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22화
29. 해바라기씨(5)
이인호가 기억을 더듬었다.
고훈을 취재한 것을 계기로 미술계 관련 소식을 꾸준히 소화한 덕분에 금방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기울어진 호 만드신 분인가요?”1)
불과 작년만 해도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이인호가 리처드 사라의 대표작을 언급하니 장미래가 짐짓 놀랐다.
“맞아요.”
그녀가 예전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었다.
“대학교 2학년 다닐 때였을 거예요. 그때 서울역 광장에 전시된 슈즈 트리로 말이 많았거든요.”
“아, 기억납니다.”
이인호가 맞장구쳤다.
2017년, 서울로 7017 서울역 광장에 전시된 <슈즈 트리>라는 작품이 떠올랐다.2)
“선생님께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 데리고 가셔서 같이 구경했어요.”
이인호가 적당히 반응하며 장미래가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다음 수업에 리처드 사라의 기울어진 호를 주제로 이야기해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아, 이 수업하시려고 슈즈 트리를 보여주셨구나 싶었죠.”
이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나요?”
“아무래도 공공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논란이 컸던 일화니까요.”
이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 수업에서 두 시간을 말씀하셨고요.”
“넿.”
당시 일을 떠올린 장미래가 민망함에 웃음을 터뜨렸다.
“쉬운 문제가 아니었고 지금은 또 다르게 보기도 하는데 그때는 하나만 생각했어요.”
“하나만 보셨다는 건…….”
“지금도 그렇지만 리처드 사라의 기울어진 호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는 정말 논란이 컸어요. 조달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광장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니까 불편해했죠.”
“그렇겠네요.”
이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니던 길에 가로 37m짜리 벽이 생겨 돌아가게 된다면 본인도 불편할 것 같았다.
“거부감이 심한 사람들은 욕도 했어요. 세금으로 고철을 17만 달러나 주고 산 것으로도 모자라 일상까지 방해하냐고. 그런 게 무슨 예술이냐고요.”
이인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알기로 <기울어진 호>는 1980년대 작품이었다.
그 당시에 17만 달러라면 적은 금액이 결코 아니었다.
2028년을 기준으로 화폐가치를 따지면 6~7배는 될 터.3)
이인호 기자는 그만한 돈을 들여서까지 고철 장벽을 설치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술가인 장미래는 그 의미를 알고 있을 거라 판단했고 부족한 식견을 일부러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처음 손을 든 사람이 말했어요. 시민들이 불만을 꺼낸 이유가 합당하다고요. 그들이 낸 세금이 쓸데없는 곳에 사용되었다고 판단한 건 그들의 판단이라고.”4)
미술대 대학생의 발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말이었다.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였으니까 곧장 반론이 이어졌죠. 세금을 낸 사람 중에는 그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라고요. 그 사람에게도 작품을 즐길 권리가 있지 않냐고.”
“음.”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여 이인호는 펜을 내려놓고 장미래의 말에 귀 기울였다.
녹음기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나섰어요. 청문회 배심원단이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줌으로써 기울어진 호가 철거되었으니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리처드 사라의 실패 아니냐고.”
이인호가 깜짝 놀랐다.
“미대생도 그런 말을 하는군요.”
“생각은 다양하니까요.”
장미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거기에 누가 그런 말을 꺼냈어요. 애초에 이해를 바라고 만든 게 아니라고.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 설치하는 걸 막아서는 건 폭력이라고.”
이인호가 눈매를 좁히고 생각에 빠졌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작업을 의뢰받아 예술품을 설치하는 건 예술가의 자유가 아닌가 싶었다.
“역겹더라고요.”
“네?”
“애초에 이해를 바라고 만든 게 아니라는 말이요.”
장미래가 태연히 어깨를 으쓱였다.
“리처드 사라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부터 말씀드릴게요. 슈즈 트리도요.”
기사를 곡해하여 쓰지 말라는 말이었다.
“네. 걱정 마십쇼.”
“큰 건물 앞에는 건축비용의 일정 부분을 예술 작품 설치에 써야 하는 규정이 있다는 거 아세요?”
“들어본 적 있습니다.”
“기울어진 호에 들어간 17만 달러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연방조달청에서 리처드 사라에게 의뢰한 거죠.”
