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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356화 (356/409)

356화. 해체되는 아성들 (5)

"야! 뭐, 뭐야! 저거!"

진짜로 철벽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심지어 저절로!

그 광경에 판도라의 경비들은 물론, 이사회.

심지어 원탁의 기사들까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게 도대체 왜 열려!"

"이게 무슨...!"

다시 확인해 봐도 역시나 탑의 문이 열려 있었다.

정확히는 단단하게 닫혀 있어야 할 문들이.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활짝 개방할 리도 만무하고.

'도대체 누가.'

그러는 사이에 아래층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문을 부수려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와아아아!"

"수장들을 모두 끌어내려라!"

"사람들을 짐승으로 보는 놈들아, 니들도 한번 병에 걸려보고 죽어봐라!"

그 빗발치는 함성에 이사회 사람들이 몸을 떨었다. 무기를 든 사람들은 자신들을 발견하면 그 즉시 때려죽일 기세였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함성에 이사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빠, 빨리 저 사람들을 막아요!"

"빨리! 뭐하고 있어!"

그들의 외침에 경비들과 직원들이 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이사회는 이를 갈았다.

그들은 아직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저 문이 뚫린 거지?"

"혹시 멀린의 짓 아니야?"

애초에 탑의 문을 관리하는 건 탑의 관리자. 즉 멀린 밖에는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이사회는 물론, 밖에 있던 기사들까지 눈을 부릅떴다.

"설마 멀린이야? 그 여자 짓이냐고!"

"그 여자가 배신을 한 거야?"

하지만 정작 멀린은 억울해했다.

꼭대기층 상황실에 있던 그녀 역시도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문이 닫히지가 않아."

멀린은 계속 성에 명령을 했지만, 성은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하듯이 멀린의 귀에 낯익은 음성이 스쳐지나갔다.

[흠, 이거 잘 된 건가?]

'!'

하늘에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

멀린은 그 목소리에 경악했다.

'이건 서주헌의 목소리!'

왜 이놈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음 뭐 기능을 바꿔 넣었으니 됐겠지.]

뭐가 어쩌고 저째?

'기능?'

멀린은 당황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황실에 있던 그녀가 급하게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옥좌가 있는 곳. 드루이드의 탑에서도 가장 숨겨진 곳에 있는 바로 그 장소다.

그녀가 몇 중으로 된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깊숙한 실험실 내부로 들어갔다. 일반인은 물론, 다른 기사들조차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장소.

직원들 중에서도 허락을 받은 사람들이나, 프로메테우스 정도가 들어왔던 장소였다.

마침내 터널같이 긴 통로를 빠져나가자 탁 트인 넓은 홀이 나왔다.

홀 내부는 창문 하나 없이 꽉꽉 막혀 있었고, 오로지 중심에 있는 의자 하나만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을 뿐이었다.

"헉, 헉."

멀린은 숨을 헐떡이며 의자에 다가갔다.

의자의 주변에는 황금이끼와 넝쿨이 거미줄처럼 마구 자라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황금색의 찬란한 의자.

'흘리드스캴브.'

바로 마제스티의 재보, 옥좌였다.

흘리드스캴브는 오딘의 옥좌로서, 신들의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 옥좌에 앉으면 세상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유물이다.

그래서 모든 유물 사용자들과 유물을 관찰할 수 있는 판도라 시스템이기도 한 재보. 다만 그녀가 주시하는 건 그 의자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 옥좌에 앉아 있는 누군가.

그건 사람의 형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황금줄기에 파묻혀 있는 그걸 확인하던 멀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평소하고 다를 게 없잖아!'

즉, 판도라 시스템이 멋대로 난리를 친 건 아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뭐지, 분명 그놈... 서주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렇게 이상하게 여길 그때였다.

의자와 연결된 디스플레이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판도라 시스템 정밀탐색 가동 중.]

[주의. 성의 기능이 수정되어있습니다.]

[누군가가 원탁의 능력을 수정해버렸습니다.]

[원탁의 기능 추가 "아아, 아서왕의 원탁은 원래 기사들이 서열 구분 없이 둘러 앉아 보고를 하고, 회포를 푸는 이야기의 장이로다. 이에 모든 성문을 개방하여 언제든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갈 수 있게 하리라. 모두가 담소를 즐기기 시작하면 환대의 의미로 술과 고기가 나올지니 모두가 행복하다. 그리고 너무나 맛있어 고기를 다 뜯기 전에는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하리라.]

