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96화 (880/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96화 >

    바로 다음날에는 던전에 가야함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 그렇게 즐긴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와아! 오늘은 왠지 특히나 더 진수성찬이네요!"

    나와 팔짱을 끼고 같이 식당으로 향하던 레이아는, 멀리서 활짝 열린 식당 문 너머로 보이는 진수성찬을 보자마자 꼬리를 붕붕 흔들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우리 천사님도 먹는 걸 참 좋아하신단 말이지.

    그러면서 살은 찌지 않는다고 할까, 영양분이 온통 한 부위로 쏠리는 모양이지만.

    "네. 오랜만에 던전에 가시는 날이니, 음식에 특히 신경을 더 써봤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바넷사였지만, 그런 자세 덕분에 우리 집사님이 얼마나 완벽한지 새삼 더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나조차도 위에서 조금 많이 쉬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애들은 내가 그 지옥을 경험하고 오는 동안에도 계속 위에 있었던 거니까.

    오래 쉬긴 오래 쉬었지. 뭐, 그렇다고 해서 감이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을 테니 걱정은 없지만.

    "역시 바넷사."

    나는 칭찬과 함께 바넷사의 허리를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바넷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을 피해버렸다.

    하여간 우리 집사님은 일할 때 너무 도도하시다니까.

    "바넷사씨, 정말로 언제나 너무 감사해요."

    "······아닙니다."

    야. 도도한 집사님. 왜 내가 칭찬할 때랑 달리 미묘하게 부끄러워하는 것 같냐?

    그야 우리 천사님이 저렇게 말해주시면 나같아도 몸둘 바를 모르게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아, 여러······."

    "음. 자네들 왔는가. 좋은 아침일세."

    "좋은 아침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 갔기 때문인지, 다들 우리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바로 인사를 해왔다.

    "아, 아읏······네, 네에.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덕분에 보통 얼굴을 보면 제일 먼저 인사를 하는 우리 천사님은 살짝 타이밍을 놓쳤고, 뒤늦게 얼굴을 살포시 붉히면서 수줍게 인사를 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힘차게 흔들리던 꼬리가 축 처진 걸 보니, 인사보다 음식에 먼저 신경 썼다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계신 건지도 모른다.

    뭐, 그러면서도 눈은 식탁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셨지만.

    괜찮아요. 천사님. 그런 모습도 귀여워요.

    "그럼 구원씨······."

    천사님은 부끄러움을 숨기듯이 웃으면서 팔짱낀 팔에 더욱 힘을 줘서 내 팔을 자신의 가슴 사이에 꼬옥 파묻고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그 긴 머리가 흘러내려 음식에 닿는 일이 없도록 한데 모아 묶으려고 했다.

    식탁 위에는 스튜 같이 머리카락이 닿으면 귀찮아질 음식이 꽤나 많았으니까.

    "아, 이, 이건······그런 의미가 아니니까요······?"

    아마 별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것뿐이겠지.

    하지만 막상 머리에 손을 뻗자 지난 밤의 기억이 되살아난 건지, 레이아는 얼굴을 붉히고 살짝 내 얼굴을 엿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귀여우시다. 그리고 동시에 살짝 섹시하시다.

    "뭐?! 정말로?!"

    우리 천사님이 저렇게 귀엽게 나오시니, 나도 응해주지 않을 수 없잖아.

    나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깜짝 놀라줬다.

    "그, 그럼요! 왜 그렇게 깜짝 놀라시는 건가요? 정마알······또 그렇게 장난치시고······."

    우리 천사님은 그런 날 보고 당황해서는 머리카락을 모아 잡고있던 손을 놔버렸다.

    도중에 장난이라는 걸 눈치 챘는지, 곱게 눈을 흘기면서 꼬리로 내 엉덩이를 탁탁 가볍게 때렸지만 말이다.

    사실 그냥 장난으로만 그런 건 아닌데.

    이렇게 머리를 묶을 때마다 의식을 시켜줘야지, 레이아도 머리를 묶는 행위를 섹스하자는 신호로 인식하게 되지 않겠어?

    물론 밤에도 자기암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내 노력이 효과가 있기는 했는지, 레이아는 내가 장난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도 다시 머리를 묶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결국 안 묶는 거야?"

    "아, 안 묶어요."

    "쳇."

    "쳇이 아니에요! 정마알!"

    묶으면 어떻게 될지 살짝 궁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곧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평소처럼 장난도 쳐가면서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오랜만에 던전으로 향하게 됐다.

    뭐, 그 전에 먼저 준비부터해야 하지만.

    아무리 향하는 곳이 던전이라고 할지라도, 여자들은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사랑하는 낭군님하고 같이 가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음화하하.

