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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코홈! 이 몸은 자네를 믿고 있었네."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얘가 나한테 마법까지 선보이면서 진심으로 화난 게 대체 얼마 만이야.
그야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내가 여자를 덮친 줄 알았다고 오해한 거니까,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말이야.
오히려 곧장 마법을 안 날린 것만 보더라도 디아나가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지 알 수 있었다.
"모, 못 믿은 게 아닐세! 다만 바넷사가 저런 장난을 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뿐일세!"
"다시 말해서 나보다 바넷사를 더 믿었다는 거잖아! 너무해! 우리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였어?!"
"그, 그러니까 조금 전에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솔직히 나 같아도 나보다 바넷사를 더 믿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디아나는 진심으로 미안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토닥토닥 정도로 끝났으면 디아나도 내 평소 행실이 문제라면서 반박했겠지만, 마법까지 사용하면서 진심으로 화났었으니까 말이야.
결국 마법을 나한테 날린 건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디아나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훗. 그러니까 넌 그냥 나한테 앞으로도 토닥토닥만 하면 되는 거다.
"아, 아무튼! 역시 자네에게 바넷사를 맡겨서 다행이네. 역시 이 몸의 낭군님일세. 한없이 진지하기만 하고 무뚝뚝했던 아이가 이제 저렇게 농담도 할 수 있게 되다니…."
"좋은 얘기였던 것처럼 마무리 지으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해도 소용없다."
"아으아아…아프네에에…."
디아나는 갑자기 진지한 얘기를 꺼내면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지만, 나는 그 머리 위에 턱을 얹고 빙글빙글 돌려주는 것으로 그 시도를 무위로 돌렸다.
디아나도 이게 먹힐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는지, 별다른 저항 없이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다리를 파닥파닥 거리기만 했다.
머리 위에 턱을 올렸다는 걸 보면 알겠지만, 디아나는 지금 내 무릎 위에 앉아있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바넷사랑 그런 걸 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똑똑히 본 건 역시 충격이었을 테니까 말이야.
이렇게 끌어안아서, 나름대로 멘탈 케어를 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아, 참고로 바넷사는 오해가 풀리자마자 도망치는 것처럼 방을 나갔다.
걔가 원체 무표정이라 겉으로 그런 내색을 보인 건 아니었지만, 바넷사 역시도 디아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창피할 테니까 말이야.
아까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날 곤란하게 한 것만 봐도 그렇고.
혹시 전에 내 얼굴 보기 부끄럽다고 피해 다닌 것처럼, 이번에는 또 디아나를 피해 다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가.
"디아나, 구원 거기 있나요?"
아무튼 그렇게 디아나와 노닥거리고 있자니, 노크 소리와 함께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성에서 돌아온 건가? 하긴 그냥 내가 기절해있던 사정만 말하고 온 거고, 실비아가 따라간 것도 아니니까 오래 걸릴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사실 디아나랑 이렇게 노닥거리다가 은근슬쩍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하는 수 없지. 기회가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디아나야. 봤냐? 저게 바로 노크라는 거야. 사람과 사람이 마찰 없이 사는 데 꼭 필요한 일반교양이지."
"…자, 자네에게 교양 얘기를…으아아아…움직이지 말게에…."
"응. 나 여기 있어. 들어와."
뭐 이것아?! 나한테 교양 얘기를 들어서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나는 다시 한번 턱을 중심으로 고개를 빙글빙글 돌려서 디아나를 제압하고, 사라를 들어오게 했다.
"…대체 또 뭘 한 거야?"
그리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사라가 처음 한 말이 이런 말이었다.
성에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뭘 했다고?
혹시 펠리시아 그게 또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
"뭐가?"
"바넷사씨한테 구원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니까, 여기라고 알려주면서 꼭 노크하고 들어가라고 신신당부를 하잖아. 분위기도 평소랑 조금 다른 것 같았고. 디아나랑 하는 중이면 나중에 보겠다고 하니까, 그건 또 아닐 거라고 하고. 뭐야 대체? 이번엔 또 뭘 저질렀는데?"
바넷사야….
