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73화 (1,140/1,205)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1173화

    중2병과 둘이서 때늦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원래는 아라크네 클랜원들을 파견한 즉시 나도 플리투스 지방을 돌아다닐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다시 플리투스로 가는 건 밤이 된 후에나 가능해지니까.

    그러면 일단 바프라에 가서 사라나 실비아, 레이한테 사정을 설명하는 것부터 하기로 할까.

    아직 그 셋은 중2병이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고, 일단 바프라의 귀족들에게 자리를 비운다는 말 정도는 해둬야 하니까.

    다만 그러려면….

    "무, 무슨 일이지…?"

    내가 힐끔 시선을 주자, 중2병은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얼굴로 반응했다.

    말투도 조금 변한 것이,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풍류공자 중2병 컨셉을 다시 밀고 나갈 생각인 모양이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을 다 보여놓고, 심지어 지금도 내 시선에 위축된 게 티가 팍팍 나는데, 이제 와서 저런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뭐,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굳이 태클 걸 이유도 없나.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너한테 선택지를 두 개 주지."

    "서, 선택지?"

    "그래.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에 관한 선택지. 하나는 이대로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물론 내 성자 스킬에 당한 채로. 또 하나는 성자 스킬 없이 나랑 같이 간다. 단, 그때는 조금이라도 수상하거나 의심받을 짓을 하는 즉시 여자로 만들어 버릴 거다."

    "큭…."

    내 물건을 보고 느꼈던 위압감이 머릿속에 되살아난 건지, 중2병은 아까보다 조금 더 위축된 표정을 지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이군. 이래 봬도 배려해서 선택권을 준 건데 말이야."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라면 이 녀석한테 선택권을 주는 일도 없이, 그냥 성자 스킬을 걸고 저택에 처박아뒀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생각을 바꾸게 됐다.

    아까 잠깐이라고는 하지만 난 잠들어 있었고, 이 녀석은 그 방에서 내가 깨어날 때까지 계속 같이 있었는데,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았잖아?

    그걸 보고 생각하게 된 거지. 어쩌면 이 녀석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내게 굴복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이렇게 바프라에 같이 데려가는 것도 고려해 보게 되었다는 얘기다.

    어차피 비스 공략을 위해서는 이 녀석을 계속 끌고 다녀야 하니, 바프라에서 데리고 다니며 이 녀석이 밖에서 어떻게 나올지 미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지? 골라봐."

    "…따라가지."

    둘 다 그리 만족스러운 선택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중2병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후자를 선택했다.

    그야 그렇겠지. 전자는 성자 스킬에 고통받을 게 확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자기만 조심하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날 일이니까.

    "흐음?"

    "무, 뭐지?"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의미심장한 미소를 중2병에게 던져줬다.

    이렇게 적당히 분위기만 조성해 줘도, 망상벽의 기미가 엿보이는 중2병은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테니까. ‘서, 설마 이 녀석…내가 아무 일도 안 해도 꼬투리 잡아서 날 여자로 만들 생각인가!?’ 같은 식으로.

    그러면 이 녀석은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더 행동을 조심하게 될 테고, 그만큼 난 더 편해질 거라는 계산이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나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중2병과 단둘이 하는 식사는 상당히 어색했고, 중2병은 나보다도 더 불편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우리 완벽 집사님이 해주신 식사는 중2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모양이었다.

    "후우. 식후에 즐기는 홍차만큼 각별한 것은 없지."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줬던 풍류 공자 기질이 전부 다 컨셉은 아니었는지,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음식 맛을 즐기게 된 중2병이었다.

    "프리움에서 나는 홍차와 비슷하지만, 떫은맛이 조금 더 옅군. 내 취향이야."

    프리움이라니. 파란이 다스리는 거기잖아. 바프라 영지의 홍차를 네가 어떻게….

    아니. 그야 날 쫓아 왔으니까 프리움도 거치기는 했겠지만, 너 성자 스킬 때문에 반쯤 미쳐 있었으면서도 홍차 맛은 즐긴 거냐. 이쯤 되면 컨셉에 집어삼켜 진 수준이군.

    "하아아…."

    "다 마셨냐?"

    "흐익!?"

    마지막으로 컵을 깨끗하게 비우고 한숨을 포옥 내쉬는 중2병에게 말을 걸자, 조금 전까지의 느긋한 풍류 공자는 어디로 갔는지, 중2병은 화들짝 놀라서 우당탕탕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긴장 풀고 즐기는 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보통 눈앞에 있는 적의 존재를 잊냐?

    "나, 나는 풍류를 아는 자로서…!"

    황당한 눈으로 중2병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기도 찔리는 게 있었는지 중2병이 다급하게 변명을 해댔다.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크윽."

    "아무튼 다 마셨지? 그럼 가자."

    내가 날린 카운터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없는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중2병이었지만, 나는 그런 중2병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큿…!"

    오늘 가면 또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으니 마지막으로 바넷사에게 인사를 한 다음, 나는 중2병을 데리고 저택을 나왔다.

