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9 파라오의 저주 =========================================================================
유재하는 지금 진짜 돌 것 같았다.
아니, 무덤의 힘으로 일행이 뿔뿔이 흩어진 건 다 좋다 이거였다! 무덤이니까 까짓것 위험은 감수해야지.
그래도…….
“오, 재미있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왜 하필 권 회장이냐고!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네.
권 회장과 눈이 마주친 유재하는 육식동물을 만난 토끼마냥 몸을 떨었다.
동시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저 노친네 누구야?”
한 서른 명 정도 되는 TKBM 발굴단 인력들이 유재하를 쏘아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나타났지?”
“하하, 왜긴. 저 등신도 파라오의 저주를 받은 모양인데.”
“처리하자고.”
곧 칼이 유재하의 목에 쑥 들어오자 그가 비명을 질렀다.
젠장, 역시 이대로 죽나!
‘역시 TKBM의 원수니까 살려둘 리가 없겠지!’
그런데 그럴 때였다.
“기다려. 유물만 빼앗고 보내주자고. 어르신이잖아. 노인 공경이야, 노인 공경.”
“하긴, 회장님도 너무 소란스럽게 하지 말랬고.”
유재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노인으로 변해서 다행이다…. 역시 알아볼 리가 없다니까.
하지만 그 순간.
“노인?”
어째서인지 권 회장이 이죽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것 치곤 얼굴이 낯익은데 말이지.”
젠장!
권 회장의 웃음에 유재하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확실했다.
저 노친네, 자신을 알아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유재하. 왜 이런 곳에 홀로 있지? 너희 단장은?”
‘젠장, 역시 들켰어!’
살짝 속옷이 축축해진 유재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쇤네가 귀가 안 좋아서…!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그럼 잘 들리게 해주지. 귀라도 잘라내.”
“네!”
“아아아악!”
유재하는 단숨에 귀를 잡혔다.
틀림없었다. 권 회장의 성격에 분명 이 무덤에서 죽는다!
심지어 이 자식들…….
‘사냥꾼이잖아!’
그 인간 사냥꾼들 말이다.
비록 사냥꾼이라는 놈들을 처음 보긴 했지만 확실했다. 주헌이 알려준 몇 가지 특징과 일치했다!
곧 그들이 유재하의 귀를 도려내려 하며 웃었다.
“자, 회장님의 명령이다. 왼쪽 귀가 좋냐, 오른쪽 귀가 좋냐.”
“아아아악! 아니라고! 전 유재하란 사람이 아니라고요! 다른 발굴단에 고용된 짐꾼이라고! 눈깔 뼜어? 진짜 내가 유재하면 손에 장을 지진…….”
그런데 그때였다.
“!”
유재하의 손과 얼굴에 잡혔던 주름이 평평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노인이었던 모습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
결국, 주름이 싹 사라지면서 젊은 모습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이죽거렸고, 유재하는 코를 훌쩍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팔,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 사과 말고 TKBM 거 쓰거든요? 핸드폰도, 노트북도, 집안에 있는 가전제품 죄다 TKBM 거거든요? 제가 TKBM 가족입니다. 제발 한 번만…….”
“구라치지 마. 너 앱등이잖아. 주머니에 아이뽕 다 보여.”
이씨!
유재하의 몸을 투시한 건지 여자 하나가 밉살맞게 웃었다.
“이 원수덩어리들. 회장님이 너하고 서주헌한테 얼마나 이를 갈고 계시는 줄 알아?”
“죽여! 죽여서 유물 빼앗아!”
결국 사냥꾼들에게 귀를 잡힌 유재하가 간덩이가 부었는지 발악했다.
“네, 그래요! 우리가 유물도 뺐었지, 복원사도 깜빵에 처넣었지! 집도 박살 냈지! 이 많이 갈고 계시겠지! 아주 임플란트는 안 필요한지 몰라! 어? 내가 좋은 치과 소개해줘?! 시팔, 내연녀한테 돈이나 쏟아붓는 노친네 주제에!”
“저 미친놈이.”
권 회장은 혐오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이렇게 지껄였다.
“모가지를 날려라.”
“지금요?”
“친부를 죽이면 다빈치 유물의 소유권도 후견인으로 넘어오지 않겠어?”
아이고, 저 사이코패스!
유재하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급해졌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닿는 건 살리에리의 유물. 무려 7대 무덤의 유물이었지만….
결국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유재하의 선택은 하나였다.
“기다려요, 기다려! 목숨만 살려주면 단장님의 정보를 팔 테니까! 진짜 약점이고 뭐고 다 알려줄 테니까 목숨만은!”
“오호. 단장을 팔겠다?”
권 회장이 관심을 가질 그때였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단장님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신거지.”
