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1 미안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
< 미안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
이, 이놈이?
유재하는 태연히 지껄이는 주헌의 말에 말문까지 막혀버렸다. 그러니까 이 단장 놈은 지금 위조품을 팔자는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심지어 미국을 상대로?
덕분에 유재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딱 하나였다.
“단장님, 미쳤어요?”
순간 본심이 터져 나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유재하의 표정에 주헌은 하하 비웃음을 터트렸다.
“왜? 난 진심인데?”
주헌이 능청을 떨자 유재하는 정말 울 것 같았다.
“진심이라니 더 문제인데요! 지금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치자는 거잖아요!”
“국가? 무슨 개소리야. 속는 건 에드워드인데?”
그 말에 유재하가 비명을 질렀다.
“누가 됐든 결국 덤탱이 쓰는 건 저 아닙니까? 됐으니까 하려면 단장님 혼자해요! 전 미국한테 찍히긴 싫다고요. 인터폴에 수배서 돌 일 있습니까?”
그러자 주헌은 아이린을 가리키면서 방긋 웃었다.
“뭘 새삼? 어차피 그깟 인터폴 수배서. 네 생존 정보를 조지 홀튼에게 넘기기만 해도 실컷 볼 수 있을 텐데?”
“아이씨!”
진짜 치사하게 이러기 인가!
아니 솔직히 에드워드는 속일 수 있다 쳤다. 하지만 미국에 유물이 넘어간 다음에는 어쩌려고?
‘아 진짜 미치겠네!’
어째 주헌을 만나고 인생이 더 꼬인 것 같다는 생각에 유재하는 괴로워했지만, 곧 크게 고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왜?
복제를 하긴 하더라도, 일단 그건 나중 일이 아닌가. 주헌이 일단 유물을 빼돌리고 나서나 가능한 이야기 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콱 중국한테 걸려서 잡혀버려라.”
순간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와버렸지만, 주헌에게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 * *
“와씨, 진짜 와버렸어.”
유재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머리를 쥐어 뜯었다.
따사로운 정오의 햇살, 개미집처럼 보이는 도시의 건물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광동어. 그야 말로 58층의 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카오의 모습은 죽여줬다.
그렇다.
지금 그들은 중국, 정확히는 홍콩 근교에 있는 마카오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미치지 미쳐.”
심지어 그들은 에드워드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비행기에 올라탔었다. 짐이고 밥이고 나발이고 그냥 바로 LA를 떴던 것이다. 어차피 마카오는 비자도 필요 없겠다, 여권만 챙겨들고 바로 비행기에 올라타고야 말았다.
그 뿐인가? 당일 비행기표는 퍼스트 클래스 밖에 없다고 하니, 그럼 그거라도 내놓으라며 쿨하게 카드를 긁는 23세 청년이라니!
아니, 애초에 LA에 100억원짜리 펜트 하우스를 대수롭지 않게 빌렸을 때부터 보통 놈이 아니다 싶긴 했지만.
‘저 자식은 무슨 비행기를 버스 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
비행기는 대중교통이 아니라고!
덕분에 난생 처음 퍼스트 클래스라는 것을 타볼 수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는 내내 유재하는 죽을 맛이었다.
왜?
당장 무덤에 들어가야 한다며 끌려와 비행기에서도 자지 못하고 복원을 해야 했던 것이다.
‘아직도 7개나 남았는데, 젠장할.’
게다가 복원 다음에는 바로 복제고.
아이씨, 도대체 잠은 언제 자냐.
하지만 정작 잘 자서 팔팔한 주헌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마카오에 계신다고요? 지금이요?]
“그래.”
상대는 바로 LA의 펜트하우스에서 농사, 아니 불로초를 키우고 있던 오승우 일행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이린씨랑 오신다는 분이 밤새 안오셔서 므흣한 밤이라도 보내시나 했는데요! 그리고 오늘이나 들어오시나 했더니, 뭐라고요?]
