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5 너한테는 안 줘 =========================================================================
< 너한테는 안 줘 (1) >
“욘석아, 해가 졌으면 집에 돌아와야지.”
주헌이었다.
동아줄은 주헌을 보면서 씰룩씰룩거렸다. 그러더니 팔짝 뛰어 주헌에게 스르륵 감겨들었다.
[#*$&*!]
찾았다, 찾았다!
동아줄은 주헌을 다시 만나서 그저 좋은지 얼굴을 비벼댔다.
인간의 칼에 잠깐 찔리긴 했지만 그딴 건 동아줄에게 그냥 모기에게 찔린 정도의 느낌이었다.
오히려 칼에 찔린 계기로 중간에 유물의 힘을 쓸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때 차 안을 보던 유재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뭐야. 단장님! 안에 나쁜 놈들 밖에 없는데요? 걔, 도둑 애 없어!”
“뭐? 정말?”
“어? 하지만… 주헌 씨가 어떤 여자애를 찾아야 한다고….”
유재하의 외침에 설아와 아이린도 당황한 얼굴로 차 안을 살폈다.
그리고 유재하의 말대로 9인승 차 안에는 거품을 물고 기절한 사내놈들밖에 없었다.
“짐칸에도 그 여자애 없어요! 다른 데로 갔나?”
그러자 설아가 악의 없이 툴툴거렸다.
“그러니까 누가 경찰서로 보내래. 이렇게 추운데 괜찮을까 모르겠다.”
자신의 파카를 입혀주긴 했지만, 그래도 알몸이라 추울 거라며 설아가 투덜거리자 유재하가 억울해했다.
“이씨. 아니, 유물 내놓으라고 협박 했잖아! 도둑이었잖아! 난 단장님을 위해서……!”
그러나 설아는 가볍게 유재하를 무시하고 주헌을 불렀다.
“단장님, 다른 곳도 찾아볼까요?”
“저희 헬기랑 경호원들이라도 불러서 수색을 시키면….”
아이린까지 끼어들자 주헌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그 여자애는 이제 안 찾아도 되니까.”
“어? 정말요? 경찰서까지 가신 거 보면 중요한 아이 아니에요?”
“음,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데…….”
주헌은 자신의 볼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얼굴을 비비는 동아줄을 힐끗 보았다.
“아무튼 이제 찾을 필요 없어요.”
그 말에 유재하가 아쉬워했다.
“에이, 난 또 단장님이 이상형이라도 찾은 줄 알았지.”
“이상형?”
아이린과 설아가 관심을 보였다.
“무슨 소리야?”
“아, 단장님이 그 여자애 얼굴을 진짜 빤히 봤거든. 그래서 키워서 잡…… 커헉!”
유재하는 주헌에게 또 얻어맞았다.
“헛소리 말고.”
“이씨이! 예쁘긴 예뻤잖아! 나중에 어떻게 클지 기대되는 얼굴이었잖아!”
그래 당연히 예쁘겠지.
‘그렇게 열병과 매력의 시약 유물을 온몸에 뿌려댔는데.’
주헌은 동아줄을 힐끗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언제였지.
분명 자신이 노천온탕에 들어가 있을 때였을 것이다.
관심 받고 싶어 하던 동아줄이 아이린과 설아가 가진 시약 유물을 훔쳐와서는 자신의 몸에 양념 치듯이 뿌려대지 않았나.
그때 떠올랐던 메시지가 분명 ….
[동아줄의 매력도가 몹시 올라갑니다.]
[동아줄에게 S라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동아줄의 피부가 매끈해지는 것 같습니다!]
[동아줄의 피부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때는 기껏해야 밧줄이니까 그딴 걸 온몸에 뿌려봤자 소용없다고 여겼건만.
‘알고 보니 다 적용이 된 거였어.’
주헌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큭큭 웃었다.
‘뭐, 그래도 성인모습이 아니라 의미가 없나.’
주헌은 가출한(?) 동아줄을 야단치듯이 휘휘 어지럽게 흔들어댔다. 물론 동아줄은 그마저도 좋다는 듯 씰룩거렸다.
“아무튼 됐다. 그 여자애 찾기는 이제 안 해도 돼.”
“어, 정말요?”
“그래, 이미 찾았으니까.”
“엥? 찾아요?”
“그래, 이거.”
주헌은 태연하게 동아줄을 흔들어보였다. 마치 뱀이라도 잡은 사냥꾼 같았다.
하지만 정작 세 명은 지금 자신들이 뭘 들었냐는 듯 기겁했다.
“잠깐만요! 아까 그 여자애가 그 동아줄이라고요?!”
“말도 안 돼!”
“진짠데. 저기 안에 설아가 입혀준 흰 패딩 있잖아.”
이에 주헌을 제외한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아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동아줄은 인간으로 변신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납득했다.
