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4 잔말 말고 내놓으셔 =========================================================================
< 잔말 말고 내놓으셔 (5) >
“야야, 재하야. 잠깐 걔 좀 내려봐.”
“네?”
주헌이 동아줄의 얼굴을 보았다. 어째서인지 소녀의 얼굴을 정말 빤히 보는 것이었다.
‘뭔 이상형이라도 된대?’
결국 유재하는 이 단장님이 또 왜 이러나 싶었지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인간한테 흑심을 품을 인간도 아니고.’
아이린하고 설아가 가만히 있을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동아줄은 빨리 이거 놓으라며 낑낑 거렸다.
‘이거 놔! 이거 놔!’
확실히 밧줄일 땐 잘 몰랐는데, A급 유물로 변한 인간의 몸은 너무 약했다. 무려 유재하가 붙잡는 것만으로도 꼼짝을 할 수가 없다니!
동아줄은 새삼 큰 충격에 빠졌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안길 거야, 안길 거야!’
“어? 야, 야! 가만히 안 있어?”
그리고 그렇게 몸부림을 치던 그 순간!
“어!”
그만 아이가 뒤집어쓰고 있던 공사장 천막이 벗겨지고 말았다.
‘!’
동시에 드러나는 뽀얀 알몸.
순간적인 일에 유재하도 주헌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ㄲ……!”
그중 가장 당황한 설아가 가장 먼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잖아!”
그녀는 곧장 자신의 파카를 벗어 동아줄을 쫓아갔다. 긴 머리카락이 몸을 약간 가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여자아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얘! 이리 와! 그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안 돼!”
하지만 동아줄에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은지 곧장 주헌에게 직진했다.
‘안길 거야, 안길 거야.’
“다, 단장님!”
“위험해요!”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워워 스톱, 스톱.”
이번엔 주헌에게 제지당했다.
주헌은 한 손으로 동아줄의 조막만한 머리를 붙잡았다.
“야야, 멈추랬지.”
덕분에 주헌을 향해 전력질주하던 동아줄은 제자리에서 헛발길질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주헌의 키가 상당하기 때문에 키가 작은 동아줄은 너무 쉽게 붙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동아줄은 포기하지 않았다.
‘안길 거야아아.’
눈에서 불꽃마저 튀기는 것 같았다.
물론, 그래봐야 지금은 인간의 상태.
무식한 괴력을 자랑하던 밧줄이 아닌 이상 주헌이 꿈쩍할 리도 없었다.
“야야. 그만하라고. 정체도 모르는 놈이 안기는 건 싫다.”
그러자 아차 싶었던 동아줄이 바로 필담거리를 찾았다.
글씨를 쓰면 주헌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눈을 반짝인 동아줄은 곧바로 바닥에 글씨를 썼다.
눈 위에 글을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에, 지렁이가 써도 이거보단 잘 쓰겠다.”
“뭐라고 쓴 거야, 이거?”
동아줄은 충격을 받았다.
아무래도 인간의 손으로 쓴 글씨는 엄청난 악필인 듯 했다.
‘어, 어쩌지.’
결국 당황한 동아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퍼뜩 뭔가를 떠올린 동아줄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유재하의 품을 노렸다.
이번에 나온 건 바로 핸드폰!
“야! 뭐하는 거야! 야!”
하지만 그 사이에 문자를 쓴 동아줄이 반짝이며 유재하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자, 이제 됐지! 됐지! 나야, 나!’
이제 유재하나 주헌이나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밧줄이라고 써놓았으니까.
그래서 기쁜 얼굴로 주헌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오호라. 이것 봐라?”
뒤에서 유재하의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동아줄을 질질 끌고 갔다.
“단장님, 얘 경찰서 데리고 갑니다.”
“?!”
가, 갑자기 왜 이러지?
그러나 자신이 쓴 핸드폰 화면을 본 동아줄은 기겁하고 말았다.
[니들 가진 유물 다 내놔.]
“!!!!”
완전히 다른 문구가 쓰여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재하가 헛웃음을 흘렸다.
“쬐그만한 게 아주 도둑고양이였어.”
‘아니야, 아니야!’
동아줄은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하지만 곧 그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리스크!’
동아줄은 인어공주 유물이 말해줬던 걸 떠올리며 아차 싶었다.
‘잘 기억해. 네가 인간으로 변해 있는 동안 넌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못 해. 뭘 말하려고 해도 원하는 대로 글이 안 써질 거야.’
설마 그 탓인가.
그리고 이 때 유재하가 헛웃음 흘리면서 주헌에게 말했다.
“경찰서에 넘기고 올게요. 단장님은 빨리 설아랑 아이린이나 만나러 가세요.”
“아 잠깐, 재하야! 쟤 옷은 입혀줘!”
“어유, 도둑한테 그런 친절 필요 없거든!”
그렇게 유재하는 동아줄을 질질 끌고 경찰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특별한 힘이 없는 동아줄은 낑낑거리며 유재하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주인님! 주인님!’
