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기간 -->
"실비아?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아무리 실비아라고 하더라도, 이건 그냥 내가 근처에 있어서 떨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젯밤 일을 부끄러워하느라 나와 눈도 못마주치고 있던 레이아까지 살짝 몸을 숙여서 실비아의 안색을 살폈다.
"우읏…아, 아닙니다아…."
하지만 레이아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실비아는 더더욱 몸을 바르르 떨더니 아예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기까지했다.
아니기는 대체 뭐가 아니라는건지.
그런 실비아를 보고 나와 레이아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물론 그런다고 해서 실비아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웃…."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레이아도 조금 전까지 자기가 부끄러워하는 중이었다는 걸 깨닫기라도 했다는 듯 다시 내게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뭐야. 이 묘한 분위기는.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일단 식당으로 내려갈까."
"네에…."
"네, 네헵!"
아니. 그러니까 너희 둘 다 묘한 분위기 만드는 것 좀 자제해주지 않을래?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잖아.
안 그래도 우리 파티는 주목받기 십상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침을 먹고 레이아를 위로 보낼 때까지도, 이 묘한 분위기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레이아 식사를 하면서 점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풀렸지만, 실비아는 여전히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침 식사도 미리 일찍 일어나서 마치고 왔다는 듯, 실비아는 음식에 입조차 안 대고 가만히 앉아만있었기 때문에 더욱 분위기가 묘했다.
"그럼 구원씨. 나중에 봐요."
"응. 다음에 봤을 때는 특훈의 성과를…."
"정마알! 짓궂으세요!"
뒤돌아서 꼬리로 내 가슴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는 그대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사라져버린 레이아.
그렇게 레이아를 보내고 나서, 나는 곧장 실비아와 똑바로 마주봤다.
"그럼."
"네, 넵! 후우읍…후으읍…."
내 신호를 곧장 사냥에 가자는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실비아는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정신집중을 위한 심호흡을 했다.
"일단 여관으로 돌아갈까."
"넵! 헷? 네, 네헷?!"
하지만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단 말이지.
내가 그 손을 붙잡고 여관을 향해 걸어가자, 정신집중을 통해 마음가짐을 사냥모드로 바꾸고 늠름하게 대답했던 실비아는 곧바로 정신집중이 깨지며 흐물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게 끌려왔다.
아니. 그렇게 수상한 거동을 하고 있는 애를 데리고 그냥 사냥에 갈 리가 없잖아.
"그래서, 레이아랑 무슨 일이 있었어?"
"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온 후, 나는 실비아와 정면으로 마주앉고는 심문을 시작했다.
그런 내 압박 심문에, 실비아는 벽과 하나가 될 기세로 몸을 찰싹 붙이고서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태도가 이상한지 말해."
"저, 전 언제나 구원님과 있으면 언제나 태도가 이상합니다아!"
아니. 야. 그걸 자기 입으로 인정하면 어떻게 해.
뭐, 부정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언제나 이상해지기는 하지만.
아니. 이상해진다고 해도 좋은 의미로 말이야. 귀엽게 이상해진다는 거야. 응.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뭐야? 말해. 말 안하면…."
"우, 우으으…저, 정말로 구원님과 같이 있어서어…."
지금도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나는 표정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뭘 하겠다고 제대로 말도 안하면서 어설프게 협박을 하자, 실비아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비아는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대답할 때까지 끌어안고 달콤한 목소리로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일거야."
"오늘밤이 무서워서 그랬습니다아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실비아는 몸을 한 차례 바르르 떨고는 곧바로 계속 태도가 이상했던 이유를 실토했다.
…뭐야. 그러니까, 얼버무리려고 거짓말한 게 아니라 진짜로 나랑 있어서 그런 거라고?
"아니. 뭘 새삼…레이아랑 눈 마주칠 때 시선은 왜 피했는데?"
"그, 그건…레이아님이…."
"레이아가?"
"여, 여자의 얼굴이…."
…아아. 응.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왜 실비아가 오늘따라 유독 과민반응을 하는지 깨달았다.
이 며칠동안, 실비아는 계속 봐왔던 거다. 나랑 단둘이 지내고 올 때마다 우리 애들이 여자의 얼굴이 되어서 오는 걸.