‘그래서 단장님이 경찰서까지 간 거구나!’
‘쟤 찾으러 갔던 거야!’
뭐 주헌의 입장에선 클로에 수색 겸. 겸사겸사였던 것이지만 단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동아줄이 사람의 모습이라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린이나 설아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그때.
유재하가 낄낄 웃으며 한마디 했다.
“대박. 단장님이 그렇게 직접 나설 정도라니. 누가 유물성애자 아니랄까 봐.”
유재하는 대수롭지 않게 장난을 쳤지만 순간 아이린과 설아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잠깐만!’
크게 신경 쓰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주헌은 유물을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동아줄은 그 유물들 가운데에서도 주헌의 옆에 가장 오래 붙어 있었다.
심지어 예쁘다고 했다.
그나마 성인의 모습이 아니라니까 다행이긴 하지만…….
‘유물이잖아. 성인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
‘어, 언젠가는 자라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뭘 상상한 건지 설아와 아이린은 새하얗게 질려서 털썩 주저앉았다.
동시에 둘은 차마 주헌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땅만 탕탕 쳐댔다.
‘단장니이임! 왜 하필이면 인간도 아니고 도구에게……!’
‘주헌 씨! 제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에게 최강의 적은 전 세계 여자들이 아니라 유물이 아닐까.
하지만 좌절도 잠시, 그녀들은 눈에 불꽃을 튀기며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질 수 없다.’
‘적어도 유물에게는!’
그러나 뒤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주헌은 낄낄 웃고 있었다.
‘최근에 왜 이렇게 수상한 알바를 하나 했더니.’
안 봐도 훤했다.
사실 주헌이 처음부터 동아줄의 정체를 알아차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렁이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왜?
감히 설아의 가슴을 파라다이스 삼은 죄로 지렁이 장아찌로 만들어버렸으니까. 그냥 감이 좋은 주헌은 여러 상황 속 증거들을 조합해서 추측했을 뿐.
‘뭐, 인어공주의 유물을 쓴 건 흥미롭긴 했지만…….’
아무래도 A급이다 보니 불안전한 부분이 너무 많아보였다.
하지만.
‘그 쑥과 마늘 유물을 쓸 수 있다면 결과는 좀 달라졌겠지.’
SS급(신급)이니까.
물론 그렇다 한들 어쩌겠나.
‘그래봐야 입도 없는 밧줄인데 뭐.’
과연 그걸 사용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악의 없이 킥킥 웃던 주헌이 차에서 괴한들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어쨌든 니들, 일어나라.”
“끄, 끄으으으…….”
“니들 클로에에 대해서 알지?”
“……!”
사내들은 낯익은 이름에 낯빛이 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시치미를 뚝 뗐다.
“허, 모르겠는…… 커헉!!”
사내는 배를 움켜쥐고 피를 쿨럭 쿨럭 토해냈다.
“말해두지만 니들은 내 유물을 유괴하려고 했고, 그래서 난 지금 기분이 심히 안 좋아.”
“유, 유괴라니……! 그 여자애가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러자 순간 주헌의 눈빛이 흑범처럼 사납게 번득였다.
‘!’
동시에 사내들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말단 조직원이지만 자신들도 유물사용자들인 만큼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새끼, 잘못 건들면 좆 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외쳤다.
“유, 유괴한 건 잘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돌려드릴 테니 부디 용서를….”
주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 유물들을 훔쳐간 건 특별히 봐주지. 대신 내 거니까 31개 전부 도로 가져간다.”
“네네, 찾아가세……음? 잠깐. 31개라니?”
“네 건 달랑 그 밧줄 하나…….”
그러자 주헌이 딱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저기 뒤에 더 있잖아.”
그러더니 짐칸에 있는 박스들을 천연덕스럽게 가리킨 것이었다.
“클로에에 대해 말하면 내 유물들을 빼앗아간 죗값은 이 정도로 해주지.”
“이, 이자식이?!”
주헌이 생긋 웃었다.
“고작 내 유물 31개를 돌려받는 걸로 끝내준다잖아. 자 빨리 말해 봐. 클로에 어딨어?”
하이씨!
그리고 바로 이때였다.
“왜 날 찾는 거죠?”
낯익은 목소리에 주헌은 미소를 지었다.
***
‘빙고.’
주헌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여자 세 명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분명히 있었다. 아름다운 미인이.
“클로에……!”
설아는 옛 단원을 보자 내심 기뻐했다. 하지만 클로에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헌을 응시했다.
“우리 단원들 풀어줘요. 그리고 왜 날 찾느냐고 물었는데요.”
그러자 주헌이 한숨을 쉬며 클로에에게 다가갔다.
클로에는 주헌을 보며 비웃었다.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큭!”
주헌은 사정없이 클로에의 목을 비틀었다.
