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발악도 풍년 (2)
[안녕, 폰팔이?]
주헌이었다.
권 회장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폰팔이.
아마도 주헌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호칭일 것이다.
처음엔 뭐 이딴 또라이 새끼가 있나 싶었지.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기억이 조금 스며들어온 권 회장의 마음은 복잡했다.
왜?
그냥 지나가던 또라이인 줄 알았던 놈이, 사실은 자신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거니까.
하물며 유물이 보여준 대로라면 주헌은 그래봐야 자신의 따까리.
그런 놈이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리라.
이 개 같은 새끼.
아마 주헌이 앞에 있었다면 크게 비웃었을 표정.
하지만 기억을 본 권 회장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손을 여전히 파르르 떨 정도로.
아니나 다를까, 권 회장이 뭘 두려워하는지 아는 듯 주헌이 말했다.
[양 쳰한테서 기억 유물 받았다며. 그런데 어디까지 알아냈어?]
"...!"
[중요한 무덤 정보와 유물 정보는 얻으셨나? 아니, 하나도 모르시겠지.]
이죽거리는 말본새가 화가 치밀어 오를 지경이었다.
"이 새끼."
그렇다.
권 회장이 두려워하는 건 그것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주헌이 자신도 모르는 정보를 쥐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하물며 놈이 가지고 있는 정보라는 게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미래에서 온 사람.
정보가 그 정도 급이면 제 아무리 국가급 정보기관이라도 비교하는 게 우스울 수준.
그리고 또 자신이 본 미래가 정말 왔어야 하는 미래라면, 그건 그것대로 더 문제였다.
독식자들이 지배하는 사회.
그 예정된 미래를 지금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건 서주헌이니까.
게다가 놈은 자신이 10년 동안 노예처럼 부린 놈.
게다가 추측이지만 지켜야 할 약속도 지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원한을 산 놈이니 더 무서운 것이다.
이놈에게 삼켜질 것 같아서.
자신을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미래를 바꾸고 있는 이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까!
차라리 자신도 모든 걸 기억한다면 또 모를까.
그 때문인지 권 회장은 철저하게 부정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양 쳰 이놈이 가져온 미래는 거짓이란 걸 알겠다."
"!"
그러자 정작 양 쳰은 화들짝 놀랐다.
"회장님... 그게 무슨... 커헉!"
쿵!
양 쳰은 졸지에 목이 졸려 테이블에서 꺽꺽거렸다.
"형님!"
"회, 회장님... 거짓이 아니...!"
"닥쳐라. 임무도 실패한 주제에 이딴 걸로 날 희롱하려고 들다니."
"꺼, 커헉...!"
눈이 충혈된 권 회장의 손이 양 쳰의 숨통을 압박했다.
***
[커, 커헉! 회장...님...! 이러시지.......]
[이 가증스러운 놈. 무슨 일로 왔나 싶었더니, 아주 서주헌 놈의 첩자가 되어서 나타났구나.]
[그, 그게 아니... 허억!]
[애초에 네놈이 거기서 탈옥하는 것도 우습지. 서주헌이 이러라고 빼주던?]
[꺼, 커어억! 믿어 주십...!]
[믿어? 그걸 믿으면 난 내가 기르던 개한테 물렸다는 건데, 지금 약올리는 건가?]
[커헉!]
양 쳰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주헌은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이 바보 노친네.
결국 자신한테 도움이 될 놈을 믿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다니.
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양 쳰이니까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양 쳰이 권 회장에게 간 시점에서 놈이 이 꼴이 날 걸 알았고.
'그 노친네는 그런 인간이니까.'
놈이야 클로에 때문에 유물도 못 쓰니까, 구원받을 동아줄을 잡으려고 갔겠지만 글쎄.
권 회장은 결코 동아줄이 아니었다.
기억을 보게 되더라도 그 거지 같은 자존심에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인간이었다.
하물며 자신이 이렇게 전화를 해서 약 올린다면 더더욱.
아니나 다를까, 양 쳰의 목을 조르는 권 회장이 말했다.
[서주헌. 네놈의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이딴 가짜 미래로 날 혼동시킬 생각이냐.]
"뭐야, 벌써 들켰나? 양 쳰 놈, 기껏 탈옥시켜줬더니 일 정말 못하네."
그 말에 억울한 양 쳰은 비명을 질렀고, 권 회장이 이를 갈았다.
그리고.
[커헉!]
양 쳰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그 후에야 주헌이 태연하게 말했다.