사라는 엄청나게 신이 나서 돌아갔었고, 바넷사는 그 철혈집사님이 삐질 정도로 과격하게 했었다. 디아나에 이르러서는 디아나의 허리가 빠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까지 해댔다.
그러니 돌아가고 나서도 행동거지에 조금쯤 그 여파가 묻어나왔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을 보면서, 실비아는 다가오는 자신의 차례에 자신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상상력을 부풀리며 공포에 떨었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얼굴을 보니 레이아마저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여자의 얼굴이 되어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른 애들과 달리 레이아는 직전까지 나와 연결되어있었던 모습을 본 거니, 무슨 일을 했는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을 거다.
…사라를 제외하면 다들 특히 더 격렬하게 해버린 게 이런 상황을 초래할 줄이야.
"…사냥이나 갈까."
상황 파악을 완료한 나는, 잠깐의 침묵 끝에 그냥 말을 돌리기로 했다.
적당히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줬어도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난 거짓말 같은 걸 할 줄 모르는 순수한 사람이라서 말이야.
"우아아아앙…."
그리고 내가 어떤 의도로 말을 돌렸는지 깨달은 듯, 실비아는 본격적으로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야.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 짓지 말라고.
"자, 자. 일어서. 일어서. 전투는 제대로 할 수 있지?"
"우으으…하, 할 수 있습니다아아…."
가만히 놔두면 대성통곡이라도 할 것 같은 실비아를 이끌고, 나는 황급히 사냥을 나섰다.
"자, 그럼…."
"……."
본인이 말한대로, 마을 밖으로 나오자 실비아는 곧바로 전투 모드로 들어가서는 무뚝뚝한 표정이 됐다.
하여간 집중력 하나만큼은 최고라니까.
뭐, 그래서 나랑 있을 때도 너무 좋아서 죽으려고 하는 거지만.
아무튼 그런 실비아를 바라보면서 일단 한시름 놓은 나는 곧바로 오늘은 어떤 식으로 전투를 할지 생각해봤다.
이렇게 동행자를 바꿔가면서 전투를 하면, 매번 파트너의 직업군이 달라지니까 전투 방식도 새로 생각해야 한단 말이지.
실비아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없으니, 사라나 디아나, 바넷사처럼 멀리 있는 적을 몰아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어제 그랬던 것처럼 다소 데미지를 입더라도 전신에 스킬을 둘러서 빠르게 몬스터를 처리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힐러가 없으면 축적되는 데미지를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치료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던전 안에서 힐링 섹스를 실행하기는커녕 얘기만 꺼내도 실비아는 죽으려고 할거다.
설령 전투 모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실비아의 역할을 살리는 방식으로 싸우는 건데…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성자 스킬을 사용해서 전투를 하면 근접 딜탱이라고 할 수 있는 실비아가 나설 일이 없단 말이지.
내 성장이 목적이니 딜은 오로지 나만 해야 하고, 그렇다고 탱커 역할이 필요할 정도로 전투가 오래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아예 오늘은 성자 스킬을 봉인하고 월영무사의 스킬들만 써서 사냥을 해볼까?
원래부터 월영무사의 레벨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월영무사의 레벨이 원래 생각했뒀던 것만큼 많이 오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본래 레벨이 4계층 수준보다 훨씬 낮았던만큼 나흘사이에 상당한 성장을 보이기는 했었다.
이름 : 구원
종족 : 인간 24
직업 : 성자 203 / 모험가 82 / 월영무사 156 / 정령사 26
레벨 : 203
생명 : 56200/56200
정기 : 22900/22900
근력 : 441
내구 : 475
민첩 : 471
체력 : 393
지력 : 246
정신 : 394
매력 : 458
보너스 스탯 : 387
상태 : 보통
이정도 레벨이라면 스킬 레벨이 낮더라도 내 압도적은 스탯과 합쳐져서 그럭저럭 빠른 사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스탯만 놓고 보면 6계층에 돌아다니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준, 아니. 6계층에 다니고 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수준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자 스킬을 쓰지 않고 얼마나 파트너를 위험에 처하는 일 없이 사냥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걸 레이아와 있을 때 알아볼 수도 없지 않겠어?