“아.”
“이해를 바란 게 아니라는 말이 마치 법이 확보한 울타리를 자기 집처럼 여기는 것처럼 들렸어요. 제정신인가 싶었죠.”
이인호가 입술을 모으자 장미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기울어진 호의 작품성이나 대중들의 시선 중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 말씀하실 줄 알았거든요.”
장미래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하면 당시에는 시민들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답이 뭔지 모르겠어요.”
“계속 말씀하시죠.”
이인호가 펜을 들었다.
“그때는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것보다 그 애 말에 꽂혔어요. 예술 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을 생각을 안 하고 정해진 돈을 타 먹을 생각만 하냐고 막 쏘아붙였죠.”
이인호가 턱을 쓸며 듣다가 질문을 던졌다.
“사실 현대 미술, 그러니까 동시대 미술이라고 하면 대다수가 어려워합니다. 약간 그들만의 세계 같죠.”
“맞아요.”
“그래서 저는 도리어 대중성? 시장성을 생각하시는 교수님이 더 신기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미래가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동시대 예술이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고 실제로도 그렇게 기능하는 건 사실이에요. 자기들이 순수예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저는 이 시대의 예술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생계 문제 때문이겠죠?”
“네. 전업 작가로 살아가려면 작품을 팔아야 하고 이해와 공감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들이 말하는 순수한 예술과는 거리가 있죠.”
“그러면 교수님은 본인을 동시대 미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예를 들어 상업 작가라든지.”
장미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이 시대의 예술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팔면 상업 미술,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면 동시대 예술이라는 구분은 옳지 않아요. 굳이 표현하자면 동시대 예술은 새로움과 비평적, 상업적 소진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현상이죠.”5)
이인호가 턱을 괸 채 생각을 정리했다.
“동시대 미술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순수함을 좇진 않는다는 말씀이시네요. 상업 미술도 동시대 미술이라고.”
“네.”
장미래가 잔을 비웠다.
“다시 돌아와서. 창작자가 어떤 태도로 활동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울어진 호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그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어요.”
장미래가 리처드 사라의 말을 인용했다.
관객은 광장을 가로지르는 자신과 자신의 움직임을 인식하게 된다. 관객의 이동에 따라 조각은 변화한다. 조각의 수축과 확장은 관객의 움직임의 결과다.6)
“아주 멋진 시도였죠. 그는 광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연출했어요.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주려고 했죠.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원했을까요?”
“그랬다면 철거되지 않았겠죠.”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리처드 사라는 본인의 예술 행위를 했을 뿐이지만 동시에 조달청 광장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한 거예요. 법이 약속한 돈을 받고요.”
“흠.”
“그 일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도 많아요. 특히 이쪽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요. 이해를 구하지 않았다고 말한 아이도 마찬가지고요.”
“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했다고 주장하고 대중의 무지를 들먹이기도 해요.”
“그건…….”
“대중이 교양이 없어서, 인내심이 없어서 못 받아들이는 거라고. 언젠가는 이 예술성을 인정하게 될 거라고 말하죠. 예전 인상주의자들도 인정받지 못했고 후대에 가서야 사랑받았다는 말을 덧붙여서요.”
이인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확실히 시대를 한발 앞서간 위대한 천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에서 교묘하게 어떤 부분을 떼고 말하는 거예요. 인상주의자들이 나중에 사랑받았다고 하는데, 결국 마네와 모네는 살아생전에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크게 사랑받았어요.”
“뭐가 다른 건가요?”
“인상주의자들은 기득권에게는 부정되었지만 대중을 대했거든요.”
장미래가 깍지를 꼈다.
“대중에게 기다림을 요구하고 자기가 시대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단히 오해하고 있어요. 예술을 완성하는 건 대중이에요.”
이인호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난해한 표현 방식. 도슨트나 큐레이터조차 작가가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 또 작가가 나서야만 이뤄지는 담론이 과연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운 인상주의자들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터부시되었던 풍속화를 그림으로써 주류에 대항하고 민중의 삶에서 새로운 가치를 끌어냈어요. 결국 대중은 그런 그들을 알아봤죠.”
장미래가 말을 쏟아내다가 숨을 돌렸다.
