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화. 취중뒷담 上
"네. 제가 TKBM의 특수발굴부서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회귀 전.
준은 눈앞에 있는 면접관을 보면서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도굴팀에 최종합격까지 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까여버린 카오스. 덕분에 성별도, 이름도 다 바꿔 재지원을 하고 겨우겨우 면접을 보게 되었지만...
'빌어먹을 인간 놈들.'
지금 이 순간 준은 다 때려치울까 싶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망할 면접관 놈들 탓이었다.
"흠, 토익 점수는 괜찮은데. 어학연수 경험은 하나도 없으시네요?"
"그 흔한 자원봉사 경험도 없고. 이 정도면 노력부족이 아니라 성의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요?"
"6개월간의 공백기가 있는데, 그동안 뭘 했었지?"
"아버님과 어머님은 뭘 하시지요? 집안의 소득 수준은?"
"게다가 이 주소지 보면, 반지하에서 살고 있나보네요? 본적지도 여기는 낙후지역으로 알고 있는데."
개 같은 인간 놈들.
지금 사원 면접을 하는 거야, 호구 조사를 하는 거야!
"애초에 경력도 없다니, 상당히 준비성이 부족한 것 같은데..."
젠장, 지금 니들 신입 뽑는 거라고! 경력은 개뿔이!
멘붕이 온 유물의 총수는 폭발할 것 같았다.
심지어 지금이 벌써 5번째 면접이었다.
지난번에 지원했을 땐 급하게 사람을 뽑았을 때라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야 하나.
'자기소개 해보세요.'
'네!'
'발굴할 때 이런 유물도 사용 가능하십니까?'
'네. 가능합니다.'
'한번 해보시죠.'
'네!'
준이 경험했던 건 딱 그 정도 수준. 준은 그것조차도 인간들은 참 취업을 어렵게 하는 구나 싶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진짜 취업시장은 상상 이상의 지옥이었던 것이다!
[TKBM 한국지부 공채]
회사에 지원한 건 좋은데, 학벌이 밀려서 서류에서 광탈! 그래서 겨우 겨우 대학시험까지 거쳐 학벌을 만족시키니까 이번에는 스펙이라는 것에서 주르륵!
그 스펙이라는 것도 발굴에 필요한 것들 위주로 채웠지만, 번번히 낙방! 낙방! 또 낙방!
유물 준은 멘붕에 빠졌다.
'아니 도대체 왜! 이정도면 충분하잖아!'
결국 취준생 카페에 들락날락하며 낙방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연하죠, 토익점수가 없잖아요;;; 중소기업에서도 토익점수 요구하는데 하물며 TKBM이면 어떻겠어요;;;]
[최소 900점이 커트라인이에요. 저도 안정권으로 950만들려고요.]
[발굴관련 자격증이요? 그런 것보다는 어학관련이나 컴활 자격부터 따야죠.]
[OA 자격증이랑 회계 자격증도 따두면 좋을 듯.]
[전 8개 세트 기본으로 따놓고, 이번에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네요. 인사과 부장님들이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제일 중요한 건 자기소개서죠. 제가 아는 분한테 한번 첨삭 받아보시는 게 어때요? 그 회사 다니시는 분인데 가끔 컨설팅 해주시거든요.]
[└헐, 저도 좀 부탁드려요. [email protected]]
[└헉, 그럼 저도 죄송한데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ㅜㅜㅜㅜㅜ가톡 khy80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35살 늦깍이 취준생입니다. 저도 진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서ㅠㅠ [email protected]입니다.]
[└26살 여자도 살포시 껴봅니다ㅠㅠ 010-7878-xxxx]
[└28살 운동남입니다. 연락드렸어요.]
[└삭제된 댓글입니다.]
[└지금도 참여가능한가요? [email protected]입니다.]
[[email protected] 이에요. 제 선배도 이분한테 컨설팅 받고 TKBM 발굴팀에 취업 성공하셨대요.]
인간들 취업 세계 무서워! 진짜 무서워!
준은 덜덜 떨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아무튼 그렇게 취업스터디를 하며 스펙을 쌓고, 컨설팅(?)까지 받아 자기소개서도 완성했다!
물론 자기소개서 컨설팅 쪽은 돈을 노린 사기였지만!
'유재하란 인간 놈. 두고 보자!'
아무튼 그렇게 겨우겨우 면접장에 온 건 좋은데 이딴 질문들만 꺼내고!
"그래서, 3번 여자분은 남자친구는 있어요?"
"저, 저기."
"만약 상사가 새벽에 부르면 어떻게 할 거예요? 올 겁니까? 남자 친구가 옆에서 자고 있어도?"
그럴 때였다.
탁탁.
함께 있던 면접관이 짜증을 내듯 볼펜으로 책상을 쳤다.