[원탁의 유물의 기능에 '음식이 나오는' 기능이 추가 되었습니다.]

['아주 맛있는' 진미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성문이 상시 개방됩니다.]

뭐가 어쩌고 저째?

누가 이딴 기능을!

아니 누구냐고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서주헌!'

이런 짓이 가능한 건 분명 재보 중에서도 아카식레코드.

'하지만 아카식레코드가 나왔다는 말은 없었는데.'

요한이 바티칸에 숨겨놓았다는 걸 알 턱이 없는 멀린은 이를 갈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원탁의 기능을 수정했다고?'

멀린은 몸을 떨었다.

지금이야 고작 음식이 딸려 나오고, 성문을 상시 개방하는 것 정도지만...

'과연 이 정도에서 끝날까?'

아니나 다를까.

[원탁의 기사들은 언제나 왕과 그 백성들을 위하는 존재들. 그들은 절대 백성들을 공격할 수 없으며 왕을 찾아오는 그들을 막지 못한다. 원탁의 기사들이여. 그 기사도를 버리는 자들은 파멸하리라. 결코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걸 본 멀린은 새하얗게 질렸다.

'안 돼! 다들 계약을 해제해야 해!'

***

"와아아아아! 명단에 있던 바로 그놈들이다!"

"쳐라!"

"죽은 내 딸 돌려내!"

순식간에 탑 내부로 들이닥친 사람들은 무서운 기세로 탑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달려왔던 이사회 구성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사람들이 주차장을 봉쇄하고, 차들을 박살 내고 펑크를 내며 도주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부숴! 막아!"

"터트려! 저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고!"

쾅! 쾅!

쨍그랑!

그리고 사정없이 휴지조각이 되어가는 외제차의 모습에 이사회는 거품을 물었다.

"저것들이 저게 얼마짜리인 줄 알고! 너희들이 평생 벌 돈보다 비싼 거야! 알아?"

"전부 고소야, 고소!"

"그건 알 바 아니고! 묶어!"

주차장에서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정은 위층도 비단 다르지 않았다. 발 빠르게 점거하는 사람들 탓에 계단으로 내려가려던 이사회들은 당황했다.

"젠장! 저놈들이 여기까지!"

엘리베이터는 물론, 계단, 창문까지 이미 봉쇄당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총과 파이프, 화염병을 들고 이사회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 어디 한 번 말해봐. 정말 유물에 대해 알고 있었어?"

"니놈들이 일부러 병을 퍼트리고 있던 게 맞냐고!"

"대답하지 않으면 진짜 가만 두지 않겠어!"

그러자 이사회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어디 해 봐라. 우린 모두 불사다."

"죽는 건 너희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위대와 이사회가 부딪쳤다.

병사들과 원탁의 기사들이 유물을 쓰고, 시위대 역시 총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들이 괜히 원탁의 수혜를 받는 게 아닌 만큼, 시위대의 총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부, 분명 맞았는데."

"피도 안 흘려...!"

이사회는 고통도 못 느끼는 지, 코웃음을 치며 시위대를 향해 걸어나왔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라 피도 안 흘리고, 고통도 안 느낀다고."

"애초에 네놈들하고 똑같다고 여기면 안 되지! 건방지게."

시위대는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젠장, 판도라 이사회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진짜였나...!"

"모두 끌고 가! 본보기를 보여줘!"

원탁의 기사들은 사람들의 무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이사회가 비웃으며 사람들을 걷어찼다.

"알았으면 저리 비켜!"

"커헉!"

그럴 때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이사회의 팔을 물어뜯었다.

"으리 아쁘아 거드지마아아!(우리 아빠 건들지마아아!)"

"이년이, 그래 봤자 고통도 못 느낀다니..."

그런데 이때였다.

"어?"

순간 손이 물린 이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아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자 다른 동료들이 황당해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깐, 이거, 피, 피!"

이사회는 몸에서 흐르는 피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은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불사에 좀비라고 자부했던 그들이 거품을 물며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사람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아, 할 수 있어!"

