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반 고흐 120화
29. 해바라기씨(3)
마음에 드는 발상을 접어야 할 때만큼 아쉬운 일도 없다.
유리를 뚫어낸 이미지에 꽂히는 바람에 다른 구상이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첫 발상에 매몰되어 더 나은 작품을 그려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법.
언젠가는 써먹는 날이 올 거라고 위로하며 다른 방법을 찾았다.
“훈아, 꼭꼭 씹어 먹어야지.”
“네.”
아침으로 해주신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는데 내가 먹은 것 외에는 그대로다.
내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양보하고 계신 듯해 할아버지의 숟가락에 계란말이를 올렸다.
“할아버지 먹고 있는데.”
“안 드시잖아요.”
그건 그렇고.
아주 새로운 시도로 시야를 바닥에 두면 어떨까.
인물이 투명한 유리 위에 서 있고 그것을 아래에서 위로 관찰하는 구도라면 사람들의 표정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자, 훈이 많이 먹어.”
“저도 먹고 있어요.”
확실히 도전해 볼 만한 일이나 확신은 없다.
사실 표정 같은 경우는 노먼 감독과 배우들의 권한이다.
노먼은 콘셉트 아트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한계를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이 새로운 도전에서 타협하고 싶진 않다.
질감과 색에 집중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목표를 두고 고민하는 게 즐겁다.
이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낼 순간 완성된 그림이 어떨지 기대되어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며 밥을 먹는데 할아버지가 또 계란말이를 안 드신다. 이번에는 아예 입에 가져다 드렸다.
“헣헛. 할아버지 먹고 있다니까?”
“같이 먹어야 맛있어요.”
그나저나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슬슬 노먼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고 작업물을 공유하는 콘셉트 아트 디자이너들도 한 명씩 나오고 있다.
학교에 가는 도중 다른 사람은 어떤 그림을 그렸나 궁금해서 살펴보니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각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면서도 인상적이다.
치밀하고 노련한 노먼 감독이 오랫동안 함께한 이유가 있었다.
“훈아, 여름 방학 때 할아버지랑 미국에 좀 다녀오자.”
“미국이요?”
“그래. 엄마아빠랑 살던 집 정리를 해야 해서.”
“네.”
학교에 도착해서 내리려는데 할아버지가 ‘부모님’의 집에서 볼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친구랑 재밌게 놀고.”
등교할 때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안 하시고 재밌게 놀라고 하신다.
내 할아버지지만 참 별나다.
복도를 지나치며 다른 사람들의 작업물을 보고 있으니 조금씩 초조해진다.
나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 텐데.
마음에 안식을 얻고자 매점에 들러 콜라 한 캔을 샀다. 한 모금 마시고 차분히 처음부터 되짚는다.
프랑스 경찰은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괴도 뤼팽을 체포하고자 한다.
신출귀몰한 뤼팽에게 매번 당하기만 하던 경찰들은 결국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막다른 곳에 뤼팽을 몰아넣는 데 성공한 경찰은 방심하지 않는다. 또 어떤 마법 같은 일로 도주할지 모르기에 총구를 들이민다.
뤼팽은 여유를 부리지만 경찰과 소년 탐정 이지도르 보트를레, 숙적 헐록 숌즈에게 포위되어 난감해한다.
연인 레이몽드와 탈출할 기회만을 엿보던 차 프랑스 경찰과 영국 탐정의 언쟁을 틈타 움직였을 때.
한 경관이 방아쇠를 당겼다.
연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레이몽드의 가슴이 붉게 물들고.
작중 내내 완벽한 모습을 보이던 뤼팽은 처음으로 무너진다.
“…….”
상황을 다시금 정리하니 내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꼭 레이몽드가 총에 맞은 후를 그려야 할까.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 그토록 슬펐던 이유는 그녀가 사형당하는 장면이나 죽고 난 모습을 그려서가 아니었다.
애틋하고 애달픈 표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황을 짐작케 한 덕이다.
상상력을 자극하자.
사람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궁금해할 수 있는 구도를 찾아야 한다.
노먼 감독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넣었을 때 이질감이 들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극단적인 구도는 피하는 게 옳을 거다.
“여기서 뭐 해?”
차시현이다.
“생각 중.”
“뭘?”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에게 콜라를 권했다.
“목 따가워서 싫어.”
이 귀한 음료가 싫다니 이상한 녀석이다.
주변을 둥글게 그려서 총구 안에서 보이는 광경으로 그릴까.
아니야.
태블릿 애플리케이션을 건들다 보니 색을 반전하는 기능이 있던데 그걸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없을까.
아니. 애플리케이션에 기본으로 깔려 있는 효과라면 이미 많이 사용되었을 터.
내게만 신선한 효과일 테고 더더군다나 구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쉬운 방법을 찾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수직 방향에서 내려다보는 건 인물과 구도가 너무 심심하고, 수직 방향에서 올려다보는 건 무척 신선하지만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힘들 듯하다.
옆으로 틀어서 인물들을 배치하는 게 가장 무난하지만 분명 그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 터.
뤼팽의 시야에 따르는 것도 괜찮아 보이나 정작 뤼팽이 드러나지 않아서 마음에 걸린다.
일촉즉발의 상황.
뤼팽은 어떻게 대처하려고 했을까.
레이몽드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 경관의 얼굴을 보고 있었겠지. 뤼팽을 놓칠 거라면 차라리 사살하려는 의도를 읽고 몸을 날렸을 거다.
