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
<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1) >
“주헌아, 뭐해?”
“자료 검색.”
주헌은 태연하게 답했지만, 정작 망가진 집 청소를 하던 룸메이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야 그럴 법한게.
‘………아까는 영어, 아랍어……이, 이번엔 불어?’
동현은 주헌의 괴기한 행적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노트북으로 기사를 검색하던 주헌은 무려 5개나 되는 언어의 뉴스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동현도 처음엔 ‘뭘 아는 척하며 읽냐.’ 하고 비웃을 생각으로 옆에 앉았었다. 하지만 이미 영어로 가득한 신문에서 머리에 쥐가 나 포기해버렸다.
게다가 주헌은 평범한 뉴스뿐만 아니라, 외국의 전문잡지, 논문까지 뒤지면서 보기에도 억소리 나오는 것들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막힘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게, 누가 보면 한국 가쉽뉴스라도 보는 줄 알 것이다.
그러니 오죽하면 깐죽거리기 좋아하는 룸메이트가 당황해서 이런 말까지 내뱉겠는가.
“야 이, 이 새끼야. 너 정말 그거 읽고 있긴 하는 거냐?”
하지만 친구의 말에 주헌은 태연하게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Dans l'affaire qui l'oppose au FBI (FBI와 대립하게 만든 이번 사건에서)……”
그렇게 쏼라 쏼라, 외계어 같은 말이 유창하게 흘러나오자 동현은 멍하게 서 있어야 했다.
‘아니 쟤가 머리가 좋은 건 알지만 언제 5개 국어를 하게 되었대?’
하지만 친구가 당황해하거나 말거나 주헌은 태연하게 기사들을 스크랩 해두었다.
사실 언어쯤이야 주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언어까지 알아야 할 판이었는데, 이깟 실존하는 언어쯤이야!
“됐고 동현아. 나 당분간 집 나가는 일이 잦을 테니까, 연락 안 된다고 너무 신경쓰지마라.”
“허, 그 잘난 얼굴로 돈 많은 누님이라도 꼬셨어? 어? 예쁘냐?”
그러자 주헌이 대답 대신 하하 웃었다. 그 말처럼 유물이란 놈들이 쭉쭉 빵빵 누님이라면 좋겠는데 말이다.
어쨌든 당분간 유물을 모으는 데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단지.
‘권 회장이 문제지.’
놈은 원수인 것을 떠나서 앞으로 자신이 위로 올라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전에도 독식자 중 막강한 세력을 가진 놈이었으니만큼.
놈이 가진 유물의 정체를 알면 방해하기 수월할 테지만, 애석하게도 주헌 역시 능력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뭐, 유물의 정체를 숨기는 건 모든 독식자들이 그랬었지만.’
과거 유물과 사용자들을 끌어 모으던 <독식자>들은 하나같이 본인의 유물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다.
그건 당연했다. 독식자들은 대부분이 신급(SS급) 유물 소유자. 신급 유물이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신화가 많았고, 그만큼 능력이나 약점도 노출 되어 있다.
‘권 회장이 이시기에 유물을 얻은 건 확실한데…….’
이미 얻었을 수도 있고, 얻기 직전 일 수도 있다.
놈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시기에 자신과 놈은 접촉점이 없었다. 일개 소기업 인턴과 글로벌 기업 총수와 무슨 연관점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 때 주헌은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잠깐만?
있었다.
권 회장의 동선을 알 수 있는 방법이.
‘개자식. 이번에는 안 당한다.’
그 생각에 미친 주헌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 * *
“하 씨, 진짜 미치고 환장하겠네.”
오승우는 한숨을 늘어지게 쉬었다. 그는 미술품 브로커 남매 박경주 박경태를 따르던 부하 직원이었다.
단지 불상을 들고 박경태와 함께 주헌을 찾아갔다가, 난데없이 주헌에게 역관광 당해버린 불운의 똘마니들 말이다.
그들은 박경주와 박경태가 마약밀수 및 유통자로 끌려가고 나서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형, 상처는 괜찮아요? 그 자식 신고할까요?”
“맞아요! 경찰서에 간 누님과 큰형님의 복수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생들의 칭얼거림 탓에 오승우는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얕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서주헌 그 자식, 진짜 뭐하는 놈인지.’
“사람들 고용해서 확 본 때를 보여줄까?”