이에 단원들 모두가 기겁했다. 특히 설아가 당황한 듯 싶었다.
“다, 단장님! 갑자기 왜!”
“왜?”
그러는 와중 주헌은 더욱 거칠게 클로에의 목을 비틀었다.
“단장님!”
설아는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최후의 무덤.
그 날은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도, 무덤 안에서도 클로에와 주헌은 크게 다퉜었다.
이유는 모른다.
단지 최후의 무덤에서도 단 둘이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둘을 구하러 단원들이 들어갔을 때 클로에가 주헌에게 이렇게 울부짖고 있었던 것 같았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멀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렇게.
‘원래부터 단장님하고 클로에는 사이가 안 좋기도 했지.’
그게 무덤 안에서 터진 게 아닐까, 자신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일.
하지만 그건 벌써 과거의 일이었다.
‘설마 단장님, 클로에를 죽이려는 건…….’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설마!
설아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장님! 잠깐…!”
하지만 그때였다.
“카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
“커허어억!”
주헌에게 목이 졸려 얼굴색이 변해가던 클로에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타난 건 클로에가 아닌, 낯선 여자였다.
“서, 설마 도플갱어 유물!”
주헌은 웃었다.
“감히 누구의 눈을 속이려고.”
“단장님!”
“크윽, 어떻게 눈치챘지……아악!”
주헌은 여자의 발을 걸어 넘어트리며 그 위에 대수롭지 않게 올라탔다.
“말해두지만, 내 눈을 속일 수 있는 건 원조 사기왕, 우리 복원사 놈 밖에 없어.”
그 말에 유재하가 심장어택이라도 받은 듯 크윽하며 쓰러질 뻔했다.
칭찬에 인색한 주헌인지라 그는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다.
“내가 진짜 주말 반납한다. 엉엉. 진짜 열심히 한다, 엉엉.”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의 몸을 뒤지던 주헌이 물었다.
“클로에는 유럽으로 갔나?”
주헌이 확인 한 건 여자가 가지고 있던 수첩 스케줄 표.
“자, 말해. 클로에는 어딨나.”
“큭, 이 강탈왕 놈! 아악!”
“다른 놈들은 몰라도, 니들한테는 아량이고 배려고 베풀 생각 없다.”
그러자 유재하가 깐죽거렸다.
“원래부터 그런 거 베푼 적 없으면서……커헉!”
유재하의 머리통에 수첩을 던진 주헌이 우악스럽게 여자의 얼굴을 붙잡았다.
“자,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으으우웁!”
주헌은 여자를 정말 죽일 기세였다.
원래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주헌이지만, 이놈들은 유물사용자들을 주로 노리는 전문 사냥꾼들.
‘내 이름도 태연하게 살인명단에 올리는 놈들을 살려둘 이유는 없지.’
그리고 그걸 깨달은 건지,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느낀 건지, 여자가 외쳤다.
“허, 클로에를 왜 찾는지 몰라도 늦었어! 클로에는 TKBM의 직원과 함께 권 회장을 만나러 갔거든!”
“!”
“권 회장을 치료해주고 협상할거야. 비즈니스라고.”
주헌은 픽 웃었다.
오호라. 권 회장한테 갔다 이거지?
***
한편 그 무렵.
진짜 클로에는 TKBM의 직원과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캐나다 공항의 화장실.
‘권 회장을 치료해주고 거래를 한다.’
화장실 칸 안에서 은밀히 유물을 점검하던 클로에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 치료만 해주면 되는 거야. 그쪽이 더 이익이다.’
그럴 때였다.
“10시 10분 발 비행기가 곧 출발하오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아.”
클로에는 곧 비행기에 올라타야 한다는 걸 알고 화장실 칸 안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때였다.
“으, 으읍!”
클로에는 바로 누군가에게 납치당하고 말았다.
“으, 으으읍?!”
그녀를 납치한 건 다름 아닌 설아였다.
그리고 그 앞에 당당히 나타난 사람이 두 명.
“오랜만이야, 내 부하.”
“?!”
‘가, 강탈왕?’
그렇다.
당당하게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 있는 건 주헌과 유재하였다.
그리고 그럴 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서주헌. 빨리 처리해. 곧 사람이 올 거야!”
여자 화장실 밖에서 망을 보고 있는 건 율리안이었다.
분명 본인은 여자 화장실 따위, 천박하게 들어가기 싫다며 망보기를 택한 것이리라.
클로에는 황당해 하며 주헌을 보았다. 입은 뒤에 있는 설아한테 단단히 막혀 있고.
유재하는 음흉한 얼굴로 도플갱어 유물을 들고 있었다.
“으, 으으읍.(뭘 할 생각이야)”
“뭐, 별 건 아니고.”
주헌은 뭔가를 꺼내들며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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