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172화 (1,139/1,205)
  • 1172화

    …이런 거 보니까, 새삼스럽게 마틸다가 엄청 존경받는 추기경님이라는 게 실감이 나는군.

    그 존경받는 추기경님이 조금 전까지 나랑…아, 알았어. 마틸다. 이런 자리에서 이상한 생각하지 말라는 거지?

    "그런데 7계층으로 내려가도 괜찮다고?"

    "전 왠지 아래로 내려가도 괜찮은 체질 같아요. 릴리 대장님처럼!"

    아, 그러고 보니 아라크네는 그런 거 알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지.

    전에 이 3인방은 아라크네에서 키우는 루키 중에서도 최고의 소질을 가진 특급 루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에이미의 경우는 저 체질로 주목받은 건가?

    뭐, 아무튼 아라크네 클랜에서 괜찮다고 했다면 나도 더 간섭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그럼 다른 멤버들도 다 클랜 하우스에 모여 있다는 거지? 가자. 너희가 할 일은 가면서 내가 설명해 줄게. 미안. 마틸다. 다녀올게."

    설마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찾아온 놈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마틸다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춘 후, 나는 3인방과 함께 아라크네 클랜으로 향했다.

    "100명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구나."

    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차례차례 넘어오는 아라크네 클랜원들을 살짝 질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곳은 플리투스 진영의 이름 모를 산지. 시간은 한밤중.

    아라크네 클랜에 아침부터 찾아가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림자 이동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밤까지 기다려야 했다.

    준비할 시간은 넉넉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아라크네 클랜에 모여서 작전의 개요를 설명하다 보니 준비가 소홀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지더라고.

    이대로 그냥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려면 길드에서 구미호 마을로, 구미호 마을에서 내가 설치할 간이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구미호 마을을 거치는 건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애초에 구미호 마을에서 우리 애들이 지내는 저택이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지도 않고.

    거기에 플리투스 진영에서 간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할 위치도 문제였다.

    전에 아라크네의 간부진을 옮길 때는 사라 덕분에 좋은 위치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곳은 지금 플리투스 군이 우글우글 거리는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화려하게 용사 일행이 등장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아무튼 그런 이유로, 디아나에게 부탁해서 임시로나마 길드에 설치된 텔레포트 마법진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간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직통으로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했고, 플리투스의 어디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야 안전할지 새로 알아볼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그 작업이 겨우 다 끝나고 나니, 어느샌가 시간은 밤이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난 지금, 안전한 곳에 설치한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차례차례 넘어오는 아라크네 클랜원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언제 다 넘어오는 거야. 100명."

    지겨워 죽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을 떼고 있을 수도 없다.

    물론 텔레포트 마법진의 시스템상 그런 일은 거의 없겠지만, 관계없는 녀석이 실수로 넘어와 버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헤헷. 너도 고생하는구나."

    이 자식. 남의 일이라고 속 편하게 말하기는.

    지옥 특훈에 끌려가기 싫다면서 울고불고 난리 치던 그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갔는지. 자세한 작전 내용을 들은 이후부터, 칸나는 쭉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한 대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정말 많네. 우리 클랜도 이렇게까지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처음이지?"

    "글쎄. 옛날에 6계층을 처음 공략할 때도 막대한 인원이 투자되었다는 얘기를…아, 그건 다른 클랜과 협력한 거였을지도?"

    그리고 칸나만큼 밉살스러운 짓을 하는 건 아니라지만, 에이미나 세레나도 이쪽에 관심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야 이것들아. 너희 클랜원이잖아. 난 얼굴 봐도 잘 몰라서 애널라이즈까지 쓰는 중이라고. 좀 도와주면 안 되냐?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자, 인원 파악해야 되니까 줄 서요 줄! 옆 사람이랑 나란히 맞춰서! 거기! 떠들지 말고! 이거 기밀 작전이라니까! 알기는 아는 거야!?"

    "하하하. 그러니까 너 학교 선생님 같다."

    "너보고 하는 말이야! 너보고! 좀 조용히 좀 해! 너만 특별히 앨리시아한테 데려가 줄까!?"

    "혀, 협박은 비겁하잖아!"

    그런 식으로 아닌 밤중에, 그것도 깊은 산 속에서 때아닌 선생 노릇을 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자, 여기 지도를 보세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 여러분이 앞으로 가야 할 곳이…."

    설마 이런 세계에서 프레젠테이션 발표 비슷한 짓까지 하게 되다니. 원래 세계의 발표 시간에도 나서서 해본 적 없는데.

    흔히 말하는 현타와 비슷한 감정까지 느끼게 된 나였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여기 모인 멤버들이 하나같이 작전 수행 능력만큼은 발군이라는 점이었다.

    정돈 안 된 채 떠들고 웃으며 자유분방한 모습만 보면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4계층을 모험하는 모험가들답다고 할까.