그 모습이 마치 부모를 구슬프게 찾는 새끼짐승이었지만, 알 게 뭐람.
내용물을 알 턱이 없는 설아가 황당해하며 주헌을 보았다.
“단장님 뭘까요, 저 아이?”
“글쎄?”
주헌은 픽 웃었다.
***
“당장 치료꾼을 데려오라고 당장!”
한편 그 무렵 권 회장은 병원에서 신문을 보며 치를 떨고 있었다.
안 그래도 주헌이 친 사건들 덕분에 뒷목을 잡고 쓰러졌던 권 회장이었다.
그리고 금방 정신을 차린 건 좋았는데…….
“허 진짜 이게 꿈이 아니라니.”
보고 또 다시 봐도 자신의 재산은 서주헌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제 자식들이 벌인 사고라는 걸 안 권 회장은 피를 토했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러자 당황한 자식들이 급하게 권 회장을 진정시켰다.
“아,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 저희가 어떻게든 서주헌한테서 재산을 되찾아올 테니까요.”
“그, 그래요! 이번 오만의 무덤에서 유물만 빼오면… 그깟 유물들이랑 인재들 되찾아오는 건 일도…!”
“그러니 아버지는 걱정 마시고 푹 쉬시…….”
“안 닥쳐?! 됐으니까 치료꾼이나 찾아오라고! 내가 직접 지휘할 테니까!”
결국 장남은 이를 갈면서 양 쳰을 불렀다.
“클로에니 뭐니 걘 어떻게 된 거야! 캐나다 북쪽에 있다며!”
“네. 아직 캐나다를 뜬 흔적은 없고…… 아직 그 일대에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수색 중이라고 합니다.”
“30명이나 투입했다며! 그런데 그 쬐그만 마을에서 왜 여자 하나 못 찾아! 추적 유물도 보냈다며!”
“그렇긴 한데 죄다 실종되었다고 하는 군요.”
뭐야, 실종?
장남은 황당했지만 권 회장을 보고는 이를 갈았다.
“됐으니까 빨리 찾아 빨리!”
***
“네? 뭐라고요?”
동아줄을 정말로 경찰에 넘긴 유재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비슷한 사건이 30건이나 있었다고요?”
“네. 30건이요. 유물사용자만 노리는 이상한 조직이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유재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물사용자만 노리는 조직이라니.
‘혹시 그 반 유물 세력이라는 놈들인가?’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동아줄을 보며 말했다.
“이 추위에 아이가 아무것도 안 입은 상태랬죠?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강도짓을 해요.”
“그래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끄나풀 찾기도 힘들었는데. 수사 결과는 말씀드리죠.”
“네, 그러세요.”
그렇게 유재하가 나가자 경찰이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어떻게 당한게 다 TKBM이냐. 야야, 이 아이 신원 제대로 파악해. 일단 판도라 쪽에 보내서 심문부터……… 어?”
그러나 고개를 돌린 경찰은 까무러치고 말았다.
쾅!
“야! 얘, 얘 어디 갔어!”
동아줄이 그 사이에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한편 그 무렵.
[#*$*!]
야야, 너 어쩔 거야! 어쩔 거야!
해는 어느새 저물어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동아줄은 주헌에게 돌아가기 위해 막연하게 도로를 걷고 있었다.
사방은 어둡고 추웠고, 그리고 사람 하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동아줄을 향해 어디서 나타난 건지, 인어공주 유물이 데굴데굴 기어 나왔다.
[#$*(!]
야! 추워 죽겠어! 너 인간의 몸으로 버티겠어? 앞으로 4일 동안 효력은 계속 되는데.
아무래도 동아줄이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것이리라.
[4$&*!]
그리고 4일 내로 인간이 네 정체를 알아야 한다니까? 아니면 진짜 위험하다니까?
안다.
그건 잘 아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패기 있게 경찰서를 뛰쳐나온 건 좋은데, 그만 길을 잃어버린 동아줄은 훌쩍였다.
유물 상태이면 주헌이 소환을 해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나. 함께 온 인어공주 유물도 밤이 되니 길을 찾긴 힘들어하는 기색 같았다.
[#*$&*!]
아우 추워 죽겠네! 넌 춥지도 않냐?
인간의 몸은 춥긴 춥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어서 어두운 거리를 맨발로 묵묵히 걸어갈 때였다.
‘!’
인적 없는 찻길에 누군가가 있었다.
한 다섯 명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트럭에 뭔가를 싣고 있었다.
동아줄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 마냥, 얼굴이 밝아졌다.
‘태워달라고 하자! 태워달라고 하자!’
주헌이 지내고 있는 호텔의 이름은 알았다. 이름만 말해주면 분명 갈 수 있으리라. 그리 마음먹은 동아줄은 환하게 웃으면서 바빠보이는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사내들의 분위기는 심각해보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지? 클로에는 연락 돼?”
“아직. TKBM이 이 근방을 샅샅이 찾고 있으니까 숨어다니겠지. 야, 손 안 삐져나오게 잘 담아! 거기 다리도!”