"윤시우 팀장, 관련 없는 질문은 좀 삼가지? 서예진 씨, 지금 질문은 농담이니 무시하세요."
그러나 주헌의 주의에도 윤시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농담 아닌데? 서예진 씨, 26살이죠? 경험은?"
"네, 네?"
"지금까지 몇 명의 남자랑 자봤냐고요."
"...?!"
"아, 쓸데없이 오해하지 말고. 채용에 참고하고자 하는 질문일 뿐이니까."
윤시우는 어차피 안 될 지원자들을 가지고 놀듯이 이죽거렸다.
"그래서 답은?"
"저, 저기 그게... 한 번도 없..."
"오오, 진짜? 그 나이에? 하하하, 그럼 준 씨. 준 씨는 여자친구 있어요? 예뻐?"
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질문과 발굴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윤시우가 짜증 섞인 미소를 지었다.
"아, 이쪽은 스펙도 딸리는데 머리까지 딸리시네. 눈치도 없고."
"네, 네?"
"그리고 준 씨는 연봉 3000을 썼네요? 신입들이 능력은 안 되면서 눈은 높지. 오히려 일을 가르쳐주니까 돈을 안 받고 일해도 감지덕지한데 말이에요."
"..."
"회사에 들어오면 특별히 준 씨는 잘 챙겨주라고 할게요. 재능도 없고, 이해력도 딸리고, 저능아반처럼 신경 써야 할 것 같지만."
결국 참다못한 주헌이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 하려는 때였다.
준이 벌떡 일어섰다.
"잠깐, 이, 이봐!"
빡친 준은 윤시우에게 다가갔다.
멱살을 잡았다.
"커헉! 이봐!"
"적당히 좀 해라, 이 인간 놈!"
자신에게 이상한 호구조사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리고 뭐?
머리가 딸려? 저능아반?!
"악! 이, 이 자식 왜 이래!"
애초에 이딴 인간 놈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취업하는 것도 다 짜증이났다. 이런 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 다 때려쳐! 마제스티 확인이고 자시고 어디 오늘 한번 죽어보자고!"
뻐억!
윤시우는 준에게 맞고 날아갔다.
쿵!
"잘 들어! 우리가 여기 나가면 다 니들 고객이야! 미래 고객한테 이따위로 면접해도 되는 거냐고!"
"자, 잠깐!"
"취준생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아아악!"
그렇게 윤시우는 심취한 유물 취준생(?)에게 밟히고 말았다.
결국 준은 면접장으로 들어온 경비들과 직원들에게 끌려나갔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면접관을 두들겨 팬 면접생이라니!"
"이거 완전 9시 뉴스감 아냐?"
"미쳤어! 신고해!"
"그래도 맞을 짓 했지 뭐, 저 인간이 안 될 면접생들 가지고 노는 게 하루 이틀인가. 뭐, 저 아이는 두번 다시 TKBM 문턱도 못 밟겠지만."
그런데 그럴 때였다.
"아니, 아니. 합격 처리해."
"네?!"
그들은 큭큭큭 배를 잡고 웃는 주헌을 보며 경악했다.
"서, 서주헌 팀장님 그게 무슨..."
주헌은 마스크를 고쳐 쓰면서 웃었다. 유물 리스크 때문에 얼굴이 부어서 그러고 나올 수밖에 없던 거지만...
"어차피 이번 공채에서 우리 팀에도 사람 보내주기로 했잖아. 나 쟤 마음에 드니까 보내."
"하, 하지만 서 팀장님!"
"왜? 나한테 그 정도 권한은 있잖아. 생긴 건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성깔도 힘도 세네. 좋아 좋아."
"나참! 나중에 회장님한테 한 말씀 들으셔도 몰라요!"
아무튼 준은 그렇게 주헌의 도굴팀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윤시우는 저딴 놈을 입사시켰다고 주헌을 볼 때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재.
정작 그 이야기를 듣는 단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너 진짜 별짓을 다했구나... 유물 주제에..."
"짠하다, 이 자식."
"그보다 호구, 넌 진짜 안 치는 사기가 없냐. 무슨 하다하다 취업 컨설팅으로 사기를 치냐?!"
"꺄으악! 내가 뭘! 아, 아니 잘못 했어요! 그땐 용돈 좀 하려고!"
그럴 때 일리야가 물었다.
"그런데 그거랑 진채원 그 여자를 싫어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서?"
"왜긴 왜예요."
준은 입단 직후의 일을 떠올리며 파르르 떨었다.
분명 그때 주헌이 이렇게 말했었지.
'거참 우리 부서 인기 지지리도 없나봐. 이제야 인력 충원이 됐네.'
'네?'
'아니, 어찌 된 게 한 명도 우리 부서에 안 보내주는 거야. 지원자가 없다고. 특히 여자는 제로. 우리 부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나 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말이냐니?'