    ······그나저나.

    "하아아······가기 싫다."

    제일 먼저 준비를 마치고 나온 사라의 어깨 위에 턱을 얹고, 나는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오랜만이라 그런지 사라가 유독 긴장한 것 같아서 말이야.

    뭐, 가기 싫은 것도 일단 사실이기는 하지만.

    왜 그런 거 있잖아. 방학 내내 펑펑 놀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학교 가기 더 싫어지는 기분. 지금 내가 딱 그런 기분이었다. 직전에 지옥을 경험하고 와서 더 그렇기도 하고.

    "하응?! 깜짝이야! 왜 귀에 대고 속삭이는거야?!"

    내가 갑자기 귓가에 입김을 불어넣자 놀랐는지, 사라는 반사적으로 깜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푸흡. 끅끅."

    "이씨. 이게 진짜."

    사라의 그 반응에 나는 웃음이 터졌고, 사라는 끅끅대는 날 보면서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듯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미안. 미안. 귀여워서."

    "헛소리하지 말고. 집중이나 해. 또 저번처럼 다치면 가만 안 둘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던전에 가면 또 그 거대 거북이를 상대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얘가 아까부터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엇구나. 하여간 귀엽기는.

    "괜찮다니까. 오빠만 믿어."

    "전에도 다쳐놓고 뭘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는 거야? 방심하면 다치는 건 너니까 긴장해 이 바보야."

    나는 그런 사라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더욱 태평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는지 사라는 살짝 인상까지 찌푸리며 말했다.

    평소에는 장난을 잘 받아주는 얘가 이럴 정도면, 진지하게 많이 걱정된다는 건가.

    "정말로 걱정 안 해도 돼. 너도 알잖아? 전에는 아라크네 애들 눈을 속이려고 일부러 다쳤다는거."

    나는 장난을 그만두고, 사라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춰준 다음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줬다.

    "며칠동안 눈도 못 뜬 주제에······."

    하지만 사라는 그래도 걱정이 다 사라지지는 않는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정부리듯 중얼거렸다.

    "그것도 조절한 거라니까. 그 정도는 다쳐야 걔들 눈을 속이지 않겠어? 아니면 뭐야? 사라 넌 오빠를 그렇게 못 믿겠어?"

    "······못 믿겠네요. 바보야."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사라는 겨우 긴장이 조금 풀린 듯 메롱하고 혀를 내밀며 나한테 장단을 맞춰줬다.

    하지만 사라야. 이번엔 너무 방심했잖아. 내 앞에서 함부로 혀를 내밀다니.

    "응으읍?! 잠! 뭐하는 거야 이 바보야! 곧 다른 사람들도 올 텐데!"

    나는 사라의 내밀어진 혀를 빨아먹을 기세로 그 입술에 달라붙었고, 사라는 그런 내게 깜짝 놀라서 내 가슴을 찰싹찰싹 때렸다.

    "볼 거면 보라지! 우리 사랑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봤네."

    내가 자랑스럽게 외친 순간, 바로 근처에서 디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 보셨어요?"

    디아나야. 넌 또 언제왔니?

    아니. 뭐 딱히 보여서 부끄러울 짓은 안 했지만 말이야.

    어색해하면서 사라쪽을 힐끔 보자, 사라는 그것 보라는 듯이 내게 눈을 흘기면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디아나야. 여기에는 깊은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이런 걸 또 일일이 변명하지 마, 이 바보야."

    "아따가! 어푸푸!"

    일단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입을 연 내게 사라는 등짝 스매시를 날렸고, 디아나는 내 입을 향해 물방을탄을 날렸다.

    "음!"

    그렇게 내 입을 헹궈주고 나서, 디아나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두 팔을 뻗었다.

    ······이건, 역시 자기도 그걸 해달라는 거겠지?

    쪽.

    아무리 나라도 사라가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데 사라한테 했던 것처럼 혀를 빨며 딥키스를 하는 건 살짝 부끄러웠기 때문에, 나는 디아나의 입술에 가볍에 버드 키스만 해줬다.

    "음? 뭔가? 이게 다인가?"

    하지만 디아나는 모처럼 날 놀릴 구실을 얻었다는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디아나야. 너 지금 네가 장난치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그런 장난을 치는 거니?

    "왜? 더 찌이인하게 해줘?"

    "아, 아닐세. 어린 처자의 눈도 있으니 이 몸도 이 정도 수준에서 이해해주겠네."

    나는 눈빛을 바꾸고 디아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달라붙었고, 머리 좋은 디아나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깨달았다는 듯 황급히 말을 바꿨다.

    쳇. 여기서 더 허세를 부리면 로터라도 꺼내서 보여주려고 했는데.

