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발악도 풍년 (1)
"서주헌 이 개새끼!"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권 회장은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덕분에 테이블에 있던 책이며 명패며 신나게 날아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권혁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혀, 형님?! 큭!"
심지어 권혁수는 날아오는 책에 얻어맞기까지 했다.
"잠깐만요, 형님!"
이상하다.
권 회장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물론 그동안 권 회장이 거지깽깽이같은 주헌 때문에 뒷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평소와 확실히 달랐던 것이다.
"서주헌, 이 개 같은...!"
충혈된 권 회장의 눈알이 정말 터질 것 같았다.
부리부리한 눈과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권 회장은 혼란스러운 듯 몸을 떨었다.
'이건 도대체...'
권 회장의 머리에 떠오른 건 고작해야 정말 아주 단편적인 장면.
고작해야 사황이었던 시절 잠깐 주헌을 짓밟던 장면뿐이었다.
까마귀의 눈물 유물과는 애초에 성능부터가 다른 탓이었다.
그래서 큰 정보는 없었다.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없었다.
다만 그것뿐인 기억 속에서도 분노만큼은 고스란히 심장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권 회장은 혼란스러워했다.
"양 쳰, 똑바로 말해라. 이 장면은 뭐냐."
양 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는 권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 유물을 만든 멀린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라고?"
"네."
"그럼 내가 전 세계를 이끄는 TKBM의 총수가 되고, 서주헌이 내 발치에서 구른다는 소리냐?"
"..."
양 쳰은 답이 없었다.
그게 아닌 것 같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 회장 역시 그리 생각했다.
왜?
자신이 본 장면은 어떻게 봤을 때 장밋빛 미래였다.
대 제국 TKBM, 그리고 자신은 거기의 총수이자 맞수가 없는 유물의 지배자.
무엇보다 그렇게 얄밉게 굴던 서주헌이 제 부하라니.
그 좋은 장면을 보고 왜 자신이 분노에 떨었겠는가.
그러니 다가올 미래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다...시 한 번 그 유물을 써봐야겠다."
다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권 회장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권혁수가 말렸다.
"형님! 지금 상태가 심상치 않으십니다. 무리하지 않으시는 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권 회장은 바로 멀린의 앨범 유물을 사용했다.
그리고.
권 회장은 또다시 자신의 전생이자 미래를 보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건강에나 좋을 단편적 기억들을.
***
그리고 비슷한 시각.
"뭐? TKBM에 양 쳰이 들어갔다고?"
주헌은 설아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아는 팀 내의 정찰꾼.
당연히 주요 적들에게는 귀신을 붙여서 언제나 상황을 지켜보게 하게끔 한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 뭐라고?
"양 쳰이 권 회장을 만나러 갔다고?"
"네. 양 쳰 그놈이 탈옥을 한 것 같아요."
그 말에 주헌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 새끼 용케도 살아 있었네."
그가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었다.
왜?
자신은 양 쳰을 교도소 중에서도 꽤 살벌한 곳에 처넣었다.
바로 유물사용자들만 수용하는 특별한 감옥.
'타로타로스.'
유물을 활용한 범죄는 보통의 강력 범죄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인도적이고, 세상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는 범죄였으니까.
게다가 유물사용자들이 가진 지배력과 친화력도 문제였다.
높은 지배력은 교도관들을 겁에 질리게 할 수도 있었고, 미친 친화력은 교도관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참으로 골 때리는 일이지.'
그래서 조지 홀튼은 특별히 유물사용자들만 수감하는 감옥을 만들었다.
그 자문은 주헌에게 맡기고.
뭐 그런데 얼마 전에 이 감옥에서 난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감옥에 유물이라는 놈들이 몰려들어 고분화 현상이 일어났다나 뭐라나.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유물 놈들이 좋아하는 인간들은 자신들을 다루는 놈팽이들 중에서도 질이 나쁜 놈들이니까.
그런 놈들만 모아둔 감옥은 유물들에게 있어 아주 젖과 꿀이 흐르는 토지였을 터.
덕분에 안에 있던 수감되어 있던 자들은 미쳐 날뛰었고, 서로를 죽이고 쏘우를 찍거나 난리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감옥이 부서져 탈옥한 놈들도 있었다.
'뭐 아직 발명 유물이 없으니까 상당히 부실하긴 했지.'
유재하가 다빈치 유물로 타르타로스를 만들긴 했지만 2% 부족했던 탓이었다.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미궁 등, 천재적인 발명품을 만든 다이달로스의 유물이 있으면 보완이 되었겠지.
'거기에 타르타로스 유물까지 있으면 금상첨화.'
덕분에 조지는 주헌에게 타르타로스 유물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어쨌거나 그런 사건이 있었고, 양 쳰이 사망자 명단에 있어서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런데 탈옥이라니.
"죄송합니다 단장님. 제 불찰..."
"아냐. 오히려 그렇게 죽었다고 해서 아쉬웠던 참이었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정말 TKBM으로 갔어?"
"네. 그런데 수상한 유물을 들고 갔어요. 그 카메라 유물과 비슷한."
기억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쯤 되자 왜 권 회장을 찾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보나마나 권 회장에게 아부하러 갔군.'
기억 유물을 대가로 권 회장에게 다시 붙으려는 것이다.
그게 놈이 살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리고 그 말에 율리안이 깜짝 놀랐다.
"뭐야, 그럼 권 회장이 양 쳰처럼 기억을 되찾게 된다는 거야?!"
뭘 걱정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단장님?"
주헌은 조용한 핸드폰을 보며 웃었다.
아주 즐거운 듯이.
그리고 놈을 기다리듯이.
***
권 회장은 역시나 혼란스러웠다.
'역시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
권 회장은 기억 유물로 주헌과 처음 만났을 때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주헌은 20대 중후반 쯤.