'여자라서 입사 취소시킨 적이 있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금녀 구역인줄 알았는데...'
'뭔 개소리야. 그럼 설아하고 클로에가 여기 어떻게 있어.'
'?!'
그리고 그때의 일을 떠올렸던 멤버들이 설마 하는 눈으로 준을 보았다.
"서, 설마 그때 널 탈락시킨 건..."
"맞아요. 진채원 짓이에요.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그 고생은...!"
"아니 그 여자가 도대체 왜?"
왜긴 왜야.
클로에는 당시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주헌은 준의 입사서류 사진을 보고 이런 말을 했었던가.
'아, 얜 취향이라 들어오면 곤란한데.'
'취향이라고요?'
'설아 때도 그래서 처음엔 팀원으로 안 받아들이려고 했었던 건데... 에라 모르겠다. 상관없겠지.'
그렇게 주헌은 통과시키라고 했지만, 이게 웬걸.
이를 엿들은 진채원이 수작을 부려(?) 준을 탈락시킨 모양이었다. 권 회장하고 커넥션이 있었으니까.
그쯤 되자 유재하는 소름이 돋으려고 했다.
왜?
"설마 준 보고 취향이라고 했던 이유. 준이 유물이라서 아냐?"
"?!"
"단장님 취향은 유물(?)상이잖아!"
단원들은 전부 경악했다.
"설마 그 인간, 본능적으로 그때부터 유물이란 걸 감지했던 거야?"
"어쩌면 진채원도 사황으로서 요람이라는 걸 본능으로 감지하고 방해했을 수도."
"아니 그 여자는 그냥 미소녀의 얼굴을 보고 방해한 거겠지."
뭐, 아무래야 좋았다.
"아무튼 너 인간을 싫어했잖아. 금방 떠날 생각이었다면서 왜 수 년이나 팀에 있던 거야?"
"왜긴 왜예요. 코가 꿰인 거지."
그 말에 일리야가 탄식했다.
"너도 똑같구나."
"네?"
"젠장, 단장 놈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나도 계속 바티칸에서 일했을 텐데..."
"그게 무슨..."
일리야는 대답 대신 술을 들이켰다.
* * *
"큰일입니다! 주교님!"
"박물관에 또 그 한국인이!"
때는 한참 전, 겨울의 이탈리아.
그건 주헌이 TKBM에 들어가기도 전의. 그리고 마몬을 만나기도 전의 이야기.
바로 주헌이 무능력자일 때의 이야기였다.
"찾아라! 그 동양인을 찾아라!"
"그놈이 또 나타났다!"
"아, 그 망할 한국인!"
바티칸의 사제들은 눈에 불을 켜고 누군가를 찾아다녔다.
"젠장, 이런 놈이 한둘이 아니라지만 그 한국인은 진짜 독하네. 그렇게 유물사용자가 되고 싶은가."
"뭐 그럴 만도 하지. 판도라가 나타나면서 유물의 개인 소유가 막혔잖아."
"판도라의 허가를 못 받으면 유물을 만져볼 수도 없다지?"
그러나 바티칸은 좀 달랐다. 바티칸의 사제들은 판도라에게 유물사용권을 허가받았고, 유물의 보관 겸 박물관에서 유물을 공개했었다.
"그러니까 판도라의 허가를 받지 못한 인간들이 전시 유물을 훔치려는 거지."
"유물만 얻으면 무덤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특히 이 SS급 유물!"
그들은 깨져버린 유리관을 보며 이를 갈았다.
"젠장, 그 새끼는 어떻게 이걸 부순 거야? 유물도 없으면서!"
"그 전에, 그놈은 왜 그렇게 안 잡히는 건데?"
유물 능력자인 사제들은 무능력자 따위에게 당한다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주헌 씨, 주헌 씨. 이쪽이에요. 이쪽!"
주헌은 수녀들의 부름에 불쑥 수풀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빨리 이쪽으로 도망가세요."
"땡큐!"
20대 초반의 어린 주헌은 꼬셔낸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바티칸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젠 하다하다 수녀들까지 매수했냐, 이 거지같은 놈아!"
"칫!"
사제들에게 들켜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제들 사이에 있던 건 바로 일리야.
"좋은 말로 할 때, 이리로 와라. 한국인."
뛰어난 유물사용자인 일리야는 바로 그리스도 크리스천 계열의 유물을 발동했다!
주헌은 그 유물의 힘에 당황했다.
"야! 지, 지금 관광객을 상대로 너무 심한 거 아냐?"
주헌은 다급하게 도망을 쳤지만 일리야는 헛웃음을 흘렸다.
관광객은 개뿔이!
"이 도둑놈이 입만 살아서!"
그런데 그럴 때였다.
"!"
일리야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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