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873화 (857/1,205)
  •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73화 >

    "누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나는 레이첼의 가녀린 허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그 등에 몸을 밀착시킨 후, 귓가에 입을 가져가서 그렇게 속삭여줬다.

    "아읏?! 누, 누나라고 하지 마!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누나라고 불릴 자격도······!"

    귓가를 간질이는 숨결에 누님은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괜찮다니까. 귀여웠어."

    "누, 누나한테 귀엽다는 말이 뭐니?!"

    아니. 누님. 아까는 누나라고 하지 말라면서요. 자격 없는 게 아니었어요?

    뭐, 하지 말라고 해도 난 계속 누나라고 부를 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지금의 대화로 대충 분위기를 파악했겠지만, 누님은 지금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며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고 계셨다.

    물론 전에 바넷사가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녹아내린 모습을 보여서 부끄럽다는 건 아닐 거다.

    전에 누님이 끌고 간 러브호텔 같은 곳에서도 돌아갈 시간까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열중해서 누님을 녹여버린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누님이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역시나 삽입 전에 그런 식으로 절정에 달해버리는 모습을 보인 게 제일 크겠지.

    "애초에 성자인 내가 진심으로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오히려 버텼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내가 성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누님이 냄새로 절정했다는 사실은 덮어버리는 식으로 누님을 다독여줬다.

    "······저, 정말?"

    그 말이 효과가 있기는 있었는지, 그렇게 말해주자 겨우 누님도 고개를 돌리고는 얼굴을 가린 손을 벌려서 그 사이로 살짝 내 얼굴을 엿봤다.

    누님. 다 좋은데 너무 그렇게 귀여운 모습은 보이지 말아주세요. 괴롭히고 싶어지니까.

    ‘아무리 그래도 성자 스킬 같은 건 하나도 안 썼으니, 냄새만으로 느껴버릴 수준은 아니었지만.’이라고 말해버린다든가.

    뭐, 그렇게 말했다간 진짜로 울려버릴 것 같으니까 참아야겠지.

    "그럼 전에 바넷사가 레이첼한테 차례 양보했던 거 기억나? 그때 바넷사도 비슷한 이유로 부끄러워서 나 피해 다니느라 그런 거야. 그 냉혈 인간 바넷사마저도······잠깐만. 이거 바넷사한테 비밀이다?"

    "······."

    누님을 더욱 안심시키기 위해 장난기를 섞어서 그런 말까지 해주자, 누님은 겨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마치 정말로 내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누님의 입술에, 나는 살짝 입술을 겹쳤다가 뗐다.

    "응······. 뭐, 뭐하는 거니······갑자기."

    레이첼은 내 갑작스러운 버드 키스에 조금 놀란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은 듯 살포시 시선을 피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런 얼굴로 가까이서 빤히 쳐다보니까."

    "그런 얼굴이라니······. 누나, 이상한 표정이라도 지었니?"

    "표정이 문제가 아니야."

    레이첼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렇게 물어봤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으, 응? 그럼?"

    그 너무나도 단호한 내 모습에 살짝 당황했는지, 레이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괜찮아. 진짜로 문제 있다는 말이 아니니까.

    "평소에 거울도 안 보고 살아? 레이첼 너, 엄청 키스하고 싶게 생겼어."

    "얘, 얘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내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레이첼은 귀 끝까지 살짝 빨개지면서 고개를 돌렸다.

    "정말이라니까. 자, 이거 봐. 쪽. 쪽."

    "꺄아악! 구원아! 하응! 가, 간지러······후훗!"

    내가 목덜미나 뺨에 마구잡이로 키스를 해대자 레이첼은 손으로 내 얼굴을 밀면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저항은 형식적인 수준의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저항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누님의 얼굴에 키스 세례를 퍼부을 수 있었다.

    "레이첼님. 일어나셨습니까?"

    그렇게 우리가 이른 아침부터 꽁냥꽁냥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문쪽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냉혈 집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벌써? 아직 시간이······아, 그러고 보니 누님은 출근 준비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침대 밖을 나서야 하지.

    쳇. 조금 더 이러고 있고 싶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쉬운 건 누님도 마찬가지인지, 레이첼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때는 누님답게, 그 목소리는 날 다독여주듯 차분했다.

    아까는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느라 누나라고 하지도 말아 달라고 하셨던 분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런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누님이 갑자기 살짝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 아쉬워서, 이대로 가버리면 나도 모르게 아까 들은 얘기를 바넷사씨한테 해버릴지도."

    응? 아까 들은 얘기라니요? 아까 무슨······아.

    "아, 아니! 그건 진짜로 내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그만둬!"