그런 점에서 실비아는 레벨로 보나 단단함으로 보나 이런 걸 시험해보기에 제일 적합한 파티원이었다.
"실비아. 오늘은 성자 스킬을 봉인하고 싸울 생각이야. 실비아는 지켜보고 있다고 만약에 내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끼어들어서 공격을 막아줘."
"넵! 구원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몬스터를 찾아 나선 우리를 처음 맞이해준 건, 다름 아닌 백상아리 두 마리였다.
4계층에서 만날 수 있는 몬스터 중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종류의 몬스터였지만, 물론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애초에 4계층의 몬스터들은 성자 스킬을 봉인하더라도 내 상대는 아니니까. 다만 성자 스킬 없이 얼마나 빨리 사냥할 수 있을지가 문제일 뿐이지.
게다가 월영무사의 여러 가지 스킬들을 시험해 보며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편이 더 좋지 않겠어?
나는 우선 약점 파악을 사용하여 백상아리를 관찰했다.
섹스 애널라이즈가 상대의 성감대를 핑크빛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이 약점 파악은 사용하면 상대의 약점을 푸른빛으로 보여주는 스킬이었다.
이는 월영무사가 되기 전에 암살자 때부터 배울 수 있었던 스킬로, 암살자의 필수 스킬이기도 했다.
암살자는 기본적으로 빠른 움직임으로 적의 급소를 노리는 직업이고, 패시브 스킬도 약점 공격 시 크리티컬 확률을 늘려준다든가 크리티컬 데미지를 늘려주는 식의 스킬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암살자와 무투가의 하이브리드 직업인 월영무사 역시도 그러한 특징은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나같은 경우는 옛날에 수컷 늑대개들의 알을 따고 다니면서 배운, 무자비라는 스킬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야.
급소 공격이 다른 부위를 공격하는 것보다 적게는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아무튼 약점 파악을 사용한 내 눈에 백상아리의 약점들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그 중 가장 강한 빛을 뿜고 있는 건 바로 아가미였다.
그렇게 공격 목표를 정한 나는, 곧바로 백상아리들을 향해 헤엄쳐갔다.
그리고 백상아리들과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순간, 나는 곧바로 은신을 사용했다.
어제 하루 종일 쓰면서 꽤나 스킬 레벨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앞에서 사용한 은신이 통할 정도로 높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굳이 이렇게 쓴 이유는, 백상아리들에게서 숨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은신을 쓴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백상아리들의 움직임에서 머뭇거림이 느꼈다.
아마 내가 순간적으로 흐릿하게 보였다든가, 그런 거겠지.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은, 내게 공격을 허용하기에 충분한 시작이었다.
"치사하게 너희들만 물속에서 숨쉬기냐!"
해봤자 딱히 의미 없는 말을 외치면서, 나는 기를 두른 주먹을 백상아리의 아가미에 꽂았다.
그 순간 백상아리의 입에서 거품이 새어나왔지만, 물론 그 공격 한 방으로 바로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도 이번 공격은 전투의 밑그림을 그린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방금 전 공격한 부위에 검은 초승달 모양의 표식이 새겨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백상아리의 이빨을 피해 살짝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백상아리의 이빨이 허공에서 부딪힌 순간, 나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나이프를 투척했다.
백상아리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듯 몸을 틀어 나이프를 피했지만, 뒤에 있던 놈은 갑자기 나타난 나이프를 차마 피하지 못했다.
그 나이프 자체가 치명상을 입힌 것은 아니었지만, 출혈 효과를 지속시켜주는 스킬을 담아서 던졌거든.
그리고 이런 물속에서, 출혈효과는 꽤나 컸다.
게다가 앞의 놈이 억지로 나이프를 피하면서, 두 마리의 몸이 미묘하게 겹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뒤에 있던 놈의 몸 위에 앞 놈의 그림자가 떠오른 순간, 나는 주저 없이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이걸로 화려하게 공격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였지만, 다음 순간 내 눈앞에는 백상아리가 두 놈 다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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