길달을 보내며 주헌을 찾던 이설아는 한숨을 쉬었다. 어지간해서는 귀신의 수색으로 찾아내지 못할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도깨비들조차도 주헌을 찾아내지 못했다.
분명 찾기 힘든 곳, 특수한 곳에 주헌이 떨어졌다는 증거였다.
‘단장님.’
그리고 이설아가 걱정하는 만큼 아이린도 주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유물로 뭔가를 보던 아이린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그리고 그녀의 비명에 이설아가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뭐에요, 무슨 일인데요! 그걸로 단장님을 찾고 있던 거 맞죠!”
평소라면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경계했을 테지만,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아직 소녀의 모습으로 있는 둘이 얼굴을 맞대고 책 유물을 보았다.
바지는 너무 커서 벗어버린 지 오래였고, 각자 셔츠를 원피스처럼 입고 있는 상태였다.
책 유물에는 주헌의 위험에 대해 암시하고 있었다.
[육신 주의]
[밧줄 주의]
그 이상한 문구를 보며 둘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하나.
“………밧줄.”
그 단어에 그녀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똑같은 물체였다.
‘동아줄!’
그렇다.
생각해보면 최근 이설아나 아이린이나 이상한 이야기를 접했다.
“분명 단장님이 유물성애자라는… 소문을.”
너무 기괴해서 들은 척도 안 하려고 했던 바로 그 소문이다.
하지만 거짓도 계속해서 접하다 보면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법.
주헌이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지만, 자신들에게도 시큰둥한 눈치고.
게다가….
아이린은 슬쩍 이설아를 보았다.
“사실은 제가 재하 씨한테 주헌 씨 사진을 여러 장 받았는데요.”
그 말에 이설아의 눈이 도깨비처럼 번득였다.
아니, 왜 그걸 저 여자한테만 줬는데!
‘유재하, 이 배신자! 돈의 노예 같으니!’
그러나 아이린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는 진지하게 생각 안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 전부에 찍혀 있던 것 같아요…….”
“뭐, 뭐가요?”
“동아줄이요. 모든 사진에 동아줄이 다정하게 찍혀 있었어요.”
동시에 이설아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실제로 유재하에게 입수한 모든 사진. 목욕사진, 취침 사진, 옷 갈아입을 때의 사진 등등.
모든 사생활 사진에 꼭 동아줄이 찍혀 있었다.
평소엔 목도리마냥 주헌의 목에 감겨 있다든지, 잘 땐 허리나 가슴을 감고 있다든지, 밥 먹을 땐 머리 위에 꽈리를 틀고 앉아 있다든지 말이다.
심지어 목욕을 할 때도 동아줄이 수건을 물고 몸을 닦아 주는 사진도 흔히 있었다.
그야말로 일심동체.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리는 없으리라.
결국, 침묵하던 그녀들 중 아이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동아줄은 지금 어디에 있죠?”
“어디긴…… 당연히 단장님이랑 있겠…….”
말이 끊겼다.
동시에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벌떡 일어섰다.
“주헌 씨가 위험해!”
“단장니이임! 아무리 그래도 유물은 안 돼요! 지더라도 사람한테 지게 해주세요!”
심각한 결론에 도달한 그녀들은 협력하기로 했다.
“당분간 우리 손을 잡죠.”
“그래요. 단장님부터 구해요. 우리 둘 다 단장님이 다치시길 바라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최소한 유물이랑은………!”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협정이 맺어진 순간이었다.
***
사람들은 낯선 인물의 등장에 당황한 듯했다.
“저 사람은……!”
TKBM 발굴단은 다급하게 유물을 붙잡았다. 경계를 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율리안 밀러!”
“저 새끼는 또 왜……!”
전 세계에 수만 개는 될 발굴단.
보통 상위 랭킹에는 국가의 발굴단이나, 전 세계에 지부를 둘 정도로 거대한 재력의 발굴단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율리안 밀러는 주헌처럼 고작 몇 명의 인원을 데리고 탑 랭킹에 들고 있었다.
경계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율리안은 유재하를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목숨만 살려주면 서주헌의 정보를 팔겠다고 했지? 분명?”
아니, 물론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진짜 단장님을 팔 것 같냐.’
그리고.
“애초에 너한테 한 이야기가….”
“됐고 목숨만 구해주면 되는 거잖아. 그게 누구든지.”
율리안은 정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서주헌에 대한 악감정은 높은 편이거든. 서주헌에게 벌을 주고 싶은 건 오히려 나야.”
뭐, 말은 그렇게 해도 노예계약을 벗어나려는 것뿐이겠지만.
그 말에 권 회장은 하하 웃어댔다.
“피차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군. 재밌어.”
권 회장은 무슨 변덕인지 이렇게 말했다.
“유재하는 살려둔다. 정중하게 모셔라.”
그 말에 유재하는 얼굴이 밝아졌다.