    바넷사 쟤 한기 날리도록 쿨하게 생긴 주제에 삐치면 의외로 오래간단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레이첼 누님과의 아침은 끝마치게 됐다.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는 누님을 배웅까지 해준 다음, 나는 본격적으로 할 게 없어졌다.

    아니. 할 게 없어졌다는 말은 어폐가 조금 있군.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애들이랑 아무것도 안 하고 꽁냥거릴 수 있게 됐다.

    그 지옥에서 돌아오고 나서 며칠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드디어 말이다.

    뭐, 정작 그 지옥에 가게 된 원인인 아라크네 클랜과의 일은 하루 만에 가볍게 처리해버렸고 이틀 동안은 펠리시아와의 일 때문에 시간이 없었던 거니,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중요한 건, 드디어 하루종일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우리 애들과의 두근두근 하렘 힐링 타임을······!

    "미안해요, 당신. 전 아무래도 신전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제가, 스스로 시작한 일을 너무 자주 빠지는 건 나쁜 본보기가 될 것 같아서요."

    하지만 내 두근두근 하렘 힐링 타임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크윽! 핑크핑크한 모습으로 내게 달라붙으며 힐링해 줄 마틸다가 빠지다니!

    하지만 확실히 마틸다가 하는 말도 일리는 있어!

    추기경님이 자기가 하자고 해서 시작된 일을 너무 내팽개치는 건 보기 좋지 않지.

    괘, 괜찮아! 신에게는 아직 5명의······.

    "저, 저기! 죄, 죄송합니다! 그게! 그러니까! 페, 펠리시아한테······빨리······전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마틸다의 이탈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회복할 겨를도 없이, 실비아가 옆에서 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추가타를 날려왔다.

    말투는 엄청나게 쭈뼛 쭈뼛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저렇게 말할 정도로 성에 가고 싶은 마음이 충만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야 그 마음은 알아. 그렇게 같이 마음고생 하던 친구의 마음이 결실을 맺은 거니, 그야 빨리 가서 알려주고 축하해주고 싶겠지.

    게다가 이틀동안 성에 가면서 실비아를 데려가지 않았으니 펠리시아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할 테고.

    하지만 말이야! 핑크 마틸다에 이어 실비아테라피까지 잃을 수는······!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용무가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넷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마무리 일격을 날리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방에 남은 건, 나와 사라, 디아나, 레이아뿐.

    오랜만에 삼인방과의 오붓한 시간이라는 거다.

    "크흐흑. 쟤들 사랑이 식은 걸까?"

    "뭐야. 우리만으로는 불만이라는 거야?"

    내가 가짜 울음을 터뜨리며 통곡하듯 외치자, 사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라야. 아무리 가짜라지만 네 서방님이 울고 있는데 이럴 땐 조금 받아주면 안 되냐.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하지만······."

    "구원씨. 진정하세요. 아마 여러분은 저희에게 배려해주신 걸 거예요."

    하지만 우리 퉁명스러운 용사님과 다르게, 천사님은 자신의 품 안에 내 얼굴을 끌어안으면서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안면을 부드럽게 감싸는 이 말랑말랑한 감촉만으로도 치유되는 기분입니다.

    "배려라니?"

    "구원씨가 혼자 던전에 가셔서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돌아오신 뒤로 이 자리에 없으신 분들만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구원씨와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으니까요."

    아, 그런가. 그러고 보니 마침 차례가 딱 실비아 차례부터였지.

    그 때문에 이 자리에 없는, 그러니까 일단은 첩이라고 하고 있는 애들과만 둘만의 시간을 가졌었다.

    사실 요즘에는 본처니 첩이니 하는 구분도 거의 없다시피 한 거나 마찬가지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다들 삼인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신경을 써줬다는 건가.

    여기 없는 애들 중 유일하게 바넷사만 아직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뭐, 바넷사는 오늘 밤이 자기 차례니까.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돌아온 날 낮에 바넷사하고는 짧게나마 몸을 섞었었고.

    "과연! 그런 건가!"

    "갑자기 건강해졌구먼."

    "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언제나 건강하다고! 자!"

    "으아아아! 어지럽네에에!"

    황당해하는 디아나의 허리를 잡아서 머리 위까지 높이 들어 올리고는 춤추듯이 빙글빙글 돌며 이동한 나는, 그대로 침대에 풀썩 앉으며 디아나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놨다.

    "얘들아 잘 들어!"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나는 힘 있는 목소리로 삼인방의 시선을 끌었다.

    사라는 쟤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저러냐는 표정으로.

    디아나는 조금 전 빙글빙글이 어지러웠는지 내 무릎 위에서 해롱해롱 거리는 표정으로.

