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2 미안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
< 미안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3) >
뭐? 미국 정부에서 보낸 도둑놈이라고?
유재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에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았다. 확실히 이 꼬맹이가 유물 도둑놈인 것은 맞는 것 같았다. 흩어져 있는 유물 중에 자신의 복원 유물도 있는 걸 봐선 백퍼센트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라고?
“그래봐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데요?”
유재하는 황당하게 아이를 보았다.
미국 정부는 이런 애들까지 동원하는 건가?
그러나 곧 여자 아이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자, 유재하는 이번엔 다른 의미로 비명을 질렀다.
“단장님! 다른 거 다 좋은데 빨리 밧줄 좀 풀어요! 이러다가 진짜 철컹철컹 하겠어요!”
“뭐, 확실히 아동학대범으로 오해받긴 싫군.”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정작 동아줄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주인님, 나 잘했지, 잘했지?’ 하고 칭찬을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주헌은 그런 동아줄에게 말했다.
“일단 내려놔.”
그 단호한 말에 동아줄은 시무룩해졌지만, 곧바로 그의 말에 따랐다. 그러면서도 동아줄은 여전히 ‘주인님, 나 잘한 거 아니야? 잘한 거 아니야?’ 라며 좀 기대하듯 몸을 씰룩거렸다.
하지만 동아줄이 주헌의 칭찬을 기대하거나 말거나, 주헌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역배우처럼 예쁘게 생긴 아이는 파란 눈을 부릅뜨고 주헌을 쏘아보고 있었다.
“우으으읍! 우웅 으우으으읍! (네가 이 변태밧줄의 주인 놈이냐!)”
아이는 입을 막은 밧줄을 이빨로 뜯어 버릴 기세였지만, 정작 유재하가 한마디 했다.
“얘 뭐라는 겁니까?”
“글쎄. 하지만 적어도 배고프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 그건 그러네요.”
결국 주헌이 손짓하자, 동아줄은 아이의 입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동시에 터져 나온 말은 울화로 가득 찬 미국식 영어였다.
“이게 진짜 가만 안 둬!”
외견이나 행동거지는 요조숙녀처럼 조신한 주제에, 그 기세는 칼로 찌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확인한 주헌은 픽 비웃었다.
“됐어. 다시 입 막아.”
“너 이게....으으읍!”
또 다시 입이 막혀 버린 이 아이의 이름은 비비안 루시, 나이는 13세였다.
그리고 이 녀석이 바로 메두사 유물을 사용하는 빌어먹을 꼬맹이였다.
* * *
비비안은 미국 정부 소속의 유물 사용자였다. 그리고 그 악명 높은 메두사의 유물을 가진 사용자로, 절대 얕볼 수 없는 사용자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깟 놈들 따위.’
곧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살아 움직이듯이 스스로 움직이자 유재하는 깜짝 놀랐다.
“어? 쟤 뭐야, 머리가 왜 저래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름 돋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치 귀신이라도 들려서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듯한 그런 괴기한 광경!
하지만 사방으로 뻗어가던 머리카락들이 꽈배기 모양으로 합쳐지려고 할 때, 정작 비비안은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으으으읍!”
주헌에게 사정없이 머리카락이 쥐어 뜯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비비안은 울부짖어야 했다.
“으읍, 이어나 이어나, 무은지이야! (이거놔, 이거 놔! 무슨 짓이야!)”
아파도 정말 아팠다. 비비안은 씩씩 거리면서 주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비비안의 긴 머리를 낚아챈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죽을래? 이게 어디서 유물을 발동 시키려고 그러냐?”
유재하와 비비안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유물이라니, 머리카락이요? 도대체 무슨 유물인데요?!”
무슨 유물이긴.
“메두사.”
그러자 유재하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내면서 제 눈을 가렸다. 메두사의 눈을 보면 돌로 변한다는 것쯤은 초짜 신화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단장님! 뭐하고 있어요! 빨리 단장님도 눈 감아요!”
하지만 주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돌로 안 변해, 바보야.”
“네?”
그 말에 유재하가 한 쪽 눈을 찔끔 뜨고 정말이냐는 듯 주헌을 보았다. 주헌은 대답 대신 픽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
확실히 비비안이 메두사의 유물을 사용하는 건 맞으나, 애석하게도 이 아이는 유물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왜?
이유는 간단했다. 이 아이가 너무 어려서였다.
메두사는 원래 용모가 출중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그리고 포세이돈과 함께 아테나의 신전에서 정분을 나누다가 아테나에게 벌을 받아 흉측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메두사의 아름다움을 말하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던 것이다. 즉 메두사의 유물을 잘 활용하려면 적어도 성인 여성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비비안은 꼬맹이.
