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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왕-11화 (11/409)

00011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

<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2) >

반면 주헌의 말에 아베는 황당했다.

애당초 예언 때문에 이곳을 찾은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멍청한 날라리가 말하는 예언은 짜증나 죽겠지, <금도끼 은도끼>를 가져간 놈은 한국 놈은 누구인지 모르겠지, 그 와중에 짜증나는 한국인이 눈앞에 어슬렁거리지.

덕분에 눈앞에 있던 주헌이 타깃 되었을 뿐이다. 어차피 한국인이 일본어를 알아들을 리도 없겠다,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을 뿐.

그런데 뭐라고?

“쪼, 쪽바리?”

심지어 주헌의 일본어는 상당히 유창했다. 발음만 들으면 현지인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인을 비하할 말을 스스로 입에 담을 일본인은 거의 없으리라.

그래서 순간 헷갈려 하던 아베가 꺼낸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잠깐만. 너 한국인이지?”

하지만 그 말에 실소를 흘리는 주헌이었다.

한국인이냐고?

“보면 모르냐? 눈깔 삔 등신아?”

“뭐, 뭐?”

이번엔 한국말이었다. 주헌은 맥주 캔을 던지고 받으며 계산대로 향했다.

“눈이 아주 장님 수준이군.”

“허.”

아베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들이었지만, 아베는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야 그랬다. 뜻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이것만큼은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 놈이 날 우습게 여기고 있어!’

“야! 거기 안 서?”

아베는 주헌을 따라갔지만 주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 주헌은 일본인에게 억하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에 일본인과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고,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건 일부의 사람들이니까. 마치 아베 같은 놈들처럼.

그랬기에 짱깨나 쪽바리 급으로 한국인을 부르는 놈 따위, 일본의 발굴단이 아니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놈.

하지만.

‘저놈이 여기에 있다는 건 이곳에 무덤이 생긴다는 거겠지.’

필시 예언을 받고 이곳에 온 것이리라. 저놈이 한가하게 관광 따위나 하며 돌아다닐 리는 없을 테니까. 그 확신에 찬 주헌은 픽 웃었다. 저놈 덕분에 긴가 민가 했던 정보가 확실했다.

그 뿐인가?

‘멍청한 놈. 유물을 쫄래쫄래 들고 다니다니!’

주헌은 속으로 낄낄 웃음을 흘렸다.

나름 품속에 숨긴다고 숨긴 모양이지만, 놈에게는 유물의 낌새가 느껴졌다.

바로 유물이 내뿜는 에너지, 오라다. 그랬기에 주헌은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등신이 유물의 기운도 안 숨기고 말이야.’

유물을 가진 자는 노려진다. 그랬기에 베테랑들은 반드시 유물을 지배해 기운을 숨기게 했다. 하지만 아베는 정말 물건만 숨겼을 뿐, 정작 기운은 내버려둔 상태. 비유하자면 소매치기범 앞에서 천만 원 현찰을 끌어안고 다니는 셈이었던 것이다.

다만 좀 아쉬운 게 있다면 놈이 가진 유물이 뭔지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 뿐.

‘투시 유물이라도 있으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편의점에서 나가던 주헌은 어째서인지 사온 맥주 캔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쫓아 온 아베는 아무것도 모르고 주헌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기다리랬지! 사람 말이 말 같지가……커억!”

사정없이 작렬하는 탄산 거품에 아베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젠장! 뭐야 이거!”

뭐긴 뭐겠는가. 주헌이 한가득 흔든 맥주의 거품이었다. 동시에 거품을 뒤집어 쓴 아베는 무스탕을 벗으며 묻은 거품을 털어내기 바빴다.

“아이씨, 이자식이 진짜! 세탁비 물어내!”

하지만 주헌은 태연하게 아베의 옷을 툭툭 거칠게 치면서 말했다.

“천연가죽도 아니네 뭐. 털면 되겠구만 무슨.”

“뭐야? 야!”

아베가 발끈해서 뭐라고 하려는 때, 주헌은 아이디카드 하나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됐고, 이거 떨어트렸는데.”

“!”

주헌이 들고 있는 건 아베의 신분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자위대 신분증이었다.

아베는 그걸 보고 표정이 변했다.

아니, 주머니에 고정되어 있던 게 어떻게 떨어졌지? 아베는 반사적으로 헐렁해진 주머니를 더듬었다.

다만 그 허둥대는 꼴을 주헌만이 즐길 뿐이었다.

‘주머니에 대충 유물이 두 개.’

의심을 살까봐 유물은 지금 훔치진 않았지만 유물의 종류는 확인했다. 액세서리류와 묵직한 놈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유물정보가 털렸다는 걸 모르는 채, 아베는 엉뚱하게 주헌의 손에 들린 카드부터 빼앗아갔다.

“빌어먹을 한국인! 뭘 봐!”

아베는 정말로 위험했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디카드에는 발굴단 정보가 있단 말이다.’

무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한국인에게 신분과 발굴단 정보가 흘러나가는게 달가울 리가 있겠는가.

주헌이 일순 아이디카드를 보긴 했지만 그건 불과 몇 초.

‘괜찮아. 아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아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신분증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어차피 지금은 이딴 한국인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분명 금도끼 은도끼를 가져간 놈도 이곳의 냄새를 맡고 찾아올 터.’

일단 그 놈부터였다. 일본을 삼킬 위험이 있는 놈을 한국에 가만히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때를 봐서는 무덤에서 입막음 하는 방법도.’

아베는 슬쩍 주머니에 숨긴 총을 되새겼다. 그리고 정작 그 인물이 바로 코앞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그 때.

쿵!

마치  뭔가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타임스퀘어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에 쇼핑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소리?”

