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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반 고흐-156화 (111/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156화

34. 여름 너울(2)

마침 인터뷰를 마친 고훈이 복도에 나와 있었다.

“작가님.”

“먼저 가 봐. 저놈하고 이야기하고 갈 테니.”

“네.”

혼자 있을 미셸 플라티니에게 아르센을 보낸 앙리 마르소가 고훈에게 다가갔다.

“뭐 하냐.”

고훈이 앙리 마르소를 올려다보곤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냉랭한 태도였다.

‘이건 또 왜 이래?’

싫지 않다고 할 땐 언제고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꾸니 종잡을 수 없었다.

“뭐 하냐고.”

“뭘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이 꼬맹이가.”

“다 끝났어?”

앙리 마르소가 따지고 들려던 차 차시현이 다가왔다. 소년은 앙리 마르소를 올려다보곤 감탄했다.

“멋있다.”

“저게?”

“응. 이 아저씨가 앙리 마르소지?”

두 소년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름을 언급하며 올려다보는 선망의 눈빛만으로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내 팬이냐?”

“뭐라고 하시는데?”

“자기 팬이냬. 얘 영어 하니까 직접 말해요.”

고훈의 말에 앙리 마르소가 차시현을 훑었다.

어린 나이에 다국어를 구사하는 걸 보아 교육 수준은 높으나.

헤이마켓 체크 셔츠를 입고 블레이크 제법으로 만든 구두를 신는 등 브랜드를 걸치는 걸 보니 집안이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1)

“팬 아니에요. 차시현입니다. 훈이 친구예요.”

차시현이 꾸벅 인사했지만 앙리 마르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팬이 아니라고 하니 조금의 흥미도 느낄 수 없었다.

현재 그의 머릿속은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 공모전에 참가하여 고훈을 누를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선을 다해.”

“뭘요.”

“공모전.”

“그럴 거예요.”

“죽을 각오로 해. 덜떨어진 놈들한테 밀리면 가만 안 둬.”

고훈이 고개를 저었다.

어련히 알아서 할 일을 굳이 반복해 강요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저씨.”

차시현이 앙리 마르소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훈이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뭐?”

“왜 자꾸 훈이 괴롭히고 못살게 해요. 어른이잖아요. 그러면 안 돼요.”

“할아버지 그림으로 나 놀리려고 했대.”

“정말? 선물 받은 걸로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저씨 진짜 나쁘다.”

고훈이 설움을 토로하자 차시현이 맞장구를 쳤다.

앙리 마르소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훈이랑 놀고 싶으면 그냥 놀고 싶다고 하시는 건 어때요?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치고 괴롭히는 거 요즘은 초등학생도 창피해서 안 해요.”

“잘한다.”

고훈이 추임새를 넣으며 차시현을 응원했다.

“다시 말해 봐.”

앙리 마르소가 눈에 핏발을 세우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얼굴로 위협했다.

친구를 위해 용기 낸 차시현이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입을 내밀었다.

“흐이이잉.”

그러나 자기보다 한참 큰 남자가 죽일 듯이 노려보니 겁이 났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고훈이 차시현을 안고 달랬다.

“괜찮아. 괜찮아. 저거 한주먹 거리도 안 돼.”

“끄아아앙!”

친구가 달래주자 안도하는 한편 설움이 북받쳤다.

“뭐야?”

“고훈이랑 앙리잖아.”

“무슨 일이지?”

“쟤는 누군데 울어?”

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서울 미술관 로비 중앙으로 이목이 쏠렸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앙리 마르소와 두 소년을 살폈다.

“설마 울린 거야?”

“에이.”

“비.”

“애기 부모는 없나? 너무 서럽게 우는데.”

이상한 조짐을 포착한 기자들도 하나둘씩 모이던 차, 고훈이 분이 덜 풀린 앙리 마르소를 탓했다.

“달래지 않고 뭐 해요!”

“내가 왜 달래줘?”

“흐이이윽.”

“당신이 울렸잖아!”

“저놈이 먼저 시작했어!”

“끄아아아앙!”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곧 서울 미술관 직원들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 일 아니에요. 괜찮다니까. 울지 마. 괜찮아.”

“흐응. 흐윽. 흡.”

