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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135화 (1,102/1,205)
  • 1135화

    우와. 얘 좀 봐. 주군에서 바프라로 바로 말놓는 거 봤어?

    바프라야. 넌 무슨 직속 부대를 이런 식으로 키웠냐? 용케 지금까지 배신 안 당했네.

    아니. 섹스 때문에 충성하던 놈한테 더 황홀한 섹스 라이프를 약속해 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말했잖아? 전부야. 알고 있는 건 전부 다. 바프라가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뭘 했는지, 몬스터의 대공습 이후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바프라는 어떤 생각으로 널 지하에 보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

    "…바프라는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설령 그게 자신의 직속 부하라고 할지라도."

    "즉, 모르시겠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극히 적다는 얘기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지남은 나불나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이 우리에게 말해 준 정보는, 처음에 보여준 자신감 없는 태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도움되는 정보로 넘쳐났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한 세력의 수장이라는 놈이? 그 말을 전부 믿으라고?"

    놈이 말해 준 정보는, 신뢰성에 의심이 갈 정도로 너무한 정보가 섞여 있었다. 그것도 우리한테 유리한 쪽으로.

    차라리 불리한 정보였으면 더 믿을만했을 텐데, 이렇게 유리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니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믿을지 말지는 네년의 자유다. 난 알고 있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다."

    물론 이 녀석은 그 정보가 우리한테 유리한 정보라는 걸 모르고 하는 말 같기는 했지만.

    으음…이걸 어쩌면 좋지.

    결국 이 녀석이 한 말을 전부 믿을지 말지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나는 우선 당장 해야 할 일부터 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미안해. 뒷수습은 부탁 좀 할게."

    "아니에요. 이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우리 애들한테 사과하자, 레이아가 손사래를 치며 날 안심시켜줬다.

    하지만 천사님은 착하니까 이렇게 말해주고 있을 뿐, 앞으로 레이아와 마틸다가 한동안 고생해야 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기껏 쌓아 올린 신전과의 협력 시스템이 무너져 버린 거니까.

    "고마워. 부탁할게."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밖에 없어서,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탔다.

    "끼잉…끼잉…."

    품에는 구슬피 우는 똥개 한 마리를 안고.

    야. 똥개. 아무리 그렇게 울어 봤자 안 놔줄 거다. 한낱 미물 주제에 약아빠져서는. 그렇게 슬픈 눈으로 구조 신호 보내봤자 안 통해.

    "켈비! 힘내!"

    저것 봐. 우리 레이첼 누님은 은근히 나사 빠진 구석이 있다니까. 생긴 건 완벽 커리어 우먼인데.

    "나한테 맡겨줘! 그럼 가자! 켈비!"

    파이팅 포즈를 지으며 기운을 북돋아 주는 레이첼 누님한테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나서, 나는 품에 안긴 똥개가 도망가기 전에 황급히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했다.

    "그르르르르…."

    그리고 호수 밑바닥으로 이동되자마자, 똥개는 거대한 늑대 모습으로 변하더니 내게 이빨까지 보이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이 똥개가 사람 못 알아보고 설치네. 야. 던전에서 못 나오고 있던 널 구해 준 게 나라는 사실, 벌써 잊은 거 아니지? 레이첼 누님 품에 맨날 안겨 있다 보니 힘들었던 기억은 다 잊은 거야?

    "수틀리면 여기에다 버리고 가는 수가 있다."

    "…멍! 멍!"

    내 나지막한 협박에, 케르베로스는 순식간에 다시 강아지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약아빠진 녀석.

    그래도 강아지 모습으로 있으면 귀엽기는 해서, 본의 아니게 마음이 풀리기는 했다. 애완동물이라는 녀석은 이래서 치사하단 말이야.

    아무튼 내가 갑자기 케르베로스를 데려온 건, 그냥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니. 진짜로. 레이첼 누님 가슴에 안겨서 맘 편히 꼬리나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눈꼴시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데려온 게 아니라고. 다 필요한 곳이 있어서 데려온 거야.

    나는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산 중턱에 있는 폭포수로 빠져나가서, 전에 쓰레온이 뚫어놨던 그 구멍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구멍을 막아두고 있었던 몬스터의 성기를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고, 뻥 뚫린 구멍 쪽으로 켈베로스를 들이밀었다.

    "자, 너 땅의 정령 쓸 줄 알지? 막아.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멍?"

    이 똥개, 지금 ‘고작 이런 잡일 때문에 날 데려온 거라고?’라는 눈빛으로 나 쳐다본 거 맞지?

    그야 내 생각대로 일이 풀린다면 바프라가 다시 병력을 풀어서 지하 수로를 탐색하게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이래 봬도 난 철저한 남자거든. 이런 사소한 것도 꼼꼼히 뒤처리해놔야 후환이 없지.

