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반 고흐-32화 (28/454)

다시 태어난 반 고흐 32화

8. 화룡점정(4)

앙리 마르소란 남자는 과연 거만해질 만한 인물이었다.

마치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재림한 듯 완벽한 조각상이다.

근육 묘사, 피부와 옷의 질감, 당장에라도 바람에 흩날릴 것 같은 머리카락까지.

인체의 각 부위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섬세히 표현되었다.

마치 메두사의 눈을 보고 그대로 굳은 듯. 저주가 풀리면 당장이라도 다시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감히 단언하건대 저 조각상은 인간의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작품이다.

‘대리석 같은데.’

은은한 황금빛 대리석이 조명을 받아 빛나니, 마치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닌 것 같다.

‘마르소 가문의 보석.’

작품 제목 <마르소의 보석>은 저 대리석상의 모델이자 조각한 본인 앙리 마르소이리라.

그의 나르시시즘이 현실에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가 아직 작업을 끝내지 않았다는 점.

“행위 예술?”

김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행위 예술이 뭐예요?”

“아방가르드 갈래 중 하나야.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가 본인이 작품에 참가하는 거지.”

전위(Avant-Garde).

군대의 가장 앞 열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요즘에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것 같다.

그때 한 프랑스 사람이 크게 웃었다.

“역시 앙리 마르소. 이렇게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고도 인정할 수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는 <마르소의 보석>을 한 번 훑고는 주변에 말했다.

“지금 그의 행위는 만족할 수 없는 예술가의 혼을 더하고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대리석상을 만들어내고도 말이죠. 그가 자각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그런 의미로 봐야 합니다.”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한 몇몇 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앙리 마르소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닥쳐.”

그는 몹시 불쾌해 보였다.

<마르소의 보석>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앙리 마르소의 발언에 머쓱해진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자리를 피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좀 더 안으로 들어가니 앙리 마르소의 회화를 접할 수 있었다.

아홉 점의 자화상이 한 전시실에 걸려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눈과 미간만 그린 옆으로 긴 그림이다.

맑은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앙리 마르소의 얼굴이 담겨 있다.

거울을 보는 자신을 표현한 그림은 <앙리 마르소 766>란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숫자는 무슨 의미예요?”

“766번째 자화상이란 뜻이야.”

김지우가 대답해 주었다.

“네?”

바로 옆 그림 제목을 확인하니 <앙리 마르소 765>라고 적혀 있다.

자화상을 대체 얼마나 많이 그렸기에 발표한 그림이 766점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앙리 마르소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도 않아. 엄청나게 다작하는 사람이야. 모두 자화상이긴 하지만.”

김지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

나도 자화상을 많이 그리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렇게 뛰어난 미술가가 왜 미친놈 취급을 함께 받는지 알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니다.

처음 그의 성격과 언행 때문에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로 생각했지만 766점의 자화상을 그린 것을 단순히 자기애가 강한 것으로 봐야 할까.

자신을 바라보는 앙리 마르소의 눈과 마주했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앙리 마르소의 눈을 볼 수 있지만, 그림 속 앙리 마르소는 관람객을 바라보지 않는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독립된 자신을 보이고 싶은 걸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을 바라보는 평단과 대중의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그들을 비판하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알고 싶은 순수함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의 광기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알 것 같아.’

그러나 왜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자기애가 넘치는 그의 자화상을 보고 있자면 그 당당함이 놀랍기도 웃기기도 하다.

그리고.

부럽기도 하다.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확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단순히 자신의 외모와 배경에 도취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한 여정을 766점의 자화상을 그려나가는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대체 이 오묘하게 빛나는 에메랄드빛 눈을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 사색했을지.

또 얼마나 많은 붓칠을 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위태로운 자신을 단련해 나가고 있다. 그 과정이 괴롭지 않을 리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훈아, 저거 네 그림 아니야?”

김지우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옆방에 <손님>이 걸려 있다.

입구 정면, 전시실 한가운데에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맞아요.”

앙리 마르소의 자화상을 보던 사람들도 차츰 옆방으로 이동해 내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오오!”

그들과 함께 방을 옮기니 곧 탄성이 들려왔다.

“맙소사.”

뚱뚱한 중년 남자가 근사한 콧수염을 매만지며 <손님>을 살폈다.

“리처드 필립스. 네 그림 사겠다고 한 사람이야. 최소 100만 유로에.”

김지우가 귓속말했다.

어떻게 보지도 않은 그림을 사려는지. 부자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가 <손님>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서 살펴보던 차에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으니 그도 따라 웃었다.

“이거, 이렇게 가까운 곳에 함께 있는지 몰랐군.”

리처드 필립스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고생 한번 못 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딱딱하고 거친 손이다.

“고훈이에요.”

“리처드 필립스란다.”

그가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께도 아는 척했다.

“이런 손자가 있으면서 왜 자랑 한 번 안 하셨습니까.”

“허허. 그리 되었네.”

할아버지와 리처드 필립스가 제법 친근하게 악수했다.