"라는 건 당연히 농담이고."
[...!]
주헌은 그제야 가증스럽게 웃었다.
"믿지 못하겠으면 미래에 대해 재미있는 걸 말해주지. 이를테면 댁이 구상 중인 사업에 대해서?"
그 말에 권 회장은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그건 새어나가지 않은 극비 정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헌은 태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XX유물 신도시 건설사업. 딸 권주희를 위한 투자금. 유물 재단 설립. 아, 이름은 AA로 내려고 했지? 그리고 장인 식구를 위한 A지대 토지 매입. 아 근데 참고로 다 망해. 그냥 하지 마."
[...?!]
"내가 다 망하게 했거든. 관련 비리 연루된 놈들 다 처분했어."
이 미친.
심지어 주헌은 이딴 것까지 알았다.
"첫 손녀의 이름은 태희로 지으려고 했지? 노친네가 손녀 이름에 자기 이름이나 집어넣고 말이야."
"...!"
이 자식이.
그리고 파르르 떠는 권 회장에게 주헌이 말했다.
"어차피 믿지 않아도 상관은 없어. 어쨌든 난 댁이 알았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뭐야?]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을 괴롭히는 것도 슬슬 따분했었거든."
주헌은 몹시 즐거워보였다.
애초에 까마귀의 유물이 아닌 이상, 놈들이 체험하게 되는 건 영화 관람 수준.
미래의 자신과 동기화하는 수준의 까마귀 눈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양 쳰이 발악을 해도 그게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알았다.
'뭐, 그래도 자기 일처럼 느낄 정도지.'
오히려 정말 딱 좋은 수준까지 기억을 찾게 했다고 해야 하나.
"이래 보여도 댁이 아무것도 모르니까 수위 조절을 한 거라서."
그 말에 옆에 있던 단원들이 질색했다.
이 자식아, 그게 수위 조절을 한 거였냐.
하지만 진심이었다.
그리고.
"네놈이 그걸 봤으니까, 나도 이제 워밍업 끝내도 되지?"
뭐라고? 워밍업?
권 회장이 다급하게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글쎄.
뚝.
전화는 매몰차게 끊겼다.
***
뚝.
"혀, 형님."
권혁수는 당황한 듯 권 회장을 보고 있었다.
질식한 양 쳰은 이미 미동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정작 권 회장은 붉게 물든 얼굴로 핸드폰을 내 던진 지 오래였다.
'이 괘씸한 놈이...!'
아무래도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았다.
'이놈에게 먹힌다.'
애써 부정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전생의 일이 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특히 다른 건 몰라도, 주헌을 거둬들이고 그를 처분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
그런 건 약간씩 뭔가 떠오르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열받는 것이다.
'감히...!'
기억대로라면 놈은 자신이 부리던 하수인.
하물며 뭐라고?
'워밍업?'
"이게 진짜 미쳤나!"
권 회장은 폭주하기 직전이었다.
그동안 주헌에게 당한 것만 생각해도 손해가 막심했다.
불로초부터 사위 놈 물먹이기, 유재하 빼돌리기에 미국과 유럽 연합의 적이 되게 만들고!
자신을 관에 가두어 시체로 만들더니, 뻔뻔하게 자식 놈들을 감옥에 가두고 제 유물을 강탈!
개 같은 놈이 귀한 파트너 업체들은 다 쌩까게 만들고!
막판엔 TKBM의 주식을 훔쳐가고, 회사를 뒤흔들지 않나!
그 피해들을 복구하느라 아까운 유물들과 무덤 발굴권을 헐값에 팔아 넘긴 걸 생각하면 진짜!
원래도 글로벌 대기업이었지만, 주헌 때문에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유물과 무덤 발굴권, 그리고 발굴에 대한 노하우가 있어서 휘청거리던 회사를 겨우 붙잡을 수는 있었다.
무덤의 선구자였기 때문에 나라와 각 계층에서 좋게 봐줬으니까.
하지만 지원을 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심지어 이게 워밍업?
"아오!"
열받는 것도 열받는 거지만...
"놈을 막아야 한다! 내 자리를 찾아야 해!"
그놈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놈은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할 것이었다.
자신을 완전히 망가트리기 위해!
미치고 발광하던 권 회장이 쾅 책상을 내려쳤다.
"당장 판도라에 연락해서 내가 말하는 유물을 준비시켜라!"
"네?"