    "이거 하라고 데려온 거 맞으니까 얼른 막기나 해."

    "……."

    똥개 주제에 할 말 잃지 마라. 똥개 주제에.

    어쩔 수 없잖아. 나도 마음 같아서는 디아나를 데려오고 싶었다고. 능력 면으로 봐도, 디아나가 마법으로 흔적을 지우는 게 제일 완벽할 테니까.

    하지만 아직 미리엘한테서 연락이 없었다고 하잖아. 디아나는 거기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미리엘의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는 역할이 있으니, 남은 게 너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애초에 우리 애들은 데려올 수 없는 이유가 또 한 가지…뭐, 그건 말해 줄 필요 없나.

    "아무튼 알았으면 빨리하기나 해. 아, 너 벽돌 같은 것도 만들 수 있냐? 이왕이면 수로 내부까지 완벽하게 수복해두고 싶은데."

    "끼우으…."

    이 자식, 지금 한숨 쉰 거야?

    상당히 비협력적인 태도의 케르베로스였지만, 그래도 괜히 그 세월 동안 던전에서 홀로 살아남은 게 아니라는 듯, 정령 다루는 솜씨는 상당했다.

    땅 위의 잔디를 자연스럽게 모아서 완벽한 위장을 해낸 것은 물론, 수로의 벽까지 완벽하게 수복해내서, 원래 여기에 구멍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내가 봐도 흔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까지는 기대 안 했는데 말이야.

    "너 이런 식으로 많이 숨어다녀 봤나 보구나?"

    "멍…."

    기특한 마음에 머리까지 쓰다듬으면서 칭찬해 줬지만, 켈베로스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흔들어서 내 손을 치우고는 빨리 구미호 마을에 보내 달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런데 이걸 어쩌냐.

    "아니. 너 오늘 집에 못 가."

    "멍!?"

    배신당했다는 표정 짓지 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렇게 금방 돌아갈 수 있으면 내가 널 데려왔겠냐? 디아나를 데려왔지.

    "너 데려다줄 시간 없어. 아직 할 일 많이 남았어."

    "그르르르…."

    "아무리 그래 봤자 지금은 못 간다. 가자."

    거대한 늑대 모습으로 변해서 그르렁거리는 켈베로스의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시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내에서 작업하고 있는 변태 듀오와도 다시 한번 얘기를 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케이로스한테 가서 사정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요리스에게 가서 부족했던 설명까지 마저 해야 하니, 이거 오늘 밤중에 제대로 잠이나 잘 수 있으려나.

    결국 내가 모든 일을 마치고 다시 우리 애들이 있는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낮이 거의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였다.

    "늦었네. 많이."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어?"

    "잘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야."

    시간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다들 먼저 자고 있을 줄 알았지만, 그건 우리 애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거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날 기다리고 있는 사라와 실비아, 레이의 모습을 보니, 밤사이 피곤함에 찌들어 있던 몸에서 순식간에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매일 이런 식이었어?"

    "아니. 오늘은 특이 케이스야. 사라 네가 생각해도 그렇잖아? 내가 매일 이렇게 성실하게 일할 리가…."

    "장난치지 말고."

    "정말이라니까."

    "흥. 믿을 수가 있어야지. 갈 때도 금방 온다고 했으면서."

    "아…그건…."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진지남한테 들을 정보 때문에 계획을 살짝 수정해야 할 것 같아서 돌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됐네.

    "미안해. 많이 바빴어. 얼마나 바빴으면 내가 이 녀석도 못 돌려주고 데려왔겠어."

    "어!? 켈비!?"

    케르베로스의 뒷덜미를 잡아서 앞으로 내밀자, 레이가 반색하며 케르베로스를 품에 껴안았다.

    사라나 실비아도 아니고 레이가 제일 먼저 반응하다니. 아니. 애초에 너희 둘 구면이었냐? 뭐, 위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볼 기회야 몇 번이나 있었겠지만.

    "꺄우응…멍! 멍!"

    그리고 레이가 품에 안아 들자, 케르베로스도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려댔다.

    저 자식,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한숨 푹푹 내쉬면서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 짓고 있었으면서.

    "켈비가 여기에 왜?"

    "그냥 쟤 힘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설명해주는 건 간단하지만, 사정을 다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우선 같이 잠부터 자자. 너희도 안 자기 기다리느라 피곤했잖아? 사정은 일어나서 얘기해 줄 테니까."

    "이 변태는 진짜…."

    아, 아니. 이 타이밍에 갑자기 변태가 왜 나와!? 같이 자자는 건 진짜 말 그대로 같이 잠이나 자자는 의미지, 섹스하자는 의미가 아니야!

    "흥. 정말인지 몰라."

    "물론 사라 네가 원한다면…."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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