    하지만 저택을 나오자마자, 중2병이 손으로 눈 위에 그늘을 만들며 이상 반응을 보였다.

    "왜 그래?"

    혹시 오랜만에 햇빛을 봐서 적응 안 되나? 라고 가볍게 생각한 나였지만, 사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햇빛이 강해. 거기에 막히는 일 없이 끝없이 펼쳐진 세계의 모습…이게 우리의 신을 봉인한 그 증오스러운 여신의 힘이라는 건가…!"

    중2병적인 의미로.

    하지만 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런 중2병은 어떻게 대처하는 게 제일 좋은지, 난 무척이나 잘 알고 있거든.

    "…대사 다 끝났냐?"

    "대, 대사 아니야!"

    흠미 하나도 없다는 듯이 가랑이를 벅벅 긁으며 말하자, 중2병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일단 자기도 자기 말이 연극톤이었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다.

    아니. 시선이 내 다리 사이에 가 있는 걸 보니, 그냥 다시 내 물건 생각나서 얼굴을 붉힌 것뿐인가?

    "으윽…!"

    시험 삼아서 다시 한번 다리 사이에 손을 가져갔더니, 이번에는 몸까지 움찔하면서 더욱 얼굴을 붉히는 중2병.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왠지, 그냥 단순히 내 물건을 떠올리고 위축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여자였으면 그냥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녀석만큼은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내 물건을 직접 빨 때도 언젠가 남자가 될 자신이 이런 짓을 한다는 굴욕감이나, 비스에서 자라며 생긴 거근 신앙 때문에 내 물건에 압도된 것 같은 모습은 보인 적 있지만, 성적인 흥분이나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는 건 본 적이 없으니까.

    애초에 아까 식사하면서 잠깐 내 물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을 했을 때도, 위축되는 모습만 보였지 흥분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보인 적이 없잖아?

    그런 녀석이 갑자기 내가 다리 사이에 손을 가져가는 것만 보고도 얼굴을 붉힌다? 그것도 마치 내가 거기에 손을 가져가면 곤란한 것처럼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잠깐만. 이 녀석, 혹시 내 물건에 뭔 짓 한 거 아니야? 아까 이 녀석이랑 있을 때 그냥 잠들어 버렸으니, 뭔가 하려고 했으면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뭐, 좋아. 아무튼 끝났으면 가자."

    의심이 의심을 낳아서 점점 더 의심이 커져갔지만, 그래도 난 일단 별말 없이 바프라로 향하기로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해코지를 한 건 아니겠지. 아무리 내가 날밤을 새우고 정신없이 자던 중이었어도, 그랬으면 깨어났을 테니까.

    "당신? 오늘부터 플리투스에 가 계신다고 하지 않았나요?"

    길드에서 레이첼 누님과 인사를 나누고, 구미호 마을로. 거기에서 또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바프라의 창관 지하로 들어오니, 오늘도 마틸다가 성실하게 출근해 있었다.

    "아, 응. 그전에 여기에 있는 셋한테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 너무 서두르려고 하다가 무리하시면 안 돼요?"

    "그건 걱정 마. 난 오히려 마틸다가 무리하고 있을까 봐 그게 더 걱정이야."

    "어머, 저라면 괜찮아요. 창관 일도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풀리고 있는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가 힐끔 시선을 준 그곳에는, 창관 건물 내부 곳곳을 비추고 있는 화면이 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 일을 치르는 방 안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방 안만 제외하면 창관의 모든 곳을 볼 수 있을 만큼 무수히 많은 화면들.

    그리고 그 각각의 화면에는 빠짐없이 성기사나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안내를 헤벌쭉한 얼굴로 뒤따라가는 남성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어쩌면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결과가 빨리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도야?"

    "네. 거기에 여기에 온 이후로 성기사들의 레벨도…아, 지, 직업 레벨을 말하는 거에요!"

    응. 나도 아니까 그렇게 당황 안 해도 돼.

    여러 대의명분을 내세워서 세워진 창관이지만, 그 진짜 목적은 창관에 드나드는 남성들에게 서서히 여신님의 사상의 주입하는 것이다. 일종의 포교 활동이라는 거지.

    그것도 그냥 포교 활동이 아니라, 여신과 대립하는 신을 믿는 이들을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포교 활동이다.

    그 활동이 성직자가 해야 할 행위로 여신님께 인정받는 모양인지, 이렇게 창관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기사들의 직업 레벨이 쑥쑥 오른다는 게 마틸다의 설명이었다.

    즉, 창관에서 일하는 성기사들은 나처럼 레벨과 직업 레벨을 동시에 올리고 있는 거다.

    "이대로 가면 여기에서 세계 최강의 성기사 부대가 탄생하는 거 아니야?"

    "가능성 있는 말이네요."

    마틸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니, 아마 창관은 이제 마틸다가 굳이 보러오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안정된 거겠지.

    뭐, 마틸다는 저런 성격이니 그래도 성실히 보러 오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럼 나는 잠깐 다녀올게."