‘그런 만큼 이 녀석의 유물은 별로 무섭지 않다.’
물론 돌로 만든다는 능력답게, 사람을 정신적으로 굳게 만들거나, 생각을 굳게 만들거나, 머리를 돌(바보)로 만들어버리거나, 다양한 형태의 돌로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글쎄.
‘그래봐야 애송이다.’
곧 비비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물을 사용하려고 했다. 메두사의 유물이 통하지 않으면, 훔치는 속성을 가진 유물이라도 써서 이 유물을!
하지만.
“감히 누굴 상대로 도둑질을 하려고?”
“으읍?!”
주헌은 가소롭다는 듯 유물 하나를 살랑 살랑 흔들어 보였다.
생김새는 단순히 판다 모양의 열쇠고리 인형 같았다. 그건 이 주변의 사람들의 물건을 털었던 도둑 유물이다.
‘이것도 빼앗겼어!’
그러나 주헌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대 선배님을 상대로 도둑질을 하려고 하다니, 천 년은 일러.”
“?!”
곧 아이가 이를 갈며 큰 소리를 내려고 하자, 주헌이 비비안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이집트 장의사의 칼이었다.
“으으읍!”
시퍼렇게 날이 선 날이 목에 차갑게 닿자 아이는 경악했지만, 주헌은 웃었다.
“있잖아, 오빠가 애들은 다 귀여워라 해주는 데, 유물 사용자는 예외거든? 헛튼 짓 생각하면 진짜 가만 안둔다.”
이 미친 놈!
그렇게 말하며 주헌이 말을 이었다.
“그 나이에 연애도 못해봤을 거고, 아직 못해본 것도 많을텐데, 다음 날 신문에 변사체로 발견 되었다는 기사는 뜨기 싫지?”
얼씨구, 저게 꼬마애를 상대로 꺼낼 말 수준이냐.
그렇게 유재하는 망을 보며 혀를 쯧쯧 찼지만, 그렇다고 또 말리진 않았다. 유물 사용자는 애나 노인이라고 방심했다간 오히려 이 쪽이 당하기 때문이다.
곧 겁에 질린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헌은 옳지 착하다며 입을 열어주었다.
“넌 내가 묻는 질문에만 똑바로 대답해. 알았어?”
끄덕 끄덕.
“첫번째 질문. 미국 정부에서 유물을 훔쳐오라고 시켰나?”
끄덕 끄덕.
“두번째 질문. 중국 무덤에 들어가라고 시켰나?”
끄덕 끄덕.
“좋아. 착하다. 그럼 마지막 질문.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유물을 모두 말해.”
“!”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정보는 미국이나 미국과 손을 잡은 이들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묻는 다고 순순히 대답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그랬지? 유물 사용자는 애라도 안봐준다고.”
그렇게 웃으며 말하는 주헌의 눈빛이 서늘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알기에 비비안은 몸을 덜덜 떨었다.
아이씨, 이러다가 진짜 이놈한테 죽겠다.
결국 겁에 질린 비비안이 하나씩 하나씩 유물의 정보를 풀어 놓았다. 이 상황에서 머리를 굴리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고, 이런 마왕 앞에서 버틸 내공도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들은 주헌은 미소를 흘렸다.
아무래도 기억과 대부분 일치 하는 걸 보니, 틀린 정보를 말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다른게 딱 하나.
'다른 놈이 가지고 있던 유물을 가지고 있는걸 보면 약간 미래가 바뀌긴했군.'
실제로 주헌이 구하려 한 걸 미국이 벌써 가지고 있는 게 있었다.
곧 밖을 보던 유재하가 급하게 외쳤다.
“단장님. 누가 화장실로 오고 있어요!”
그러자 알겠다는 듯, 주헌은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마무리를 해보실까.”
“!”
그 말에 비비안은 살해당할 까봐 무서워했고, 주헌의 말의 의미를 유일하게 깨달은 유재하가 외쳤다.
“단장님, 뒤처리 하려는 줄은 알겠는데, 그거 아직 복원 안 끝났거든요! 막 다루시면 안되거든요!”
안다 이 바보야.
주헌은 쯧 혀를 찼다.
그렇다. 유재하는 함무라비 법전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이 타이밍에서 주헌이 그걸 사용할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유물의 손상도와 피로도가 심해서 무겁거나 강력한 제약은 걸지 못했다. 유물이 약해져 있으면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어차피 심각한 일도 아니라 큰 제약을 걸 생각도 없었지만.