"…딱히 아무것도. 그, 그런 것보다! 성에 갔다 온 일은 어떻게 됐어?"
"흐으응…. 내가 그 여자를 싫어한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어."
노골적으로 수상하게 얼버무린 내게 사라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래도 나랑 바넷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기가 너무 심하게 간섭할 생각은 없다는 듯 그냥 넘어가 줬다.
질투심이 유독 심한 사라다 보니 오해하기 쉽지만, 이렇게 여럿이서 날 공유하는 상황이다 보니 되도록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너무 심하게 간섭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나로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뭐,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사라야. 지금 뭐라고?
"뭐? 무슨 일 있었어?"
"별로. 평소대로였어. 처음에는 안 어울리게 어두운 얼굴로 짜증 나게 굴더니, 사정을 설명해주니까 금방 또 원래대로 돌아와서 쓸데없는 말장난이나 하면서 짜증 나게 굴고. 아, 그러고 보니 미안. 구원이 깨어난 것만 말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사정까지 설명하고 말았어."
"아니. 그건 괜찮지만. 어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주. 그것도 훗날 여왕이 될지도 모를 왕위 계승 순위 1위의 여자다.
사정을 들었다면 일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걔가 이미지 때문에 가벼워 보이기는 해도, 은근히 비밀이 많은 성격이니까 말이야.
알아서 잘 입단속을 하겠지.
"찾아갔을 때부터 계속 이쪽이 짜증 날 정도로 우울해하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사정을 알고 원래대로 돌아와도 짜증 났지만. 나도 참 바보같이 그걸 까먹고. 정말 괜히 말했어."
사라는 저렇게 말하면서 투정을 부렸지만, 나는 그 모습이 흐뭇하게 느껴졌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펠리시아가 걔가 우리 사라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고 할까?
"하하. 바보. 바보."
"야 너 죽을래?"
사라랑 그렇게 장난을 치면서, 나는 한편으로 사라에게 들은 얘기를 정리해봤다.
솔직히 이렇게 얘기만 들어서는, 펠리시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눠도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를 녀석이니까.
다만 이상하게 뭔가 석연치 않다고 해야 할지.
마지막으로 펠리시아의 얼굴을 봤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그 녀석, 나한테 차이고도 마지막에는 뭔가 엄청 멀쩡해 보였으니까.
"그보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응?"
"디아나는 왜 아까부터 말이 없어?"
그러고 보니.
사라의 지적을 받고 디아나를 내려다보니, 디아나는 뭔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몸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고 있었다.
"아, 응. 별일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까 사라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을 때, 그 무슨 일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올라버린 거겠지.
그리고 아마, 아니. 이건 사라 앞에서 할 생각이 아닌가.
괜히 서버리기라도 하면 위험하고.
"바넷사씨가 노크하라고 당부한 것도 그렇고, 역시 방해였어?"
"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히려 네가 있어주는 편이 더 흥분…."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그래서는 마치 이 몸들이 지금 몰래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살짝 장난을 치자, 내 무릎 위에서 조용히 꼼지락거리던 디아나가 화들짝 놀라서는 튕겨 나가듯 일어나버렸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내 머리에 전력으로 토닥토닥 펀치를 날려댔다.
그래. 디아나야. 바로 그거다. 그거야말로 네 아이덴티티야.
"……."
물론 내 장난에 반응한 건 디아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라 역시도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날 노려봤다.
예전에도 한 번 생각했던 거지만 말이야. 이 두 변태는 서로의 성벽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아?
한 명은 보이는 걸 좋아하고 한 명은 보는 걸 좋아하는 성벽이라니.
뭐, 실제로 그걸 이용해서 어떻게 해볼 마음은 안 들지만 말이야.
전에 한 번 해본 적 있지 않냐고?
그때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일이 꼬여서 그렇게 된 거고.
아마 내가 일부러 둘의 성벽을 이용해서 그런 짓을 저질러버리면, 끝나고 나서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싫다는 짓을 억지로 흥분시켜서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내가 성욕에 굶주린 변태도 아니…아니. 뭐, 맞기는 맞지만. 적어도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보다 성욕을 우선할 정도로 못 써먹을 놈은 아니다.