이인호는 녹음기가 제 성능을 제대로 발휘해 주고 있기를 바라며 액정을 확인했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국전에서 부정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기사로는 접했습니다.”
장미래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술이 이해를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했던 아이를 잔뜩 쏘아붙인 이후.
그녀가 미술협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수준 이하의 작품으로 강탈한 그녀의 비웃음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걸 보면 아, 지금 동시대 예술과 순수예술을 말하며 떠드는 인간들이 저들이구나. 권력을 쥐고 떠드는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화가 났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이 그렇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동조하는 사람이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것도.”
이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래는 현재 미술계를 이끄는 기성 작가와 협회, 평단이 또 다른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예술을 하며 국가 예산을 받아먹는 것을 경계하는데 미술대학교 학생이 그에 동조하니 화가 났다는 말이었다.
“여기까지가 당시에 제가 생각했던 이야기고.”
“네?”
“네?”
“아, 아뇨. 계속하시죠.”
너무 많은 내용을 들어 머리가 어지럽던 이인호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다.
“고수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어요.”
장미래가 피식 웃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많더라고요.”
“소개 좀 해주시겠습니까?”
“유명한 사람을 꼽으면 페르디난도 곤잘레스나 앙리 마르소가 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람이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어요. 문제는 협회나 평단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하는 사람들이었죠. 문화 진흥 예산 독점해서 나눠 먹는 것들이요.”
“하하.”
“슈즈 트리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지만 제가 알기로 그거 설치하신 분께서는 무보수로 일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전부 설치품을 위한 돈이었다고.”
“아.”
“그런 걸 비판할 수 있고 불편함을 표출할 순 있죠. 하지만 적어도 기울어진 호나 슈즈 트리가 제가 생각했던 그런 부조리함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 후로 고민이 이어지고 있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공미술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고.”
“없을까요?”
“글쎄요.”
장미래가 고민했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자유의 문제라고 봐요. 그리고 지금은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서 완벽히 답을 못 내리고 있고요. 이러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무섭더라고요.”
“하핳.”
이인호는 장미래의 솔직함이 도리어 진솔하게 다가왔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를 섣불리 결론 짓기보다 10년째 고민하는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유론이라는 책 아세요?”
“모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그 사람도 자유라는 것에 고민이 많았나 봐요. 책에서도 결론은 내지 않았는데, 적어도 침해받아선 안 되는 자유는 있다고 말했어요.”
이인호가 상체를 기울여 관심을 보였다.
“생각의 자유, 취향의 자유, 결사의 자유만은 누구에게도 침해되어선 안 된다고 했어요.”
“확실히 그렇네요.”
“네. 문제는 이것도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 가능하다는 거예요. 생각할 순 있지만 그것을 말이든 글이든 예술작품으로 드러내는 순간 이해충돌이 생기고 말아요. 기울어진 호처럼요.”
“…….”
“기자님이 듣기에도 어렵죠?”
“기사로는 못 쓸 것 같네요.”
두 사람이 작게 웃었다.
* * *
1)기울어진 호, 리처드 세라, 1981년 설치~1989년 철거
뉴욕 맨해튼 페더럴 플라자에 설치된 대형 미술품으로 가로 약 37m, 세로 약 3.7m, 두께 약 6.4㎝다.
광장을 분리함으로써 익숙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제작비로 17만 5,000달러가 들었다.
2)슈즈 트리, 황지해, 2017.
2017년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플라워 페스티벌과 함께 전시된 길이 약 100m, 높이 약 17m, 두께 약 2.5m의 설치미술품이자 조형 아트.
3)CPI소비자물가지수의 화폐가치계산기에서는 1980년과 2020년의 화폐가치 차이를 0.209배로 측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한화에 해당하는 추정치로 달러와 같을 수 없으며, 본문에 소개된 2028년과의 화폐가치 차이는 어디까지나 임의로 설정한 수치임을 밝힙니다.
4)청사 건물을 짓는 공금 중 일부가 사용되었다.
5)미술연구가 패멀라 리의 말 인용구.
“동시대미술사는 언제나 영속적으로 진행 중의 상태라 미성숙하다. 새로움과 비평적, 상업적 소진 사이를 끝없이 왕복하기 때문이다.”
6)리처드 세라의 발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