‘상대는 꼬마애니, 방법은 있지.’
주헌은 함무라비 법전을 발동 시켰다. 그러자 주헌의 손에는 아이패드 크기의 작은 석판이 나타났다.
비비안은 그걸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무슨 유물이지?’
주헌은 함무라비 법전을 흔들어 보이며 협박하듯 말했다.
“알았나? 나와 이녀석에 대해서 말하면, 넌 죽음보다 괴로운 고통을 보게 된다.”
그러자 주헌의 말에 반응해 번쩍 석판에서 빛이 났다. 하지만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물론 비비안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유물인지 모르기 때문에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확실한 건 이 놈에 대해서 말하면 죽음 보다 괴로운 고통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곧 일이 끝나고 주헌이 화장실에 나가며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칭찬은 해주지. 나 대신 유물들을 잘 긁어 모아줘서. 어린데 기특하네.”
“!”
동시에 깜짝 놀란 비비안이 주변을 살폈지만, 이미 자신이 끌어모아온 유물들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동아줄 유물이 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주헌을 쫄래 쫄래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비비안은 분노에 치밀어 올랐다.
에이씨, 하필이면 저걸 훔쳐가지고!
* * *
“뭐라고?! 유물을 다 빼앗겼다고?!”
한 편 토마스는 비비안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겁하는 건 토마스 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린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금도끼 은도끼의 무덤에서 아베와 함께 있던 바로 그 린다 워커였다.
그리고 토마스는 린다와 함께 파견 나온 유물발굴 전담 CIA 동료 였고 말이다. 그리고 이번 마카오에서도 중국 무덤에 들어가 유물을 빼앗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겸사 겸사 비비안을 시켜 유물을 훔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한테 당해서 모은 유물이랑, 도둑 유물까지 빼앗겨?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 꼬맹아!”
그러자 린다가 토마스를 진정 시켰다.
“윽박을 질러도 아무것도 안나와, 토마스.”
그녀는 비비안에게 물었다.
“정말 상대의 얼굴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 거야?”
“으응, 아무것도.”
그렇게 둘러댄 비비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 둘에게 유물을 빼앗긴 사실은 말했지만, 정작 범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기절한 탓에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다고 말한 것이다.
말하고 싶어도, 주헌이 유물로 뭔 짓을 했는지 모르니 입을 함부로 열수도 없었다.
유물을 다루는 세계가 그런 곳임을 비비안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알았나? 메두사의 유물도 제대로 못 쓰면서도 네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건, 키이라 장군님의 은총이라는 걸 잊지 마라.”
“!”
“그 분이 아니셨으면 넌 진작 살해당해서 머리 속에서 유물을 끄집어 냈을 거야.”
“토마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랬지.”
하지만 비비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전쟁왕, 아니 키이라에게는 은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비안이었다. 그래서 유물을 빼앗는 일도 자진해서 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고 말이다.
그랬기에 비비안은 결심했다.
‘역시 그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긴 말해야 겠어.’
“저기!”
하지만 입을 열려는 그 순간!
죽음보다 더 괴로운 고통이 비비안에게 닥쳤다.
“으, 으하하하! 으하, 으하하하하!”
죽음보다 더 괴로운 간지러움이 비비안에게 닥친 것이다.
“으하하, 으하하하 으하하하!”
아주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비비안이 데굴 데굴 구르자, 자신을 바보 취급한다고 생각한 토마스의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일그러지고 말았다.
“야! 비비안! 지금 장난 치는 거야?!”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으하하, 으하하하하! 으하하하하!”
죽음보다 더 괴로운 고통이라더니!
에이씨, 그 자식을 진짜!
하지만 그녀가 미치거나 말거나, 주헌은 유유히 중국 무덤 쪽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으아앙 이게 아닌데 ;ㅅ; 우헤헤 으헤헤 으헤헤헤 끄앙 살려줘어앙
+ 지인분이 신작을 시작하셔서 괜찮으시다면 재밌는 작품을 공유해보고자 이 자리를 빌게 되었습니다. ;ㅅ;
<스킬콜렉터>라고 링커,몬스터홀, 알피지시티의 킹메이커 작가님의 신작입니다.
초능력, 무협, 현대, 판타지 세계관에서 소환되어 미션을 수행하는 차원물인데 흡입력 있고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를 스피디하게 진행하십니다. 주인공은 핸드폰으로 타인의 스킬을 수집해서 점점 강해집니다. 현재 조아라 무료란에서 연재중이고,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기도하고 취향에 맞으시는 분들이 또 계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