아싸! 살았다!
하지만.
“단, 다리는 확실하게 잘라놔. 도망 못 가게.”
망할, 그럼 그렇지!
결국 사냥꾼들이 버둥거리는 유재하를 붙잡고 허벅지에 칼을 가져갔다.
“자, 다리는 잘라 놓으시랜다!”
“아악! 안 돼, 안 돼!”
“아참, 손은 내버려 둬! 복원사로 써먹을 수도 있을 거야!”
“아아아악! 안된다니까아! 정중하게 모신다며!”
곧 유재하가 도축 당하는 심정으로 발버둥을 칠 때였다.
콰르릉!
“크아아악!”
현란한 번개와 함께 유재하를 노리던 사람들이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사람들은 율리안을 쏘아보았다.
“너, 이게 무슨!”
“아, 내가 피를 별로 안 좋아해서. 내 앞에선 자제해주시지?”
“저 또라이가……!”
뒤에서 쉬고 있던 윤시우가 참다못해 율리안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우리랑 해보자는 거냐?!”
하지만 그런 윤시우를 권 회장이 쏘아보았다.
“내버려둬라. 그 자와 이 자리에서 붙어서 남는 게 없다. 서주헌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으니 아군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러시든지.”
권 회장은 유재하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 서주헌의 정보를 팔 테지?”
“어유, 당연하죠. 제가 그 양반 밑에서 얼마나 개고생인데! 쓰리사이즈도 넘길까요?”
“좋아, 서주헌을 찾아라! 서주헌에 대한 약점을 들으면서 전투 준비를 한다!”
권 회장의 명령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외쳤다.
“서주헌은 왕의 무덤 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젠장, 벌써 거기까지 갔어? 서둘러!”
결국 윤시우가 율리안의 멱살을 놓고, 사냥꾼들도 유재하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유재하는 백 년 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빠른 그는 확실하게 알았다. 말은 재수 없어도 어쨌든 율리안이 자신을 구해준 게 맞다.
그래서 물었다.
“뭔 변덕이 부셨어?”
“지나가는 길에 소리가 들려서. 짜증나긴 해도 아는 사람이 죽는 건 영 꺼림칙하거든.”
‘오, 이 자식 꽤 좋은 놈일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율리안이 경멸하듯 혀를 찼다.
“그러니까 평소에 나쁜 일을 하니까 벌 받는 거야. 너나 서주헌이나 좀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 수 없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한 거 취소.
“됐고. 넌 파라오의 저주 안 받냐? 어째 멀쩡해 보인다?”
“아. 난 누구들이랑 달라서 그딴 거 안 통해. 피하는 방법이 있거든.”
이놈이 진짜.
그 모습이 엄친아처럼 재수 없다고 느낄 때였다.
유재하에게 밧줄을 채우던 짐꾼들이 숙덕였다.
“그런데 최근에 윤시우 팀장님이 영웅급 유물을 얻었다고 했잖아. 무슨 유물이야?”
“무슨 유물이긴. 삼국지에 나오는 그 유비 유물이라잖아. 뭐, 그래봤자 쓰레기라고 하셨지만.”
“못 다루시는 거 아냐? 서주헌한테 줘보지? 걔 유물 다루는 데는 천재잖아.”
“쉿! 미쳤어? 너 어디 소속이야?”
동시에 유재하가 입꼬리를 올렸고, 율리안은 커헉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젠장, 왜 재수 없게 하필 그게 이 무덤에…!’
파라오의 저주.
무덤에선 누구나 공평했다.
***
그리고 정작 화제의 대상이 된 주헌은 열받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쿵, 쿵, 쿵!
파라오의 관이 안치된 무덤 가장 깊숙한 곳.
주헌은 오직 왕만이 누울 수 있는 황금 관짝에 누워있게 되었지만 글쎄.
[#$*#&*!]
안 열려! 안 열려!
동아줄은 관 밖에서 낑낑거리며 관 뚜껑을 밀고 있었다.
주헌의 유물들은 모두 관 밖으로 퇴출당한지 오래였다.
오직 왕의 자격이 있는 위대한 자 만이 이 관에 누울 수 있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딴 거 알게 뭐람.
[5분 뒤에 성스러운 미라의식이 거행됩니다.]
[성스러운 미라가 되어 환상적인 사후세계로 떠나게 됩니다.]
[인간 따위는 경험하지 못할 황홀한 경험일 것입니다.]
황홀한 경험은 개뿔!
주헌은 이마에 핏대가 섰다.
“야이씨, 빨리 이거 안 열어?!”
유물 새끼들 진짜 다 때려 부숴버린다!
드물게 빡친 주헌의 목소리가 무덤에 고래고래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거기서 내보내줄까?]
낯익은 목소리였다.
========== 작품 후기 ==========
+ 추코 감사드립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