"와, 서주헌. 저거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대단한 놈이 나타났어."
제 주변에서 주헌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주헌, 마지막 남은 7대 무덤, 탐욕을 클리어하다.]
[7대 무덤은 상위 유물의 상징적 무덤]
[세계 최초로 독식자도 아닌 일반인이 7대 무덤 클리어?]
그리고 무엇보다 주헌은 이미 승리자가 굳혀져 있던 게임에서 이겼다.
그 사실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물며 주헌은 실력도 미친 듯이 좋았다.
[신인 발굴꾼 서주헌, 7대 무덤 공략 이후 대형 발굴단이 전멸한 주요 무덤까지 차례차례 격파.]
[왕급들의 뜨거운 러브콜 "서주헌, 꼭 무서운 역량"]
["서주헌 스카우트 전쟁"]
[왕급의 밑에 들어가나, 독립해서 왕급이 되나?]
무덤 전쟁의 시대.
소형발굴단부터 대형발굴단까지 그 발굴단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했지만, 이미 유물을 독식한 왕급들에게는 치이던 때.
대형발굴단을 가진 왕급들이 소형 발굴단을 삼켜가며 몸집을 불리던 때.
주헌의 실력을 탐낸 왕급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주헌을 데려가려고 했다.
아이린도 그 중 하나였다.
"서주헌은 제가 데려가고 싶어요. 언노운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무서운 파산의 힘에 왕급들도 포기하나 싶었다.
하지만.
"치료 유물만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주헌이 택한 건 결국 권 회장이었다.
여전히 잘생긴 외모였지만, 좀비 같은 혈색이었다.
뭐 그건 당연했다.
"세계 인구의 40%가 유물증후군에 걸렸다더니."
주헌 역시 병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불로초와 치료 유물을 독점하고 있던 권 회장의 지위는 엄청났다.
"치료 유물이 필요합니다."
주헌은 권 회장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주헌이 바라는 건 자신의 치료제가 아니었다.
"가족의 치료제만 있으면 됩니다."
"가족? 자네는 고아가 아니었나?"
"은인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헌이 바라는 건 자신을 친동생처럼 키워준 김 형사와 그 아내의 치료였다.
그리고.
"쌍둥이 동생의 치료제도 필요합니다."
권 회장은 입꼬리를 올렸었다.
완전 거저먹기였다!
이 뛰어난 인재를 이렇게 쉽게 얻게 될 줄이야!
"아예 이 신급 치료 유물 하나를 통째로 주지."
"정말이십니까?!"
"날 믿게. 난 남을 배신하는 성격이 아니거든."
그 뒤로 이런 저런 부서를 떠돌던 떠돌이 주헌에게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었다.
"저 아이가 네 첫 부하직원이다. 잘 챙겨주도록."
주헌의 첫 부하는 설아였다.
그리고 오들오들 떠는 설아를 본 주헌은 쯧 혀를 차며 담배를 껐다.
그러더니 권 회장을 나무랐다.
"뭐가 그리 급해서 크리스마스 날부터."
그리고 두 번째 율리안, 세 번째 유재하를 넘겨주었고, 나머지는 주헌이 알아서 인재를 모으는 듯 했다.
그리고.
"자 회장님. 원하시는 건 다 이루어드렸습니다. 이제 약속을 지켜주실 때입니다."
"!"
주헌의 목소리에 권 회장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10년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C급짜리가 아니라 약속했던 SS급 치료 유물을.
순간의 고통만 잠재우고 병의 진행 속도만 늦추는 낮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물을.
"제 가족들, 그리고 제 부하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물을 주세요."
그는 권 회장과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권 회장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주헌의 강렬한 눈빛에 움찔했다.
"회장님!"
"그..."
곧 권 회장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였다.
"좋아. 그 치료 유물은 약속대로 자네 거니까."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벙긋거렸다.
정확히는 자신이 빙의하고 있던 이 시대의 권 회장이 대답을 한 것이었겠지만.
그리고 주헌이 사라지자 자신은 말했다.
"저 따위 놈에게 치료 유물을 주는 건 아깝지.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죽여라.
용도를 다한 사냥개는 쓸모가 없어지면 죽여라.
그는 그렇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커헉!"
권 회장은 앨범 유물 속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왔다.
곧 식은땀을 흘리는 그를 보며 권혁수와 양 쳰이 달려왔다.
"혀, 형님!"
"회장님!"
권 회장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시 이건 곧 다가올 미래가 아니야."
"네. 그건 아마도 왔어야 했을 미래일 겁니다."
"!"
양 쳰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서주헌이 방해를 해서 그 미래가 바뀌어버린 거죠. 전생이라는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권 회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광경들을 보고 원인모를 빡침이 느껴지는 건 그 탓이었던 걸까.
마치 키우던 개에게 물린 것 같아서.
"서주헌 이..."
권 회장은 재빨리 주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곧 발신 중이던 전화를 끊었다.
뚝.
권혁수가 이를 이상하게 보았다.
"형님?"
그러나 권 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정말로 미래가 바뀐 거라면 그 원흉은 서주헌일 터.
그놈이라면 이 장면에 대해 잘 알 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놈에게 섣불리 물어볼 수도 없어.'
서주헌이 어떤 놈인데.
그리고 왜인지는 몰라도 주헌에게 전화를 하기가 두려웠다.
그는 침을 삼켰다.
'차라리 다른 방법을 꾀하는 게...'
그런데 그때였다.
부르르.
'!'
와장창!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권 회장이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하물며 액정에 뜬 이름에 권 회장의 얼굴은 새하얗게 굳어갔다.
"회장님...!"
결국 망설이던 권 회장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
[안녕, 폰팔이?]
주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