“에이, 뭐 떨어트렸나보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자신들의 볼일을 보려는 그 순간.

삐이익!

이번엔 무대장치에 있던 마이크와 스피커가 멋대로 공명하며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소음에 짜증을 냈지만 이어서 무대장치가 쿵, 쿵 하나씩 떨어지자 이제는 아예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아씨! 도대체 뭐야!”

“악! 내 커피!”

심지어 광장 주변의 카페에서도 난리가 났다. 손님들의 커피 잔, 테이블이 갑자기 두 동강이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속에서 아베와 주헌이 동시에 반응했다. 아베의 품속에서는 핸드폰이 울렸고, 주헌의 시야에는 메시지창이 떠오른 것이다.

아베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もしもし(여보세요?)”

그리고 그가 뒤돌아서자 주헌은 메시지 창을 살폈다.

내용은 간단했다.

[염탐스킬 발동.]

[주변에서 사나운 유적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 메시지에 주헌은 웃음을 흘렸다. 역시 방금 전의 괴기현상은 자연현상이 아니었다.

‘고분화 현상이다.’

그렇게 주헌이 주위를 살필 때였다. 곧 전화 통화를 하던 아베의 화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아베의 전화 상대는 그의 상관이었다. 전화 내용은  쇼토쿠태자의 유물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예언을 읽어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예언의 내용이라 아베는 분노의 침을 튀길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그 한국인이 이 근처에 있다고요?! 지난번에 금도끼 은도끼를 먼저 빼돌린 그 놈이 맞습니까?”

[그래.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자네 술을 조심하라고 하던데. 어쩌면 그 한국인과 얽힐지도 몰라.]

“술……”

잠시 생각하던 아베의 눈빛이 변했다.

‘맥주!’

자신에게 맥주를 쏟아 부은 그 사내! 그 생각에 미친 아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봐, 너!”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주헌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소령? 무슨 일인가. 소령?]

아베는 텅 빈 공간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부서질 듯 쥐었다.

“………에이, 시팔.”

결국 아베는 거친 욕을 읊조리면서 타임스퀘어 광장의 인파를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베 소령!]

“아무래도 그 놈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뭐!]

“그러니 빨리 다음 예언부터 해독해서 보내세요!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게!”

* * *

하지만 아베가 눈에 불을 켜거나 말거나, 훌쩍 다른 곳으로 넘어온 주헌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바로 타임스퀘어 전체에서 느껴지는 괴기한 기운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오라가 너무 사나운데.’

고분화 지대에는 당연히 유물이 내뿜는 흉흉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지금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그게 좀 흉악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얌전한 유물은 아니야.’

금도끼 은도끼와는 좀 달랐다. 그 녀석은 사실 온순한 편에 속했다. 아파트를 삼키긴 했지만 그 정도야 애교수준.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었고, 결정적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곳의 놈은…….

그럴 때 주헌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모든 물건이 두 동강 난 카페의 유리 창 쪽이었다.

유리창 쪽에서 붉은 피글씨가 스물 스물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툼글리프.

유적의 정보를 내뱉는 유적 문자였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확인한 주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해. 이 근처에서 고분화가 일어난다.’

심지어 규모도 문제였다.

‘이정도면 <피난급> 규모의 무덤인데.’

유물이 만들어내는 무덤에는 재난 등급이 있었다. 훗날 정부는 무덤의 규모, 피해 정도에 따라 4단계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이 주변은 경험상 3단계 위험도인 <피난급> 무덤일 것 같았다.

이정도만 되도 최소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쓸고 간 듯한 피해를 입었다. 그 정도 무덤이면 적어도 그저 그런 유물이 무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난폭한 B급(희귀급)일수도 있지만, A급 (보물급) 유물일 수도 있었다.

흔히 큰 재난을 부르는 무덤일수록 상급 유물이 만든 유물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하지만 언제 고분화가 일어날지.’

그런데 그 순간.

[0 : 6 분]

광장 무대 위로 청색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건 염탐 스킬의 메시지였다.

주헌은 좀 놀랐다.

‘6분?’

저건 혹시.

주헌이 그 쪽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너!”

그는 뜻 밖에도 주헌을 찾아다니던 아베였다. 그는 주헌을 보자마자 주머니 속에 숨긴 총에 손을 얹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하지만 주헌은 그를 보며 픽 웃었다.

'유물이나 들고 제 발로 어슬렁어슬렁 쫓아오기는.'

그리고 홀로그램이 [0: 5분] 으로 바뀐 바로 그 순간!

쿵!

갑자기 땅이 크게 뒤흔들렸다.

“꺄아아악!”

그리고 주헌의 앞으로 긴급한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도 함께였다.

[사나운 기운이 지저 위로 폭발합니다.]

그러나 경고도 잠시.

쿵!!

피할 틈도 없이 격렬한 지진이 시작되었다. 땅이 갈라지고 일어서고, 건물이 무너지고, 도저히 일어서 있을 환경이 아니었다.

그건 아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뭐야 이건!”

“꺄아아악!”

“으아악! 사람 살려!”

쿵! 쨍그랑!

전기가 나가고,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아비규환. 하지만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주헌이다.

남들은 죽네 마네,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는 것에 반해 주헌만큼은 침착했다.

‘온다.’

동시에 갈라진 지면 틈에서 맹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빛에 휘말린 사람들이 사라졌다. 주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후, 주헌에게 너무나도 낯익은 광경이 펼쳐졌다.

어두컴컴하고 습한 느낌. 비릿한 곰팡이 냄새. 썩은 넝쿨이 늘어진 회색 암벽의 지저 고분.

심지어 와본 적 있는 곳이다.

주헌은 이 무덤의 유물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모든 게 자신의 기억과 똑같았다.

딱 하나만 빼고는.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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