    "네. 아, 당신. 줄리안 씨도 같이 가실 생각인가요?"

    "응? 그런데?"

    "밖은 저희만 있는 게 아니니, 줄리안 씨는 이곳에서 기다리게 하시는 게 어떤가요?"

    "여기에서?"

    보는 눈이 많으니 줄리안을 밖에 데려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의견 자체는 공감하지만, 장소가 문제였다.

    이곳은 창관 관계자들 중에서도 존재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비밀의 방.

    만약 여기에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진짜로 감당이 안 될 텐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당신, 절 못 믿으시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성기사 대장까지 맡았던 추기경님이, 이제는 혼자 탱딜힐 다 되는 성녀로 전직까지 한 거다.

    게다가 레벨도 마틸다가 중2병보다 높으니, 마틸다가 중2병을 제압 못 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안 한다.

    문제는 중2병한테 특이한 기술이 있다는 건데….

    뭐,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할까. 이미 밖에 돌아다니면서 얌전히 있는 건 위에서 충분히 확인했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여기에서도 얌전할지 시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야. 너 여기에서 얌전히 있어라."

    "걱정하지 마세요. 다녀오세요."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마틸다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준 후, 나는 위로 올라가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사라와 실비아, 레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서 할 말을 전한 다음에야, 나는 왜 마틸다가 중2병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따라갈 거야."

    "아니. 사라야."

    확실히. 내 여자들이 나한테 이렇게 행동하는 걸, 중2병한테 쉽게 보여줄 수는 없지.

    타협은 없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그렇게 말하는 사라에게, 나는 대체 얠 어디부터 설득해야 할지 벌써부터 골이 아파졌다.

    게다가 내가 중2병과 단둘이 비스를 공략한다는 사실에 반발하는 건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기! 전 그게, 남장이…."

    지극히 타당한 의견을 내세워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주장하는 실비아부터 시작해서.

    "은밀 행동은 여기에서 내가 제일 잘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는 레이까지.

    "아니. 레이 넌 여왕이잖아. 여왕 자리 내팽개치고 어딜 갈려고."

    "하, 하지만!"

    자기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레이는 나랑 오랫동안 떨어져 있기 싫다는 듯 떼를 쓰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아 줘. 내가 비스까지 공략하고 이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때는 얼마든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라랑 실비아도. 너희까지 없어지면 바프라가 어떻게 될지 잘 알잖아?"

    새로 바뀐 바프라는 대대적으로 개편되고 있는 것에 비해 상당히 내부가 안정화되어 있지만, 그 안정감은 어디까지나 내가 귀족들 앞에서 대놓고 보여준 용사의 힘에 의한 것이다.

    만약 내가 모습을 감추게 되면, 대체 어떤 놈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나마 사라와 실비아라도 남아 있으면 귀족들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날 떠올리고 눈치를 볼 테지만, 만약 우리 셋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우고 레이만 딸랑 남겨두면…바프라가 어떻게 될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은밀성과 신속성이 생명이야. 계획을 보면 알잖아?"

    "그래도 그 인간이랑 단둘이라니…."

    "괜찮으니까. 응?"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럼 느낌으로 말끝을 흐리는 사라에게, 나는 최대한 듬직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물론 이런 중요한 문제까지 미소 하나로 쉽게 넘어가 줄 우리 용사님이 아니었지만.

    그렇잖아? 애초에 사라는 나랑 계속 같이 다니고 싶어서 바프라로 온 건데, 바프라 장악이 이미 거의 다 끝났을 때 와서는 줄곧 일만 하다가 이제는 여기에 남으라는 소리까지 들은 거니까.

    그리고 사라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날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머리 자르고 남장까지 하고 다닌 실비아와, 긴 도피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순간 애인한테 한동안 못 볼 거라는 소리를 들은 레이.

    각자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셋은 계속해서 반발했고, 그중에는 내가 무심코 수긍해 버린 이유도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바프라를 버리고 모두 함께 떠날 수는 없는 일이잖아?

    얘들을 대체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

    그나마 저택에서 얘기를 들었던 멤버들은 내가 바프라에 있을 때도 기다렸던 멤버들이니 순순히 이해하고 넘어가 줬는데, 이 셋은 바프라 공략에도 같이했던 멤버인 만큼 나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아니. 잘 생각해 보니까 그게 아닐지도.

    아까 마틸다가 굳이 중2병을 맡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구미호 마을에서 디아나의 반응도 살짝 어색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위에서 얘기를 들었던 멤버들도 말만 안 했을 뿐, 내 결정에 수긍하지는 않은 건가? 그래서 반발하는 역할을 얘들한테 맡겼다?

    생각해 보니 아까 얘들이 한 얘기, 감정적으로 반발한 것치고는 너무 논리적이었어.

    혹시 디아나가, 아니. 그사이에 이미 모두가 지혜를 합쳐서….

    "그렇다면 저희가 나설 때로군요!"

    "으악씨! 깜짝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뒤에서 여기에서 들릴 리 없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놀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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