“그렇죠! 이래야 형님이죠!”
그들이 낄낄 웃으면서 어떻게 주헌을 밟아 버릴 까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부르르.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씨, 한창 이야기 중인데 누구………헉!”
오승우는 액정에 뜬 번호를 보고 핸드폰을 던져버릴 뻔했다.
[딱가리 서주헌]
“아악!”
오승우는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로는 주헌에 대한 보복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불쌍하게도 몸에는 공포가 각인되어 있던 모양이었다.
주헌에게 아주 두들겨 맞은 탓에 주헌의 이름 석 자 만으로도 트라우마를 느끼는 것이었다.
“혀, 형? 왜 그래요?”
“누구한테 온 건데요?”
동생들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는 오승우를 보며 왜 그런가 싶었지만, 곧 액정을 보면서 욕을 했다.
“시, 시팔. 이 새끼 왜 전화했대? 잘못 건거 아니야?”
그들은 몽둥이라도 들 기세였지만 정작 그들 역시 입과 몸이 서로 따로 놀고 있었다. 아니 자신들이 쳐들어가는 거라면 모를까, 이놈이 먼저 전화를 해오니 또 무서워 진 탓이다.
“바, 받으실 거예요?”
“에이씨 몰라! 이왕 이리 된 거, 이 자식한테 나오라고 해서 조질까?”
“아, 일단 받아봐요!”
오승우는 동생들의 성화에 엉겁결에 연결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모두가 듣도록 스피커 모드로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 여보세요?”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지극히 살벌했다.
[뭐하느라 전화를 이리 늦게 받아?]
1초라도 더 늦게 받았으면 아주 토막을 냈을 기세라 오승우 일행은 몸을 떨었다.
‘늦게라니 전화 온지 30초도 안 지났는데!’
하지만 오승우는 겁에 질렸다는 걸 최대한 숨기기 위해 으름장부터 내밀었다.
“너 이 은혜도 모르는 새끼! 감히 형님이랑 누님을 깜방에 보내? 너 가만히 두나 보……”
[아 됐고. 니들 아직 영업 중이지?]
내 볼일이 먼저라는 듯, 잘라버리는 주헌의 태도에 오승우 일행은 이가 갈렸다.
‘이자식이!’
그리고 뭐라고? 영업?
그게 이놈이 할 소리란 말인가?
“야! 지금 누구 때문에 형님 누님들이 잡혀 들어갔는데 영업 같은 소리하네!”
“영업이고 자시고, 너 새끼 때문에 미술품도 다 압수당했어! 새끼야!”
그들은 씩씩 거렸지만 주헌은 무슨 개소리하냐는 듯 뻔뻔하게 말했다.
[그딴 사정은 내 알바 아니고. 설마 대표가 잡혀 들어갔다고 폐업 신고를 한 건 아니지?]
“뭐? 그런건 갑자기 왜 묻냐!”
[5초준다. 빨리 말해.]
“아이씨! 아직 문은 안 닫았는데……그러니까 왜!”
그러자 주헌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실제로 주헌은 웃고 있었다.
[좋아 잘 됐네. 아직 세계 옥션장에 출입할 자격이 있는 거니.]
주헌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자 오승우는 황당해했다.
“뭐? 세계옥션? 설마 ‘마이더스’를 말하는 거야?”
확실히 자신들은 미술품 브로커로서 세계 최대의 라스베가스 비밀 지하 경매, 별칭 마이더스에 들락날락 했었다.
그 경매에는 타국에서 도난 된 보물급, 국보급 문화재들이 나오기도 했고, 시즌 때는 왕족이나 나라의 총수들이 참가 할 정도의 규모였다. 입장석 티켓만 억 단위를 내야 하는 폐쇄적인 경매.
물론 자신들의 경우야 수완 좋은 박경주 덕분에 그곳과 인연이 닿을 수 있었지만.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궁금증만 커질 때 주헌이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번 달 정기 경매에 나가서 어떤 물건이랑 JK 라는 사람을 찾아. 잭 케이먼. 그리고 그 사람이 뭘 사나 알아와봐.]
“……잭 케이먼? 그게 누구……”
누구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주헌은 말을 자르고 말했다.
[없으면 없다고 반드시 이야기 하고. 단 있었는데 거짓말하면 죽는다.]