    내가 계층을 너무 빠르게 넘어오는 바람에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지만, 보통 4계층 주 무대로 삼는 모험가라고 하면 베테랑 모험가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이니까 말이야.

    텔레포트 마법진 회수 후 길을 나서자, 아까까지의 웃고 떠드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라크네 길드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고 각자 맡은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성자님."

    "앨리시아 대장, 잘 부탁해요."

    뭐, 떠나면서 그렇게 장난스러운 인사를 보내는 사람도 종종 있기는 했지만, 저 정도는 나도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리엘의 인선은 틀리지 않았다는 건가.

    "후우…그러면 이제 남은 건 이 녀석들뿐인가."

    "이 녀석들이라니 실례잖아!"

    시끄러워. 너희 셋이 제일 못 미덥거든? 설마 자각 없는 거냐?

    "그렇게 한숨 푹푹 쉬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이래 봬도 할 때는 하니까."

    "저희를 못 믿겠으면 저희를 키워주신 앨리시아 교관님을 믿어주십시오."

    아니. 그건 그거대로 좀 어떨까 싶은데….

    애초에 조금 전 한숨은 그런 의미로 내쉰 게 아니야. 확실히 너희가 못 미더운 건 맞지만.

    "그런 게 아니라, 왠지 깜빡한 게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깜빡한 것…말인가요?"

    "응."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생각은 안 나는, 어떻게든 기억해 보려고 해도 짙은 안개가 뿌옇게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먹먹한 기분.

    실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지 조금 시간이 흘렀다. 아까 산속에 있었을 때부터, 아니. 그것보다도 더 전. 아예 낮부터 조금씩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내 보려고 해도, 대체 그게 뭔지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너 말이야. 설마 이런 중요한 작전에서 뭔가 깜빡한 건 아니겠지? 그런 건 나라도 안 한다고. 나중 가서 실수했다! 라고 해도 늦으니까 말이야."

    나라도 안 한다니. 너도 자기가 그런 성격이라는 자각은 있다는 거냐.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는 하지만.

    "아니. 이 작전하고는 관계없는 걸 거야. 아마도."

    "아마도로는 불안해요."

    어쩔 수 없잖아. 뭘 깜빡하고 있는 건지 기억이 안 나니까.

    "뭐, 아무튼 너희 셋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조금 더 멀리 있는 곳까지 가야 해. 옮겨줄 테니까 붙잡아."

    그렇게 말하고 셋을 한꺼번에 들쳐멘 다음, 나는 그림자 은신을 풀로 활용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은밀하게 이동했다.

    "꺄악! 성자님 바람둥이! 레이아랑 앨리시아 교관님한테 이를 거야!"

    제발 은밀한 작전에서는 조용히 좀 해주지 않을래? 이래서 너희가 제일 불안하다는 거야.

    "아,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면…나도 레이아나 마틸다 추기경님처럼 언젠가 성녀가…!"

    "넌 평생 걸려도 무리니까 포기해라."

    "너무해애. 지금이면 칸나랑 세레나도 같이 딸려오는데도요?"

    너희가 무슨 1+1 세일 품목이냐. 이러니까 내가 오랜만에 보자마자 파면당했냐는 말부터 하게 되지.

    진짜 나야말로 마틸다한테 콱 일러 버릴까 보다. 이래 봬도 마틸다는 존경하는 모양이니까.

    "나!? 난 싫어! 교관한테 죽을 일 있어!?"

    "이번만큼은 칸나 말에 동의합니다."

    그나마 에이미와는 달리 나머지 둘은 이런 쪽으로는 정상…아니. 잠깐만. 앨리시아만 없었으면 포기 안 했을 거라는 의미인가?

    "이번만큼은!? 세레나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싸움 거는 거냐!?"

    이것들아 아무리 그림자 은신으로 커버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한도라는 게 있잖아! 제발 조용히 좀 해….

    "여기야. 여기에서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화전민 마을이 있을 거야. 우선은 그쪽부터 천천히 공략하면서 수도 방향으로 가. 미리엘 일행의 과거사는 전부 기억했지?"

    "네. 제가 기억했습니다."

    "그래. 혹시 남들이랑 말이 조금씩 달라지면 골치 아파질 수 있으니까 주의해 줘. 만약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건 너희 간부진이니까.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라."

    칸나나 에이미만 혼자 행동했다면 못 미더웠겠지만, 그나마 3인방 중 제일 정상인인 세레나가 붙어 있으니 괜찮겠지.

    그렇게 마지막으로 3인방을 보내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조금 있으면 벌써 날이 밝아올 시간인가.

    100명을 각지로 운반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서둘러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고 마는군. 그나마 하룻밤 만에 다 끝낼 수 있었던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힐링 섹스도 없이 이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버티다니.