“뚝.”

“흑. 흐끕. 힉.”

“호롤로로롤로. 까꿍.”

“……뭐 해?”

“달래주잖아.”

“나 아기 아니야.”

고훈이 차시현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된 건데?”

“몰라. 앙리랑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운 거 같은데.”

“쟤가 앙리한테 고훈 괴롭히지 말라고 했는데 앙리가 한 번 더 말해 보라고 했어. 막 노려보면서.”

“무서웠나 보네.”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했다.”

“그러게. 애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기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앙리 마르소와 고훈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이를 울린 게 사실입니까?”

“무슨 대화를 나누셨던 건가요!”

협회 탈퇴 성명을 발표한 3,000개의 쓰레기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고훈 그리고 건방지게 훈계하던 꼬맹이까지 짜증이 겹쳐 있었다.

그런 와중에 기자들까지 달려드니 앙리 마르소가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 울렸다!”

질문 공세를 이어가던 기자들도 주춤했다.

“뭐? 친해지고 싶어서 괴롭히는 건 초등학생도 안 그래? 누가 친해지고 싶댔어? 괴롭혔다고? 내가? 이 앙리 마르소가?”

앙리 마르소의 말을 알아들은 몇몇 이가 일행들과 수군거렸다.

“앙리가 훈이 괴롭히는 거 같아서 저 애가 말렸나 봐.”

“그런데 애는 왜 울려?”

“글쎄. 훈이는 왜 괴롭히지. 둘이 친한 거 아니었나?”

“친해지고 싶었대. 왜. 어린애들 관심 있는 애 괜히 괴롭히고 그러잖아.”

“어머머. 세상에.”

앙리 마르소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킥킥거리며 웃는 모습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저것들 왜 저래.”

“몰라요.”

“빨리 안 불어?”

고훈은 앙리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차시현을 달랬다.

그 모습에 또 화가 난 앙리가 소리 지르려고 할 때 아르센과 미셸 플라티니가 그에게 다가갔다.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이해한 미셸이 기자들과 관람객을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놀라셨죠? 마르소 작가가 훈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장난을 좀 쳤나 봐요. 당황해서 그래요. 그렇죠, 작가님?”

“뭔 소리야?”

미셸이 고개를 돌리곤 사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죠?”

그러나 눈만은 살기로 가득했다.

당장 상황을 수습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는 뜻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앙리 마르소가 콧방귀를 뀌곤 고개를 돌리자 미셸이 나지막이 그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읊조렸다.

“엄마한테 이른다.”

그 말에 앙리 마르소가 얼굴을 구겼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고.

앙리 마르소는 연인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말았다.

“들었잖아! 뭘 자꾸 물어!”

* * *

[친해지길 바라? 앙리 마르소의 사랑앓이, “고훈과 친해지고 싶어”]

어제, 고수열 화백의 전시회 ‘대한’이 열리는 서울 미술관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EI제당 차재우 대표의 장남 차시현 군(9)이 프랑스 유명 화가 앙리 마르소(33)와 대화 도중 울음을 터뜨린 일이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앙리 마르소가 고훈 작가에게 화를 내며 말하자 차 군이 말리고 나섰다며, 이에 앙리 마르소가 고함을 치자 겁을 먹었다고 전했다.

취재 결과 당시 앙리 마르소는 고훈에게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 공모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고.

마르소 갤러리 대표 미셸 플라티니는 앙리 마르소 특유의 거친 언행으로 인한 오해라고 설명하며 서울 미술관과 관람객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는 앙리 마르소가 차 군에게 직접 사과 편지를 보냈음을 밝혔다.

차 군 또한 인터뷰를 통해 “훈이랑 놀고 싶으면 같이 놀아요”라며 말하며 사건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한편 현재 앙리 마르소는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가 주최하는 살롱전과 부속 공모전을 개편하고 있다.

협회 소속 평론가 및 예술가 3,000명이 이를 반대하고 나선 탓에 계획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치겠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

└앙리 진짜 왤케 귀엽냨ㅋㅋㅋㅋ

└10살 11살 애기들하고 놀고 싶었어요? 그랬어요? 우쭙쭙쭙쭙쭙.