[유재하랑 마카오에 가셨다고요?!]
“문제 있나?”
[문제가 엄청 많고 말고요!]
전화 속의 오승우 일행은 흙 묻은 손으로 절규했다. 자신들은 아이린을 데리고 온다기에 음식도 차려놓고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이고! 저희는 형수님이 생기는 줄 알고 기뻐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주헌이 아이린을 데리고 집에 온다기에 수업을 빙자한 데이트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좋지 않은 머리를 굴려가며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무슨!
[진짜 형님 너무 하십니다! 기껏 아이린씨가 온다길래 형님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이 정력초를 키웠는데!]
[그래요! 이제 꽃도 피고, 심지어 열매까지 나오려고 한다고요! 형님에게 달여드리려고 얼마나 벼르고....!]
[그런데 합숙도 안하시고. 심지어 마카오에 함께 가는 게 형수님이 아니라 사내놈이라니!]
그들은 꺼이꺼이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주헌은 불로초에서 꽃이 나왔다는 이야기에 헛웃음을 흘렸다. 시간도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꽃을 벌써 피웠다고?
‘이자식들, 지극정성으로 키운 건 맞긴 맞군.’
하지만.
‘뭔가 기능을 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정력초가 아니라 의료유물인 불로초인데 말이다.
‘뭐, 어떤 물건으로 각성시키지 않으면 그냥 정력제 상태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벌써 꽃을 피우다니, 열심히 키웠구나. 기특하다 기특해.”
[네! 형수님을 맞이한다는 일념으로....! 큭!]
“그래. 특별히 너희를 지금부터 노....아니 아니 부하 2호로 삼아주지.”
[크윽, 감사합니다. 그런데 형수님은 언제 다시 오시는지....]
결국 그들이 다시 슬퍼하자 주헌은 어이가 없어졌다.
“그런데 아까부터 형수님이라니, 너희들 뭔가 오해하고 있는데.”
[오해라니요! 모솔인 형님에게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저희도 모솔이라 다 알고 말고요. 여자랑 단 둘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시잖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적극 서포트 해드리려고 했는데....!]
그 말에 주헌은 피곤한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모솔 아니라니까 자꾸 이것들이.’
“됐으니까, 그 나무는 지금처럼 잘 키우고 있어라. 혹시라도 권 회장이 연락해오거든, 폰 안 바꾸니까 꺼지라고 하고.”
[크,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이걸로 불로초 쪽도 문제 없는 것 같고.'
통화를 끝낸 주헌은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모델 포스를 자랑하는 청년이 어린이용 솜사탕을 씹고 있는 건 굉장히 이질적이긴 했지만, 아무래야 좋았다.
지금부터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카오를 뒤덮은 먹이감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카오의 3분의 2가 통째로 고분이 되어버렸군.’
마카오는 서울시 종로구 크기로 꽤 작은 곳이다. 하지만 그곳의 3분의 2가 고분화가 되었을 정도면 상당히 큰 무덤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마카오가 다 먹혀버렸다고 봐도 좋았기 때문에, 멀쩡한 곳은 지금 주헌이 있는 마카오 타워와 일부 거리들 정도였다.
그걸 보며 남들이야 재앙이네 어쩌네 덜덜 떨었지만, 정작 주헌은 픽 비웃었다.
‘이정도로 규모가 큰 무덤이니 중국이 직접 나설 만도 하지.’
발굴단을 모집한다고 하지만 글쎄?
그래봐야 지금 시점이면 유물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놈들만 있을 것이었다.
‘웬만한 무덤이면 혼자 들어가도 상관 없지만....’
주헌은 혹시나 싶어서 전망대 망원경으로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변이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필시 지상형 무덤이다. 그리고 전망대 망원경으로 좀 더 확대해서 보자 무덤 곳곳에 있는 툼글리프가 보였다.
그걸 잠시 해독하던 주헌은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입구 조건 자체가 혼자서는 못 들어가게 되어 있군.’