언제나 말하지만, 난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순정남이라고.
"디아나. 벌써 다 들킨 것 같은데 억지로 숨길 필요도 없는 것 아닐까?"
뭐, 그래도 치던 장난은 계속 칠 거지만.
"아닐세에! 사라양! 아닐세! 이, 이…이 자는 조금 전까지 바넷사랑 하고 와서 그럴 기운도 없네!"
아니! 디아나! 아무리 노출증 관련으로 장난을 쳤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해?! 라고, 당황할 줄 알았나? 훗. 디아나. 아직 멀었구나.
"그럴 기운이 없기는 왜 없어?! 바넷사랑 하고 왔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 너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자! 봐! 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아!? 지금 그게 중요한가?! 응?! 그게 중요한가?! 내밀지 말게! 가라앉히게! 지금 뭘 하는 겐가?!"
내가 일부러 텐트를 치고 일어나서 디아나에게 들이밀자, 디아나는 다급하게 외치며 내 물건에 토닥토닥 펀치를 날리려다가 직전에 멈췄다.
그래 봤자 내게 데미지는 없고, 괜히 사라 앞에서 내 물건을 터치하게 되는 꼴이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쳇. 이런 경황 중에도 저런 판단력이 남아있다니.
"이게 바로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거야! 방금 그 발언만큼은 아무리 디아나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야. 구원."
"보시다시피 전부 장난이었습니다. 하하."
아까보다 더 열기를 띤 사라의 시선을 받고, 나는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이 이상 장난치면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나겠네.
"아, 스, 슬슬 레이아와 마틸다도 돌아왔으려나? 가봐야겠다. 교황님이 잘 계시는지 너무 궁금하네."
"…무서워서 통신 마법으로도 그 아이 얼굴은 잘 안 보러 가지 않나."
"시, 시끄러워!"
고작 그 정도 토닥토닥 공격을 지속한 정도로 숨을 헐떡이고 있으면서 냉정하게 태클 걸지 마! 그럴 시간에 가서 토닥토닥의 극의나 연마하고 와!
그리고 교황님한테 그 아이라고 하지 마! 그야 나이로 따지면 네가 훠어어얼씬 많겠지만!
다른 마법사 협회 누님들이라든가 길드장이라든가 다른 사람들은 얼굴이 그럭저럭 젊어 보이니까 그나마 위화감이 덜하지만, 교황님은 외견부터 진짜로 할머니라서 위화감이 장난 아니라고!
아무튼 그런 소동 끝에, 나는 겨우 돌아와서 해결해야 할 급한 불을 전부 끌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집에만 있었고 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뭔가 묘하게 사건이 많고 긴 하루였어.
던전, 그것도 그 지옥에서 막 올라온 사람이 감당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결국 길었던 하루도 다 끝났고, 남은 건 실비아 테라피를 받으며 즐기는 것만 남았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밤을 지내기로 하고, 실비아와 같이 자는 건 처음이다.
아마 실비아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겠지.
얼마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지, 저녁 시간에 식당에 오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나라도 그 지옥에서 막 돌아와서 긴 하루를 보내고 밤까지 힘을 쓰는 건 조금 피곤하기는 했다. 정력 이전에, 정신이 수면을 요청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 귀여운 실비아가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는데, 힘내지 않을 수가 없지.
어차피 하면서 실비아 테라피도 듬뿍 받을 수 있을 테니, 그걸로 정신을 치유할 수 있고.
그리고 하다 보면 또 불이 붙어서 피곤함도 잊을 테고. 좋아! 난 할 수 있어!
난생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각오를 다지면서, 나는 실비아가 기다리고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네가 자고 있는 거냐?!"
침대에 뻗어있는 실비아가 있었다.
심지어 내가 들어와서 소리까지 질렀는데 일어날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햐으…무리…입니댜아아…."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실비아는 그런 잠꼬대를 중얼거리며 자면서까지 죽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Sasins // 사실 저도 어떻게 할지 아직 안 정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구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실험해보려다가 무서워서 그만두는 장면이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