“그럼 훈이는 이 이야기 보고 무슨 생각했는지 말해볼까?”
“아!”
생각났다.
모든 인물을 보이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순간 몰입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떠올랐다.
“…….”
선생님과 아이들이 나를 빤히 본다. 수업 중에 갑자기 큰 소리를 냈으니 놀랄 만도 하다.
“죄송합니다. 딴 생각했어요.”
* * *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캔버스를 찾았다.
비극의 시작이자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사물. 총알을 캔버스 가운데에 큼직하게 잡았다.
에두아르 모네와 같이 탁월한 감각은 없어서 이 총알에 사람들이 어떻게 비치는지 상상만으로는 그리기 힘들다.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원통형 물건을 구할 수 없을까 고민하며 집 안을 뒤졌다.
말았다가 펼치는 모니터도 만들면서 휘는 거울은 왜 안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이고. 훈아, 뭐 찾아?”
“휘는 거울이요. 원통 모양이면 좋아요.”
“으잉?”
할아버지에게 상황을 설명해 드리니 잠시 고민하시곤 창고에 들어가셨다.
“이거면 돼?”
“네!”
내가 바라는 모습은 아니지만 확실히 원통형 거울이다.
이거라면 주변 사물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는지 참고할 수 있으리라.
인물 배치는 옆으로 하자.
왼쪽에 이지도르 보트를레를 시작으로 헐록 숌즈를 그리고 오른쪽 끝에 결의에 찬 레이몽드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뤼팽을 둔다.
총알 표면에 사람들이 비쳐야 하니 빛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총알 표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사람들의 자세가 어떻게 뒤틀리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원통이다 보니 확실히 가운데에서 멀어질수록 변형이 심해지는데, 인물의 얼굴과 자세가 왜곡되는 걸 이용해서 더 긴박함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총알 위치는 어떻게 잡을까.
피격 직전이라면 이지도르와 헐록은 상대적으로 멀게 그려야 하고, 레이몽드와 뤼팽은 옷만 비쳐야 한다.
발사된 장소와 레이몽드 사이 중간이 적당할 듯하다.
확실히.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질감 표현은 힘들었을 거다.
할아버지의 최근 화풍을 제법 따라 해 보려고 노력했음에도 총탄의 매끈함을 표현하는 게 상당히 벅차다.
그래도.
이 총탄에 비친 비극을 완성했을 때 찾아올 희열을 알고 있기에 포기할 수 없다.
칠하고 벗기고 고민하고.
물감을 섞고 다시 섞고 붓을 씻기를 반복하다 보니 캔버스를 낭비하고 말았다.
그래도 몇 번 실패하다 보니 어떤 색을 어떻게 칠해야 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그린 총탄 표면은 제법 마음에 든다.
“훈아. 밥 먹자.”
할아버지가 마침 들어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이거 어때요?”
“오.”
할아버지가 겨우 틀을 잡은 총탄을 보며 감탄하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면 성공했다.
“이제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
“많이 연습했으니까요.”
흐뭇하게 지켜보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의아해서 고개를 기울이니 안쓰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때 프랑스 경찰들은 권총 쓰지 않았어?”
“……네.”
“권총 총알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지 않니? 탄피에서 벗어났으니 좀 더 짧고 뭉툭할 텐데.”
“…….”
그리는 데 정신이 팔려 생각지 못했다.
총알 생김새와 배치는 조절하면 된다지만 겨우 그럴 듯하게 그린 총알을 다시 그려야 한다니.
기쁨에 사로잡혀 신중하지 못한 내게 화가 난다.
“자, 자. 피자 먹고 하자.”
하지만 포테이토 피자라면 몇 시간 정도의 고생 따위 금방 잊을 수 있지.
거실 테이블에 앉아 TV를 보며 피자를 먹었다.
이제는 두세 조각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어서 이 훌륭한 음식을 만끽할 수 있다.
할아버지가 날 빤히 보신다.
“어서 드세요. 식어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 싶어서 눈을 마주하니 무슨 일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신다.
“훈아, 사고 나기 전에 일 기억 나는 거 없어?”
아침에 ‘부모님’ 집에 가보자고 하신 말이 떠올랐다. 뭔가 확인하고 싶으신 듯한데 생각날 리가 없다.
“네.”
할아버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걱정된다.
“만약에 말이다.”
할아버지가 말을 삼켰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몰라도 내게 무엇을 말할 때 저렇게 망설이는 경우를 처음 본다.
“아니다. 어서 먹자.”
고개를 저으시더니 피자를 집어든다.
괜히 내게 마늘 소스를 권하시고 김치 가져다줄까 물어보신다.
평소답지 않다. 고작 1년이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괜히.
혹시 하는 걱정이 스물스물 기어오른다.
새로운 그림을 배우는 게 너무 즐거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에 너무나 감격해서 너무 급하지 않았냐고.
돌이켜보게 된다.
할아버지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포테이토 피자를 먹을 기분이 사라져 내려놓으니 할아버지가 걱정스레 묻는다.
“왜. 벌써 배불러?”
“아뇨. 먹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고작 1년밖에 안 되었다.
기억을 잃은 만 10살 아이가 이런저런 일을 하기엔 무리가 따르지 않았을까.
‘1년?’
그러고 보니 처음 이곳에 눈을 떴을 때가 작년 이맘쯤이었다.
분명 6월 1일, 내 생일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딱 들어맞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꼭꼭 씹어먹어.”
“할아버지도 드세요.”
만약에 할아버지가 내 비밀을 알게 된다면.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당신의 손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