해서 그런지 몰라도 대기줄부터 차이가 나더라고.”

알렉스는 나름의 기준으로 두 작가를 비교했다.

“일단 두 사람 다 이목은 끌었어. 3.8m짜리 앙리 마르소 얼굴을 어떻게 그냥 지나쳐. 그건 못 참지. 데미안 카터 작품도 4m로 엄청 큰데 멀리서 보면 어, 뭐지? 하고 다가갈 수밖에 없더라. 첫인상은 데미안 카터가 좀 더 나았어. 보석들이 가짜라곤 해도 조명 때문에 엄청 빛났거든. 반면에 앙리 마르소는 조금 부담스럽고.”

알렉스가 시계를 확인했다.

“그런데 막상 두 작품을 보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은 좀 달라. 앙리 마르소는 좀 더 알게 되었다? 감탄했다? 재밌다? 이런 느낌이고 데미안 카터는 어 뭐지? 하는 느낌이야.”

곧 결과가 발표될 예정되었기에 알렉스는 서둘러 세미나실을 찾았다.

└데미안 기사 계속 올라오던데.

└앙리 작품은 감상한 사람이 적어서 불리하지 않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진짜 들어가 봐야 진가가 나오거든. 어? 대박. 사라 조지아야. 사라! 사라!”

알렉스가 발표회장 앞에 서 있는 미국 화가 사라 조지아를 발견하곤 기뻐했다.1)

솔직하고 다채로운 색감과 전통적 구도 위에 펼쳐낸 해체적인 묘사로 사랑받는 젊은 화가였다.

“알렉스.”

“잠깐 인터뷰 가능해요?”

“물론이죠. 지금 방송 중이에요? 안녕하세요.”

└진짜 사라 조지아잖아.

└미쳤다. 사라하고도 아는 사이야?

└이 누추한 곳에 왜…….

“누추하긴 뭐가 누추해!”

알렉스가 장난스레 화를 내곤 사라 조지아를 카메라에 담았다.

“로테르담에는 어쩐 일이에요?”

“이런 일에 빠질 수 있나요. 개벽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와 봤어요.”

“어땠나요. 표정은 좋아보이는데.”

개벽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어낸 데 반해, 일부 예술가 사이에서는 그저 편리한 도구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기에 한 질문이었다.

“최고였죠. 앙리 마르소는 개벽으로 미술을 경험할 수 있게 했어요. 그야말로 마르소의 파리로 여행 간 기분이었죠. 정말 멋졌어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알렉스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음에 기뻐하며 다음 질문을 꺼냈다.

“그럼 데미안 카터는요?”

사라 조지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알렉스는 그녀가 데미안 카터의 <눈부신 삶>에 이렇다 할 감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혹은 표현하기 어렵거나.

알렉스의 예상대로 사라 조지아는 웃으며 답변을 피했다.

“지금까지 진짜 보석을 사용해 오다가 모조품을 만들어 쓴 점은 궁금하네요.”

* * *

1)Shara Hughes(American, born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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