예상은 했지만 최소 30명은 있어야 했다.
‘그럼 들어갈 때만이라도 중국 발굴단에 합류하긴 해야 겠군.’
그 뒤야 주헌의 전문이 아닌가.
그렇게 노련한 솜씨로 무덤체크를 끝낸 주헌이 참가 신청을 위해 움직일 때였다.
이 군중 속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악! 내 물건!”
“어? 내 유물 어디로 갔어!”
타워 전망대에서 때 아닌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음?’
무슨 일이지?
주헌은 의아한 듯 주변을 살폈다.
이 전망대에는 마카오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탐사금을 노리고 온 일반인들부터, 드문 드문 섞여 있는 유물 사용자들까지.
안그래도 대고분화 이후 자잘한 유물을 가진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덕분에 마카오의 무덤에 들어가보겠다고 하는 참가자들의 숫자가 엄청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 몇몇이 허둥지둥 제 소지품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숫자가 하나, 둘.
그리고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나서 열 명!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이 때, 불길한 기운이 주헌 일행에게도 암습해왔다.
첫 시작은 유재하였다.
“어? 내 유물!”
갑자기 늘 느껴지던 유물의 기운이 사라지자 당황한 유재하가 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제 복원 유물은 보이지 않았다.
“왜그래?”
“아, 아니. 제 유물이!”
유재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자신의 유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다음 차례는 주헌이었다. 찌릿한 유물의 기운이 주헌의 주변을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주헌은 남들과 다르게 자신을 향해오는 손길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그리고 그런 주헌에게 확신을 부여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간사한 도둑의 유물이 당신의 유물을 노립니다.]
하, 역시나!
빼앗긴 것은 세 점.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에 유재하가 당황한 얼굴로 주헌에게 뒷북을 치듯 물었다.
“단장님! 단장님은 뭐 안사라졌어요?”
그러나 다급한 유재하와는 다르게 주헌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누가 유물을 훔쳐갔네.”
주헌의 태연한 답에 유재하는 기겁했다.
“지금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셔도 되는 거에요? 그럼 진짜 큰일 난거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유물을 도둑 맞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유물 사용자들이 가득 모일 걸 알고서 벌인 듯한 사건이었다.
덕분에 타워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새끼야! 누구야! 네가 가져갔냐!”
“내놔! 이 새끼야!”
광동어와 영어, 포르투갈어, 다양한 언어들이 섞이며 전망대는 꽤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주헌만큼은 남들이 울부짖거나 말거나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더니, 곧 어느 방향으로 향했다.
“단장님?”
“쉿. 됐으니까 따라와.”
잠시 후, 사람들을 헤치고 나온 주헌이 향한 곳은 뜻 밖에도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유재하는 주헌이 들어가려는 곳을 보고 기겁을 했다.
“자, 잠깐! 거기 여자 화장실이잖아요!”
유재하는 여자화장실에 대수롭지 않게 들어가려는 주헌을 보고 미쳤느냐고 했지만, 또 안 따라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텅 빈 화장실 안 쪽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우, 우웁! 우우웁!”
유물의 개구진 목소리와 괴로워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유재하는 그걸 보면서 황당해했다.
“안에 누가 있는 거죠?”
“직접 보든가?”
그리고 그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의 화장실 문을 연 그 순간!
뜻 밖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는 아이가 자신만만하게 훔친 유물들이 흩어져 있었고, 웬 금발의 어린 아이가 밧줄에 꽁꽁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우으우읍!”
아이는 이거 놓으라는 듯 몸부림치면서 주헌을 쏘아보고 있었다.
반면 동아줄만이 ‘주인님, 여기야 여기라고!’ 라며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유재하는 붙잡힌 꼬마를 보며 황당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꼬마애는 누구죠?”
주헌은 그걸 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누구긴.
“미국정부에서 보낸 유물 도둑놈이지.”
============================ 작품 후기 ============================
+ 이게 감히 누굴 걸 훔쳐 ㅋ
선추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