└기자 미쳤나ㅋㅋㅋㅋㅋ 사랑앓이ㅋㅋㅋㅋ

└웃다가 마지막에 싸해지네.

└ㅇㅇ 프랑스 예술 협회 입김 좀 세잖아. 뭘 하는데 3,000명이나 반대하지?

└11월에 공모전 하는데 살롱전 특별 전시회 자격 얻는 대회거든. 거기 심사위원을 없앤대.

└그럼 누가 심사해?

└심사 자체를 없애고 올 투표로 한다던데. 관람객들 상대로.

└경연 프로그램처럼 하나 보네.

└근데 그게 반대할 이유가 있나? 경연 프로그램도 전문가들 패널로 나오잖아.

└그것도 안 한다고 함. 작품이랑 관람객 사이에서 오해 만든다고.

└근데 그건 도슨트 같은 사람들 모욕하는 거 아님? 그분들은 진짜 최대한 주관 배제하고 작가 의도 전달하려는 분들인데.

└앙리 마르소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음.

└?

└자기 작품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 놨는데 그걸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앙리한테는 도리어 모욕인 거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나 귀 얇아서 이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누가 맞는지 모르겠엌ㅋㅋㅋ 도슨트나 전문가들 입장도 이해되고 앙리 말도 맞는 것 같고.

└그냥 비율 적당히 나누면 안 되나? 심사단 몇 퍼센트에 투표 몇 퍼센트 이렇게.

└앙리는 그런 거 싫대잖아 ㅋㅋ

└근데 아무리 앙리 마르소가 협회 장악했다고 해도 이런 식이면 무시 못 할 듯.

└그러게. 다른 기사 찾아보니 반대하고 나서는 사람들 계속 늘던데. 적 만들어서 좋을 거 없잖아.

└[링크][유서 깊은 살롱전의 위기]

└이 기사 보면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 살롱전이 현존하는 살롱전 중에 제일 오래되었는데, 지난 4년간 앙리 마르소에 의해 전통이 망가졌다고 함.

└엄청 공격적으로 썼네. 협회가 돈 많은 부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이미지에 타격 좀 클 것 같은데. 이런 기사 지금 엄청 많음.

└괜찮아. 우리 형 평판은 나빠질 수 없음.

└뭔 소리야.

└이보다 나쁠 수 없다고.

└헐 ㅁㅊ 기사 떴다.

└[링크][앙리 마르소, 프랑스 국립 예술 협회원 3,000명 제명 지시]

└와. 워딩 봐. “쓰레기는 많을수록 악취를 풍긴다.”래.

└뭔 일이 있었나? 앙리가 말 막하기는 한데 헛소리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러게.

앙리 마르소는 한국발 기사를 인용하여 낸 기사를 보며 치를 떨었다.

영락없이 고훈과 친해지고 싶어서 집적거린 사람으로 알려지고 말았다.

그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미셸에게 소리쳤다.

“어쩔 거야!”

“너야말로 어쩔 거야!”

뜻하지 않은 고함에 앙리가 짐짓 놀랐다.

“대체 생각이 있어? 없어?”

“뭘.”

“그 사람들 잘라서 어쩌려고. 네 맘에 안 들면 다 배제할 거야? 네 맘에 드는 사람이 있긴 해?”

“너.”

“나 지금 진지해.”

미셸이 숨을 고르며 노려보자 앙리 마르소가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눈을 감은 채 잠시 간격을 두곤 입을 열었다.

“앵테르미탕이 왜 있어.”

연인의 진지한 태도에 미셸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생계 때문에 예술 못 하는 사람들 도와주려는 거잖아.”

“그럼 왜 14만 명밖에 안 돼.”

미셸이 답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공연, 예술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매해 늘어나 2028년 현재는 58만 명이 앵테르미탕에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중 예술인의 최소 생계비를 지원해 주는 앵테르미탕 제도의 수혜 대상은 14만 명뿐이었다.

앙리 마르소가 단호히 말했다.

“쓰레기들 때문이야.”

“…….”

“협회에 속한 인간들이 무슨 짓으로 노동 시간을 계산하는지 알아보면 구역질이 나.”

* * *

1)헤이마켓 체크는 버버리, 블레이크 제법으로 만든 구두는 타니노 크리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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