    그리고 우리 천사님은 무슨 일일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내게 주목이 끌린 것을 확인한 다음, 나는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다른 애들의 상냥한 배려심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어!"

    "다 같이 섹스라고 하면 때릴 거야."

    "······."

    아니. 사라야. 하아······. 사라야. 아니 진짜 넌. 하아······.

    "정말인가요?"

    으으윽! 처, 천사님! 그런 맑고 순수한 시선으로 절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아니! 아예 절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저 같은 쓰레기는 천사님의 눈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더러운 존재에요!

    "보나 마나 다들 자기들만 섹스했다는 이유로 미안해하는 거니, 너희도 섹스를 하는 거야! 같은 말이라도 하려고 한 거겠죠."

    그리고 사라야! 넌 함부로 내 마음 읽지 말라고 했지!

    아니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디아나. 혹시 구원 커졌어요? 만약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할 생각이면······."

    사라는 살짝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무릎 위에 앉아있는 디아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야. 내가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진짜 너무하지 않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걸 진심으로 말했겠어? 당연히 농담이었지!

    "우엣?! 아, 아우으······자, 쟈네에······."

    눈동자가 뱅글뱅글 돌고 있던 디아나는, 사라의 말에 문득 정신이 들어서는 확인이라도 해보려는 건지 그 귀여운 엉덩이를 내 고간에 비비듯이 문질러댔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내 물건이 반사적으로 한 번 꿈틀거리자, 디아나는 떨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아, 아니! 야! 잠깐만! 이건 아니잖아! 자기가 유도해놓고 뭘 혼자서 발동 걸리려고 하는 건데!

    엉덩이를 비벼대는 데 반응이 없는 게 이상한 거잖아!

    "야. 구원."

    "아냐! 진짜 아니야! 사라 너 오빠를 그렇게 못 믿어?!"

    "······남자가 그런 말을 할 때는 절대 믿어서는 안 될 때라고 하던데."

    뭐, 뭐? 아니. 그야 보통 오빠 믿지? 라고 할 때는 믿으면 안 될 타이밍인 건 맞지만.

    "그, 그런 건 또 대체 누구한테 들었는데?!"

    "레이첼씨한테."

    레이첼 누니이이임! 연애 경험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이상한 잡지식만 주워 들으셔서는!

    누님 또 경험 풍부한 척하려고 사라한테 이상한 말 불어넣은 거죠?!

    어차피 사라 얜 누님이 숙맥인 거 다 아니까 소용없거든요?!

    애초에 저한테 알려준 것도 사라라고요! 잊으셨어요?!

    "애초에 난 다 같이 섹스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

    생각지도 못하게 궁지에 몰린 나였지만, 다행히 벗어날 구멍은 있었다.

    아까 말문이 막힌 덕분에 아직 그 전제를 긍정하지는 않았으니까.

    "어머, 그래? 그럼 진지한 목소리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데? 구원이 진지한 목소리를 낼 때는 보통 이상한 말을 할 때밖에 없었는데."

    야. 넌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지?

    "음······그러니까 말이지. 그러니까······아, 아니! 잠깐만! 대화가 옆길로 새는 바람에 잘 기억이 안 나서 그래! 그, 그래! 그러니까 넷이서 시간을 보내는 만큼 다른 사람들처럼 섹스로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최대한 알콩달콩하게 지내기 위해서 다 같이 딱 달라붙어서 시간을 보내자는 얘기였어! 응!"

    다행이도 내 뛰어난 머리는 순식간에 그런 말을 짜 올릴 수 있었다.

    내가 순발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 정말 다행이야.

    "후훗. 네! 찬성이에요!"

    "뭐, 나쁘지 않네."

    그 말을 듣고 레이아는 기쁘다는 듯 꼬리를 좌우로 파닥파닥 흔들면서, 그리고 사라는 조금 새침한 표정으로 각각 내 옆에 앉아서 몸을 밀착시켜왔다.

    "잠깐. 설마 그걸로 끝은 아니겠지? 날 그렇게 파렴치한 놈으로 몰아가 놓고?"

    "······미안해. 오빠. 이걸로 됐지?"

    그리고 덤으로 사라는,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애교 부리는 말투까지 선보이며 내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해줬다.

    "음. 용서하지!"

    그 모습이 너무 예뻤기 때문에, 나는 쿨하게 사라의 잘못을 넘어가 주기로 했다.

    결코 사라가 다 알지만 넘어가 준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이 이상 따지면 역으로 내가 당할까 봐 넘어가 준 게 아니야.

    < 던전에서 성자가 하는 일 87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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