아는 사이인 듯하다.

“정말 감탄이 나오는군요. 이런 구도는 어떻게 생각해낸 건지. 해바라기의 노란색이 꼭 반 고흐의 따뜻한 시선처럼 느껴집니다.”

짧은 시간에 내 의도를 이해했다.

그림의 의미를 최대한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었는데 잘 통한 것 같다.

“어쩌면 반 고흐 같은 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을 수도 있고. 안 그렇니?”

필립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병 때문에 그림도 못 그리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자살하고 싶지 않아요.”

리처드 필립스가 눈을 떴다.

살에 파묻혀 눈이 작은 줄 알았는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떠서 좀 놀랐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지 않냐는 뜻이지. 하핳하.”

당황한다.

“괜찮네. 이 녀석이 반 고흐를 좋아하긴 하네만 그런 것치고는 유독 평이 박해서 말일세.”

“그래요?”

리처드 필립스가 나와 <손님>을 번갈아 보곤 물었다.

“해바라기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분명히 반 고흐 느낌이 나는데.”

“더 나아져야죠.”

“허허. 인물은 인물인가 봅니다. 빈센트 반 고흐보다 나아져야 한다니.”

내 그림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는 소중히 여기되 그 처절한 삶을 반복하고 싶진 않다.

그것을 기반으로 좀 더 나은 나를 찾고 싶다.

내가 완성한 임파스토 기법을 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말이다.

“훈아, 여기 잠깐 있을래? 할아버지 잠깐 대화 좀 하고 오마.”

“그러세요.”

할아버지가 리처드 필립스와 사람이 드문 곳으로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어느새 불어났다.

제법 넓은 전시실인데 <손님> 앞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차버렸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져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이따금 들리는 사람들의 탄식과 감탄이 가슴을 뛰게 한다.

“어때?”

김지우가 뻔한 질문을 했다.

“좋아요.”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는 것도 즐겁지만 역시 이렇게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아주 작은 표정 변화까지 볼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말고. 좀 더 자세히.”

“다들 처음 보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저는 그림으로, 저 사람들은 표정으로.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데요.”

저들은 내가 반 고흐 미술관에서 받았던 감동을 함께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당시 나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김지우가 내 말을 열심히 받아적던 중 한 여성이 다가왔다.

“마음에 드니?”

밝은 갈색 머리에 파란 눈이 매력적인 여자가 자기를 소개했다.

“미셸 플라티니라고 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걸었는데. 조명도 신경 썼고.”

“최고예요.”

“다행이다. 신경 많이 썼거든. 좋은 그림 보내줘서 고마워.”

기쁜 마음으로 악수했다.

“대한민국의 예화에서 나왔습니다. 앙리 마르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김지우가 불쑥 끼어들어 독특한 억양의 영어로 물었다.

미세하지만 미셸 플라티니가 불쾌한 듯 입을 샐쭉거렸다.

“의도는 없어요. 완성하지 못해서 저러는 거니까.”

김지우가 눈을 깜빡였다.

나도 조금 놀랐다.

정말 그럴까 싶지만 사실이라고 해도 마르소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스스로 밝힐 만한 일은 아니었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나 보인다.

“저 조각상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요?”

김지우만큼이나 나도 놀랐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 대리석상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단 말을 믿을 수 없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눈에 넣을 보석을 찾지 못했거든요. 벌써 며칠째 저러고 있어요. 어제도 연기하라고 하길래 차단선 그어 놓고 그대로 열었죠.”

“……이거 그대로 기사 내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전 제법 신선한 기획이라 생각하거든요.”

확실히 작업을 완성하지 못해서 작업 환경을 그대로 전시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전시실을 옮겨 첫 번째 방으로 향하니 앙리 마르소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자각상을 노려보고 있다.

초췌한 몰골이나 타오르는 눈빛을 표현할 보석이라.

슬쩍 다가가려 하니 보안 직원이 날 말렸다.

“들어가면 안 돼.”

“괜찮아요.”

고개를 돌리니 미셸 플라티니가 보안 요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 마르소의 작업대를 살피니 유리 상자 안에 보석이 가득하다.

그 옆에는 색을 찾고 있던 듯 녹색 물감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직접 세공을 시도한 흔적도 있다.

대체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많은 보석 중에서도 고를 수 없었다니.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몰아붙이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이 모델이 된 <마르소의 보석>도 완벽해야 하고, 그것을 만드는 본인 또한 완벽해야 하는 강박증.

세상 그 어떤 진귀한 보석을 가져온대도 그를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보석 찾고 있다면서요?”

“꺼져.”

앙리 마르소가 <마르소의 보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심술궂게 말했다.

“그런 식으론 절대 못 찾을걸요.”

“시끄러워.”

내가 알고 있는 그라면 얼굴을 불량스럽게 구기며 화를 냈을 텐데 얌전하다.

며칠째 잠도 안 자고 고민했다고 하더니 그럴 힘도 없는 것 같다.

“뭘 망설여요.”

앙리 마르소가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거기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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