"뭔지는 몰라도 기회다!"

그러자 원탁의 기사들이 술렁거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그럴 때였다.

[빨리! 빨리 계약을 해제해!]

원탁의 기사들의 무전으로 멀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기사들은 당황했다.

"멀린?"

[원탁의 유물과 계약을 해체하라고!]

"그게 무슨..."

"미쳤어요? 이 상황에서 계약을 해체하면...!"

[하라면 빨리 해! 죽기 싫거든!]

"뭐라고?"

하지만 그때였다.

[하하하, 그럼 잘 가라 새끼들아.]

"!"

멀린은 또다시 들었다. 서주헌이 비웃는 소리를. 그리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탁의 기사들이 커헉,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커허어억!"

"크아아아악!"

그들의 눈, 코, 입, 귀에서 급격한 출혈이 뿜어져 나왔다. 내장이 갈리는 듯한 끔찍한 고통은 덤이었다. 결국 몇 명이 그렇게 죽자, 당황한 나머지 일원들도 재빨리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지만...

"꺄아아아악!"

"커헉!"

원탁과 계약했던 모든 사람들이 원인불명의 고통을 호소하며 터져 나갔다.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쓰러져나가는 기사들과 판도라 이사회를 보며 주헌 일행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특히 율리안이 황당해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원탁의 매개체가 갑자기 저주의 매개체로 바뀌었어."

그들의 몸에 심어져 있던 원탁의 매개체.

지금까지는 그들의 노화, 정력, 미모 등 이로운 걸 불어다주는 역할을 했었다. 요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펠트신화. 그리고 원탁 유물과 그 기사들은 설화 속에서 신격화되면서 그 능력을 부여 받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기능이 완전히... 역전!'

오히려 원탁과 계약을 함으로써 몸이 썩어가고, 병에 걸리고, 죽는 게 나을 고통을 느끼면서 몸이 터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저주의 유물로 바뀌는 순간!

"혹시 주헌의 짓인가?"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이걸로 판도라는 끝이다."

완전히 박살이 난 바티칸 도서관.

아카식레코드에서 빠져나온 주헌은 중계 화면을 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판도라 이사회 사망]

[사망 명단]

아카식레코드 밖으로 나온 주헌은 몹시 즐거워하고 있었다.

'판도라가 오만하게 굴 수 있던 이유는 세 가지.'

절대적인 권력, 원탁의 가호, 철벽의 탑.

절대적인 권력이야 증거물이 퍼진 이상, 더 이상 전 같은 아성을 유지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들을 오만하게 만들었던 매개체, 원탁.

'불사라고, 그깟 원탁의 수혜를 받았다고 마치 조물주 같은 놀음에 빠진 모양인데.'

거지 같은 새끼들.

그리고 그럴 때였다.

보고 있던 태블릿이 기울어지자 주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야. 똑바로 안 들어?"

"칫."

일리야는 주헌이 잘 보이게끔 태블릿 PC를 제대로 들었다. 하지만 그는 주헌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로 유물의 기능을 바꿔버리다니!'

부럽다. 정말 부럽다!

저거라면 리스크도 죄다 바꿔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곧 일리야가 슬금슬금 주헌의 옆에 있는 아카식레코드 책에 손을 대려 할 때였다.

"일리야."

"큭."

일리야는 알아서 기었다.

그리고 이때였다.

[와, 왕이시여!]

아카식레코드가 말을 걸어왔다. 쌀쌀맞게 굴던 레코드가 뭔가를 요청해왔다.

[재계약을 하게 해주십시오.]

얼씨구, 아까까지만해도 마제스티가 아니라고 난리를 칠 땐 언제고. 주헌은 귀를 후비면서 일어섰다.

"이대로 본부에 합류한다."

[?!]

무시당한 아카식레코드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궁니르를 뽑아들었다. 이제 성문도 활짝 열리고, 귀찮은 원탁 놈들도 우르르 사라졌겠다.

'남은 건 거기서 옥좌를 가져오는 것뿐이지.'

뭐, 중간에 몇 명이 눈치를 채고 생존자가 남아있어도 상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옥좌를 안내해줄 놈은 남아있으면 좋겠군.'

"예를 들면 멀린이라든가, 멀린 같은 놈 말이야."

그의 눈이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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