"일단 7대 무덤을 공략하는 것부터 막아야 해. 그리고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대충 예상이 간다."
똥줄을 태우던 권 회장은 웃었다.
얄팍하지만 기억에서 본 것이 있었다.
그걸로 어떻게든 서주헌 그놈을 추락시키고 말리라.
분노에 찬 권회장의 눈이 흉흉했다.
***
'네? 서주헌이 무덤을 소환할 장소를 안다고요?'
한편 판도라 및 각 나라의 대형 발굴단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바로 이틀 전 날아온 TKBM의 연락 때문이었다.
심지어 서주헌의 정보라니!
물론 주헌이 조지 홀튼에게 빼앗은 화석 유물로 탐욕의 무덤을 소환할 건 알았다.
그런데 어디에서 소환할지는 몰랐는데 뭐라고?
"그랜드 캐니언이요?"
뜻밖에도 권 회장은 주헌이 그곳에서 무덤을 소환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후보지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곳은 그곳이라고.
그리고 그 이유는 있었다.
'기억 속에서 봤던 탐욕의 무덤은 그랜드 캐니언에서 출몰했다.'
물론 그곳에서 소환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확률은 컸다.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 말대로 주헌은 그랜드 캐니언 부근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어떻게 그걸 추측했는지 몰라도 대단한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탐욕의 유물의 입구를 뚫는데 필요한 유물을 알고 있다네.'
권 회장은 무덤의 입구를 뚫는 방법까지 알았다.
내부 공략법은 자세히 몰랐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아는 듯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하자 정말로 서주헌이 불러낸 탐욕의 무덤이 있었던 것이다.
사막에 솟아오른 그 무덤 봉우리가 증거.
그리고 무덤을 발견했다는 희소식을 전해들은 권 회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기억은 철저하게 이용해주지."
그리고 비슷한 시각.
"단장님, 권 회장한테 까마귀 유물은 안 쓸 거예요?"
미국의 황량한 사막.
그랜드 캐니언 일대.
단원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질문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주헌이 답했다.
"아니, 쓸 거야."
"쓰실 거라고요?"
주헌은 웃었다.
"지금 그 노친네는 어설프게 기억을 가진 상태야. 내가 기억하길 바라는 상황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낮고."
"그럼...!"
"최후의 순간, 놈한테 까마귀 눈물을 쓸 거야. 그리고 철저하게 깨닫게 해야지. 기르던 개한테 물리는 치욕스러움을."
"그래도 그 노친네, 약간은 도움되는 기억을 가진 모양인데요."
단원들은 사막 일대에 가득 깔린 발굴단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렇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적들이 사방팔방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뭐 그거까지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딱히 행적을 숨기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주헌은 일부러 이곳에서 소환했으니까.
다만.
"저놈들이 입구 공략법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주헌을 쫓아온 적들은 무덤의 입구 공략법을 이미 파악한 모양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유물들이 그 증거였다.
물론 그건 당연했다.
권 회장은 기억을 훑으면서 탐욕의 무덤 역시 봤을 것이다.
그 무덤은 주헌이 클리어했던 무덤.
대대로 신문에 입구 공략법에 대해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 기억을 토대로 선수를 치려는 모양이지만...
"뭐 그래봐야 상관없잖아?"
"하긴. 저래서 어떻게 선수를 치겠다고."
눈앞에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도 가득했다.
"아아악! 이건 도대체 뭐야!"
"어느 게 진짜냐고!"
그렇다.
그랜드 캐니언 일대에는 똑같은 무덤이 수백 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유재하가 만들어낸 복제 무덤들!
아예 화석 유물 자체를 복제해 수백 개의 무덤을 불러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화석 유물을 복제해 무덤을 쾅쾅 소환하는 유재하는 하하하 웃어댔다.
"하하하, 어디 한 번 진짜 무덤을 찾아봐라, 이 병신들아! 못 찾을걸? 못 찾을걸?! 캬캬캬캬!"
무한대로 무덤을 소환하고 있는 그는 매우 신나 보였다.
"단장님, 저 잘했죠? 잘했죠? 그러니까 계약서 고쳐주세요! 수익 분배 9:1 9:1! 진짜 인간적으로 1이라도 주세요!"
뭐 애초에 진짜 뜯어갈 생각도 없었지만.
"그냥 니가 10 해."
"아 진짜? 진짜?! 아싸!"
그리고 멘붕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느긋하게 주헌이 웃었다.
"들어가자. 진짜 무덤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