“야, 유물 떨어트리지 마. 이게 다 어떤 무기인데!”
정체불명의 사내들은 시체와 유물들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이 자식이 가진 유물은 다 빼앗았지? 잘 담아. 이게 우리 무기니까.”
“그래, 빌어먹을 유물사용자놈들.”
“이 자식들 TKBM이지? 잘 됐어. 이놈들의 유물로 상위 발굴단부터 쳐낸다.”
“단장이 다음 제거 타겟은 누구로 하재?”
“운명왕이랑 권 회장도 있긴 한데…… 서주헌도 목록에 올라왔더라고.”
“그래? 안 들킬까?”
“걱정 ㅁ…… 흐아악!”
그들은 말하다 말고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웬 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들을 톡톡 쳤기 때문이다.
“뭐, 뭐야 이 계집애는!”
뭐기는.
‘차 태워줘! 차 태워줘!’
동아줄은 초롱초롱하게 남자들을 보았다. 하지만 사내들은 기겁하며 짐칸에 실은 유물과 시체를 보았다.
“하씨, 야. 이 계집애 이거 본 거 아냐?”
“보, 본 거 같긴 한데….”
“야! 너 뭐야!”
하지만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동아줄은 아, 하고 바로 파카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경찰서에서 가져온 종이와 펜이었다.
아까는 익숙하지 않아서 악필이 나왔지만, 이번엔 확실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
‘호텔로 데려가달라고 하자.’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주헌을 찾아달라는 글귀를 쓴 종이를 사내들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좋은 말로 할 때 유물 다 내놔. 망할 새끼들아.]
인간이 된 리스크는 막강했다.
아니나 다를까, 종이를 본 사내들이 얼굴을 구겼다.
“허, 뭐? 이 계집애가 미쳤나!”
“아 됐고 일단 태워! 처리는 나중에 생각하자고!”
“!”
그렇게 동아줄은 순식간에 차에 태워졌다.
물론, 동아줄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유물이 고작 인간들의 조잡한 칼과 협박 따위를 무서워하겠는가.
오히려 동아줄은 기뻐했다.
‘이쪽이야! 이쪽! 오른쪽!’
아는 길이 나오자 동아줄은 신이 나서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차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자 동아줄은 화를 냈다.
‘그쪽 아냐! 그쪽 아냐!’
그러더니 운전석으로 기어가 핸들을 비트는 것이었다. 덕분에 차가 크게 흔들리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쾅!
“아악! 뭐야 얘가 왜 이래 미쳤냐!”
“이 계집 일단 닥치게 해!”
그렇게 남자들이 칼로 동아줄의 배를 찔렀다.
“!”
아이가 쓰러지자 사내들은 비릿하게 웃었다.
“꼬마애가 귀찮게 하기는.”
그러나.
‘아프잖아! 아프잖아!’
동아줄이 눈을 번득였고, 그 순간 오라가 터져 나오면서 동아줄의 몸이 번쩍였다.
“뭐, 뭐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건 인간의 모습이 아닌 원래의 동아줄!
동아줄은 분노를 담아 사내의 목을 졸라댔다.
덕분에 사내들은 끄아악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커, 커헉! 뭐야! 도대체!”
그런데 이때였다.
“야, 야! 앞! 앞!”
운전하던 그들은 앞에 나타난 뭔가를 보고 거품을 물었다.
길거리에 키 큰 청년이 떡하니 서 있던 것이다.
장신에 검은 무스탕 자켓, 섬뜩한 미소.
그건 다름 아닌 주헌이었다.
“사람, 사람이잖아!”
“피해!”
“아냐! 잘 봐! 저 새끼 유물 가졌어! 그냥 치어버리라고! 저 놈 유물도 빼앗…… 으아아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헌과 사내들의 비명이 교차되었다.
쾅! 쿠과과광!
차는 전복되고, 박살이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
자신의 몸이 흐릿해졌다.
어쩌면 칼에 찔릴 때 핵에 닿은 걸지도 몰랐다. 아마 A급 유물을 써서 어설프게 인간으로 변해있던 탓이겠지.
‘사라지는 건 상관없지만.’
그래도 주헌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구도가 망가진 동아줄이 차안에서 낑낑거릴 때 쩌억, 차 천장에서 칼이 쑤욱 들어오며 차가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그리고 틈으로 보이는 낯익은 얼굴들.
“얘, 너 괜찮니?”
“괜찮아요?!”
“어휴, 쟤네 살아 있대요? 근데 얘네 때려잡으면 클로에인가 뭔가 찾을 수 있는 게 진짜야?”
이설아, 아이린, 유재하.
그리고…….
[#$*&!]
찾았다! 찾았다!
동아줄은 천장에 앉아 있는 청년을 보며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쯧쯧 혀를 차며 동아줄에게 말했다.
“욘석아. 해가 졌으면 집에 돌아와야지.”
주헌이었다.
============================ 작품 후기 ============================
찾았다, 요놈!
+ 오늘은 분량을 맞추기위해 2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