“그러니까 잭 케이먼이 누구……”
[알아들었으면 지금 영등포역 앞 카페 문벅스로 나와라. 찾아야 할 물건 목록을 구두로 알려줄 테니.]
“에이씨! 야! 잭 케이먼이 누구냐니까!”
[니들은 알 거 없어.]
“야!”
[물론 여기서부터는 비즈니스니, 정보의 질에 따라 보수는 제공하지.]
그러자 참다못한 오승우는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이게 진짜 듣자 듣자 하니까……!”
오숭우는 그래도 나이 서른이나 먹고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꼬마에게 이런 취급은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반항 한 번 못하고 얻어터진 놈에게 부려 먹히는 것도 억울하지 않은가!
“이 새끼. 얼마를 준다고 해도 우리가 움직일 것 같냐!”
“그래요! 형! 들을 필요 없어요! 야! 서주헌, 너 거기서 기다려라. 진짜 죽여 버리러 간다!”
동시에 전화 너머로 주헌의 가소롭다는 웃음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 돈 싫어? 기껏 누이 좋고 매부 좋게 가려 했는데 싫음 말고.]
어차피 이놈들을 그냥 모른 척 할 생각도 없는 주헌이었다.
쓸모 있을 놈들을 왜 그냥 놀리고 있어?
주헌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나 비즈니스가 싫으면, 다른 방법으로 하도록 하지.]
“다, 다른 방법?”
[아무래도 며칠 전 상황을 벌써 망각한 모양인데.]
그 한마디에 오승우 일행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졌다. 주헌에게 뼈가 부서지도록 맞은 감각과 칼을 휘두르던 놈의 눈빛은 절대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그들은 얼떨결에 일단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비즈니스가 싫은 게 아니라! 아……그럼 적어도 경매에 참가할 물품이나 돈 정도는 줘야……!”
[그런 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냐?]
뚝.
전화는 사정없이 끊겼다.
오승우는 아이씨, 하고 끊긴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이거 어째 진짜 잘못 걸린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 * *
전화를 끊은 주헌은 코웃음을 흘렸다. 그는 볼일을 볼 겸 역 근처로 나온 상태였다.
‘잭 케이먼이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겠는가. JK는 권 회장의 또 다른 가명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본래의 이름으로 나서면 안 될 때 종종 애용하던 이름이라는 걸 주헌이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권 회장이 이시기에 유물들을 얻게 되는 건 확실한 일. 그리고 이 때 유물을 접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무덤이지만 무덤 밖으로는 경매장, 미술관 등이 있었다.
무덤 쪽이야 자신이 동향을 살필 수 있지만, 그 외의 루트를 할 일 없는 놈들에게 맡기려는 것뿐이었다. 놈이 지금 어느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지 파악하기 위해.
‘좋아. 이걸로 권 회장 쪽은 일단 됐어.’
남은 건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뿐.
주헌은 핸드폰으로 포탈 뉴스를 확인하며 영등포역 내부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현재 시간은 저녁 8시.
갑자기 뜬 속보를 보고 영등포역에 온 건 좋지만,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나와 허기가 진 탓이다.
[오늘 오후 7시 경, 영등포역 타임스퀘어에서 40대 조 모 씨가 분신자살을 하려다가 실패해…….]
역의 뉴스에서는 실시간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주헌이 이곳을 찾은 이유도 바로 그 뉴스 탓이다.
무덤이 생기기 전에는 반드시 고분화 징조가 있다. 보통은 이런 식의 흉스러운 사건 사고라는 걸 잘 알기에 혹시나 싶어서 찾아온 것이다. 집 근처 역이기도 했고 말이다.
‘뭐, 무덤하고는 관련 없는 사건 일수도 있지만.’
아니면 주헌의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빠르게 무덤이 클리어 되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과연 어느 쪽일 까.
주헌이 편의점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려고 할 때였다.
“야! 바카춍! 자리 전세 냈어? 언제까지 고르고 있을 거야?”
바로 뒤에서 들리는 거친 일본어.
하지만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주헌은 삐죽거리며 웃었다.
거기엔 짜증을 내고 있는 일본 자위대 발굴단, 아베 키요시가 서 있었던 것이다. 아까 전 무덤 안에서 만났던 바로 그 녀석 말이다.
“뭐, 이 쪽바리 새끼야.”
심지어 고맙게도 유물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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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