    그 사실을 자각하니까 갑자기 엄청나게 졸리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맘 편히 잠들 수도 없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서 장거리 그림자 이동을 못 쓰게 되기 전에 미리엘한테 가서 작전이 시작됐다는 걸 알려주고, 덤으로 비스의 숨겨진 검이 한 명 플리투스에 숨어 있을 거라고 주의를…아.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낮부터 날 계속 괴롭혔던,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뭔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중2병 그 녀석 어젯밤에, 아니. 이제 슬슬 아침이니까 그제 밤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때 성자의 손길 걸어놓고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었잖아!?

    ***

    "나, 나느흥…이런…응흐읏…안 져어어…. 안 질 꺼야아아…."

    날이 밝기 전에 미리엘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포기하고 황급히 저택으로 돌아와 보니, 거기에는 침대 위에 엎드려서 오기 어린 말과 함께 열심히 자위하고 있는 중2병의 모습이 있었다.

    아니. 뭐, 아무리 성자 스킬 견디기 최장 기록 보유자라고 할지라도, 아니. 그렇게 오래 견딘 적이 있으니, 자위로나마 절정을 느끼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자위하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지만, 여자 되는 게 그렇게 싫다던 녀석이 자위할 때는 자기 음부를 만지면서 자위하는구나.

    "야. 괜찮냐."

    "너, 너어 이 비열하앙…."

    아니. 비꼰 게 아닌 데 말이야.

    뭐, 이렇게 방치한 놈이 이제 와서 나타나서는 괜찮냐고 하면, 비꼬는 걸로 밖에 안 들리는 게 당연한 건가.

    "그렇게 노려보지 마. 지금 편하게 해줄 테니까."

    "으에!? 쟈, 쟘깐만…지금은 안응흐으으읏!?"

    어? 응? 지금 안 된다고 한 거야? 미안. 나도 졸려서 반응이 살짝 늦어 버렸어.

    이미 성자의 손길을 발동한 채 중2병의 엉덩이 위에 올라가 있는 내 손을 한 번 내려다본 후 다시 중2병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 얼굴은 이미 날 노려보는 건지 지독한 쾌감에 마냥 행복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뭐, 어차피 나한테 느끼지 않으면 성자 스킬은 영영 풀리지 않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어차피 이 녀석한테 만큼은 입장상 사과하기도 애매하니까.

    "야. 너도 이것 때문에 잠 제대로 못 잤지? 정신 차리면 바넷사한테 가서 방 하나 새로 준비해달라고 하고 거기에서 편하게 자라."

    아마 몰려오는 수마에 다 귀찮아져서 더 그렇게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중2병이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도 안 한 채, 그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그렇게 적당히 명령조로 말하고는, 그대로 내가 대신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로 했다.

    어차피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바넷사의 얼굴도 봤으니, 만약 중2병이 내 말을 제대로 못 들었더라도 바넷사가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그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서.

    "……."

    "우왓! 씨! 깜짝이야!"

    대체 얼마나 잔 걸까?

    겨우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바로 눈앞에 날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물론 이 저택에서 날 이런 눈으로 볼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었다.

    "너 여기에서 뭐 하냐?"

    "여긴 내 방이야."

    아니. 뭐, 그야 그렇기는 하겠지만.

    "다른 방 빌려서 편히 자라고 했잖아. 못 들었어?"

    나도 비몽사몽간에 한 말이라 확신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 이런 꼴로 밖을 나가라는 거야? 대체 어디까지 비열한…."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가랑이를 두 손으로 누르는 중2병의 행동에, 나는 그 모습을 새삼 자세히 살펴봤다.

    한마디로 말해서, 착의 섹스를 마친 후의 여자 모습. 이라고 하면 대충 그림이 그려질까?

    옷이 흐트러져 있는 것도 그렇고, 젖어 있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내가 오래 잠들어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고작 저런 모습이 됐다고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정도면.

    "나 따라올 때는 어떻게 따라왔냐?"

    "그때는 제대로 모습을 감췄어! 하지만 여기는 그 여자가…."

    아아. 그러고 보니. 전에도 그 스킬로 도망가려다가 바넷사한테 잡혀서 꽁꽁 묶였다고 했지.

    이 저택 안에서 우리 집사님의 눈을 벗어난다는 건, 그야말로 디아나급이 아니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얘도 그때의 귀갑 묶기가 은근히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아무튼 그러면 이 녀석, 그 이후로 계속 이러고 가만히 있었다는 건가. 하는 수 없지.

    "자, 됐지? 따라와."

    물의 정령을 불러서 옷의 젖은 부분을 뽀송뽀송하게 해주고 덤으로 몸도 적당히 씻겨서 자위와 절정의 흔적을 지워준 다음, 나는 일단 밥부터 먹기 위해 방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