    "디아나. 어린 처자라는 건 절 얘기하는 건가요?"

    "트,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왜요? 전 괜찮은데. 더 해보죠?"

    "사라양은 이 몸이 찌이인하게 키스하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겐가?"

    "뭐, 뭐라고요?!"

    그리고 사라와 디아나가 서로의 성벽을 후벼파는 말싸움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겨우 우리 천사님이 등장하셨다.

    "왠지 떠들썩하시네요. 뭔가 재미있는 얘기라도 하고 계시나요?"

    "아니. 딱 좋은 타이밍에 왔어. 하고 있었던 건 아니고, 이제 막 시작할 참이거든. 지금부터 재미있어질······."

    "이 바보는 또 뭐라는거야?!"

    "정말로 자네라는 남자는!"

    그러니까 너희는 왜 꼭 싸우다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합심하고 그러냐.

    진짜로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후훗. 자, 그러면 가실······어머? 그러고 보니 실비아씨가 안 보이시네요?"

    레이아는 그런 둘을 보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면서 던전으로 향하려다가, 실비아가 없다는 걸 눈치 채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라면 제일 먼저 와 있어야할 애가 없으니까 말이야.

    실은 나도 실비아가 보이지 않아서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이렇게 늑장을 부릴 애가 아닌데 말이지.

    "아, 실비아라면······."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아!"

    사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건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마침 실비아가 큰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야할까······오긴 왔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 몸보다 커다란 방패에 가려져서.

    "실비아야? 그 방패는 뭐니?"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확인을 위해 질문을 던졌다.

    "네, 넵! 대왕 거북이를 상대하기 위한 방패입니다! 이것으로 구원님을 지키겠습니다!"

    역시나. 너도 그거였냐.

    그러고 보니 내가 지옥에 있는 동안 사라랑 같이 붙어 있었다고 했지.

    대체 저런 방패는 어디서 구해온 거야?

    방패라기 보다는, 그냥 두꺼운 철대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나마 중간에 일자로 네모나게 뚫린 구멍에 실비아의 눈이 보이고 있어서 방패라는······아니. 저걸 감안해도 방패로는 안 보여.

    위아래를 뒤집으면 완전 우편물 넣는 구멍이잖아 저거.

    "그거, 들고 다닐 수는 있고?"

    태클 걸 부분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나는 일단 제일 중요한 것부터 태클을 걸기로 했다.

    "괘, 괜찮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 지적에, 실비아는 힘 자랑이라도 하듯이 방패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니. 내쪽에서 보면 그냥 대문이 위아래로 들썩이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흔든 거겠지 뭐.

    하지만 실비아야. 난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란다.

    "아니. 무게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거 들고 거북이굴을 못 지나다니잖아."

    안그래도 좁은 굴로만 이어진 공간이니까.

    "그건······대왕 거북이를 만날 때까지······구원님께서······."

    바로 대답이 나오는 걸 보니 생각을 안 해둔 건 아닌 모양이지만, 말하기 송구스럽다는 듯 실비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진짜 말 그대로 대 거대 거북이 전용 아이템이라는 건가.

    뭐, 5계층도 거대 몬스터들이 즐비해있는 계층이니까, 굳이 쓸거면 5계층에서도 계속 쓸 수는 있겠지만.

    "압수야."

    나는 실비아의 손에서 그 대문을 빼앗아 인벤토리에 대충 처박았다.

    진짜 무지막지하게 무겁잖아. 대체 얼마나 튼튼하게 만든 거야?

    "느엣?! 으아앗?!"

    그러니까 얘가 방패를 뺏긴 것 만으로도 이렇게 휘청거리지.

    "그렇게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어하면서 저런 걸 들고 어떻게 싸우려고 그래? 괜히 익숙하지도 않은 거 들고 싸우다가 너만 더 다친다."

    "하, 하지마안! 구원님이 또 다치시는 것보다는······! 으아으아아!"

    실비아는 왠일로 언성을 높이며 내게 대들기까지 하려고 했지만, 내가 그 몸을 끌어안고 뺨에 뺨을 비벼대자 바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침묵해버렸다.

    훗. 나한테 대들려면 적어도 나랑 키스하고 제정신으로 있을 정도는 되고 와라.

    "네가 다치는 건 내가 싫거든."

    "졔, 졔셩합니다아! 졔셩합니다아!"

    내 말을 듣고 반성해서 사과하는 거야, 아니면 너무 죽을 것 같으니까 놔달라는 의미로 사과하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출발 전부터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우리는 겨우 던전에 출발하게 됐다.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96화 > 끝

    ⓒ CurtainCall#o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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